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키운다는 것
스가하라 유이치로 지음 | 비즈니스북스
사업을 키운다는 것
스가하라 유이치로 지음
비즈니스북스 / 2020년 8월 / 240쪽 / 14,000원
제1부 스탠퍼드가 주목한 비즈니스 모델
작은 기업이 이뤄 낸 규모의 경제 - 하루 최대 7만 개 생산의 비밀 단 하나의 상품으로 매출 1,000억을 이루다: 도쿄 도심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라면 샛노란 병아리가 그려진 하얀색 배송차를 심심찮게 목격했으리라. 그 차량을 운행하는 회사는 450엔짜리 도시락을 하루 6만~7만 개 배달하는 다마고야다.
다마고야는 1975년 창업한 회사로, 나는 27세가 되던 1997년에 입사했다. 아버지가 만들고 성장시킨 회사를 물려받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운명처럼 경영을 맡게 되었다. 당시 사업 규모는 1일 2만 개를 넘나드는 정도였는데 내가 입사한 뒤부터 매년 순조롭게 배달량을 늘려서 10년 후인 2007년에 6만 개를 돌파했다. 현재 매출액 규모는 단일 메뉴 도시락으로 연간 70억 엔, 다마고야 그룹의 전체로는 연간 90억 엔(약 1,000억 원)에 달한다. 많은 사람이 내게 묻는다. “단일 상품만으로 꾸준히 매출이 증가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짐작건대 이 책을 펼친 독자 여러분도 비슷한 궁금증을 갖고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그 비결을 낱낱이 공개하고자 한다.
놀라운 속도의 비밀, 1일 1메뉴와 기계화: 다마고야는 1일 1메뉴가 원칙이다. 이를 고수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단일 메뉴이므로 대량 제조가 수월하고 갑작스러운 수요 변동에도 발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 아울러 대량으로 식자재를 납품받으면 그만큼 단가가 낮아진다. 같은 가격이라도 보다 양질의 식자재를 사용하게 되므로 비슷한 가격대 상품보다 경쟁력이 높아지는 셈이다.
도시락은 도쿄 오타구에 있는 공장(제1공장, 제2공장, 라이스 센터)에서 만든다. 전날 사전 작업을 해 두는 경우도 있지만 도시락 공장은 당일 오전 4시부터 가동하는 게 원칙이다. 오전 2시에 직원 10명이 출근해 식자재를 확인하며 품질 검사를 한 뒤 도시락 사전 준비에 착수한다. 4시가 되면 조리 및 취반 담당 직원 약 50명이 출근해서 본격적으로 도시락 생산을 시작한다. 정오까지 6만~7만 개의 도시락을 완벽하게 배달하는 또 다른 비결은 기계화다. 다마고야는 적극적으로 기계를 도입해 자동화와 효율화를 도모해 왔다. 특히, 반찬 조리는 일찌감치 기계화를 추진해 채소 자르기, 튀기기, 굽기 등 갖가지 조리 과정에 기계를 사용한다. 덕분에 제1공장에서 5만 개, 제2공장에서 2만 개로 합계 최대 7만 개 반찬을 세 시간 내에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수요 예측을 바탕으로 한 사전 작업: 조리 및 취반 담당 직원들은 새벽 4시에 출근하지만 아직 그날의 주문은 제로다. 오전 9시가 되어야 비로소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는 실제 주문량을 모른 채 밥과 반찬을 만들기 시작한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도시락을 만드는 건 아니다. 전날 직원들이 회의를 통해 다음 날 수요를 예측하고 산출한 수요량을 기반으로 먼저 도시락을 만들기 시작한다.
수요량은 날짜나 요일 등에 따라 수천 개가량 차이가 난다. 하지만 기본적인 수요량은 천재지변이 없는 한 하루에 5만 5,000개를 밑도는 일은 거의 없다. 반찬을 담은 도시락이 흘러나오는 레인은 총 세 개다. 편의점에 도시락을 공급하는 도시락 업체의 공장은 일반적으로 한두 줄이므로 다마고야 공장이 다른 도시락 공장보다 두세 배 많은 도시락을 생산하는 셈이다. 반찬이 레인에서 나오는 속도도 다른 도시락 공장의 배 이상이다. 빠른 속도로 많은 양의 반찬이 쏟아져 나오므로 반찬을 담는 직원들의 손놀림은 기계 못지않게 빠르고 정확하다.
