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맛·단맛·감칠맛이 영업 안에 있더라
권종숙 지음 | 한비미디어
제1부 프로라면 모름지기 평양 기생이 되어야 한다
현장에 답이 있다어떻게 하면 영업을 잘할 수 있을까? 발로 뛰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머리로 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며, 거래처와 유대관계를 돈독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 먼저 해야 될 일은 직접 발로 시장에 뛰어들어가 고객의 욕구를 파악하는 일이다.
의사가 환자의 병을 오진하면 환자의 생명에 위험이 있듯이, 영업도 현장 조사를 잘못하면 판매전략 수립이 잘못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매출을 감소시키는 누를 범하게 된다. 그만큼 현장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현장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데, 제 아무리 훌륭한 마케팅 이론이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국내 모 신발업체가 인도네시아에 진출하기 위해 시장조사를 했다. 당시만 해도 인도네시 아의 오지에 사는 사람들은 맨발로 생활했다. 그래서 현장에 와보지 않은 기획파트 임원 들은 인도네시아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시장상황을 살펴본 영업책 임자는 그들에게 신발의 편리한 점을 인식시켜 신고 다니게 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시장 이 될 것으로 판단하였다. 결국 그 신발업체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
선입견을 버려라1993년 경남 충무에 '삼성타워'라는 백화점이 오픈했다. 영남사업부장으로 부임하여 이 백화점에 가보니, 우리 제품은 하나도 없고 경쟁사 제품들만 가득했다. 백화점 식품부장 에게 "왜 우리 제품을 하나도 취급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개점할 때 다른 회사 직원들 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방문하는데, 우리 직원들은 한 사람도 오지 않았기 때문에 취급할래 야 취급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혹시나 하고, 백화점이 경쟁사 그룹에서 직영하는 것인지 를 물어보았더니 경쟁사 그룹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개인 소유의 백화점이었다. 지점에 돌아가서 지점장에게 "왜 삼성타워에 우리 제품이 하나도 없느냐?"고 물었더니, 도리어 "경쟁사 그룹에서 운영하는 곳에 어떻게 제품을 납품시킬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 는 것이 아닌가?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면서, "삼성그룹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을 확 인하고 왔는데,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다그치니까 고개를 숙이며, 사실은 담당 영업사 원이 '삼성타워'라는 간판만 보고 들어가 보지도 않은 채 경쟁사 그룹에서 운영하는 곳이 라고 보고하기에 그런 줄 알았다고 털어놓았다.
영업하는 사람은 어느 거래처든 간에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선입견에 사로잡혀 본분을 잃어버리면, 기본적으로 영업맨의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설령 '삼성타워'가 경쟁사라서 당장은 납품이 어렵다 하더라도, 자주 방문하여 물건을 납품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영업사원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신규 거래처를 개척할 때는 거래가 성사될 때까지 방문하라토마스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기까지 천 번이 넘는 실험을 했다. 원하는 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이란 가히 눈물겨운 것이었으리라... 그 많은 실패를 경험하면서 무엇을 배웠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나는 천 번을 실패한 것이 아니라, 전구에 불이 들어 오지 않는 천 가지 방법을 배웠을 뿐이다."라고 대답했다.
영업도 마찬가지다. 시장이 아무리 넓어도, 그중 '내 땅'을 확보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따라서 거래처 한 곳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남모르는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업은 남을 이기는 과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열 번, 백 번, 천 번이라도 방문한다는 각오로 임하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된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친숙해져서 친밀감이 생겨 거래가 시작되고, 마침내 계약이 성사되는 것이다.
어려운 거래처라고 포기하지 말고, 상대방을 파악한 후 공략하라홍제동 시장의 '한일슈퍼'는 경쟁사에서 근무하던 사람이 운영하는 곳인데, 우리 제품을 하나도 취급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협조를 구했으나 "퇴직 전까지 당신 회사와 치열하게 경쟁했는데, 퇴사했다고 해서 어떻게 팔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곤 했다. 인맥을 동원 하여 술좌석까지 마련하여 우리 제품의 일부만이라도 판매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결과는 허 사였다. 여러 가지 궁리를 하던 중에 좋은 아이디어를 찾아냈다. 한일슈퍼가 있는 시장 입구에 점 포 하나를 골라 회사에서 직영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점포와 가계약을 맺었다. 가계약 후 얼마 되지 않아 한일슈퍼의 사장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결국 점포계 약을 취소하는 조건으로 우리 제품을 판매하겠다는 확답을 받았고, 그 뒤로는 꾸준하면서 도 원만한 거래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영업에서의 협상은 힘이 대등할 때 이루어지며,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강하면 협상은 진행시키기가 어렵다. 따라서 상대방과 버금가는 힘을 갖추어야만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 또한 아무리 어려운 거래처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방안을 강구하다 보면, 좋은 해결책이 나오는 법이다.
