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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리조트 스토리

윤경훈, 전복선 지음 | 예미


호시노 리조트 스토리

윤경훈, 전복선 지음

예미 / 2024년 12월 / 264쪽 / 18,000원





친척과 등지고 직원이 떠나도 꿈꾸는 철학



코넬대에서 깨달은 일본다움의 가치


호시노 요시하루 대표(이하 ‘호시노’로 표기)는 1960년 가루이자와에서 태어났다. 1914년 문을 연 호시노 온천료칸(星野溫泉旅館)의 4대 후계자로 불리며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게이오대학교 부속 중등부, 고등부를 거쳐 대학까지 진학한다. 호시노는 대학 졸업이 가까워지자 언젠가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제대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1984년에 미국의 코넬대학교 대학원으로 진학한다. 코넬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한 호시노에게 해외 리조트와 5성급 호텔들은 동경의 대상으로 여겨졌고, 가루이자와의 료칸은 항상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언젠가 자신이 돌아가서 경영을 맡게 되면 서구의 리조트 호텔이나 럭셔리 호텔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호텔 경영 공부에 집중했다.

코넬대학교 대학원 시절 어느 날 호시노는 학교에서 열리는 리셉션에 참석했다. 중요한 행사인 만큼 포멀한 수트 차림으로 파티장에 간 호시노가 샴페인을 들고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같은 클래스의 친구가 그에게 말을 걸어 왔다. “넌 왜 일본 사람인데 영국 의상을 입고 왔니?”라는 친구의 예상치 못한 물음에 호시노는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평소 강의실에서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앉아 있던 친구들이 모두 자기 나라 전통의상을 입고 참석해 있었다. 그때 호시노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을 통해 집안이 운영하는 료칸을 서구의 호텔을 흉내 내는 식으로 변화시킬 것이 아니라, 가장 일본스러우면서도 멋지게 발전시키는 것이 자신의 과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코넬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후 호시노는 일본항공개발(현재 ‘오쿠라 닛코 호텔 매니지먼트’) 미주 지사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호시노는 뉴욕 등 미주 지역의 호텔 개발 업무를 담당하다 1988년 가루이자와로 돌아와 부사장으로서 호시노 온천료칸의 경영에 참여하게 되었다.

당시 호시노 온천료칸은 서양식 분위기의 호텔로 재건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서비스는 모두 옛날 그대로였고, 무엇보다 큰 문제점은 가루이자와라는 지리적 이점과 오랜 리피터(repeater: 다시 찾아온 고객) 고객들 덕분에 흑자가 지속되고 있어서 직원들이 문제가 있어도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점이었다. 호시노는 부임하자마자 이와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며 지금부터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바꾸는 것은 네가 사장이 된 후 시간을 들여 천천히 변화시켜 나가라”고 답했다. 호시노는 다른 간부들도 설득했지만 아무도 호시노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결국 호시노가 제안한 많은 개혁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호시노는 자신이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가루이자와를 떠났다.

다시 돌아온 호시노


호시노는 가루이자와를 떠난 후 미국계 은행인 시티뱅크에 입사했다. 1980년대 당시는 버블 경기가 한창이었고, 일본 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국내외 리조트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0년 들어 버블경제가 붕괴되자 도산하는 리조트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금융권은 리조트의 부실채권 처리에 뛰어들었다. 호시노는 시티뱅크에서 일본 국내외 기업들이 리조트 투자로 인해 발생한 부실채권을 회수하는 업무를 담당하면서, 세계 각지의 리조트 시설들을 2년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도산한 리조트들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건물 및 설비와 같은 하드웨어 부분에 대한 투자 의존도가 높은 반면에 지역의 매력 등을 상품화하는 소프트웨어 부분을 경시한 리조트들이 도산 확률이 높았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시티뱅크에서 세계 각지의 리조트를 돌며 채권을 회수해 리조트를 재생시키는 업무를 해온 호시노는 재생사업을 통해서 얻은 경험을 호시노 온천료칸에서 실현하고 싶다는 욕구가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1991년 마침내 호시노는 호시노 온천료칸 주주들의 요청에 의해 시티뱅크를 그만두고 가루이자와로 돌아왔다.

호시노는 돌아오자마자 친척들이 대다수의 주주인 주주총회를 개최하고 아버지를 사장에서 해임시켰다. 하지만 사장의 자리에 오른 호시노가 맞이한 상황은 미국 유학 시절에 배운 바람직한 경영 형태와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친인척들이 특권계급으로 회사를 사유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친척들은 회사 내의 부지 안에 집을 짓고 살고 있었고, 전기세 및 수도세 그리고 통신비와 같은 공과금도 내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친척들은 호시노 온천료칸에 필요한 물품들을 납품하는 회사를 만들어 운영하며, 납품 가격을 시장가격보다 높게 설정해 폭리를 취하고 있었다. 호시노는 친척들의 특권의식은 직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회사의 발전을 근본적으로 저해한다고 생각했다. 호시노는 사장에 취임하자마자 친인척들의 이러한 행태를 바로잡는 작업에 착수했다.

