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착각에 빠진 리더들

팀 엘모어 지음 | 흐름출판


착각에 빠진 리더들

팀 엘모어 지음

흐름출판 / 2023년 9월 / 320쪽 / 19,000원





서장. 선택의 딜레마에 빠졌다는 리더들의 착각




어려운 시대에서 복잡한 시대로:
내가 살아오는 동안 리더십 기술은 복잡해졌다. 세상이 유행병, 세계대전, 기근 등 과거의 힘겨운 시대를 견뎌 오는 동안 우리는 “어려운 시대”에서 “복잡한 시대”로 이동했다. 21세기의 리더십은 20세기 때보다 실로 더 복잡하다. 본래 리더십을 행사한다는 것 자체가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리더들은 기성세대 직원들보다 만족과 보상에 대한 기대치가 크고 대체로 교육 수준이 높으며 자의식이 더 강하고 더 영악한 직원들과 협력해야 하는 도전에 맞닥뜨린다. 오늘날의 리더는 ‘복잡성’에 기초해 사람들을 이끌어야 한다.

역설적 리더십은 무엇인가?:
최근 이야기를 나눈 한 CEO는 자신이 전략가이자 지지자, 스토리텔러, 치료사, 미래학자, 동기부여 연설가가 되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짓눌려 있었다. 실제로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러한 유형의 역설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복잡한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간단히 정의하면, 역설적 리더십은 누가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자세히 뜯어 보면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판명되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인 두 가지 특징이 서로 상충되어 보이는 탓에 우리는 종종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을 보지 못한다. 상반되는 두 모습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주의 깊게 들여다본 후에야 역설을 이해할 수 있다. 지금부터 살펴보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격리 기간 동안 애틀랜타에서는 도로 교통량이 눈에 띄게 줄었지만 오히려 교통사고는 증가했다. 도로 위의 자동차 수는 더 적어졌는데 어떻게 사고는 더 늘어났을까?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로에 차가 적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빨리 그리고 과감하게 운전해 더 많은 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을 떠올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또한 역설적이지만 사실이다. 역설은 의아하게 느껴지지만 유능한 리더의 형용할 수 없는 특징을 설명해준다. 오늘날 세계는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다차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리더만이 성공할 수 있다.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최고 수준의 지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상반된 생각들을 동시에 하면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불확실성이 난무하는 오늘날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필수적인 다음 여덟 가지 놀라운 역설을 탐구하고 실증하고자 한다.

첫째, 위대한 리더는 자신감과 겸손의 균형을 맞춘다.

둘째, 위대한 리더는 비전과 블라인드 스팟을 이용한다.

셋째, 위대한 리더는 보이는 리더십과 보이지 않는 리더십을 받아들인다.

넷째, 위대한 리더는 뚝심 있으면서도 수용적이다.

다섯째, 위대한 리더는 기본적으로 전체를 위하면서도 개개인을 위한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한다.여섯째, 위대한 리더는 지도자이자 학습자이다.

일곱째, 위대한 리더는 높은 기준을 갖추면서도 관대함을 베푼다.

여덟째, 위대한 리더는 시대를 초월하는 원칙과 시대에 발맞춘 발전을 모두 추구한다.



탁월한 리더는 자신 앞에 놓인 상황을 읽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사람들을 관찰하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현명한 대응책을 선택한다. 그들은 역경을 이겨내고 계속해서 목표를 추구하면서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필연적인 역설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자신감과 겸손 _ 동등한 사람 가운데 첫 번째가 되라




마이클 다만 아이스너는 1984년부터 2005년까지 20년 이상 월트디즈니사에서 CEO 겸 회장을 지냈다. 그의 리더십 아래 디즈니 브랜드는 다시 부활했다. 그는 「인어공주」 같은 만화 영화의 흥행에서부터 영화사 미라맥스, 미국 지상파 방송사 ABC, 미국 스포츠케이블 방송사 ESPN 인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주도적으로 성사시켰다. 그러나 이 시기에 디즈니는 협상하기 힘든 상대이며 협력하기 어려운 파트너라는 소문이 돌았고 디즈니 내부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아이스너는 갑자기 직원을 해고하거나 법적 다툼을 벌이는 등 돌출 행동을 일삼았다. 그는 점차 회사에서 고립되었고 그럴수록 그는 더욱 파괴적이고 거만하게 굴어 마침내 주주들은 그를 해임하기에 이르렀다.

