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마스터 플랜
이선 지음 | 처음북스
테슬라 마스터 플랜
이선 지음
처음북스 / 2024년 8월 / 588쪽 / 27,500원
스페이스X 본사에서 목격한 기적 (2002년)일론 머스크는 자동차 업계에서 100년 만에 혁신을 일으키고, 항공 우주업계에서 정부 기관도 해내지 못한 일을 동시에 해냈다. 그의 괴팍한 성격과 기행은 때로 논란을 일으키곤 하지만, 그의 업적은 현대 산업과 기술 발전에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다.
머스크는 전기차와 우주여행 분야에서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테슬라는 빠른 생산 속도로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순수 전기차 기준으로 테슬라보다 많은 생산량을 보유한 업체는 없다. 스페이스X는 우주 궤도에 도달한 첫 민간 기업으로, 이는 러시아, 미국, 중국 등의 정부 기관조차도 어렵게 달성한 성과다. 테슬라의 성장은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사들에게 큰 도전이며, 스페이스X의 성공은 우주 탐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그는 우주여행의 놀라운 경험을 밝히면서, 지구의 대기가 얼마나 얇고 취약한지 실감했다고 했다. 그리고 기후 위기로 인해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취약한지 강조했다. 머스크의 꿈은 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통해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일론 머스크의 우주에 대한 집념머스크는 1999년에 온라인은행 엑스닷컴(X.com)을 설립하고, 서비스를 출시하는 과정에서 새벽 4시까지 사무실에서 일하고, 책상 밑에서 잠을 자는 일이 빈번했다. 테슬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3년 동안 프리몬트 공장과 네바다 공장에서 거주했다. 처음에는 온종일 일하고 사무실 소파에서 자다가, 나중에는 책상 밑에서 자기 시작했다. 2022년에 트위터를 인수한 후 머스크는 자신이 주당 평균 120시간 이상 일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나는 잠들고, 일어나서 일하고, 다시 잠들고, 일어나서 일하고, 이런 행동을 일주일 내내 반복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성공한 기업가로 여생을 편하게 살 수도 있는데 왜 질주하듯이 일에 몰두하는 걸까?
머스크는 일반적인 억만장자들과 비교할 때 독특하고 검소한 유형의 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첫 번째 부인이자 여섯 명의 자녀를 낳은 저스틴 윌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자비에 머스크가 일론 머스크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자비에 머스크는 일론 머스크를 포함해 부자를 싫어한다. 부를 독식하는 마음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자비에 머스크는 아버지의 성을 없애고 비비안 윌슨으로 개명했으며, 성전환자가 되었다. 머스크의 전기를 집필한 월터 아이작슨에 따르면, 비비안은 자본주의를 혐오하며 머스크를 향해 격렬한 감정을 표현했다.
머스크는 자비에 머스크와 갈등이 심해지자 2020년부터 2년에 걸쳐 약 1억 2,800만 달러 가치의 저택 일곱 채를 팔아치우고 앞으로는 집을 소유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화려한 캘리포니아를 떠나 한적한 텍사스로 이사했다. 2021년부터 모듈형, 접이식 주택 카시타스(Casitas)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이 주택의 가격은 5만 달러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머물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머스크의 행동은 재벌에게서 보기 힘든 이례적인 사례다. 머스크의 검소함은 그의 전반적인 가치관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특히 스페이스X와 테슬라의 사업 철학과 직접 관련이 있다.
머스크는 독불장군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지만, 생활 양식은 검소하고 미니멀리스트적이다. 그는 개인적인 호화로움보다는 인류의 미래와 지속가능성에 더 큰 가치를 둔다. 머스크의 주거 선택에서부터 경영 철학에 이르기까지, 그는 자신의 자원을 스페이스X와 테슬라의 비전을 실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의 행동은 사회적 책임과 지속 가능한 생활에 대한 의식을 나타내며, 물질적 가치를 넘어서 인류가 다행성 종으로 진화해 생존 방식을 확장하는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2016년 9월, 머스크는 인류가 화성에 진출해야 하는 이유를 밝혔다. 그는 인류 역사의 두 가지 가능한 미래를 제시했다. 하나는 지구에 영원히 머물러 종말을 맞이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기지를 화성에 건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류는 다중 행성 생명체가 되어 역사를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팰컨 9으로 혁신을 쏘아올리다머스크는 오늘날 빅테크 기업 CEO들과 달리 공장에서 잠을 자면서 일하는 모습을 20년 넘게 한결같이 보여 주었다. 구글, 애플, 엔비디아의 CEO들이 콘퍼런스홀에 등장할 때, 머스크는 안전모를 쓰고 타워에 올라가 로켓 제작을 진두지휘한다.
