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나이 60, 내려놓고 또다시 도전하다

안병기 지음 | 플랜비디자인


나이 60, 내려놓고 또다시 도전하다

안병기 지음

플랜비디자인 / 2024년 7월 / 328쪽 / 18,800원





Chapter 1: 문학을 통해 배우는 교훈



생떽쥐베리의 《인간의 대지》가 전하는 도전 정신


《어린왕자》의 작가로 유명한 생떽쥐베리는 비행기 파일럿이었다. 조종사로서의 삶을 다룬 그의 책 《야간비행》과 《인간의 대지》는 나침반 하나에 의지해서 비행기를 몰며 항로를 개척하던 시절의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졸음과 싸우고 어둠이 주는 두려움을 이겨내면서, 또 간간이 동료 조종사들의 사망 소식을 들으면서도 의연히 비행을 기다리는 저자의 직접 경험은 《어린왕자》와는 확연하게 다른 느낌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인간의 대지》에는 그가 리비아에서 비행기 추락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장면이 등장한다. 한계 상황에 처한 인간의 의지력과 휴머니즘을 표현한 사막 한가운데서의 생존 몸부림이다. 이는 저자의 동료이자 멘토인 기요메가 안데스 산맥을 횡단하다 추락해서 극적으로 생존한 장면과 더불어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강인함을 그려낸다. 이 자전적 소설에는 주인공 외에도 여러 실존 파일럿들이 등장한다. 레이더나 GPS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관제 시설이나 야간 조명마저 갖추어져 있지 않던 1920~30년대의 항공업계 종사자는 어떤 의미로 봐도 개척자요 모험가였다.

이런 선구자들로부터 불확실성의 시대를 사는 리더의 심정을 끄집어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앞이 보이지 않는 하늘을 날면서, 때로 추락한 비행기에서 살아 나와 구조대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이들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함께 할 동료마저 없이 이미 여러 날이 지난 상황에서도, 1시간만 더 버티면 구조대가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며 영하의 추위나 뜨거운 사막에서 발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무대와 등장인물은 다를지언정,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현시대의 경영 환경이나 리더의 고독감은 그들이 겪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책 내용 가운데, 안데스에서 불시착한 기요메는 자신이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면서도 오히려 조금이라도 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게 된다. 실종된 사람의 경우 법적 사망이 4년 후로 미루어지기 때문에 가족들이 수령인으로 되어있는 사망 보험금을 가족들이 빨리 받지 못하게 될 것을 염려했다. 그가 조금이라도 더 버티려는 목적은 자신을 위함이 아니었다.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시신이 발견되기 쉬운 곳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려는 이유였다. 그 고통을 이겨내고 살아 나와 생존기를 전하며 그가 마지막으로 전한 말은 그야말로 처절하다. ‘내가 해낸 일은, 맹세컨대, 그 어떤 짐승도 하지 못했을 일이야.’

