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진화
멜린다 데이비스 지음 | 21세기북스
제1장 가상의 시대가 온다
인류 역사 제2부1991년 티모시 버너 리가 제네바 호 근방의 분자물리학연구소에서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을 창안했고, 다음해 마크 안드리센은 넷스케이프의 전신으로서 모든 웹브라우저의 모태가 된 모자이크(MOSAIC)를 개발했다. 결국 월드와이드웹은 '인류 역사 제2부'로 정의되는 멈출 수 없는 현상을 진행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 새로운 현상은 물리적 현실이 더 이상 시간의 유일한 존재 공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변화를 단순히 기술적 현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기술적 측면은 물론이고 사회경제적, 지적, 심리적, 인구학적, 과학적, 상업적, 생리적, 심지어는 우주적인 사건들이 전례 없이 한 방향으로 수렴해가고 있는 것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가 외부의 물리적인 세계에서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불확실한 가상의 세계에서 보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가상의 세계' 혹은 '가상계(可想界)'는 '허구의 세계(imaginary world)'와는 다른 개념이다.
가상의 세계란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과 전자신호로 짜여져 있지만 인간의 상상력을 통해 경험할 수 있고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디지털 데이터를 쏟아내는 신경계, 지적 작업과 혁신, 이미지와 브랜드, 그리고 상상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극소(極小)의 구조를 다루는 물리학의 새로운 분야 등과 같이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는 영역인 것이다. 나아가서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으며, 어떤 유인에도 동요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높고 견고한 문화의 요새들까지도 가상의 현실에 점령되고 있는 것이다. 새 현실로의 전환은 '스위치(The Switch)' 현상에 의해 마음속 가장 중요한 곳에 자리하게 된다. 스위치란 일종의 깨달음을 체험하고 대부분의 중요한 삶의 현실이 물리적 세계가 아닌 마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가상의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뚜렷하게 목격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기술에 의한 가상계의 발달기술은 가상계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주된 요소이다. 아니 그보다 기술이 우리를 무형의 영역으로 내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끝없이 발전하는 신기술은 더 많은 양의 이미지와 정보를 산출해내고, 우리 머릿속은 복잡해지다 못해 생각의 체증에 걸릴 지경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물리적 세계를 떠나 실제 사물과는 적어도 한 발 떨어져 있는 '전자적으로 중개된' 경험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난무하는 정보의 혼돈에 익숙해져 있다. 시간이나 공간, 주제에 제약 없이 사방에서 우리에게 쏟아지는 정보와 아이디어, 비트와 바이트들은 사정없이 우리의 머릿속을 침입해 들어와 우리 내면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과 이를 이용한 상업적 전술들이 우리 내부 전자적, 지적 공간의 문을 제거해버렸다. 그리하여 디지털 기업의 제품이 전자적으로 밀려들어와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가상의 세계를 독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데스크를 소유함으로써 마음을 소유한다(own the desktop, own the mind)'는 단순한 목표로 시작한 이들 기업의 전략적 추구는 일반 대중 전체의 마음의 문을 점령하려는 시도로 발전했다. 과거에는 우리가 데이터의 흐름을 '불러들여야만' 정보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데이터가 개인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마음속을 마음대로 드나들고 있다.
