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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컨설팅

정재형 지음 | 흐름출판
가문컨설팅

정재형 지음

흐름출판/2004년 9월/344쪽/13,000원



월 1억 신화, 이렇게 만들어졌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몇 달을 고민한 후 - 미래를 움직일 강력한 힘은 언론계와 법조계 그리고 금융계에서 나올 것이라고 판단하여 - 졸업하자마자 나는 교보생명에 입사했다. 금융 쪽이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금융계의 중심은 보험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보험 회사를 선택했고, 영업직을 원했다. 내가 첫 발령을 받은 곳은 서울 신설동 로터리에 있는 신제기영업소였고, 직책은 총무 - 영업소장을 도와 영업소를 운영하고, 설계사들의 영업을 측면에서 지원하는 업무 - 였다.

보험 영업은 ‘실적으로 말한다.’고 하는데 당시 나는 영업소의 실적 증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지금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고민할 시간에 내가 먼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다. 첫 마감 때의 일이다. 영업소 전체 실적이 엄청나게 감소할 것으로 추정되어, 마감하는 날, 나는 조회시간에 5분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간청했고, 소장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허락해 주었다.

“오늘은 제가 직장 생활을 한 후 처음 맞는 마감 날입니다. 그런데 실적을 보니 지난 달 보다 엄청나게 떨어졌더군요. 여러분에게는 늘 있는 마감이지만, 저에게는 처음이라 의미가 남다릅니다. 시작이 좋아야 끝도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첫 마감부터 남들보다 못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제발, 이번만은 저를 위해서라도 마감을 잘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나는 진심으로 호소했다. 이변이 일어났다. 단 하루 만에, 한 달 동안 성사한 계약 건수의 절반이 들어온 것이다. 결국 그 달, 우리 영업소는 전국 1등을 했다. 나는 그 때 ‘영업은 마음이다.’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 이후 나는 조직에 대한 사랑이 생겼다. 그러자 그저 직장 동료로만 여겨졌던 모든 사람들이 마치 가족처럼 느껴졌다. 조직과 조직 구성원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입사한 지 채 1년도 되기 전에 나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영업소장을 지원했고, 마침내 영업소장이 되었다. 가장 실적이 저조한 곳을 희망했고, 내가 발령받은 곳은 문 닫기 일보 직전의 청량리지점 OO 영업소였다. 막상 출근 첫날, 눈으로 현장을 직접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람들은 패배 의식에 젖어 있었고, 출근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그런 분위기였다. 내가 분석한 OO영 업소의 문제점은 세 가지 - 만성적인 지각, 전문적인 교육의 부재, 직업에 대한 확신 부족 - 였다.

