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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는 어떻게 일하는가

데이브 윌리엄스, 엘리자베스 하월 지음 | 현대지성


나사는 어떻게 일하는가

데이브 윌리엄스, 엘리자베스 하월 지음

현대지성 / 2024년 12월 / 368쪽 / 19,900원





세계를 바꿔놓은 소리




20세기와 관련된 모든 소리 중에서 라디오를 통해 반복적으로 들렸던 소리가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았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그 ‘발신음’은 1957년 10월 4일 금요일에 처음 들렸다. 모스크바 시간으로 같은 날 오후 10시 29분에 발사된 러시아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보낸 것이었다. 0.3초 간격으로 연속해서 반복된 발신음은 미국 과학기술과 서구 세계의 생활 방식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었다. 한마디로, 세계를 영원히 바꿔놓은 소리였다. 스푸트니크 1호의 발신음은 23일 동안 지속되었다.

참고로 1950년대 말에 미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중산층이 급속히 증가했고 새로운 재화와 용역, 편의 시설 덕분에 혜택을 누렸다. 이는 현대 민주주의의 좋은 점과 국가의 전략적 우선순위를 뚜렷하게 보여줬다. 따라서 당시 미국이 우주 탐사에서 뒤처졌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미국은 이에 대응해야 했고 그렇게 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국가우주협의회는 국가의 우주개발을 조직적으로 운영할 기관의 필요성을 인식했고, 그리하여 ‘미국항공우주국’, 즉 우리가 잘 아는 나사(NASA)가 설립되었고, 케이스공과대학의 총장이던 토머스 키스 글레넌을 초대 국장으로 임명했다.

적합한 리더 / 역량을 키워라


글레넌이 단기적으로 추구한 전략은 최고의 공학자와 과학자를 필두로 나사를 탁월한 조직으로 키워내는 것이었다. 반면에 장기적인 전략은 ‘우리가 이 경쟁에서 궁극적인 우위에 올라설 수 있도록 설계된 … 프로그램을 우리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개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성공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보유한 모든 역량을 우주탐사에 결집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는데, 몇 개월 만에 글레넌은 여러 연방 부서에 흩어져 우주탐사 업무를 담당하던 부서들을 나사에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인간을 우주에 보내기 위해 나사는 신속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했다. 따라서 새로운 공학자도 중요했지만, 각계각층의 더 많은 도움이 필요했다. 특히 민간 부문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글레넌은 모임을 마련해 항공우주 기업들을 초대했고, 나사의 향후 계획을 알린 다음 물자 조달을 위한 과정에 도입할 그들의 경쟁 방법을 개략적으로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글레넌은 세 개의 독립 위원회를 두고, 입찰에 참여한 기업의 경영 능력 및 과거의 업무 성과를 평가했으며 기술 역량까지 살폈다. 한편 글레넌에게는 안전도 중요했기 때문에 품질 관리를 나사의 우선 과제로 두었다. 아무튼 글레넌은 1960년 여름까지 나사가 성공하는 데 필요한 확고한 기반을 다졌고, 나사는 국방부가 직접 관리하는 소수의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우주와 관련한 모든 활동을 총괄하는 핵심 부서가 되었다.

이후 1961년 글레넌은 나사를 떠나 케이스공과대학의 총장직으로 돌아갔다. 글레넌이 남긴 진정한 유산은 나사의 초대 국장으로서 나사가 우주개발 경쟁에서 앞서도록 기반을 다져놓은 데 있다. 글레넌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고, 해내야 할 일을 해냈다. 그렇게 구축해놓은 팀이 결국 인간을 달에 보냈고, 그가 나사에 심어놓은 문화는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에도 기꺼이 도전하는 기반이 되었다.