나는 실리콘 밸리에서 비행기를 타고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곧바로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의 도시 호손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바로 미국 공대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 하는 기업 1위인 스페이스X의 본사가 자리 잡은 곳이다. 머스크는 현재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로켓인 스타십을 우주로 발사하려고 한다. 이러한 도전에 인생을 걸고 싶은 미국 공대생들은 애플, 구글, 엔비디아를 제쳐두고 상장기업도 아닌 스페이스X를 NASA와 테슬라보다도 선호한다. 왜 미국 공대생들은 실리콘 밸리보다 화려하지 않은 호손에서 일하려는 걸까?
화려한 로스앤젤레스 도심과 달리 호손은 도시 전체가 낡고 삭막한 분위기다. 거리에서는 노숙자와 마약 중독자를 쉽게 마주칠 수 있다. 반면에 스페이스X 본사는 홀로 우주 전쟁을 준비하는 것처럼 강렬한 인상을 준다. 한적한 도시에 우뚝 솟은 팰컨9의 1단 로켓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거대한 물체가 우주에 발사되었다가 원하는 지점에 되돌아와 재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2023년 12월 10일 기준, 스페이스X는 팰컨9을 총 280번 발사했고, 그중 238번 착륙에 성공했으며, 수거한 로켓을 213번 다시 발사했다. 사고가 끊이지 않는 로켓 발사 역사상 한 해 동안 100% 안전한 발사를 이뤄낸 것은 어느 국가도 해내지 못한 성과다. 또한, 나사의 우주왕복선은 저궤도(LEO)로 27,500kg을 발사하는 데 약 15억 달러 즉, 1kg당 54,500달러가 들었다. 반면 팰컨9은 6,200만 달러로 22,800kg(1kg당 약 2,720달러)을 발사할 수 있다. 스페이스X는 거의 매주 팰컨9을 발사해 궤도에 물건을 나르는 안전한 배송 트럭 같다. 그렇기에 세계의 여러 나라가 위성을 믿고 맡긴다.
2024년 1월, 스타십을 배경으로 무대에 올라선 머스크는 화성 진출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선언했다. 그는 2023년 스페이스X가 이룩한 성과를 놀라운 수치들과 함께 발표했다. 스페이스X는 2022년에 61회 궤도 로켓 발사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고, 2023년에는 총 96회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이 기록에는 우리나라의 군사 정찰 위성도 포함되어 있다). 12명의 우주 비행사를 궤도에 안전하게 보냈으며, 두 번의 스타십 비행 테스트를 진행했다.
스페이스X의 팰컨 로켓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발사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현재까지 스페이스X보다 지구 궤도에 더 많은 로켓을 발사한 정부 기관이나 민간 기업은 없다. 과거 소련 정부가 개발한 소유즈 로켓의 연간 발사 횟수는 약 63회였다. 스페이스X의 연간 발사 횟수 96회는 2023년 모든 정부 기관과 기업의 로켓 발사 비중의 약 43%를 차지하는 놀라운 수치다.
2006년 3월 24일, 최초로 발사한 팰컨 1은 머스크가 설립한 스페이스X의 첫 번째 로켓이었다. 스페이스X는 세 번 연속 팰컨 1 발사에 실패하며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로켓 발사는 언제나 어려운 도전이었다. 그동안 우주왕복선 콜롬비아 등을 포함해 무수한 로켓이 발사 후 폭발했다. 그런데 민간 스타트업이 화성에 가기 위해 로켓을 발사한다고 했으니, 사람들은 머스크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2012년 3월, 머스크는 미국 CBS의 <60 Minutes>에 출연했다. 앵커 스콧 펠리는 로켓 발사가 연속적으로 실패했을 때 포기하려고 생각했느냐고 물었다. 머스크는 자신이 죽거나 완전히 무능력해지지 않는 한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억만장자 투자자 론 바론은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파산에 직면한 머스크가 한 번만 더 발사하자고 임직원을 설득했기 때문이다. 머스크는 네 번째 발사마저 실패하면 더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8주 후, 극적으로 마지막 도전에 성공하면서 스페이스X는 로켓을 지구궤도에 진입시킨 최초의 민간 기업이 되었다. 이제 스페이스X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스타십 발사 도전을 진행 중이다.
