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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괴담

매트 헤이그 지음 | gigo
담배 제조사들은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표준적인 담배 생산 방식에 약간의 변형을 가하여 새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특히 저 타르 담배가 인기를 얻자 담배 회사들은 건강에 해롭고 반사회적인 담배에 대해 소비자를 회유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1988년 흡연 반대 운동을 펼치던 로비스트들에 의해 습관적인 흡연이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준다는 사실과 간접흡연의 위험이 사회적인 이슈로 부상했던 당시 카멜(Camel), 윈스턴(Winston), 살렘(Salem), 도랄(Doral) 등으로 알려져 있는 'RJ 레이놀즈 타바코 컴패니(RJ Reynolds Tabacco Company)'는 연기가 안 나는 담배를 준비하고 있었다. 연기 없는 담배 '프리미어(Premier)'는 자그마치 3억 2천 5백만 달러짜리 프로젝트였다.



그렇지만 테스트 단계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나타났다. 우선, 맛에 대한 문제였다. 그리고 피우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다. "프리미어를 들이마시기 위해서는 진공 청소기와 같은 강력한 폐가 필요했고,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용접용 점화장치가 있어야 했다. 갖은 노력으로 불을 붙이는 데 성공했다손 치더라도 점화의 기쁨은 잠시일 뿐, 유황과의 화학작용으로 인해 구역질나는 냄새와 맛이 진동했다." 설상가상으로 프리미어가 코카인 등의 마약 중독을 유인하는 담배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는 RJ 레이놀즈 사가 원했던 브랜드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주요 논쟁거리 중 하나는 프리미어에 대한 젊은이들의 이미지였다. 미국의 주요 건강 단체들은 프리미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프리미어의 최첨단 디자인이 어린이와 10대 청소년을 니코틴 중독에 빠지게 할 것 같아 걱정이 된다. RJ 레이놀즈가 '깨끗한 즐거움'을 강조하여 실시하고 있는 마케팅 활동은 흡연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프리미어는 안전하다는 느낌을 갖도록 현혹할 것이다. 흡연자들이 금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프리미어에 대한 건강 단체들의 제재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흡연자들이 연기가 없는 담배를 즐기지 않았으며, 무연 담배라는 이유로 비흡연자들을 흡연하도록 유혹할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4개월 동안 판매량이 매우 부진하자, RJ 레이놀즈 사는 실패를 인정하고 프리미어 생산을 중단했다. 그러나 1990년 중반 프리미어의 실패 후에도 RJ 레이놀즈는 여전히 소극적인 흡연자들을 고려해 볼 때 연기 없는 담배를 위한 시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996년에 RJ 레이놀즈는 추가로 미화 1억 2천 5백만 달러를 들여 '이클립스(Eclipse)'라는 업그레이드된 무연 담배를 만들었다.

숯을 사용하여 기존 담배에 비해 연기가 거의 나지 않는 이클립스가 실제로 흡연이 초래하는 건강상의 위험을 약화시켰는지는 의문시되었다. 메사추세츠 주 공공 건강센터에서 저 타르 담배와 이클립스를 비교하는 자체 실험을 실시한 결과 이클립스가 여러 독소에서 더 높은 수치를 보였는데, 이는 강한 흡입으로 숯이 뜨겁게 탈 때 더욱 심각했다. 이클립스는 처음부터 건강에 초점을 맞추어 마케팅 활동을 전개해 왔기 때문에 이 정보는 큰 타격이었다. 미국 내 수많은 건강단체의 반발을 차치하더라도 이클립스가 진짜로 실패한 이유는 흡연자들이 무연 담배의 필요성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연기 없는 담배로부터의 교훈

- 실험 결과를 가지고 소비자들을 현혹하지 말라

- 실제 구매자들을 고려하라

- 만일 한 번 실패했다면, 다음에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라1955년에 출시된 크레스트는 P&G가 만든 최초의 불소 함유 치약이었다. 당시는 콜게이트(Colgate) 치약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신기술의 크레스트는 확실한 기술적 우위를 갖고 있었다. 미국치과협회는 크레스트가 치아 부식을 효과적으로 막아준다는 품질 보증을 해주기도 했으며, 출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크레스트는 라이벌인 콜게이트를 따돌리고 선두 브랜드가 될 수 있었다.