[인사이트 노트] ① 처음부터 신뢰받지 못하면 신뢰를 쌓는 데만 수년이 걸릴 수 있다. 그런데 리더가 팀을 이끌 만큼 신뢰를 받으려면, 우선 그들의 리더십이 신뢰를 받아야 한다. ② 다른 사람의 경험을 보고 배워라. 만약 가능하다면 분야를 통합하고, 가능할 때마다 협력하며, 역량과 효율성과 전문성을 키워라. ③ 최선을 찾고 최고를 고용하라. 이미 최고라도 훈련을 통해 더 나아지도록 하고, 최고에게 각자의 역할을 다하게 하라. ④ 다양하면서도 상호 보완적인 기량 및 입증된 리더십을 지닌 관리자팀을 구성하라. 그리고 그들을 믿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불가능에 도전하라




나사는 인간을 우주에 보낼 수 있다고 믿었다. 참고로 1961년 5월 5일, 앨런 셰퍼드는 비록 지구 궤도에 완전히 오르지 않은 채 15분 동안만 짧게 비행했을 뿐이지만,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날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0년 내로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고 선언하기 고작 며칠 전이었다. 전임 대통령이던 아이젠하워와 달리 케네디와 그의 팀은 머큐리 계획을 확장하라는 로의 권고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달 착륙 계획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사의 속도가 빨라졌다.

당시 미국이 우주에서 ‘지낸 경험’은 모두 합해야 15분에 불과했다. 당시 우주비행사들은 모두 유능한 군사용 시험비행 조종사들이었고, 비행 관제 센터에서 일하던 공학자들도 한결같이 똑똑했고 대부분이 군대나 다른 정부 기관에서 그들의 훈련을 지원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인간을 지구 바로 위에 올려 보내는 과제를 넘어, 인간을 달에 내려 보내는 보름간의 임무는 거의 불가능한 도전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그 임무를 완성하려면 비행 관제를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크리스 크래프트가 비행 관제 센터를 창설하고 로버트 길러스가 유인 우주 센터(현재 휴스턴에 있는 나사의 존슨 우주 센터)를 설립함으로써 그 길을 열어주었다. 만약 이 모든 시스템이 신속하고 효율적이면서 안전하게 구축되었다면, 실패로 끝난 아폴로 13호의 우주비행사들이 “휴스턴, 문제가 발생했다!”라고 보고하기 10년도 더 전에 위험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길러스와 크래프트를 비롯한 연구원들은 언제나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책을 모색하는 성향을 가졌으며, 무엇보다도 행동이 앞서는 사람들이었다(당시 연구원 대부분이 남자였다). 그들은 우선순위를 어떻게 결정했을까? 개개인의 차이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이전에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었는데, 무슨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를 어떻게 결정했을까? 이러한 질문들의 답을 찾는 데 수년의 노력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발을 헛디디고 허우적대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목표를 성취했다.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들은 케네디가 제시한 기한보다 6개월이나 앞서 달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권한 위임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권한 위임이 중대한 과제로 떠올랐는데, 크래프트가 초기에 과제를 맡긴 연구원은 유진 크랜츠였고, 크랜츠는 훗날 아폴로 계획까지 비행 관제팀을 총괄하는 운항 총책임자가 되었다. 크랜츠는 나사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내가 합류하고 약 보름 뒤에 진정한 전환점이 있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나사의 우주 계획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데 크래프트가 찾아와서 ‘머큐리-레드스톤 1호를 발사할 준비를 할 예정이네. 자네가 케이프커내버럴에 내려가서 카운트다운과 비행 관제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주면 좋겠네. 그 일을 끝내면 전화를 주게. 그럼 우리가 내려가서 우주선을 발사할 테니까’라고 말했다.” 머큐리-레드스톤 1호는 머큐리 계획에 따른 최초의 무인 비행 시험이었다. 나사는 우주비행사를 승선시키기 전에 발사 절차를 확립해야만 했다. 크랜츠는 벅찬 과제를 떠맡고 허둥지둥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 음, 네, 알겠습니다.”

이후 크랜츠는 발사 기지에 도착하자마자 웨스턴 일렉트릭에서 파견된 전기공학자 폴 존슨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크랜츠는 그와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업무 지식이 얄팍하다는 사실을 즉각 깨달았다. 존슨은 케이프팀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꿰뚫어 보고 있는 듯했다. 크랜츠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라고 말했다. 존슨과 크랜츠는 발사 절차에 대해 팀원들에게 마음껏 발언할 기회를 주고 그들의 머리를 빌렸다. 그렇게 팀원들이 전문 지식을 쏟아내고 기꺼이 서로에게 권한을 위임하며 겸손한 자세로 새로운 지식을 배우려고 노력했지만 머큐리-레드스톤 1호의 비행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발사 직후에 엔진이 꺼지고 로켓은 발사대에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10센티미터 비행’이라고 불린 이 실패는 모두에게 당혹스러운 기분을 안겼다.