자동차 업계에서 이런 경영 철학을 가지고 우주 진출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기업가가 또 누가 있을까? 머스크는 우리로 하여금 인식의 지평을, 도로를 넘어 행성과 행성을 잇는 우주로 확장하게 해준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머스크에게 테슬라는 어떤 존재일까?
테슬라 최초의 전기차 로드스터 (2008년)
일론 머스크의 관심은 왜 전기차에 있을까?2024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피터슨 자동차 박물관에서 테슬라 전시회가 열렸다. 이곳에는 테슬라가 개발한 모든 전기차가 전시되어 있었으며, 머스크가 사이버트럭을 구상하기 위해 프란츠 폰 홀츠하우젠과 방문했던 곳이기도 하다.
폰 홀츠하우젠은 머스크가 합류를 요청하기 전까지 독일의 폭스바겐, 아우디, 일본의 마즈다에서 일했다. 모두 내연 기관 자동차 회사다. 그는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회사에 흥미를 잃었다고 밝혔다. 그가 테슬라에 합류하기로 한 판단이 대단했던 것은 당시 테슬라가 내연 기관 업계의 시선으로는 망상가들이 모인 작은 스타트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첫 번째 전기차인 테슬라 로드스터를 출시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고, 머스크는 자금 조달 문제로 골치가 아팠다. 게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투자가 얼어붙은 시기였다.
머스크에 따르면, 테슬라의 자금 조달 라운드는 2008년 12월 24일 저녁 6시에 마감되었다. 만약 이 시간까지 자금이 조달되지 못했다면, 2일 후 급료 지급이 어려워질 상황이었다. 머스크는 테슬라의 파산을 막기 위해 페이팔 계좌의 남은 현금을 전액 쏟아부었다. 당시 머스크는 집이나 처분할 수 있는 자산도 없었다. 머스크는 어떻게든 투자자를 찾아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에 몰려 있었다. 테슬라는 무엇보다도 투자자들이 전기차를 골프 카트와 연관 짓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격파해야 했다. 머스크는 테슬라의 대주주로서 관망하다가 2008년 CEO로 취임하면서 로드스터의 디자인부터 소재, 차체 등 제조 과정 전반에 관여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CEO였던 마틴 에버하드와 CFO 마크 타페닝과 경영권을 두고 심각한 갈등이 일어났다. 2007년 무렵, 머스크는 로드스터의 생산 지연과 운영 문제를 이유로 에버하드를 CEO에서 축출했다. 이에 2009년 에버하드는 머스크를 명예 훼손, 계약 위반 혐의로 고소하며, 그가 자신을 회사에서 쫓아내고 공개적으로 헐뜯었다고 주장했다. 수많은 임원이 머스크와 충돌하며 퇴사했다.
폰 홀츠하우젠은 이러한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고 있는 테슬라에 2008년 합류해 14년 이상 머스크와 함께한 리드 디자이너다. 그는 로드스터 이후 출시된 모델 S, 모델 3, 모델 X, 모델 Y, 사이버트럭 등 대부분 차량의 디자인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그렇다면, 왜 그는 어설펐던 스타트업 테슬라에 매력을 느꼈을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자동차 업계가 암울한 시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왜 안정적인 대기업을 그만두고 어려운 도전을 선택했을까?
