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움직이는 손
로버트 그리필드 지음 | 아이템하우스
시장을 움직이는 손 - MARKET MOVER
로버트 그리필드 지음
아이템하우스 / 2020년 6월 / 364쪽 / 16,800원
나스닥과의 운명적인 만남 한 시대의 시장을 보면 그들이 누구인지, 무엇을 잘했는지, 어떤 혁신을 추구하고 사회에 구현하려고 했는지 등 그 시대의 문명에 대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시장은 하나의 문화가 어떻게 변화하며 진화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시장으로는 베니스의 리알토(14세기), 터키의 그랜드바자르(17세기),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증권 거래소(17세기), 뉴욕 증권 거래소(20세기) 등이 꼽힌다. 21세기가 밝았을 때 나스닥은 정보화시대를 이끄는 시장으로 이들 대열에 합류할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03년이 되자 그러한 열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나스닥에 입사하기 전 나는 금융업계에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기업인 선가드 데이터 시스템즈에 채용되어 만족스럽게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에는 선가드에 매각된 ASC의 공동대표이자 소프트웨어 사업자이기도 했는데, ASC의 주요 상품은 나스닥의 트레이딩 데스크들의 통합을 위해 설계된 거래 주문 관리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스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그들은 늑장을 부렸고 독점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 직원들은 동기 부여가 부족했다. 내가 보기에 그곳은 형편없는 관료주의의 전형적인 특징들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2003년 헤드헌팅 업체에서 나스닥에서의 일자리를 제안하는 전화가 처음 왔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하지만 다시 연락이 왔을 때 나는 면접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특별한 기회였고, 나스닥을 21세기의 본질적 의미를 실현하는 시장으로 변모시키는 일에 참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면접은 매우 순조로웠다. 나는 그들과 면접을 진행하면서 내가 원한다면 그 자리가 내 것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강력한 경쟁 상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는 메릴린치의 당시 국제 주식 거래 최고책임자인 밥 맥캔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그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내가 그 자리를 얼마나 원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두 번째 면접에서는 좀 더 과감한 선제적인 접근을 시도하기로 했다. 면접 당일 나는 화상 인터뷰에서 나스닥 이사진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선전포고를 했다. “제가 취임 후 처음 100일 동안 할 다섯 가지 과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① 적임자들을 영입한다. ② 관료주의적 체계를 줄인다. ③ 재정 규율을 실천한다. ④ 기술을 정비한다. ⑤ 2위 자리에 만족하지 않는다.’ 나는 각 단계의 과제를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를 설명하면서 이 5단계 계획에 대해 15분 동안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화상 화면에 비춰진 이사진들의 표정을 살펴보자 내가 그들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2주 후 그것은 사실로 밝혀졌다.
사람이 우선이다 ‘적임자를 영입하라’ 이는 나스닥 이사회와의 면접에서 내가 제시한 첫 번째 우선 과제였다. 사업에서 적임자의 존재는 모든 영역에서 지렛대 역할을 한다. 흔히 기업의 사장들이 ‘사람이 우선이다’ 혹은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라고 말할 때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말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우선이다’라는 원칙에는 다른 뜻이 있다. 어떤 기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적임의 인재들이 대단히 중요한 것처럼, 그 조직에 맞지 않거나 어떤 이유로 조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들은 떠나보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내 재임 기간 중 첫 번째 해고는 출근 첫날 오전 8시 이전에 실행되었다. 나는 출근 전에 이미 이 문제를 고민하면서 임원진을 평가했고 고위 간부들을 어떻게 교체하는 게 바람직할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후 한 시간 이내에 두 사람을 더 해고했다. 인사이동은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에 실행할 수밖에 없다.
이제 버스에 누구를 태울 것인가? 당시 아데나 프리드만은 많은 가능성을 지닌 젊고 유능한 임원이었는데, 그녀는 나스닥에서 10년 동안 일하고 있었고, 열정과 헌신, 능숙함의 기운을 풍겼다. 그래서 곧 아데나는 나의 측근 핵심 인물이 되었으며, 여러 건의 전략적 인수합병을 지휘했다. 아데나 외에도 나스닥의 변혁을 이끌어갈 또 다른 핵심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전략 부문의 새 부사장으로 온 크리스 콘캐논이다. 그는 기술이 주식 거래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 나스닥 글로벌 인덱스 그룹의 부사장 존 제이콥스나 법률 고문인 에드 나이트와 같은 인물들도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그들과 함께 나스닥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었다.