이런 파이오니어들의 희생이 켜켜이 쌓여 인류는 반세기가 지난 후 달에 도달하는 쾌거를 이룩한다. 1969년 7월 20일, 미국의 아폴로 11호 달 착륙선 이글이 역사상 처음으로 달 표면에 착륙하면서 선장 닐 암스트롱은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한 사람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발자취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이보다 훨씬 앞선 16세기에는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고 다음 세기에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증거들을 관측하기까지 인류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하늘의 별이 그 주변을 움직인다고 믿었다. 이후 수많은 과학자들이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행성 중 하나이고, 자전과 공전을 하며, 우주의 별들은 중력으로 그 간격을 유지한다는 사실들을 알아냈다. 이렇듯 인류의 과학 발전은 기존의 질서나 상식을 파괴하면서 진전되어왔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모험가가 많다. 대표적으로 과거 범현대그룹을 창립한 고 정주영 회장을 들 수 있다. 아무 자원도 자본도 없는 나라에서 경제개발계획이 수립되고 주요 기간산업 중 하나로 조선업이 선정되었다. 차관을 받기 위해 영국의 버클레이 은행 부총재와 만나기로 한 자리에서 거북선이 그려져 있는 50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면서 “16세기에 철갑선을 만든 게 대한민국이다. 이게 지금으로 보면 유조선은 비교도 안 되는 배다.”라고 주장하여 결국 차관을 끌어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정 회장은 이후 현대전자(현재 SK하이닉스)를 설립하고 미국 GE와의 합작투자법인을 세울 당시에도 이런 대담함과 순발력을 발휘한다. 잭 웰치 회장과의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고 번번이 한국 기업의 자질에 대해 의구심을 품자, 그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한다. 이후 다시 만난 자리에서 웰치 회장은 현대그룹의 건설이나 중공업 분야는 인정하지만 전자 분야는 잘 모르겠다는 언급을 하게 되는데, 이에 정 회장은 이미 상당 수준에 오른 조선업과 자동차 산업을 얘기하면서 갑자기 팔씨름을 제안한다. 팔씨름을 이기면 현대전자를 사업 파트너로 받아주겠냐는 제안에 그 자신이 스포츠맨이자 20세 연하인 웰치 회장은 수락을 했고, 그 팔씨름 대결은 정 회장의 승리로 끝난다. 이렇게 뜬금없는 제안을 한 정주영 회장도 범인은 아니지만, 이를 수락해서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투자를 결정한 웰치 회장 역시 대단한 인물이다.

이렇듯 상식을 초월하고 다수의 의견을 넘어서는 지략과 판단이 리더에게는 필요하다. 이런 눈을 가진 리더가 이끄는 조직의 소속원은 보는 스케일이 다르다. ‘명장 밑에 약졸 없다.’는 말이 있다. 리더의 능력은 개인의 영광이나 포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조직과 조직원 전체를 바꾼다. 꿈꾸는 리더, 전략을 구상하는 리더가 필요한 이유이다. 중국 역사 최고의 모사인 제갈량은 이런 말로 우리의 모험심을 자극한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시도하는 사람이 돼라. 될 만한 일만 골라서 하는 사람은 끝까지 남의 일을 돕는, 남의 밑에 머무는 사람으로 남아야 할 것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은퇴 후의 삶


레프 톨스토이의 명작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고위 공무원에 해당하는 예심 판사직을 맡게 된 후 느끼는 심정을 이렇게 표현한다.‘자신에게 이처럼 막강한 권력이 주어졌음을 인식하는 권력 의식과 권력의 사용 정도를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이 새로운 직무에 커다란 흥미와 매력을 느꼈다.’

사회에서 리더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기억이다. ‘기업의 별’이라고 불리는 임원의 직급까지 올라간 사람들이라면 이처럼 새로운 직무에 대한 흥미와 매력이 절실하게 피부로 와 닿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매력의 뒷면에 자리한 책임과 의무, 거기에 더해 권력을 놓은 이후의 삶까지를 이해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소설의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위까지 올라갔지만 불치의 병으로 죽음을 맞게 된다. 그러나 그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은 아픔을 같이 하기보다 그의 죽음이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에 대해 더 관심이 많다. 그의 후임으로 누가 가게 될지가 모두의 관심사이고, 식구들마저도 가장의 죽음보다 사망 보험금이 더 큰 관심거리이다.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는 것은 친구 게라심과 아들의 존재이다. 자신을 이해하고 마음 아파하는 사람은 그 둘뿐이라는 생각에 허탈해하지만, 그들을 통해 그나마 위로를 받는다.