푸시기술(push technology)이나 쿠키(cookies), 또는 푸시쿠키라는 낯선 용어들이 이 같은 현상을 주도하고 있다. 쿠키는 일종의 '데이터 자아(data-self)'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 자아(real self)'는 보지 못하는 상대방과 대화를 하고, 존재 여부가 불확실한 다른 '데이터 자아'들과 '자료화된 삶(data life)'을 창출한다. 이는 내면적인 독백과는 다르며 시공을 초월한 정보기술의 보이지 않는 에테르 속에서 이루어지는 거래이며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적 가상계와의 새로운 인터베이스는 두뇌와 기술적 장치 간의 상호작용을 아주 쉬울 뿐 아니라 구별하기 어렵게 만든다. 어디까지가 두뇌의 활동이고 어디부터가 기술의 작용인지 모르게 되는 것이다. 물리적 세계에서의 협상도 기술에 의해 점차 가상적인 작업이 되어가고 있다. 새로운 미디어의 필연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는 디지털 신경망은 우리 모두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고 우리를 새로운 장으로 이끌 것이다. 그곳은 유일하고 번복할 수 없는 가상의 세계로 거대하고 지능적이며, 투명하게 연결되어 있는 우리의 '공동두뇌'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그 안에서 형제 없는 대상들과 협상하게 될 것이며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비가시적인 현실에 대해 커져가는 경이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 정신이 육체를 통제한다 : 우리 삶의 가장 물리적인 측면까지도 가상의 힘에 압도되고 있다. 우리 몸의 물리적인 공간은 마음상태 그리고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상상의 에너지에 크게 영향 받는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체육 실기 분야는 정신을 통한 육체 통제 실험의 대표적인 무대라고 할 수 있는데 무술에서 수중발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스포츠 종목에서 선(禪)을 수행하고 있다. 명상 수련은 육체적 훈련과 동일한 신경회로에 작용하는 것이다. 섹스도 더더욱 가상적인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매체들이 전달하는 성적 환상은 아름다운 육체의 이미지에서 복잡한 정적 역할 수행이나 가학 및 피학성 변태 성욕과 같은 파격적이고 정신적인 성행위의 가상적 경험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가상계의 시대에서 육체는 저급한 존재가 되었다. 현재 널리 퍼져있는 인간의 조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과거의 종교적인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종교의 세계에서 육체는 본디 하찮은 것이며 그 안에 심오한 진리를 담아내기 위한 것일 뿐이다. 이 같은 신비론적 사고는 일종의 바이러스처럼 우리 문화를 감염시키고 놀라운 속도로 문화의 주류로서 자리잡고 있다. 마음은 세상의 물리적인 현상마저 지배하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생각의 힘만으로 물리적 환경의 모든 측면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 스크린으로 공유하는 가상세계 : 일인칭의 물리적 현실로부터의 집단적 이탈현상이 처음 일어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그것은 현대인 모두에게 가장 친숙한 세계라고 할 수 있는 영화와 텔레비전이 출현했을 때이다. 스크린을 통해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실제의 경험보다 더 현실적이며 내면에 와 닿는 전자적 화면에 익숙해지는 과정에 첫발을 들여놓았던 것이다. 오늘날 범람하는 미디어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신문뿐 아니라 인터넷 게임, 웹, 온라인 채팅, MP3와 같이 사람들과 실세계 사이를 전자적으로 매개하는 사실상 모든 수단을 망라하고 있다. 우리를 끊임없이 가상계 시대로 이끄는 스크린의 힘은 매우 강력해서 너무도 쉽게 우리를 물리적 세계로부터 끌어내어 가상계로 이끈다. 그리고 우리 삶과 비즈니스의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 거대한 집단적 반의식 상태 : 지금 새로운 기술은 수많은 사람들을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마을로 흩어지도록 하고 있다. 또한 시간대와 지역의 개념이 유동적으로 바뀌면서 소비자들은 마케터들에게 이중의 어려움을 안겨주고 있다. 그것은 소비자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들을 찾아내는 것마저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삶에 다양한 매체의 선택이 주어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지극히 가상적인 기반을 공유하게 된다는 것이 하이퍼미디어 시대의 진리이다. 실제 세상에서 우리가 개인적으로 보내는 시간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우리는 점차 많은 시간을 다같이 '마음과 전자로 자아낸' 세상에서 보내게 된다. 그것은 바로 원초적 스크린이다.