나는 먼저 설계사들의 태도와 자세부터 바꿔나갔다. 그 첫 번째가 출근 시간 엄수였는데, ‘한 명도 지각하지 말자’라는 규칙을 세우고, 실적보다는 출근을 우선시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설계사들의 반발은 무척 심했다. 그러나 나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 정도의 반발에 흔들리면 영업소의 미래는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또 나는 설계사들의 태도와 자세를 바꾸려면 특단의 조치 - 설계사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솔선하여 모범을 보일 수밖에 없음을 - 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나는 당시 조직과장이었던 차성훈 과장에게 우리 영업소를 맡기고, 영업 출장을 가기로 결정했다. 일정한 매출 목표를 세운 25일간의 출장 계획이었다.나는 같은 지점의 선배인 정정문 영업소장(현재 나의 매니저)과 함께 일명 ‘거제도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연고가 전혀 없는 거제도로 향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우리는 출발한 날, 전치 2주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해 있을 수만은 없었다. 주부들이 많이 모이는 에어로빅 센터를 찾아갔다. 참고로 당시 그 지역에 사는 남자들은 대부분 보험가입 제한 대상이었는데, 때마침 회사에서 관련 규정을 바꿀 것이라는 정보를 접한 우리가 남보다 한 발 앞서 움직였던 것이다. 그 덕에 거기 있던 주부 여덟 명 중 여섯 명과 그 자리에서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다음날에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할 수 없이 서울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이 있은 뒤 우리 영업소에도 보이지 않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비록 약속한 매출은 올리지 못했지만, 설계사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모범을 보인 영업소장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여기에 당시 불편한 몸으로 농사를 지으시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들을 잘 부탁한다며 오리고기를 사들고 영업소를 방문하신 후, 설계사들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 그때 함께 있던 설계사들이 아들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에 감동했던 모양이다. 가족 사랑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영업소장이 된 지 일 년째 되는 날, ‘오피스텔 프로젝트’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나는 사비로 마련한 오피스텔을 사무실로 개조하고, 젊고 실력 있는 인재들을 영업소가 아닌 오피스텔로 출근시켜, 그곳의 입주자들을 공략하게 했다. 오피스텔 프로젝트는 성공하여 영업소의 계약 건수는 늘었고, 설계사들의 수입도 올라갔다. 오피스텔 프로젝트를 통해 나는 VIP 마케팅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VIP 마케팅을 하기 위해선 차별화된 마케팅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이 시기에, 회사에서는 판매 채널의 다양화를 꾀하기 위해 실적이 좋은 영업소장들을 주축으로 복합 TM(Tele-Marketing : 텔레마케팅)센터를 만들었는데, 나도 그 중 한 사람으로 선택되는 영예를 안았다. 나는 세계 최강의 TM 센터를 만들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나는 최고의 텔레마케터를 영입하기 위해 지점과 회사를 가리지 않고 사람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뛰어다니길 3개월, 나는 조직의 키 맨이 될 수 있는 인재 네 명을 스카우트하고, 그들을 주축으로 여든 명의 조직을 확보했다. 또 국내 최고의 센터를 만들겠다는 생각에 사비까지 털어 교육비로 충당했다.

그러나 최고들이 모였기 때문에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무참하게 빗나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 - 교육에만 치중했더니 수입이 줄면서 조직에서 이탈하는 사람까지 생기는 등 - 들이 발생했다. ‘정말 이러다간 망하겠구나.’하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렇게 힘겨운 4개월을 보낸 2002년 6월, 영업소는 서서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내가 원했던 최고 수준의 조직은 아니었지만, 기존 TM 센터로서의 면모 정도는 되었기에, 나는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복합 TM 센터를 운영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잃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설계사들을 너무 사랑해서 그리고 다음에는 엉망이 된 영업소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그만두지 못했던 나는, 복합 TM 센터의 경험을 계기로 인생 계획을 대폭 수정했다. 그러던 중 내 결정에 쐐기를 박은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아버지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다행히 보험회사에 다니는 아들 덕에 암 보험에 가입해둔 상태였던지라 병원비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었고, 수술도 성공적이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보험의 진가를 톡톡히 경험하고 나니 좀이 쑤셨다. 이 좋은 것을 나 혼자만 알고 있자니 왠지 죄를 짓는 것 같았다. 이때부터 보험 컨설팅을 바라보는 내 시각도 달라졌다. 그 전까지는 보험 컨설팅을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고 돈을 버는 수단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버지 일을 계기로, 역경에 처한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진정한 보험정신을 전파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그리고 보험설계사는 고객의 가정을 지키고 돕는 ‘고객 가문의 집사’라는 생각이 굳어졌고, 나는 그 중 최고의 집사가 되고 싶었다.

때마침 회사에서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나는 보험설계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희망퇴직을 신청한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회사를 그만뒀고, 광화문 브랜치를 선택하여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광화문 브랜치를 선택하게 된 한 가지 이유는 내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분은 바로 김광래 지점장이다. 그리고 거제도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던 정정문 매니저를 만나 내 계획을 말하고 그에게 내 매니저가 돼 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개인적인 손해(약 6천만 원)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승낙했다. 이렇게 해서 김광래 지점장, 정정문 매니저와 나는 다시 한 배를 타게 됐다.

2002년 10월 1일, 드디어 나는 FA, 즉 보험설계사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나의 첫 고객은 민원고객이었다. 내가 영업소장으로 일할 때였는데, 그분은 우리 회사와 이미 30년 넘게 인연을 맺고 있었던 VIP 고객이었다. 당시 그분은 회사 측의 실수로 엄청난 피해를 입고 소송을 고려할 정도로 불신에 가득 차 있었다. 직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민원으로 인한 회사의 이미지 손상과 고객의 물질적 손해를 줄이기 위해 5개월 동안 뛰어다녔다.