지행격차


머큐리 계획에서 새 아이디어는 무언가를 우주에 쏘아 올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로켓은 발진하지 못했고, 당황한 운항 관제사들의 얼굴에서 무력감이 엿보였다. 탈출 시스템만이 제대로 작동했는데, 그 과정에서 발사체가 산산조각 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다. 그래서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간격을 어떻게 메워야 하는가? 페퍼와 서턴의 주장에 따르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와 자료 수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면 누구나 그 임무를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준비한다는 것은 계획을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실행하고 모의 실험한다는 뜻이고, 그 과정에서 무엇인가 잘못될 수 있으며, 그 잘못을 올바로 바로잡기 위한 시나리오를 생각해낸다는 뜻이다.

실패를 통해 배워라


크랜츠팀은 신속히 배웠고, 곧이어 우주비행사 존 글렌을 앞세워 궤도 비행을 시도할 준비를 끝냈으며, 결국 글렌은 성공적으로 지구 궤도를 여러 바퀴 돌았다. 처음 계획한 목표는 궤도를 세 번 회전하는 것이었지만, 필요한 경우에 일곱 번까지 늘릴 수 있었다. 하지만 우주비행을 시작하고 4시간을 조금 넘겼을 때 글렌은 하와이 상공에 있었는데, 그때 글렌은 비행 관제 센터로부터 모든 것을 바꿀 연락을 받았다. “프렌드십 7(글렌이 탑승한 유인 우주선 머큐리-아틀라스 6호의 호출 신호), 방금 센서 51에서 착륙 보조 장치가 펴진 것으로 읽힌다. 잘못된 신호인 것 같다.”

착륙 보조 장치는 그 이름에서 짐작되듯이, 우주선이 바다에 착륙할 때 펴져야 했다. 그런데 우주에서 착륙 보조 장치가 펴지면 비상사태나 다름없었다. 무엇보다 열을 차단하는 차폐 장치가 느슨해졌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열을 차폐하지 못하면 우주선이 지구 대기권에 재진입하는 동안 타버릴 수 있었다.

운항 관제 감독 크래프트는 관제관들의 보고를 면밀하게 검토한 뒤에 팀원들이 잘못된 신호를 보고 있는 것이라 ‘직감’했다. 무엇보다 우주에 있는 글렌이 착륙 보조 장치와 관련해 아무런 보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래프트는 “글렌으로부터 아무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과연 그런 사고가 일어날 수 있을까? 캡슐의 반동 추진 엔진에 발동이 걸릴 때마다 열 차폐막에서 쿵쾅대는 시끄러운 소음이 있지 않았나? 글렌이 캡슐의 계기판에서 착륙 보조 장치가 펴졌다는 신호를 보았다면 즉시 보고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당시 글렌과 통신하는 역할을 맡은 지상 연락관 앨런 셰퍼드도 크래프트의 의혹에 힘을 실어주었다. 팀원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절차를 파악하는 동안, 크랜츠는 관제용 계기판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곳곳의 통신소에 경고를 보내면서 그 이상한 신호에 대해 알렸다.

그때 부국장보이던 월터 윌리엄스가 관제 센터에 들어와 나사에서 이 문제와 관련된 고위 관리자들을 소집했고, 지체 없이 여러 사람이 관제 센터로 달려와서는 크래프트 옆으로 모여들었다. 그런데 글렌이 재진입하기 전에 결정이 내려져야 했지만, 누구도 무엇이 최선의 해결책인지 알지 못했다.

데이터에 근거해 결정을 내려라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이 숨 가쁘게 다가왔다. 하지만 머큐리 관제 센터에서는 누구도 그 신호가 잘못되었다고 단정하지 못했다. 캡슐이 대기권에 재진입한 뒤에 속도를 늦추기 위한 ‘역추진 보조 로켓’ 장치는 가동된 뒤에 떼어내는 게 원칙이었지만, 계속 남겨두자는 의견이 조심스레 제안되었다. 크래프트는 그 의견에 어떠한 공학적 분석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척 위험한 결정이라 생각했다. 특히 역추진 로켓에 연료가 남아 있다면 폭발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열 차폐막이 실제로 느슨해졌다면 글렌의 목숨을 구할 가능성도 있었다. 크래프트는 불안하기 그지없었지만 재진입을 위해 역추진 로켓을 계속 남겨두기로 결정했다. 결국 글렌은 안전하게 착륙했다. 나사는 지상에서 궤도에 오른 우주선 상태를 더 정밀하게 감시하는 원격 측정 역량을 신속하게 키웠고, 크래프트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결코 규범에서 벗어나지 말라!”라는 새로운 운항 관제 규칙 하나를 더했다.