레인 하나에서 나오는 반찬을 도시락 용기에 담는 수는 1분에 평균 100개다. 레인은 총 세 개가 있으니 1분간 만들어지는 반찬 도시락은 300여 개다. 이런 식으로 전날 예측한 수요량만큼 밥과 반찬을 오전 9시 30분까지 준비해 둔다. 9시 이후에 본격적으로 주문을 받기 시작하면 날씨와 주문 상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면서 부족분은 납품 업체에서 신속하게 재료를 공급받아 수요를 맞춰 나간다.
원 아이템 비즈니스의 경쟁력 - 원가율 53퍼센트로 이익을 내는 법 여성 고객을 공략한 제품 브랜딩: 다마고야 도시락은 맛있다. 하지만 매일 먹을 정도는 아니다. 왜일까? 다마고야 도시락은 날마다 메뉴가 바뀐다. 일례로 햄버그스테이크가 그날의 메인 반찬이면 소스는 데미그라스 단 하나다. 사이드로 곁들이는 스파게티 종류도 미트소스 스파게티와 나폴리탄 스파게티 단 두 종류뿐이다. 이건 다마고야만이 아니라 당시 모든 도시락이 마찬가지였다. 맛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는 도시락, 그저 위장을 채워서 포만감을 느끼는 게 최우선인 도시락, 굳이 말하자면 남성이 선호할 만한 도시락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래서 여성이 선호할 만한 메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허기를 때우기 위해 허겁지겁 도시락을 먹는 남직원의 모습을 본 동료 여직원이 자신도 먹고 싶어 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여직원이 맛있게 도시락을 먹는 모습을 보면 남직원도 먹고 싶어 한다. 다마고야가 꾸준히 판매량을 늘려온 데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직만이 아니라 회사에서 일하는 사무직에도 호평을 받은 점이 주효했다. 사무직 고객의 주문을 늘리기 위해서도 여성에게 어필할 만한 메뉴 개선은 필수였다. 여성 고객을 공략하기 위해 다마고야는 메뉴 다양화를 실시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반찬 포장과 음식 색상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메뉴 선정: 다마고야는 2주 치 식단을 한 달에 두 번 온라인으로 사전에 공지한다. 알찬 구성과 균형 잡힌 식단은 다마고야가 많은 고객에게 지지받는 요인 중 하나다. 1인분 도시락에는 메인 반찬과 사이드 반찬을 포함해 총 7~8개가 들어간다. 메인 반찬으로는 날마다 생선 혹은 고기가 포함되고 같은 메인 반찬이 한 달 사이에 다시 나오는 일은 없다. 같은 재료라도 조리법이나 양념을 바꾸는 등 다양한 식단을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한다. 반면 대다수 도시락 업체는 한 달분 식단을 미리 제공한다. 식단표를 나눠주는 수고를 덜고 조리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장점을 알면서도 다마고야는 굳이 2주라는 짧은 주기로 식단을 공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고객에게 최상의 도시락을 제공한다는 경영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식단 주기가 길면 우연찮은 기회에 최상의 식자재를 발견해도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이미 공지한 메뉴를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2주 단위로 식단을 정하면 한결 대응이 수월하다. 시간이 촉박하더라도 최대한 좋은 식자재를 찾기 위한 전략이다. 도시락업체들은 대부분 일단 저렴한 식자재들을 구입한 뒤 도시락 메뉴를 정한다. 하지만 다마고야는 그 반대다. 고객이 좋아할 만한 메뉴를 두 달 치 계획한 다음, 이에 맞춰 식자재를 매입한다.
메뉴 선정은 오랫동안 아버지가 담당해 왔다. 사장이 메뉴의 기본적인 뼈대를 정하면, 이를 바탕으로 메뉴 회의에서 살을 붙여 결과를 보고하고 사장의 오케이 사인을 받으면 최종 메뉴가 결정된다. 1일 1메뉴를 고수하는 다마고야에서 메뉴 선정은 핵심 업무이자 창업 이래 사장의 고유 권한이었다.
더 많은 투자는 더 많은 수익으로 돌아온다: 다마고야가 파는 도시락 가격은 450엔이고 원가율(판매 가격에서 원가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7년 기준 53퍼센트다. 이는 곧 도시락 하나에 드는 재료비가 238엔이라는 이야기다. 이것은 순전히 식자재비만 계산한 것으로 용기값과 물류비, 인건비 등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도시락 종류에 따라 원가율은 다르지만 일반적인 도시락 업계의 원가율 평균은 40~42퍼센트 정도다.