1980년대에 이르러 갑자기 새로운 브랜드들이 나타나면서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 흡연자를 위한 브랜드, 치아를 하얗게 해주는 브랜드, 아이들 및 노년층을 위한 브랜드 등 다양한 치약들이 등장했다. 불소는 더 이상 구매를 결정하게 만드는 보증수표가 될 수 없었다.



크레스트는 점점 더 많은 종류의 치약을 판매했다. 또한 콜게이트가 강력한 경쟁 상대로 새롭게 부각되었는데, 콜게이트는 자신만의 치석 억제 치약을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치아 관리에 필요한 모든 사항들을 관리할 수 있는 치약 연구에 착수했다. 크레스트가 기본은 같으면서 약간씩만 변형한 새로운 제품들을 마구잡이로 출시하여 치약 구매자들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을 때 콜게이트는 마침내 불소, 치석 억제, 잇몸 보호 기능까지 총망라한 '콜게이트 토탈'을 출시하여 크레스트를 따돌리고 다시 시장의 선두가 되었다.



왜 크레스트는 크레스트 토탈이나 크레스트 컴플리트를 경쟁사보다 더 빨리 만들어내지 못했을까? 문제는 P&G의 브랜딩 방식에 있었다. P&G는 1980년대 동일 제품군에 대해 수십 가지 브랜드를 만들어 '50가지의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데, 왜 한 가지 제품만 판매하는가?'라는 브랜드 전략을 공표한 바 있다. P&G는 브랜드가 많을수록 판매량도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선택권이 늘어난 만큼 혼동도 늘어났다. 결국 P&G의 기대와는 달리 크레스트 종류가 많아질수록 시장 점유율은 낮아졌다.



마케팅 전략 전문회사인 리스앤리스가 크레스트를 컨설팅할 때 이 문제를 발견했다. 『브랜딩 불변의 법칙 22』에서 알 리스와 로라 리스는 이 경험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우리가 크레스트 사를 위해 일할 때 마케팅 매니저는 우리에게 '크레스트에는 38가지 종류의 치약이 있습니다. 너무 많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너무 적다고 생각하나요?'라고 물었다. 우리는 '당신의 입에는 치아가 몇 개나 있죠?'라고 물었다. '32개요.' 우리는 '그 어떤 치약도 한 사람의 치아 수보다 많으면 안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P&G는 많은 종류의 브랜드를 판매하면서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는 '제살 깎아먹기 전략'을 전면 바로잡기로 결정했다. P&G는 크레스트 치약의 종류를 줄이고, 포장 디자인을 단순하게 바꿔 매장에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P&G가 크레스트의 종류를 어느 정도 줄인 후 판매는 호전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다시 선두 자리를 되찾기 어려워 보였다. 여전히 경쟁은 치열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P&G가 다시 한 번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소비자에게 한 가지 메시지만을 꾸준히 전달하는 전략을 실행하지 않았다면, P&G의 크레스트는 콜게이트와의 경쟁에서 결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 크레스트로부터의 교훈

- 소비자를 헷갈리게 하지 말라

- 회사의 전통을 기억하라현재 맥도날드는 전세계적으로 2만 5천 개 이상의 점포를 가지고 있으며, 매일 4천만 이상의 지구인들이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는다. 1990년대에 이르러 맥도날드는 패스트푸드 업계에서 1위의 자리를 지키고는 있었지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많은 난관들을 겪게 되었다. 아치 디럭스 같은 신제품들이 실패했으며, 환경보호론자나 반자본주의자 등 여러 정치 세력과 갖가지 분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들 가운데 장시간에 걸쳐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었던 것은 바로 헬렌 스틸과 데이브 모리스가 관련된 명예훼손 소송이었다.