리더의 진정한 권위는 어디서 나오는가:
2005년 디즈니 이사회는 30년 동안 ABC 방송사와 디즈니의 여러 브랜드를 거치며 착실하게 경력을 쌓아온 밥 아이거를 아이스너의 뒤를 잇는 디즈니의 새로운 CEO로 선임했다. 그는 하루아침에 프로그램 인수와 저작권 협상과 같은 중대한 사업 이슈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는 마치 빅 리그에 콜업된 신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거는 무엇이든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를 유지했다. 실제로 아이거는 CEO로 취임했을 때 마이클 아이스너처럼 행동하지 않았고, CEO라고 우쭐거리지도 않았다. 그저 본인만의 모습을 겸손하게 보여 줄 뿐이었다. 그는 말을 하기보다는 들을 때가 많았고 가르치기보다는 배울 때가 많았다. 또 상대의 가치를 얻어 가기보다는 높여주려 했다. 이렇게 아이거는 상대방을 단번에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리더십을 보인 덕에, 아이거가 자신감 있게 결정을 내렸을 때 사람들은 그를 믿고 따를 수 있었다. 자신감과 겸손이 균형 잡힌 태도는 다른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까지도 그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유인으로 작용했다. 오늘날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겸손과 자신감 두 가지 자질을 모두 겸비해야 한다.

아이거의 리더십이 가장 명확히 드러났던 것은 그가 디즈니와 픽사의 관계 회복을 위해 당시 픽사 회장이었던 스티브 잡스를 만났을 때였다. 과거 아이스너와 잡스는 미팅 석상에서 서로 협상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마치 서로 날개를 활짝 펴고 맞선 수컷 공작들처럼 팽팽하게 자존심 대결을 펼쳤다.

아이스너의 자리를 이어받은 아이거는 잡스에게 만나지 않겠느냐고 먼저 연락을 했다. 그리고 잡스를 만났을 때 먼저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에 합류했음을 인정하고, 사실 디즈니라는 엄청난 브랜드를 이끌기에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픽사의 가치를 높히고 싶다며 디즈니와 픽사가 협력한다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전했다. 아이거는 아이스너로 인해 꼬인 매듭을 차근차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저녁, 아이거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잡스의 의중을 떠보았다. 잡스는 잠시 침묵한 후에 “영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요.”라고 답했다. 디즈니의 픽사 인수는 실로 대단한 아이디어였다. 마침내 인수 거래가 성사되었고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픽사 직원들은 디즈니 제국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 거래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아이거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방식이었다. 아이거는 픽사가 디즈니에 합류하게 된다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총괄고문 자리를 픽사에게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것은 애니메이션과 관련한 모든 일의 지휘권을 픽사에게 넘긴다는 것으로 인수 기업인 디즈니가 도리어 픽사에게서 배우는 입장이 된 것이었다. 이는 실로 자신감과 겸손이 균형 잡힌 그림이었다. 이후 아이거와 잡스는 좋은 친구가 되었으며 2011년 10월 잡스가 사망했을 때 아이거와 그의 아내는 잡스의 추도식에 초대받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오늘날처럼 복잡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확실하게 자신감을 보이는 리더를 찾는다. 팀원들은 리더에게서 자신감을 보지 않고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리더의 자신감 때문에 자신의 인간성이 무시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탁월한 리더는 자신을 믿지만 혼자 힘으로 모든 일을 이룰 수 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보이는 리더십과 보이지 않는 리더십 _ 주연처럼 등장하여 조연으로 남으라




젊은 항거자:
1957년 마틴 루서 킹 주니어는 시민권 운동가들과 함께 남부 기독교지도자회의를 설립했다. 이 단체는 흑인 교회의 도덕적 권위와 조직력을 기반으로 시민권 개혁을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기 위해 조직되었다.