다마고야가 동종 업계보다 높은 원가율을 고수하는 이유는 아버지가 다마고야를 창업하면서 세운 경영 철학과 관련이 있다. ‘고객에게 최상의 도시락을 제공한다.’ 이 철학을 실천하고자 수익이 나면 양질의 식자재에 투자한다. 아버지는 평소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원가율을 낮춰서 이익을 내더라도 절반은 세금으로 나간다. 어차피 나갈 돈이라면 고객과 직원에게 환원하는 게 낫다.”
도시락 판매량이 6만 개가 넘으면 식자재 납품업체에 발언권이 높아져 원가를 깎을 수 있다. 그러나 다마고야는 기존 식자재의 원가를 낮추기보다 더 양질의 식자재를 실제 가격보다 저렴하게 조달받아 도시락의 품질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
원가율이 높은데 어떻게 수익이 날까? 이 역시 자주 듣는 질문이다. 답은 간단하다. 재료비 이외의 비용을 줄이면 된다. 다마고야는 일회용 용기가 아니라 반복 사용이 가능한 재활용 용기를 쓰거나 반찬을 담는 속도를 타사보다 곱절 이상 높이는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해 왔다. 낭비를 없앰으로써 발생한 수익을 또다시 품질에 투자해 고객의 높은 재구매율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든 것이다.
직원은 뽑는 것이 아니라 키우는 것 보석이 될 원석을 고르는 법: 내가 다마고야에 들어가기 전 인사결정권은 전적으로 아버지 몫이었다. 아들인 내가 이런 말을 하긴 쑥스럽지만, 아버지는 사람 보는 눈이 놀라울 만큼 정확하다. 면접에서 상대 눈을 바라보며 한두 마디 대화를 나누면 사람 됨됨이가 훤히 보인다고 한다. 내가 인사권을 맡게 되었을 때도 아버지 도움을 많이 받았다.
어떤 사람이 우리 회사에 맞을지 단언하긴 힘들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다마고야가 원하는 인재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살면서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더라도 부모나 친척 혹은 주변의 누군가로부터 애정을 받았다는 것. ‘어린 시절 누군가의 애정을 받고 자란 사람만이 타인을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버지의 지론이다. 그런 사람은 타인에 대한 관용과 수용성을 지닌 까닭이다. 반대로 절대 뽑지 않는 타입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남 탓하는 사람이다. 면접에서 이전 회사를 그만둔 이유를 묻자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상사가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았습니다.”라며 변명을 늘어놓는 사람은 더 볼 것도 없다. 뭘 하든 핑계를 대며 부정적인 에너지로 똘똘 뭉친 사람은 주변에 악영향을 준다.
아버지는 내가 입사한 1997년부터 채용 권한도 넘겨주었다. 아버지 안목에는 못 미치지만 면접에서 내가 중요시한 포인트는 다음 세 가지였다. 정직함,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남 탓하지 않는 태도. 무엇보다 성장 과정에서 부모님과 형제 사이는 어땠는지, 애정을 받고 자랐는지에 중점을 두고 묻는다. 자연스럽게 웃는 모습도 중요한 포인트다. 아무래도 면접에서는 긴장하기 마련이라 웃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긴장감이 풀어지면서 자연스레 미소를 짓게 된다. 서비스업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러운 미소를 짓는 사람은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남긴다.
제2부 사업을 키운다는 것
달걀 장수가 1,000억 기업을 만들다 품질로 승부할 수 없다면 가격으로 승부하라: “도시락집 이름이 왜 다마고야(달걀 가게)인가요?” 사람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다. 다마고야를 창업한 아버지는 이바라키현 미토 출신이다. 할아버지는 미토에서 일가친척에게 조그만 땅을 빌려 집을 짓고 살았다. 앞마당에서 키운 닭이나 토끼를 팔아서 겨우 식구들 잎에 풀칠할 정도였다고 한다. 무일푼으로 시작한 장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규모 있는 양계장으로 성장했다. 사업은 탄탄대로를 달리는 듯싶었지만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만나고 만다. 직원에게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모조리 빼앗기고 부도가 난 것이다. 빈털터리가 된 일가는 야반도주하듯 도쿄로 향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버지만은 미토에 남겨져 친척 집에서 지내다가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도쿄로 올 수 있었다. 가족은 도쿄 오모리에 터를 잡고 근처에 사는 친척네 처마 밑에 좌판을 깔았다. 달걀이나 닭고기, 쌀 등을 팔아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고 아버지는 야간열차를 타고 미토로 가서 물건을 공수해 왔다. “다마고야상(달걀 장수)!” 당시 이웃들은 아버지를 이렇게 불렀다. 이것이 바로 다마고야라는 이름이 생긴 유래다.