리더들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수십 년씩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더 이상 권력을 쥐고 있지 않을 때 나를 찾아오는 사람도 생각처럼 많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내가 현 위치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몇 년이라는 자각이 없으면 많은 부작용이 나타난다. 특히 조직의 미래를 위해 권한을 이용하기보다 권력 자체를 누리려고 하는 리더가 있다면 그 조직의 앞날은 불투명해진다. 조직의 규모가 크든 작든, 리더의 위치는 여러 의미에서 이미 ‘공인’이다.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고, 모든 결정은 자신 외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공인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은 가볍지 않다. 그런 이유에서도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 현대 사회에서 리더는 실력이 아닌 신뢰로 무장되어야 한다. 수십 년을 갈고 닦은 경험이나 실력도 물론 리더십의 중요한 요소지만, 주변으로부터의 신뢰를 받는 리더는 조직원 모두의 능력을 이용해 일할 수 있다. 리더의 지식 중 많은 부분은 오래전에나 쓸모 있었던 것이다. 리더가 된 후 긴 세월이 지났는데도 아직 그 분야의 최고 권위자라면, 역설적으로 그 리더는 사람을 키우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좀 더 직설적으로는, 조직보다는 자신을 위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진실한 리더는 자신이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군림하려는 자가 아니고 ‘사람을 남기는 사람’이어야 한다.

은퇴 후의 삶이 풍요롭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된다고 한다. 경제적 여유, 건강, 대인관계이다. 많은 사람들이 첫 두 가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이해하고 미리 대비를 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뒤늦게 후회를 한다. 은퇴 후 삶을 다루는 책이나 유튜브 영상을 보면 흥미롭고도 교훈이 되는 내용들이 많은데, 대기업 임원 출신들의 인터뷰 내용들이 특히 마음에 와 닿는다. 사내 최초의 여성 임원이 되었다가 몇 년 후 하루아침에 퇴직하게 된 어떤 분은 “그 위치까지 올라가는 데 30년이 걸렸는데, 내려오는 데는 3초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라고 아픔을 이야기했고, 다른 분은 “퇴직 후 1년이 지나면 관계의 99%가 끊어집니다.”라고 하소연했다. 말 그대로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현직에서 어떤 직급에 있든지, 우리 모두 퇴임한 바로 다음 날부터는 ‘동네 아저씨, 아줌마’가 된다는 현실을 기억해야 한다.

나이 60, 새로운 도전


2020년 겨울 무렵, 《거인의 어깨》 원고를 한창 준비하던 중 마지막 챕터인 리더의 유산을 교정하면서 문득 ‘내려놓음’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가슴을 눌러왔다. 사실 내 나이에 다다른 임원들은 언제 회사를 떠나게 될지 초조해하면서 살게 마련인데, 내 경우에는 전동화라는 미래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데다 사내 임원진에 그 분야의 전문 인력이 없어 퇴직에 대해 별다른 위기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후배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향후 몇 년은 자리를 지켜달라는 암묵적인 요청이 있었고, 국내에서 제작되는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차량의 부품과 시스템이 대부분 내가 책임지고 있는 현대모비스 전동화 Business Unit을 거쳐 공급되기 때문에, 자동차 업계에서의 영향력도 작지 않았다. 부하직원들과의 관계도 좋았고 직장인으로서 무엇 하나 남부러울 것 없는 상황이었다.

내려놓음은 다분히 기독교 신앙적인 어휘이고 개념이다. 많은 선교사들이 자신이 누리던 기득권을 포기하고 신앙의 불모지로 떠나 목숨을 담보로 선교활동을 하는 것은 지극히 적극적이고도 숭고한 내려놓음의 모습이다. 초대교회의 대표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도 바울은 당시 세계 최강대국인 로마의 국적을 가지고 유대 사회 전통 명문가에서 태어나 최고 기관에서 공부한 엘리트였다. 막강한 권력을 등에 업고 이단이라고 여기던 예수의 제자들을 잡으러 동분서주하던 그에게 어느 날 뜻하지 않던 영적인 체험이 찾아온다. 그 이후 그는 그가 속해 있던 기존 기득권층의 위협과 그가 핍박하던 교회의 의심을 함께 받으며 수많은 위기를 거쳐 베드로와 더불어 신약시대 최고의 사도로 변모해간다. 세월이 지나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은 그가 누리던 것을 포기하고 수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겨야 했던 이유를 불과 두 문장 안에 그러나 사뭇 비장하게 표현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난 의라’(빌립보서 3:7-9)