그런데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나를 보고 그분은 회사에 대한 화를 조금씩 누그러뜨리는가 싶더니 점점 나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보험설계사가 되고 나서 얼마 뒤, 그분이 나를 불러 “회사에는 실망했지만 자네는 믿을 수 있을 것 같네. 지금까지 자네처럼 내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네. 앞으로 좋은 정보를 많이 알려주게. 그리고 내 자산을 관리해주게나.”라고 말했다. 훗날 그분은 나에게 재정 설계를 의뢰했고, 내가 제시한 플랜이 흡족했는지 내 첫 고객이 돼주셨다. 그 일을 계기로 영업에 힘을 얻은 나는 첫 달에 많은 계약을 했고, 한 달 만에 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 : 초년도 영업수당 6만 달러 이상 설계사들의 모임)를 달성했다.

그 뒤 나는 매주 세 건씩 계약을 체결했고 ‘12주 연속 3W(한 주에 세 건의 계약을 하는 것) 달성’이라는 기록까지 세웠다. 그 결과 나는 설계사 입문 3개월 만에 MDRT의 세 배 실적에 해당하는 꿈의 COT(Count Of the Table)를 달성하는 영예를 안았다. COT 달성을 통해 영업 전략에 대해 확실히 감을 잡은 나는, 내 영업방식을 ‘가문컨설팅’으로 지칭하고 그에 대한 특허출원을 신청했다. 나만의 차별화된 마케팅 기법, 독특한 마케팅 브랜드로 영업의 틀을 잡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내가 항상 영업을 잘 했느냐 하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활동 첫 달부터 4개월째까지는 순조로웠지만, 5개월째로 접어들면서 나에게도 시련이 닥쳤다. 5개월째에는 무실적의 날이 이어졌다. 한 달 내내 60명이 넘는 고객을 만났지만 계약은 단 한 건도 체결하지 못했다. 나는 오히려 평소보다 더 많은 고객을 만났다. 그렇게 별다른 성과 없이, 활동 6개월째로 접어들면서 다행히 새로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유명세를 치르면서 ‘서울대 최고경영자 과정’을 비롯해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이 쇄도했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벤치마킹하겠다고 사무실을 찾았다. 나는 비록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더라도 요청을 뿌리치지 않고 모두 응했다. 새로운 영업을 준비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약의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활동 7개월째는 내 평생 잊지 못할 역사적인 달이 되었다. 그 역사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람은 바로 P회장님이다. P회장님은 무대포 정신으로 고객을 찾아다니던 중 동료의 소개로 알게 됐다. 나는 정중히 만나 뵙기를 청했고, 처음 만난 날, 골프 약속을 하고 말았다. 골프채라고는 단 한번도 잡아본 적이 없는 나는, 고객과의 약속 때문에, 연습 3일 만에 달랑 7번 아이언 하나를 들고 필드에 나갔다. 그날 나는 130타라는 형편없는 기록을 세웠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내 관심사는 오직 친구가 필요했던 고객에게, 친구가 되어드렸다는 사실뿐이었다. 그 뒤에도 P회장님과 나는 골프를 종종 함께 친다. 여전히 회장님과는 적수가 안 되는 실력이다. 그래도 회장님은 때론 친구 같고, 때론 아들 같다면서 흔쾌히 나를 대동하신다.

한번은 회장님과 골프를 마치고 근처 온천에 간 적이 있다. 연로한 회장님은 오랫동안 탕 속에 있기가 불편했는지 자주 들락날락 하셨다. 그런데 이동 중 불편한 다리로 인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치 못했다. 늙으신 부모님 생각도 나고,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어디, 제가 주물러 드릴게요. 이렇게 따뜻한 물 속에서 주물러주면 좋다네요.” 하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만 회장님 무릎으로 손이 갔다. 회장님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그런 나를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보셨다.