이 사건은 1986년 그린피스 런던 지부가 발행한 「맥도날드,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팜플렛이 도화선이 되었다. 팜플렛에는 맥도날드로 인한 동물학대, 맥도날드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펼치는 비윤리적인 마케팅 전략, 열대우림 감소 및 맥도날드 제품들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관한 사회적·환경적 이슈를 다루고 있었다.



그러나 만약 맥도날드가 이 문제를 법정 싸움으로까지 끌고 가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오늘날까지 그 팜플렛의 내용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노 로고(No Logo)』의 저자, 나오미 클라인마저도 그들이 배포한 팜플렛의 내용은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았다. "그린피스 런던 지부가 맥도날드를 상대로 펼친 캠페인은 명백하게 채식주의자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사실상 명예훼손 사건이 일어나게 된 계기는 맥도날드 체인점이 저지른 동물학대나 환경 파괴, 혹은 노동자 착취와 같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맥도날드가 헬렌 스틸과 데이브 모리스에게 한 행동들 때문이었다."



맥도날드는 처음에 다섯 명의 운동가들을 상대로 명예훼손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세 사람은 사과하고 물러나 버렸다. 이 소송은 자그마치 313일이나 소요되었는데, 소송이 진행됨에 따라 언론의 관심도 날로 늘어가 처음 팜플렛에 실렸던 주장 하나 하나가 법정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언론에도 주요 관심사로 등장하게 되었다.



1997년 6월 19일, 맥도날드는 승소 판결을, 그리고 스틸과 모리스는 손해배상 판결을 받게 되었으며, 맥도날드의 음식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팜플렛의 내용은 증거 부족으로 기각되었다. 스틸과 모리스가 비록 6만 파운드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이는 맥도날드의 이미지 손상에 따른 비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은 금액이었다.



영국 신문 「가디언」지는 맥도날드의 법정싸움을 기사화하면서 그 결과가 단순히 법률상의 문제에 한정된 것은 아니라고 기술했다. "이번 승소에 따르는 비용을 생각해 보자. 우선 판사가 맥도날드 반대론자들이 내놓은 몇몇 중요한 사실을 인정했다. 보다 심각한 것은 스틸과 모리스가 전 세계 언론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앞으로 PR 실패사례가 언급될 때마다 이번 사례는 역사상 가장 경솔하고 부적절했던 행동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상의 사실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맥도날드 사건에 대해 '언론이 어떻게 보도했으며, 그로 인해 대중들이 어떤 이미지를 갖게 되었는가?'하는 점이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 명예훼손 소송은 맥도날드의 국제적 명성에 큰 오점으로 남아 있다.



· 맥도날드 명예훼손 소송으로부터의 교훈

- 이제 더 이상은 자본력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라

- 사람들이 어떤 기업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에 주목하라1980년대 말, 켈로그는 씨리얼 제품군으로 미국 인스턴트 식품 시장의 40%를 점유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는데, 당시 매년 6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전 세계 18개 국가에 20개 이상의 생산공장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핵심 시장에서 씨리얼 제품 수요는 포화 상태에 이르러 더 이상 성장할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1990년대 초 유럽과 미국이 아닌 다른 시장을 찾고 있던 켈로그는 인도가 씨리얼을 판매할 수 있는 적당한 목표 시장이라고 결론내렸다. 인도에는 약 9억 5천만 명이 살고 있었고, 2억 5천만 명이 중산층이며, 씨리얼 시장이 전무했기 때문에 잠재성이 무궁무진해 보였다.

그러나 인도 사람들에게는 아침에 씨리얼을 먹는다는 생각 자체가 생소한 것이었다. 실제로 일반적인 인도인은 뜨거운 야채 한 접시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는 켈로그에게 직접적인 경쟁자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제품을 대대적으로 홍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아침에 씨리얼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부터 교육해야 함을 의미했다.