한편 나는 내부 승진과 외부 인사 영입의 비율을 80:20으로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조직이 변화하는 시기에는 누구와 함께 일할 것인지, 누구를 승진시킬 것인지, 누구를 내보낼 것인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위대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창의성과 자율성, 집중력, 훈련을 북돋우는 매우 생산적인 방식으로 팀 구성원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별 작업 ‘나스닥, 생존을 건 싸움’이라는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가 2003년 8월호 《비즈니스위크》지에 실렸다. 기사는 매우 직설적이었지만 거짓은 아니었다. 나스닥의 상황은 대단히 심각했다. 즉각 조치를 취해야 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최적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스닥의 신임 CEO로서 최적의 적합한 조치가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내게 달려 있었다.
나는 나스닥의 기존 지도부에 손익일계보고서를 만들어 줄 것을 요청했는데, 보고서에 따르면 나스닥은 하루에 25만 달러를 잃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특정 사업 부문 또는 프로젝트가 자원을 낭비하고 있는지는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의 비용체계가 불명확하다는 증거였고, 조직 내에서 적확한 부분에 비용이 명확하게 할당되지 않은 지출로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레버리지를 추구하는 리더에게 구멍을 찾는 일은 필수적이다. 돈이 어디로 흘러들어가고 있는지 확실히 알 때 비로소 시간과 관심을 어디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스닥의 당시 최고재무책임자(CFO)였던 데이비드 워렌이 경영진에게 보고서를 제출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에게 문제가 있는 부분으로 바로 넘어가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보고 자료의 중간 부분으로 넘어갔다. 비용을 할당해도 모호했던 부분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우리의 재정 상황은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보고 내용 중에는 내가 예상했던 정보도 있었고 새롭게 알게 된 정보도 있었다. 회의는 빨리 진행되었고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최종 결정을 내렸다. 경영진은 일이 너무 빨리 해결되어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명백했다. “우리는 알력 다툼으로 시간 낭비를 하지 않을 것이다. 세부 사항을 놓고 언쟁을 벌여 우리의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집중력을 저하시키는데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앞에는 커다란 도전이 놓여 있다. 우리는 결단력을 가지고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한편 재정 금고를 정상화시키는 데에는 직원 수를 줄이거나 수익성이 낮은 사업 분야를 폐지하는 것 이외에도 훨씬 더 많은 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어느 시점이 되면 수입을 증대하고 더 많은 고객을 끌어올 방법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리더는 기업의 다양한 재원을 재빨리 파악하고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의 주력 사업은 얼마나 건전한가?”
2003년 나스닥의 매출은 3가지 수입원에서 나왔다. 첫 번째는 데이터 및 인덱싱 사업이다. 이를테면, CNBC, 블룸버그 등의 경제 뉴스 채널의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주가 데이터도 이에 포함된다. 그리고 전체 시장에서 상장지수펀드(ETF)와 인덱스펀드의 인기가 날로 상승함에 따라 이 사업은 탄탄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나는 이 사업의 재무 상태가 건전하며 그렇게 많은 시간과 공력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재빨리 파악했다. 따라서 더 시급한 문제들에 집중해도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두 번째 수입원은 상장 사업이었다. 기업들은 나스닥에 상장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데, 연간 수수료뿐만 아니라 최초 기업 공개를 위해 지불하는 일회성 수수료도 있었다. 이는 가장 큰 수입원은 아니었지만 연간 수수료들은 고정적이고 예측 가능해서 투자자들은 그런 일관성을 아주 좋아했는데, 불행히도 닷컴 거품 붕괴가 일어나면서 상장 사업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나는 시간을 두고 지켜본다면 이 사업은 예전의 상태로 자연스럽게 회복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레버리지가 높은 활동을 해야만 하는 아주 중요한 전환기에 이 사업에 매달린다는 것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즉 상장 사업은 투입되는 공력에 비해 산출되는 수익의 비율이 높지 않았다.
세 번째 수입원이자 우리의 진정한 주력 사업은 전자 거래 사업이다. 나스닥은 자사의 시스템에서 주식 한 주가 거래될 때마다 전자 거래 수수료를 징수한다. 소득 차원에서 보면 이것이 가장 중요한 소득원이며 당시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업이 문제가 생겼다. 2003년 전자 거래 매출이 20% 하락한 것이다. 위태로운 상황이었지만 나는 어떤 약이 필요한지 알고 있었다. 나는 전자 거래 업체를 잘 알고 있었고, 전자 거래는 내가 최대의 레버리지를 구할 수 있는 분아였다.