오늘날의 삶은 한마디로 스크린 위의 삶이다. 일찍이 인터넷 심리학을 주창했던 MIT 대학의 셰리 터클 교수가 『스크린 위의 인생(Life on the Screen)』이라는 저서의 제목에서 시사한 것처럼 스크린은 새로운 가상 시대의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원폭 투하 지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전자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간형이나 문화에 대해 모두 만족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 같은 변화에 갈채를 보내거나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싫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정확한 것은 원초적 스크린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원초적 스크린은 실재적 삶이요, 우리가 살아갈 거시적 환경인 것이다.
제2장 인간의 생존 본능이 바뀐다우리는 각자의 머릿속에서 가상세계의 새로운 삶에 대한 규범의 포로가 된 채 이 새롭고 잘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리적인 것들이 주도하던 우리의 현실이 가상의 현실로 전환하면서 우리는 크나큰 불안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최신의 경영혁신 이슈를 다루는 「패스트컴퍼니」 지에서조차 천천히 사는 법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할 정도이다. 이 잡지의 기사에 의하면 이미 1999년에 미국인의 12퍼센트가 하지 않아도 될 일만이라도 줄이려는 취지의 '자발적인 간소화 운동'에 동참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의 두뇌회로는 기술적 발명품들의 침범으로 과부하 상태에 도달하고 있다.
스트레스라는 유행병인류 역사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빠르고 격렬한 변화가 인간 조건을 정의하는 상수라는 생각을 공유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현재 상황은 활기를 띠고 있고 변혁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가 미처 새로운 현실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또 다른 현실이 다가오고 있다. 해리스 폴(Harris poll, 전세계를 대상으로 시장 및 여론조사, 컨설팅을 수행하는 기업)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기술제품 소비자의 60퍼센트가 최신형 기기의 구입을 모두 중단했다고 한다. 컴퓨터 보유자의 40퍼센트는 가능이 너무 복잡하다고 응답했다. 신제품을 사는 짜릿한 기쁨은 사라지고 '새로운 것은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화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미래의 새로운 것보다는 새로움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해주는 것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 우리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초가속화되어가는 기술세계의 조성과 적응과정을 뛰어넘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이 모든 내면의 문제들로 인해 스트레스와 불안은 엄청난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 미국 질병관리센터는 현재 의료비의 80퍼센트가 스트레스와 관련되어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미국이 의료비에 지출하는 내용 중 매년 60∼80퍼센트는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스트레스는 실로 죽음을 초래하는 주원인인 것이다. 한편 직장 사망률의 두 번째 원인은 '분노'이다. - 정신장애의 위협 : 정신적 능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점점 이 시대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가상계의 시대에서 가상의 힘을 잃는다는 것은 치명적 손상이며 죽음과 같은 것이다. 정치 후보자들을 상대로 한 넥스트그룹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76퍼센트가 자신 또는 다른 삶들의 정신질환이나 정신적 능력 상실이 미래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라고 답했고, 64퍼센트는 마음상태를 심각한 사안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현대인의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은 이미 절리 알려져 있다. 세계보건기구의 사무총장인 그로 할렘 브룬틀란트 박사는 세계적으로 신경정신과 장애가 전체 장애의 31퍼센트를 차지한다고 말한다. 2000년 세계보건기구, 세계은행,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이 공동으로 실시한 연구조사에 의하면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기준으로 전체 질병과 관련된 비용의 15퍼센트 이상이 정신질환으로부터 발생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종류의 암과 관련된 비용을 합한 것보다 큰 금액이다. 1952년 60여가지로 분류되었던 정신질환의 종류에는 미국정신학회가 1994년에 발간한 최신판 학술서『정신장애 진단기준(The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IV)』에 게재된 지침에 의하면 무려 410가지로 늘어났다. 우리의 마음상태 현황은 그야말로 '공중보건의 위기' 수준에 접근하고 있다. 이제 정신질환은 국가보건상의 가장 심각한 문제이며 우리의 삶을 성공적으로 유지해나갈 수 있는 능력에 대한 가장 만연된 위협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은 살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정신 이상에 걸릴 확률은 극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 주의력 결핍 :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의 주의력결핍장애(attention deficit disorder: ADD) 또는 이와 밀접하게 관련된 주의력결핍 과다활동장애(attention-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DHD) 증세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전혀 드문 일이 아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자극하고 우리의 주의를 흐트러뜨리며 우리에게 한 무리의 마법사가 동원되어야 가능할 정도로 많은 양의 과제를 떠맡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다중 작업을 할 수밖에 없어 언제나 여러 가지 일에 반쯤 주의를 기울인 상태에 있게 된다. 「와이어드」 지는 ADD를 '정보화 시대의 공식적 정신증후군'이라고 불렀다.