처음 판매량은 고무적이었는데, 켈로그는 인도 시장에 대한 추가 시장 조사도 없이 판매 제품 종류를 늘리기로 결정했고, 급기야 자사 제품을 '인도화'하려고 시도했지만 인도인들에게 외면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켈로그는 인도에서의 실패를 받아들이고, 인도 시장에서 브랜드를 확고히 하기 위해 비스킷을 팔기로 했다. 켈로그는 씨리얼을 정상가의 절반 가격으로 판매하는 등 출혈적인 전략도 단행했지만, 비스킷 제품이 아이들 대상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는 동안, 너무 낮은 가격으로 인한 손익불균형은 씨리얼 분야의 고전을 부추기기에 이르렀다. 한 연구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가격 요인 때문에 켈로그는 인도 시장에서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켈로그가 인도인의 입맛에 맞는 씨리얼을 개발하더라도, 비싼 가격 때문에 여전히 도심 중앙과 부유한 가정에서만 판매할 수 있을 뿐, 시장 확대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켈로그로부터의 교훈

- 진출하고자 하는 시장의 문화를 학습하라

- 소비자들의 문화를 거스르지 말라제품이나 서비스 판매에 있어 유명인을 내세운 스타 마케팅은 소비자의 주목률을 높이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 유명인이 직접 창업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연예인이 창업한 곳 중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곳은 할리우드를 테마로 한 식당인 플래닛 할리우드였다. 브루스 윌리스, 아놀드 슈워제너거, 실베스타 스탤론 등 이름만으로도 엄청난 몸값을 떠올리게 하는 유명 투자자를 보유한 이 체인점은 1991년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며 개장한 후 급속히 성장하여 세계 곳곳에 80개의 체인을 열었다. 그러나 8년만인 1999년, 플래닛 할리우드는 도산했고, 체인점들은 문을 닫았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떠들썩했던 브랜드가 십 년도 안 돼서 망할 수가 있을까? 첫째, 이 회사는 2003년까지 300개의 지점을 개설하기로 했던 원래의 계획을 무시하고, 본점에서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섣불리 브랜드를 확장했다. 둘째, 장기적인 관점의 경쟁력 구축을 간과했다. 음식점은 뭐니뭐니 해도 음식 맛이 중요하다는 평범한 공식을 무시한 플래닛 할리우드는 단 한번도 음식 광고를 하지 않았다. 편리함과 저렴함을 내세우는 맥도날드조차도 결코 음식을 간과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도 플래닛 할리우드에는 새로움을 찾아 한 번 정도 식당을 방문하는 뜨내기 손님들이 기웃거릴 뿐이었다. "플래닛 할리우드는 관광객들에게는 괜찮다. 아이들과 하루쯤 외식을 하고 싶은 사람들도 즐길만하다. 그러나 딱 한 번 가보면 되는 곳으로 '거기 가봤어'라고 말하면 끝인 곳이다. 플래닛 할리우드에는 소비자들을 단골로 만들 수 있는 이유가 전혀 없다."



· 플래닛 할리우드로부터의 교훈

- 유명인사만으로는 부족하다

- 입소문이 중요하다

- 테마와 연결되는 기반 상품이 있어야만 한다미국 부유층을 타겟으로 하고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지며, 모든 젊은 층으로부터 호감을 사는 브랜드로 성장한 토미 힐피거는 2000년에 갑작스럽게 어려움에 봉착했다. 주가는 떨어지기 시작했고, 판매량은 줄어들었으며, 제일 잘 나가던 런던과 베버리 힐즈의 주력 판매점은 문을 닫았으며, 세계의 많은 패션 쇼로부터의 초대도 취소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토미 힐퍼거의 성공은 다른 어떤 브랜드보다도 로고에 뿌리를 두고 있었는데, 실제로 가장 큰 히트작은 토미 힐피거 로고가 새겨져 있는 빨간색-흰색-파란색 티셔츠였다. 기본 색상에서부터 토미 힐피거라는 대문자에 이르기까지 로고와 관련된 모든 것은 강인함, 무모함, 100% 미국적인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문맹이 아닌 사람들이라면 상대방이 무엇을 입었는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다.



그러나 1999년 회사가 안정기에 접어들자 소비자들이 더 이상 토미 로고를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토미 힐피거는 많은 제품에서 로고를 없애거나 아주 작게 만들었다. 이러한 행동은 자신의 브랜드에 영광을 안겨준 브랜드 가치를 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최상층을 겨냥한 브랜드인 '레드 레이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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