젊은 리더인 킹은 동시대 흑인 인권운동가였던 맬컴 X와 달리 비폭력 시위로 대의를 지킨다면 많은 미국인들의 동조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따라서 킹의 세력은 평등권을 평화로운 방식으로만 요구했다. 킹은 언론을 통해 국가에 소수 인종 학대의 현실을 낱낱이 보여 주려 했다. TV 언론과 기자들은 시민권 운동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가 될 터였다. 킹은 분열을 초래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대신 미국인의 가치관에 호소했다. 그는 연설에서 헌법과 독립선언문을 활용했고 그로 인해 그의 시위대는 애국자로 느껴졌다. 이러한 이성적 사고와는 반대로 한편으로 킹은 자신이 체포되고 감옥에 수감되는 일들이 동료들에게 시위 참여 열정을 계속 불러일으키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다. 그로써 시위대는 숭고해 보였다. 언론에서는 남부 지역 흑인들이 겪는 박탈감과 모욕감, 그리고 시민권 운동가와 행진 참가자를 향한 인종차별적 폭력과 학대에 관한 내용과 장면을 보도했고 그 후 수많은 미국인이 시민권 운동을 1960년대 초반 미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로 인식하며 동정 어린 여론의 물결을 일으켰다.

킹은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행진 때 생애 절정기를 맞았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로 알려진 연설, 미국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연설을 한 날이었다. 연설이 끝나고 그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하면서 저항 운동을 촉진했다. 이러한 그의 면모를 보면 비상한 리더의 또 다른 역설이 생각난다. ‘리더의 존재가 사라졌을 때 리더십이 드러난다.’

대체로 사람들은 어떤 임무를 수행하든 초기에는 해야 하는 일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 주고 목표를 제시해 주는 리더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옆으로 비켜서서 자신의 잠재력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해주는 리더를 원한다. 권한은 위임되어야 한다. 리더가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 것은 맞지만 나중에는 리더가 없어도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처음에는 대체 불가능했던 훌륭한 리더도 시간이 지나면 대체 가능해진다. 탁월한 리더는 자신이 언제 발언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며, 때가 되면 말을 멈춰야 한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 리더의 존재를 거의 인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을 때 비로소 리더는 가장 의미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리더가 아니라 팀과 팀의 임무다. 훌륭한 리더는 팀원들을 이끌다가도 길을 비켜 주는 사람이다. 이들은 적절한 순간에 모습을 드러내고 때로는 사라지는 역설을 이해한다. 마틴 루서 킹은 역설적인 리더십을 멋지게 발휘했다.

슬픈 뒷모습마저도 드러내라:
초반에 킹은 모든 미국인의 평등권을 향한 지난한 여정에 자신이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대다수의 시민들이 남부 지역에서 어떤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고, 앨라배마주나 미시시피주 또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에 가서 불평등을 목격할 일도 아예 없을 것 같았다. 불평등이 난무하는 지역을 보지 못했으니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 건 당연했다. 따라서 킹은 먼저 보이는 리더십을 행사해야 했다.

킹의 보이는 리더십이 없었다면 흑인들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계속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백인들은 운동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1955년부터 1965년까지 킹은 보이는 리더십을 발휘해 소수 인종의 시민권 운동 참여를 독려했고, 수많은 미국인의 공감을 얻었다. 그는 그때까지 산발적이고 무질서하며, 리더십 철학이 부족했던 시위의 양상을 바꾸어 놓았다.