폰 홀츠하우젠은 스페이스X 공장에 방문해 첫 번째 로켓 팰컨 1을 보고 머스크의 미래 구상에 감명을 받았다. 그는 머스크가 진심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테슬라에 인생을 걸었다. 테슬라는 100% 순수 전기차로 기후 위기를 늦추려 했다. 이처럼 전기 자동차를 통해 자동차 산업에 혁명을 일으키고, 이는 곧 화성 진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대담한 머스크의 비전은 중요한 인재를 포섭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2013년, 칸 아카데미 설립자 살만 칸은 머스크에게 스페이스X와 테슬라는 전혀 다른 산업인데 어떻게 이들 기업 모두를 운영하기로 생각했는지 질문했다. 머스크는 대학 시절부터 인류의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 가지 분야를 고민했으며, 그 결과 인터넷, 지속 가능한 에너지, 그리고 우주 개척을 중요한 산업 분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머스크가 30대 중반이던 2006년에 발표한 첫 번째 마스터 플랜, 40대 중반이던 2016년에 발표한 두 번째 마스터 플랜, 그리고 50대에 접어든 2023년에 발표한 세 번째 마스터 플랜은 테슬라의 중장기적 비전을 드러내는 중요한 이정표들이다. 마스터 플랜 1은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의 세계 전환을 가속화하는 경로를 제시했다. 머스크가 구상한 미래를 향한 첫 번째 단계는 충분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소규모 분량의 고급 전기차를 출시해 이보다 낮은 가격의 프리미엄 차량 개발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단계는 프리미엄 차량을 팔아 대중 시장을 위한 대량 생산의 궤도에 오르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내연기관 차량보다 저렴한 전기차를 출시해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를 열어가는 것이다. 마스터 플랜 3에서 밝혔듯이, 테슬라는 연간 2,000만 대 전기차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108년 만에 테슬라에 백기를 든 포드테슬라에 반감을 품은 사람들은 머스크를 쇼맨십의 대가로 여기며, 기후 위기를 앞세워 전기차를 팔아 부자가 되려는 속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테슬라와 포드, NASA와 스페이스X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숨겨진 투쟁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머스크는 대부분 불가능하다고 했던 100년 이상 인류에 각인된 통념, 즉 민간 스타트업이 로켓 발사 기업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과 자동차는 내연 기관이 최고라는 고정관념을 깨트리고 있다.
20세기 초반 헨리 포드는 자동차는 부자들의 전유물이라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그는 1903년에 포드 자동차를 설립했고, 1908년 46세가 되던 해에 자동차를 대중화하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개발된 자동차가 바로 포드 모델 T다. 포드 모델 T는 대량 생산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운전을 쉽게 만들었다. 이동의 편의성을 맛본 사람들은 자가용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포드 모델 T는 1909년부터 생산을 시작해 1927년까지 무려 1,500만 대 이상 팔렸다. 1928년에 포드 자동차는 모델 T를 잇는 포드 모델 A를 출시하며 본격적인 내연 기관 시대를 열었다. 포드 모델 시리즈의 열풍 덕분에 부자가 아닌 사람도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포드는 중산층에게 이동의 자유를 선사했지만, 자신이 개발한 자동차가 기후 위기에 이처럼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포드 자동차는 연비가 좋지 않은 대형 차량을 생산하면서 머스크에게 자극을 주었다. 포드 모델 T가 등장한 지 108년 후인 2016년 3월 31일, 머스크는 누구나 탈 수 있는 순수 전기차 모델 3를 공개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45세였다. 머스크는 마스터플랜 3에서 포드 자동차로 인해 형성된 100년의 자동차 문화와 제조 방식을 모두 혁신하겠다고 선언했다.
2023년 5월 26일, 머스크가 인수한 트위터에서 포드의 CEO 제임스 팔리가 테슬라에 협력을 요청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포드는 테슬라의 수퍼차저(Supercharger)에 포드 전기차도 충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달라고 요청했다. 테슬라와 포드의 이 깜짝 발표는 미국에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포드가 치명적인 경쟁사일 수 있는 테슬라와 한배를 타기로 했기 때문이다. 포드에 이어 GM도 충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2025년부터 출시하는 전기차에 테슬라의 충전 규격인 NACS(North American Charging Standard)를 탑재하기로 한 것이다. GM의 결정은 테슬라의 시장 입지와 충전 인프라의 광범위한 채택으로 인해 NACS가 많은 전기차 사용자에게 사실상의 표준이 되었음을 인정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