꼴찌도 언젠가는 일등이 될 수 있다91년 3월에 입사한 J사원이 처음 담당한 곳은 강릉 중앙시장이었는데, 이 시장은 새벽 5 시에 개장하였으며 주로 식당을 하는 상인들이 새벽에 나와서 장을 보는 시장이었다. 당 시 시장 내 41개 점포 중 11개 점포만이 우리 제품을 취급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경 쟁사 제품을 위주로 판매하고 있었다. J사원은 입사하자마자 새벽 5시에 시장으로 출근하였다. 그리고는 하루 1개 점포씩 문 여 는 것을 도와주며 아침식사를 그들과 같이 하고, 저녁 8시가 되면 다시 시장으로 가서 폐 점을 도와주고 주인과 소주 한잔을 나누는 일을 3개월 동안 계속하였다. J사원은 시장 내 모든 점포의 개·폐점하는 것을 평균 2회 이상 도와준 셈이었다. 결국 입사 당시에 월매출이 1천만 원에 불과하던 판매실적이 불과 3개월 만에 3천5백만 원으로 껑충 뛰어올랐고, 6개월 후에는 6천만 원의 매출을 기록하여 경쟁사 제품의 매출 을 앞지르게 되었다.
회사 일을 자기 일 이상으로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새벽 5시에 시장으로 출근하려면 늦어도 새벽 4시에는 일어나서 준비해야 할 것이고, 또 이러한 일을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한다는 것은 보통 정성과 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뒷날 상인들로부터 "어떤 때는 주인보다 먼저 출근하여 가게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진심으로 감복하여 도와주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참으로 J사원이 자랑스러웠다.
장사도 전문기술이다K씨는 용산 청과물시장에 있는 '한진상회' 앞에서 리어카에 배추와 무를 파는 소매상이었 다. 그는 오랜 경력을 바탕으로 리어카 앞을 지나가는 주부들의 눈빛만 봐도 야채를 살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었다. 그는 살 사람이라고 판단이 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 리어카에서 야채를 사지 않고는 못 지나게 만들었다. 도대체 주부들의 눈빛을 어떻게 감별하는 걸까? '마주치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난 아 직 몰라, 난 정말 몰라...'라고 노래했던 여가수가 K씨에게 와서 배워야 될 일이 아닌가 싶다. K씨는 그 후 점포를 마련하여 도매업을 시작했고, 그 자리를 새로 C씨가 이어받아 장사를 시작했는데 C씨는 4개월만에 장사가 안 된다며 그만두고 말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야채를 판매하면서 K씨는 아들딸 학자금을 벌어서 대학을 보낸 것은 물론이고 점포까지 마련했는데, 왜 C씨는 4개월을 못 넘기고 그만 둔 것일까? 자기가 하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쌓아 성공할 수 있지만, 자기와의 싸움에서 자포자기하는 사람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영업하는 사람들이 다시 한번 되새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윗사람만 믿고 담당을 무시하다가는 큰코다친다91년 영업본부장으로 있었을 때의 일이다. N백화점은 우리 회사와 유대관계가 좋았던 곳 으로 매출액이 경쟁사와 비교해 월등히 높았으며, 신제품이 출시되면 가장 먼저 입고시켜 주는 우리로서는 매우 우수한 거래처였다. 그런데 그 동안 그곳을 담당했던 Y과장이 다른 곳으로 전출되고, K과장이 새로 부임하였다. 그는 시장조사를 마치고 나서는 "N백화점의 구매담당 이사가 대학 동창이므로 앞으로 매출 증대는 따논 당상"이라며 의기양양했다. 그런데 K과장이 N백화점의 구매담당자 대신 구매담당 이사와 직접 일을 진행시키는 바람 에, 구매담당자가 등을 돌리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아무리 구매담당 이사가 지시를 해도 N백화점의 구매담당자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불이익을 주었고, 결국 매출 신장은커 녕 오히려 매출이 감소하고 말았다.
'송곳은 끝에서부터 들어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영업하는 사람들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직이야말로 최선의 방책이다영업하는 사람 중에는 거래선이나 상사에게 얼렁뚱땅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그러나 거짓말은 특히 영업사원에게는 치명적인 독약과 다름없다. 장사란 무엇보다도 신용이 첫째이기 때문이다. 영업을 하다 보면 잘못이나 실수를 할 수도 있는데 그때는 즉시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하면 된다.
그런데 그 잘못을 위장하기 위해 거짓말을 할 경우, 한번쯤은 상사나 거래처를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상사나 거래처가 바보가 아닌 이상 두 번, 세 번 속지는 않는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해야만 똑같은 잘못을 두 번 다시 하지 않게 되며, 그 결과 주변으로부터도 신임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영업현장에서 오늘도 땀흘리는 영업맨들이여! 정직하게 승부하라. 정직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선의 방책이다!
부도 거래선의 미수금 회수도 영업사원의 능력이다길음시장에서 슈퍼를 하고 있던 H사장은 구멍가게를 하다가 사업을 확장하여 슈퍼를 개업 했는데, 3년 정도 운영하다가 부도를 내고 잠적해 버렸다. 당시 이 회사에 대한 미수금은 280만원이었다. 그런데 잠적한지 3일 후에 H사장이 만나자는 전화를 걸어와서 담당 사원 과 함께 약속한 다방으로 나갔더니, 280만원을 지불해 주었다.