- 정신병과 경증 정신장애 : 레이티 박사는 DSM-IV 상에 언급된 대부분의 정신질환 종류에 대해 전신질환과는 확연히 구분되어 정상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는 가벼운 증세를 제시하고 이를 '섀도 신드롬'이라고 정의했다. 불안은 이 시대의 흑사병 혹은 흔한 감기에 비유될 수 있다. 미국인의 16퍼센트가 DSM-IV의 공식 정의에 따른 심각한 수준의 무력성 불안장애를 갖고 있다. 인디애나 대학의 랠프 스완들 주니어와 버니스 페스코솔리도의 2000년 연구조사에 의하면 우리 중 3분의 1이 거의 정신적 붕괴 직전 상태에 있으며 그 비율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절실하게 내면적 구원을 갈망하고 있다. 인간이 처한 이 새로운 곤경으로 인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가장 본질적인 측면, 즉 종(種)의 생존 본능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제3장 새로운 욕망, O를 찾아라
최적의 마음상태, O인간의 새로운 욕망을 가장 고상하게 그리고 일반적으로 표출하는 것을 O를 추구하는 열망이라고 말한다. O란 일종의 영적 초월의 개념으로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린다. 이를테면 더 존(the Zone), 더 플로우(the Flow), 신바람 되찾기(getting our groove back), 치유적 블러스(healing bliss) 등과 같은 것들이다. 쉽게 말해 O는 최적의 마음상태를 상징한다. 이는 절정의 내면적 기쁨이며 궁극적인 마음의 감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달리기, 기도, 춤, 찬송, 명상, 혹은 골프 등 어떤 행위를 통해서든 그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O상태는 우리의 생존을 위한 새로운 필수요소이다. 그것은 우리가 모든 광기를 극복하고 살아남아 있다는 그리고 가상계 시대의 희생자가 아닌 명예로운 승리자라는 최후의 증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 세속적 무아경 : 신성함과 저속함의 중간쯤에 일종의 세속적 무아경의 개념이 존재한다. 이는 현실에 바탕을 둔 도취 또는 현세적 초월에 대한 긴박한 추구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종교적이나 영적으로 정의된 목표가 아니고 가상계 삶의 절정 체험을 말 그대로 순간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운동선수나 예술가들은 이 같은 집중과 성취의 완전한 기쁨의 상태를 더 존(the Zone)이라고 부른다. 더 존은 다량의 엔도르핀 방출과 관계 있는 소위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달리는 동안 빠지는 일종의 도취상태)'라는 상태를 좀더 신비롭게 표현한 것이다. 또 다른 이들은 이 같은 은혜의 상태를 '플로우(Flow)'라고도 한다. 이는 우리의 마음을 영감과 거룩함의 초점에 놓이게 하는 내면적 힘의 도취적이고 지속적인 흐름을 말하며, 특히 창조적인 작업을 수행할 때 빠지게 되는 상태이다. O의 추구는 단순한 라이프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진화에 있어 하나의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새로운 원초적 욕망은 과거에 있었던 그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궁극적인 생존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더 많은 시간을 O상태에 머무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같은 정신적 생존 전략을 통해 가장 행복한 삶을 영위해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