그리고 얼마 뒤 회장님은 날 부르셨다. “며칠 후면 채권자금 만기가 돌아오는데 한번 활용해봐.”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나는 지점장, 매니저, 회계사와 함께 밤을 새우며 보험 플랜을 짰다. 우리가 회장님께 제시한 보험플랜은 가문컨설팅의 은퇴 플랜과 상속 플랜이었다. 회장님은 두말없이 보험에 가입하셨고 그분을 비롯한 많은 고객들의 도움으로 활동 7개월 만에 꿈의 TOT를 달성할 수 있었다.

활동 9개월째로 접어들자 또 다른 변화가 나타났다. 기존 VIP 고객들이 다른 VIP 고객을 소개해주기 시작한 것이다. 정직하고 성실한 영업 방식을 고수한 것이 두고두고 나에게 보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존 고객들의 소개 계약이 잇따랐지만, 나는 새로운 고객을 발굴하고 찾아다니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고객과의 유대관계가 주효했다고 할 수 있다. 활동 1년째에 접어들자 이제는 고객들이 먼저 나를 찾았다. 게다가 유명세를 타면서 영업에 더욱 탄력이 붙기 시작했고, 활동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새로운 기회들이 많아졌다. 그렇게 고객들의 지속적인 후원으로 나는 활동을 시작한 지 일 년 만에 연봉 12억 원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달성했다.

1998년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후, 보험과 인연을 맺은 지도 올해로 칠 년째에 접어들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칠 년이라는 세월은 내게 가장 큰 아픔을 안겨줌과 동시에 나를 한층 성숙하게 만들어준 시간이었다. 한마디로 도전과 좌절 그리고 성공을 향한 열정의 시간이었다. 정재형의 대명사가 돼버린 ‘도전정신’은 긍정적인 사고 그리고 독특한 서비스와 함께 나의 가장 큰 장점이 됐다. 또 성공하고 싶다면 처음부터 큰 성공을 욕심내지 말고 작은 성공부터 차근차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도전이라도 한번 이루고 나면, 그 다음 도전에 대해 성공의 확신을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방카슈랑스 시대에 살아 남는 법

방카슈랑스를 계기로 금융권의 고객확보 전쟁은 불이 붙었고, 그 열기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그로 인한 금융 환경의 변화 때문에, 금융권은 물론 고객까지도 위기와 기회라는 두 변수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사람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도 모르는 힘과 용기가 솟아오르게 마련이다. 내가 방카슈랑스를 기회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앞으로 더 많은 고객들이 전문적 재정 컨설턴트를 찾게 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고객을 다섯 시간 만난다면, 한 시간은 공부를 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 다양한 상품 정보를 익혀 상품의 활용도와 이익 창출의 여러 가지 가능성을 모색해야 된다. 또 경제 지표와 소비 심리를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전문 자격증을 취득해야 된다. ‘프로의 시대’에 자격증은 필수다.

이제 단순히 상품만을 팔던 시대는 가고, 업종을 불문하고 컨셉을 파는 시대가 되었다. 특히 고객의 라이프 사이클에 따른 위험을 관리해주는 보험은 컨셉이 더욱 중요하다. 나는 고객에게 다가갈 때 항상 두 가지 시각 - 고객의 인생 전반에 관한 보험 플랜을 설계하는 것과 가문(명가)이라는 시각에서 고객의 플랜을 설계하는 것 - 에서 접근하는데, 이러한 나만의 컨셉은 기존의 상품이나 경쟁 상품과 차별화된 그 무엇을 만드는 힘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객의 상황과 기존 상품을 체크하고, 문제점과 그에 따른 해법을 발견하는 데서 컨셉을 찾아내야만 한다.

그리고 남들보다 경쟁력 있는 보험설계사가 되려면, 고객이 나를 선택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멀티 스페셜리스트(Multi-Specialist)가 되어야 한다. 금융상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고객의 자산을 관리하고 보험은 물론 투자 정책, 세금 대책 등을 포괄하는 투자 방법을 조언할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는 인생 상담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 혼자서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자신 있는 부분을 주 전공으로 살리고, 나머지는 분야별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내가 전문지식 습득에 심혈을 기울이는 또 다른 이유는 고객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 더 많은 이익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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