호시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회사 부지 내에 있던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생가를 회사 자산으로 넘기고,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회사부지가 아닌 곳에 토지를 사서 집을 지었다. 동시에 친족들에게도 회사 부지 내에 사는 이상 임차료와 각종 공과금을 내도록 하는 계약서를 작성하게 했고, 향후 회사 부지 전체를 재개발할 계획이니 빠른 시일 내에 회사 부지 내에서 떠나 주기를 요청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친인척들의 반발이 일었고, 호시노의 아버지인 회장에게 항의했다. 아버지는 호시노를 불러 친인척들의 의견을 대변했지만 호시노는 아버지의 설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자 간의 갈등이 지속되는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도 호시노는 친인척을 회사 부지 내에서 내보내고 회사 업무와 연결되어 있던 친인척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다. 호시노가 이처럼 친인척들과의 이해관계를 잘라 내려고 노력한 이유는 “글로벌 호텔에 지지 않는 일본의 오모테나시(‘진심을 다한 대접’)에 기반을 둔 ‘리조트 운영의 달인’이 되겠다”라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떠나는 직원들, 남아도 불안한 직원들


호시노가 사장으로 취임했을 때의 나이는 서른하나였다. 젊은 혈기의 호시노는 그간의 경험과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과감한 개혁에 착수했다. 그러나 호시노가 맞이한 현실은 그가 생각한 이상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실제로 호시노는 취임 후 3년 동안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말했다. 당시 그의 개혁에 반발한 직원들이 하루에도 수십 명씩 그만두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호시노는 매일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내일 프론트를 담당할 직원은 있는지, 요리사는 있는지, 직원들의 시프트를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직원들이 떠난 것일까? 그 이유는 근무 여건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당시 호시노 리조트는 가루이자와의 다른 리조트에 비해 휴일이 적었을 뿐만 아니라 대우도 좋지 않았다. 직원들이 매일 그만두는 상황에서 호시노는 직원들에게 ‘리조트 운영의 달인’, ‘에코투어리즘’ 등 자신의 비전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당시 직원들은 당장 내일 고객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지 호시노 대표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호시노의 비전에 공감한 가미우타나이 지배인과 같은 직원들은 남았지만, 호시노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불안해한 직원들은 결국 회사를 떠났다.

호시노는 직접 직원을 구하는 공고를 내기 위해 지역의 공공 구인구직기관인 쇼쿠안직업소개소를 찾았다. 하지만 가루이자와 근처에는 리조트 이외에도 대기업이 운영하는 공장들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것이 오히려 휴일이 보장되고 시급도 높았기 때문에 신규 채용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호시노는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인재가 없다면 찾아 나선다는 각오로 도쿄에서 신입사원 채용설명회를 개최했다. 설명회에서 호시노는 자신이 생각하는 리조트의 미래를 역설했고, 자신의 가치관에 공감해 입사할 용기를 내어 준 직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미우타나이가 회사를 그만둘 수 없었던 것은 호시노 대표의 동생인 사다미치 전무에게 상의를 했을 때, 아직 바뀌지 않고 있는 부분과 앞으로 바꾸어 가거나 해야 할 부분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명을 듣고 난 후 가미우타나이는 무언가 할 수 있도록 배울 만한 선배 직원이 필요하니 데려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호시노 대표와 사다미치 전무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다른 호텔에서 설사 데려온다고 하더라도 우리하고 맞지는 않을 테니, 배울 선배를 찾지 말고 스스로 그런 선배가 되어 보라는 것이었다. 가미우타나이는 결국 스스로 할 수밖에 없다는 상황을 인지하고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한번 도전해 보자는 생각에 회사에 남는 선택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 호시노 대표는 인터뷰에서, 당시는 급여도 올려 줄 수 없고 휴일도 보장해 줄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직원들이 스스로 생각해서 일하도록 하면서 그 과정에서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호시노 리조트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직원들은 모두 가미우타나이처럼 호시노 대표와 함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도전한 사람들인 것이다.



호시노 리조트만의 ‘멀티태스크’, ‘플랫한 조직’이란?