나 자신이 기독교인이고 교회에서는 장로라는 직분을 감당하고 있지만, 나에게 바울과 같은 신앙적인 처절함이 있다는 생각은 별로 가져본 적이 없었다. 닮고 싶은 롤 모델이기는 해도,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존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누리고 있는 직위, 소유, 사회적인 역할 등은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이고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하고 싶은 대상이지, 바울처럼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내 가치관을 크게 흔든 계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순조롭게 출발한 2021년, 3년 전 시작한 현대모비스의 전동화 사업부는 Business Unit으로 승격되면서, 나는 초대 본부장으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사업본부의 매출은 4년 만에 수 배로 성장해 21년 말에는 4조 원이 넘는 연 매출을 예상하고 있었고, 이미 자동차 산업의 모든 분야가 전동화로 연결되던 시기라 직원들의 사기도 높았다.

꽃길을 걸을 것만 같던 나와 우리 조직에 예상치 못한 위기가 찾아온 것은 그해 봄 3월이었다. 현대자동차 그룹이 야심차게 준비하던 아이오닉5와 EV6 전기차에 필요한 모터와 배터리 시스템 등 주요 부품이 모비스 전동화 BU가 공급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모터를 제작하는 설비의 안정화가 예상보다 지연되면서 초기 생산에 지장을 주게 된 것이었다. 3월 어느 주말이 지난 월요일 오전에 급하게 공장에서 연락이 왔다.“아무래도 생산이 계획대로 안 될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불과 사흘 전까지 문제없다고 들었던 생산량이 목표의 30%도 못 채울 것 같다는 보고였다. 순간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그 후로 몇 달은 말 그대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최고 책임자로서 내가 비난을 받는 것은 두렵지 않았으나, 설계 단계부터 상세하고 정확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아 모든 멍에를 생산 담당자인 내 부하직원들이 짊어지는 상황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2021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생산량이 회복되어 점차 위기는 수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긴 터널의 끝이 보이는 시점에, 나는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 위기를 잘 극복하고 나면 미련 없이 물러나야겠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심신이 지친 탓도 있었을 것이고, 공급의 최고 책임자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옳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 또 다른 도전이 있었다. ‘멋진 은퇴’의 모습을 후배들에게 유산으로 남기고 싶다는 평소의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 시작했다.

2021년 가을, 별 기대 없이 해외의 헤드헌터에게 이력서를 건네기는 했지만, 과연 이 나이에 이직이 가능할지, 또 정말 익숙한 환경을 떠날 용기가 나에게 있는지 스스로도 믿기 어려웠다. 단지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인 ‘스스로 물러나기’를 지금 아니면 이루기 어렵겠다는 것은 분명했다. 또 하나,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나이 60에 글로벌 기업에 스카웃 될 수 있다면 ‘참 멋지겠다’는 유치한 발상도 마음 한 켠에서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제 점차 확신처럼 자리 잡는 내 ‘상상’과 국내에서 이미 확고해진 입지라는 ‘현실’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할지 혹은 어떻게 밸런스를 맞출지 고민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스텔란티스에서 처음 연락이 온 것은 2022년 2월 초순이었다. 불과 3주 만에 속성으로 진행되어 나에게 제안된 역할은 배터리 사업을 총괄하는 글로벌 책임자로 부사장 급이었다. 스텔란티스가 제시한 조건은 상당히 좋았다. 그리고 3월 어느 날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서류에 사인을 했다. 결국 2022년 3월 말을 기해 귀국 후 만 18년 만에 다시 미국으로 이사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큰 아이는 국내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둘째는 미국 보스턴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기에, 나와 아내 그리고 막내인 아들까지 세 명이 움직여야 하는 여정이었다.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다. 다만 홀로 사시는 미수(88세)의 어머니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그때 내 나이가 만 58세 5개월, 우리 나이로는 60이었다. 이미 많은 친구나 동료들이 현직에서 물러난 그 시점에, 무슨 용기인지 오랜 기간 쌓아둔 많은 것들을 뒤로 하고 미국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