킹은 흑인 투표권·노동권 등의 기본 시민권 획득과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평화로운 행진을 이끌었다. 그리고 1964년 미국 민권법과 1965년 미국 투표권법이 통과되면서 이러한 권리를 대부분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앨라배마주의 몽고메리 지역에서 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경찰이 평화로운 시위대에 폭력을 가한 사건이 언론의 주목을 받아 앨라배마주의 인종차별이 전국에 알려졌다. 게다가 킹은 시민권 운동에 참여할 때 스물아홉 번이나 체포되고 투옥되었다. 킹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는 말만으로는 변화를 촉발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희생과 고통의 본보기가 필요했다.

킹은 사진과 언론도 적극 활용했다. 1963년 버밍엄에서 경찰견이 10대 소년 월터 개즈든에게 달려드는 사진을 공개해 대중의 분노를 촉발했다. 시위대가 소방 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을 맞은 사건의 사진과 영상이 유포되면서 수백만 명이 시민권 논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킹은 일부러 집단 체포를 유발하고 위기 상황을 조장함으로써 상대측이 협상의 문을 열지 않을 수 없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1961년에서 1968년 사이 킹은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린든 B. 존슨 대통령, 그리고 연방정부 관계자들과 만나기 위해 보이는 리더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러한 협상 자리에서는 오직 킹 자신만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고 다른 이에게 그 권한을 위임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킹과 대통령이 함께 찍은 사진들은 협상이 공공정책 변화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세상에 증명해 보였다. 1963년 8월, 킹은 모든 이의 시민권을 주창하는 연설로 모든 미국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미국의 건국 문서에 적힌 미국인들 자신의 목소리가 무엇이었는지 확인하고 그 오래된 서약들을 사람들에게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평등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미국인들이 앞으로 다가올 평등의 시대를 준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자신이 결코 굴복하지 않고, 진실되게 행동하고 있다는 확신을 대중에게 심어 주었다. 킹 박사가 이처럼 모범을 보이지 않았다면 시민권 운동은 10년 동안 그토록 크게 도약할 수 없었을 것이다. 1964년 그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1963년 8월, 킹의 17분짜리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놀라운 역설을 보여 준다. 이 연설은 에이브러햄 링컨이 노예해방선언을 한 지 100년이 지난 시점인 워싱턴 대행진 때의 일이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우리는 아직 완전히 해방되지 않았습니다.”였다.

킹은 남아야 할 때와 떠나야 할 때를 잘 알고 있었다. 그날 10명의 연설 예정자 중 그의 순서는 맨 마지막이었다. 대본 분량으로 치면 연설은 11분 정도일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연설이 끝날 즈음 청중들이 뭔가 아쉬워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가 대본에서 고개를 들어 군중의 마음을 읽고 있던 바로 그때, 가수 마할리아 잭슨이 “사람들에게 그 꿈을 이야기해 주세요, 마틴!”이라고 외쳤다. 마할리아 잭슨은 그래미상을 수상한 복음성가 가수로 그날 앞 순서에 노래를 불렀다. 잭슨이 외친 것은, 마틴이 언젠가 디트로이트에서 했던 평등의 꿈에 관한 연설 내용이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미국의 건국이념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이야기였다. 킹의 고문이었던 클래런스 존스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킹은 자신이 준비했던 연설문 종이를 연단 왼쪽으로 밀어 둔 뒤 연단을 꽉 부여잡고는 그곳에 집결한 25만 명 이상의 군중을 바라보았습니다.”

킹은 사람들이 보이는 리더를 원하는지 혹은 보이지 않는 리더를 원하는지 그 마음을 항상 읽고 있었는데, 그 시점에서는 아직 보이는 리더여야 함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가시적인 리더를 필요로 했다. 킹은 즉석에서 6분 30초 동안(총 연설 시간은 17분 30초였다.) 열정을 다해 자신의 꿈을 그려 나갔다. 은유적 표현을 사용하며 청중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했다. 청중들이 신성한 깨달음을 얻은 것에 만족감을 느낀 순간 그는 “마침내 자유가, 마침내 자유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비로소 자유로워졌습니다.”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단상에서 재빨리 걸어 나갔다. 보이는 리더에서 다시, 보이지 않는 리더가 되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