[인사이트 노트] ① 대담한 비전은 팀에게 대담한 목표를 성취하도록 영감을 줄 수 있다. ② 결과를 끌어내고 싶다면 전문가를 채용해 권한을 위임하라. ③ 새 아이디어를 관리하기 위한 과정을 마련하라. 최상의 아이디어를 시행하되 성공 가능성을 측정하고, 만일을 대비해 다른 아이디어를 준비해라.



실패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우주 비행은 원천적으로 위험하고, 동원되는 과학기술은 최첨단이다. 따라서 실수는 금전적으로도 막대한 손해를 일으키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간다. 한편 우리는 종종 위험천만한 세 번째 달 착륙 로켓이 1970년 4월 11일 발사되었다는 사실을 잊는다. 아폴로 13호의 초기 상황은 지극히 평범했다. 당시 정서는 ‘이미 가봐서 다 안다’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짐 러벨과 프레드 헤이즈, 잭 스위거트가 아폴로 13호에 몸을 싣고 현지 시각 13시 13분에 달을 향해 출발할 예정이었다.

마지막 순간의 변경


그런데 발사를 앞둔 마지막 몇 주는 혼란스러웠다. 이번 임무에서 원래 사령선의 조종사로 지명된 우주비행사는 켄 매팅리였다. 그러나 매팅리는 비행 직전에 뜻하지 않게 풍진에 노출되었다. 결국 아폴로 13호는 예비 우주비행사 잭 스위거트와 함께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스위거트는 예비 승무원으로 훈련받은 경험이 전부였으나 스위거트가 러벨과 헤이즈의 옆에 앉은 순간, 러벨의 걱정은 해소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스위거트는 잘 훈련받았고 언제라도 출발할 준비가 된 우주비행사였다.

아폴로 13호는 마침내 달 전이 궤도 진입을 완료하고 프라 마우로 고지대를 향해 비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4월 13일 저녁, 우주비행사들이 홍보 행사를 진행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행사의 중계방송을 실시간으로 보는 시청자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다음에 일어난 사건은 세계 전역으로 방송되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러벨은 “휴스턴은 아마 9시나 10시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통로를 통해 내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쉬익, 펑!’ 하고 우주선이 크게 흔들렸다”라고 회고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건들


극저온 상태의 산소는 탱크 안에서 분리되는 경향을 띤다. 따라서 아폴로 사령선의 액체 산소 탱크는 정확한 계측을 위해 내부에 설치한 전기 팬이 액체 산소를 휘젓도록 설계되었다. 산소는 우주비행사의 호흡뿐만 아니라 수소와 산소로 작동하는 연료 전지에도 필요했기 때문에 나사는 탱크 안을 휘저으면서도 산소량을 정확히 측정하는 절차를 개발했고, 그 절차는 ‘냉동 교반’이라 일컬어졌으며,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무척 간단했다. 승무원이 우주선 내의 개폐기를 올려 전기 팬을 돌리면 그만이었다.

아폴로 13호의 경우에도 폭발 사고가 있기 전까지 냉동 교반이 네 번 행해졌고, 계획에 따르면 우주비행사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마지막으로 점검해야 했다. 참고로 이번에는 2번 탱크에서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2번 탱크가 폭발하면서 중요한 산소가 누출되었고, 사령선의 기능을 제어하는 데 사용되는 연결 장치도 찢어졌다. 그러자 우주선의 주 경보 장치가 요란하게 울렸다.

우주비행사들은 다급하게 “휴스턴, 문제가 생겼다!”라고 지상에 알리며 도움을 구했다. 이런 비상사태에서도 우주비행사들은 철저하게 절차를 따랐다. 문제를 진단하고 달 착륙선과 연결된 해치를 닫았다. 그때까지도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고, 유성이 우주선을 때린 것은 아닐지 걱정했다. 그 와중에도 우주비행사들과 운항 관제팀은 주 경보 장치가 울린 이유를 알아내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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