처음에는 고기와 달걀만 취급했지만 사업이 번창하면서 생선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1969년 내가 태어났을 당시, 일가는 오타구의 간논도리라는 상점가에서 정육점과 생선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작은 아버지는 정육점, 아버지는 생선 가게 담당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운전하는 삼륜차 조수석에 타고 쓰키지 수산시장에 가곤 했다. 생선 장수는 새벽 3~4시에 일어나 어시장으로 출발하는 게 보통이다. 그래야 가장 신선한 생선을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워낙 아침잠이 많은 아버지는 아무리 일찍 일어나봤자 오전 8~9시였다. 그때 가봐야 가장 좋은 물건은 이미 다른 생선 장수에서 팔리고 난 뒤다. 하지만 장점도 있었다. 대부분의 물건들을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부지런한 생선 장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에는 반값 할인을 시작한다. 아버지는 그럭저럭 괜찮은 생선을 시세보다 싸게 구입해 손님에게도 싸게 파는 방식으로 가게를 키워 나갔다.
새로운 타깃층과 니즈를 발굴하다: 사업적인 감각이 남달랐던 아버지는 생선 가게가 잘되자 사업을 확장하기로 결심했다. 1973년에 돈가스 가게를 오픈한 것이다. 본래는 주당으로 소문난 할아버지가 집에서 마음껏 벗들과 술잔을 기울일 수 있도록 만든 조촐한 가게였으나 개점하고 입소문이 퍼지자 낮에는 손님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아카사카의 고급음식점에서 일하던 요리사를 스카우트하는 등 맛에 아낌없이 투자한 덕분이 아닐까 싶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 때 가게에 자주 오던 근처 공장에서 “도시락을 주문하고 싶다”는 의뢰가 들어왔다. 아버지는 흔쾌히 수락했고 5~10개의 도시락을 보자기에 싸서 자전거로 배달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다마고야 도시락의 시작이다.
개업 후 2년이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마루노우치나 니혼바시처럼 사무실 밀집 지역에 도시락을 팔면 어떨까?’ 이 생각은 동네 이웃만을 대상으로 장사하던 다마고야가 도쿄에서 가장 큰 도시락 배달 업체로 거듭나는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 요리를 배달하는 요식업은 우동집이나 중국집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배달 가능한 지역은 2킬로미터 반경이 고작이었다. 기업체가 빼곡이 들어선 도쿄 한복판에 도시락을 배달한다는 발상 자체가 당시엔 생소했다.
일본의 내로라하는 초고층 기업 본사들이 집결한 일본의 경제 1번지 마루노우치와 니혼바시에서 어떻게 도시락을 판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이는 아버지가 은행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어 오피스 타운에서 직장인들이 점심을 어떻게 먹는지 잘 알았던 덕분이다. 대기업이라면 직원 식당을 갖춘 경우가 많지만 중소기업은 대부분 밖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점심시간 12시 전후로 봇물 터지듯 회사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직장인 무리를 보며 아버지는 직감했다. 사무실 밀집 지역을 공략하면 공장과는 비교도 안 되게 많은 주문을 받을 수 있으리라.
‘블루칼라가 먹는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도시락을 화이트칼라에게도 확장하겠다는 아버지의 신념이 이러한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워낙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데다 은행 영업부에서 근무했던 아버지는 신나게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도시락을 홍보했다. 실제로 거래가 조금씩 성사되었고 1980년에 큰 거래를 성사시키면서 도시락 판매량은 수직상승했다. 대기업과의 독점 계약을 따낸 것이다.
당시 대기업 건물에는 직원 식당이 있었지만 불황이 이어지면서 식당 운영을 재검토하는 시점이었다. 아버지는 사측을 설득했다. “이렇게 비싼 긴자 노른자위 공간에 직원 식당이 있는 건 아깝습니다. 우리에게 도시락을 주문하고 식당 공간은 임대해서 수익을 얻는 게 회사 입장에서도 훨씬 이득입니다.” 결국 그 기업은 직원 식당을 닫고 도시락을 주문하기로 결정했다. 이 계약은 다마고야의 성장에 큰 디딤돌이 되었다. 대기업 한 곳의 하루 주문량이 600개가 넘는 데다 대기업과 계약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마고야의 신용도가 높아졌다. 영업도 한결 수월해졌음은 물론이다. 그리하여 1982년에는 일일 판매량이 2,000개를 돌파해 도시락 업체로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