자기가 부도를 낸 것 때문에, 평소에 자기를 많이 도와준 사원이 인사상의 불이익을 당할까 봐 도저히 갚지 않을 수 없었다며 H사장은 고개를 떨구었다. 부도를 내고 잠적해 버린 사람이라 해도 인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정이 아닐까. 영업사원은 거래처 사장들을 대할 때 단순히 장사꾼의 관계로만 보지 말고,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제2부 최선을 다하는 삶은 아름답다
최선을 다하는 삶은 아름답다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어느 기업에서나 영업부에는 가지 않으려는 풍토였다. 왜냐하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회사에서 질책 받고, 밖에 나가서도 푸대접을 받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업이야말로 자기가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희망적인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영업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의 괴로움은 참기 힘든 고통 그 자체다. 그러나 어렵게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쾌감은 무엇과도 비길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모든 인생살이가 그러하듯 영업 또한 희로애락의 연속이지만, 고난 속에서 피어나는 기업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좀더 확대해서 생각하면, 인생 자체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거래하는 영업일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사랑이나 우정까지도... 누구나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또한 최선을 다하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값지고 아름다운 것이다.
한 걸음부터 차근차근요즘 젊은 세대는 매사에 진득한 데가 없고 너무 성급한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하다가도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만둘 생각부터 하며, 장사를 하다가도 생각처럼 되지 않으면 노력해서 잘해볼 생각은 하지 않고 재빨리 업종을 바꿀 궁리부터 한다.
천 년을 살아도 노력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것이 삶이다. 새벽 기관차라 해서 출발하자마자 바로 종착역에 도착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전혀 시작도 하지 않은 사람은 한 달이 지나도 0%의 결과밖에 얻지 못하지만, 하루 1%만 전진한다면 한 달 후에 30%를 이룰 수 있다. 따라서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쉬지 않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100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절대 좌절하지 말고 '끈기'를 가지고 영업의 최고 자리에 도전하라.
전무를 교육시킨(?) 영광의 시간수원지점에서 근무할 때다. 회장 사위인 전무가 신분을 감추고 신입사원이라면서 견습을 나왔는데, 마침 판촉스티커를 식품 점포 출입구에 부착하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신입 영업사원이 입사하면, 경험 있는 영업사원들이 신입사원을 현장에 데리고 나가 서 스티커 붙이는 방법을 교육시켰는데, 유리창에 먼지가 많아 스티커 부착이 잘 되지 않 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 신입사원이 지저분한 유리창에다 그냥 스티커를 부착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를 보고 "손수건으로 먼지를 닦은 후에 스티커를 부착해야지, 스티 커 한 장에 얼마인지 아느냐?"고 호통을 치면서 "그렇게 형식적으로 일하면 회사는 물론 본인의 발전도 없다."는 식으로 꾸중까지 했다.
그 후 며칠이 지났을 때 간단한 사연과 함께 전무님으로부터 종합세트 1박스가 선물로 도착했으며, 많은 동료사원들로부터 격려전화를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일선 현장을 점검하기 위해 전무님이 수원으로 왔는데 그날 내게 호되게 당하고 서울로 올라가서는 "그 사원 정말 애사심이 강하며 헌신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며, 체계적으로 판촉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칭찬이 대단했다는 것이었다.
자신과의 싸움을 이길 수만 있다면, 아무리 힘든 일도 극복할 수 있다처음 인도네시아로 발령 받았을 때 나는 인도네시아 어를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회화 책을 가지고 일주일간 인도네시아 말을 익힌 다음 현지로 날아갔다. 인도네시아에 부임하 여 처음 일주일간은 전임자가 있어서 그런 대로 견뎠지만, 인수인계를 마친 전임자가 귀 국하고 나자 난감하고 두렵기까지 했다. 현지 직원들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이고,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거나 거리에 나서는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었으니... 그러다가 토막 단어 하나씩을 사용해 가며 손짓 발짓을 섞어서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했 다. 그러다 4년간 대학에서 마인 어를 전공한 동료보다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밤마다 단어 5개씩을 외워댔다. 심지어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뇌까리면서 울기까지 했다. '내가 어찌하여 여기까지 왔는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냥 돌아갈까?' 그러나 만약 말을 하지 못해서 돌아간다면, 회사에서 나를 어떻게 대하겠는가? 또 집에 있는 아이들은 아버 지를 어떻게 여기겠는가?', '그래 나 자신에게 지면 안 된다. 회사가 나에게 돌아가라고 명령하기 전에는 인도네시아 땅을 절대로 떠나지 않으리라...' 이를 악물고 새벽까지 단어를 외웠지만, 다음날 나가서 겨우 두세 개를 써먹는 것이 고작 이었다. 외우고 나서 잊어버리기를 계속, 오기와 집념으로 3개월을 버텨가며 피나는 노력 을 한 덕분에 시장에서 통하는 말은 거의 알아듣고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그렇게 노 력한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데도 전혀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자 신감이 생겨났고, 영업도 술술 풀려나가기 시작하여 어렵게 시작했던 인도네시아의 생활 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