료칸의 성역인 주방에 침범하다


호시노는 직원들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개혁의 고삐를 풀지 않고, 오히려 더 개혁을 강화해 나갔다. 그리고 그 개혁의 중심에는 ‘주방’이 있었다. 료칸의 주방은 ‘오야가타’라고 불리는 주방장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어 료칸 안에서도 거의 독립된 장인들의 공간이다. 그래서 오너라고 하더라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성역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이런 공간에 호시노는 겁 없이 들어가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온천을 즐기고 술잔을 기울이며 요리를 먹는 것이야말로 료칸에서 즐길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순간인데, 이러한 고객의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주방의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취임 후 호시노는 주방에 들어가서 주방장이 만든 요리의 맛을 보았다. 주방장의 입장에서는 호시노의 부친인 회장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새파랗게 젊은 사장이 주방에 허락도 없이 들어온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호시노는 요리를 맛보고 “이 요리, 맛이 좀 이상한데요”라고 말해 주방장을 격노하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호시노가 료칸의 성역으로 불리는 주방에 개혁 선전포고를 한 순간이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칼을 들고 생선을 손질하고 있던 주방장은 호시노를 보며, “너 같은 문외한이 내 요리를 알기나 해!”라고 고함을 질렀다. 주방장은 요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도련님이 이러쿵저러쿵 간섭하는 것이 어이없고,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격노한 주방장은 주방에 간섭을 하면 주방 직원들을 전부 데리고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호시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호시노는 당장 내일 예약 손님에게 요리를 제공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주방장에게 맞설 수 있었을까? 그 배경에는 호시노가 믿는 절대적인 가치가 있었다. 호시노에게는 료칸을 찾는 고객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마음은 자신이나 주방장이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호시노는 주방장처럼 반발하는 직원들이 귀를 기울일 만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바로 고객들로부터 모은 ‘고객만족도 조사 결과’를 갖고 주방에 들어간 것이다.

호시노는 주방장에게 고객만족도 조사결과를 보여주었다. 이를 본 주방장은 충격을 받았다. 자기가 자신 있게 내놓은 요리에 대해 돌아온 고객의 의견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불만의 목소리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산속의 리조트인데 왜 해산물만 내놓지?”, “음식이 너무 식어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등 다양했다. 주방장은 호시노가 평가를 내렸을 때와는 180도 다른 태도를 보였고 고객의 목소리가 담긴 종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호시노는 주방장의 표정을 읽으며 자신이 준비한 주방의 개혁안을 제시했다. 지금까지 주방장이 자신의 제자를 도제식으로 키워 온 문화를 바꾸고, 고객의 목소리를 항상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주방을 만들 것을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로 고객을 맞이하고 객실을 안내하는 프론트 서비스팀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주방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호시노의 이러한 파격적인 개혁안에 대해 주방장과 요리사들은 황당했다. 주방장은 고객의 의견을 전달해주기만 하면 되는데, 왜 요리 문외한들을 주방에 들여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저항했다.

하지만 호시노는 항상 고객의 목소리를 들어 온 서비스팀 출신의 직원들이 주방에 들어가야만 주방이 열린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는 신념으로 신입 직원들을 주방에 밀어 넣었다. 주방 안은 호시노에 저항하는 주방장과 그 제자들, 그리고 눈치를 보며 주방에 들어온 서비스팀 출신의 직원들이 뒤엉켜 살벌한 분위기가 한동안 계속됐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도 시간이 지나면서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주방의 요리사들이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호시노는 개혁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직원들에게 설명하면서 남은 주방직원과 서비스팀에서 들어간 직원들로 주방을 꾸리기 시작했다.

취재 당시 BEB5 가루이자와의 지배인이었던 오쓰카는 실제로 요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음에도 갑자기 주방으로 발령을 받아 오믈렛 만드는 일을 담당했다고 했다. 오쓰카는 선배의 조언을 들으며 배웠는데도 잘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 어느 순간 오믈렛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요리의 ‘요’ 자도 몰랐던 자신이 오믈렛의 달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다는 자신감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요리를 전혀 모르는 서비스팀 직원들을 주방으로 보내는 호시노의 개혁은 주방이 가진 성역이라는 이미지를 걷어 내고, 고객만족을 위해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윗사람 신호를 제거하라


호시노 온천료칸을 낡은 경영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하기 위해 아버지와의 갈등을 감수하면서 특권계급으로 군림하던 친인척을 배제시키고, 성역으로 불리던 주방의 변화를 추진한 호시노의 도전이 조금씩 성과를 나타낼 즈음,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호시노가 직접 채용한 사원들의 퇴사가 늘어났던 것이다. 호시노는 직원들과 매일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한 가지 중요한 과제를 발견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호시노 리조트의 조직문화에 대한 불만이었다.

호시노는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톱다운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해 나갔다. 그리고 이 방식이야말로 오랜 타성에 젖은 호시노 온천료칸을 가장 빨리 개혁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막상 그만두는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는 이유가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례로 한 직원은 사표를 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명령과 지시를 받고 그대로 일하는 데 지쳤다. 나도 생각이 있는데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니 너무 힘들었다.” 호시노는 이 말을 듣고, 직원들이 스스로의 의견을 개진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호시노는 히에라르키(Hierarchie: 로마교황이 세속 권력을 갖는 제도로 피라미드형 지배체제를 의미)의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호시노는 즉시 회사의 재무 상태, 고객만족도 조사결과, 신규 사업 등 모든 정보를 직원 누구나 알 수 있게 공개했다. 나아가 누구나 의견을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장이라는 지위가 갖고 있는 ‘윗사람 신호’를 철저히 제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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