승자를 인수하라 선가드의 CEO를 지낸 짐 만이 1999년 내게 선가드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한 또 다른 큰 회사를 인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그 회사를 인수하는 데 드는 비용 일부를 제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우리 회사에 맞게 그것을 개발해 보겠습니다.”라고 제안했다. 그는 내 발언에 관대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영리한 생각이군. 그런데 우리는 승자들을 사들이는 거라네.”
그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수많은 기업들이 실패하는 반면, 성공한 기업은 이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시장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 기업이다. 물론 매입하려면 더 많은 돈이 든다. 하지만 자사 제품을 개발하고 고객층을 구축하고 경쟁사들을 이기기 위해 들이는 모든 시간과 자원을 절약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입증된 사업에 승부를 걸어 실패의 위험성을 확연히 줄일 수 있다.
“승자를 인수하라.” 짐 만의 조언은 2003년에서 2004년 사이에 나스닥의 기술 상태를 평가했을 당시 내 마음속에서 되살아났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내부에서 개발할 것인가, 아니면 인수를 고민할 것인가? 매입하는 것이다. 아무거나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를 매입하는 것이다. 승자를 인수하는 것이다. 내가 봤을 때 전자 주식 거래 시장에서의 승자는 자명했다. 과거 아일랜드 ECN(Island ECN)이었던 아이넷(INET)이었다. 특히 기술적 관점에서 봤을 때 아이넷은 내가 탐내고 있었던 회사였다.
2005년 4월, 나스닥은 아이넷을 보유하고 있는 인스티넷을 인수했다. 내가 CEO로 재임하는 동안 체결된 45개의 인수 건들은 이 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선택에 따른 결정이었다. 반면 인스티넷을 인수한 것은 필요에 의한 결정이었다. 인스티넷은 우리가 인수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조직의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어쨌든 아이넷은 짧은 생애 동안 큰 발전을 이뤄냈다. 한때 기득권을 쥔 기업들에게 반대 입장이었던 아일랜드 ECN은 이제 기득권을 쥔 거래소들 중 하나인 우리 거래소에서 필수적인 존재가 되었고, 우리의 거래 플랫폼은 그들의 기술에 동화되고 있었다.
애플에서 질로까지 2003년 내가 나스닥 CEO로 취임했을 당시, 나스닥에 상장된 기업이 뉴욕 증권 거래소로 이동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반대로 뉴욕 증권 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이 나스닥으로 옮기는 경우는 없었다. 나는 그걸 바꿔보기로 결심했다. 브루스 아우스트와 나는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세우고 접근 대상 기업들의 명단을 뽑았는데, 가장 먼저 접근할 대상은 찰스 슈왑이었다.
이 기업은 샌프란시스코 소재의 혁신적인 자산관리 기업으로, 아직까지도 유명한 창업자, 척 슈왑이 경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로 날아가 브루스와 함께 척을 만나 나스닥 상장에 대해 논의했다. 보통 우리는 고객 맞춤 제안과 쟁점들을 기반으로 영업을 했다. 여기에는 각각의 고객들을 위해 맞춤 기획한 공동 광고 및 프로모션과 같은 ‘안겨주기’식 마케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실리콘밸리의 증권 시장’으로서 우리 브랜드를 지렛대로 활용했다.
슈왑은 수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그는 아직 뉴욕 증권 거래소를 버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두 군데에 다 상장하는 건 어떤가요?” 그는 우리에게 물었다. 이중 상장? 브루스와 나는 그것이 가능할까 하는 혼란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끼며 서로를 바라봤다. 이중 상장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논의가 계속 이어지자 내 생각도 바뀌기 시작했다. 결국 거래소를 바꾸게 하는 일은 경제적 승리에 못지않은 마케팅적 승리이다. 이중 상장은 거래소를 옮기는 즉각적인 헌신을 요구하지 않고도 마케팅적 승리를 달성할 수 있는 대안이었다. 우리는 그에게 “한번 고민해보고 곧 연락드리겠다.”고 말했다.
이중 상장은 혁신의 범주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진정한 발전이었고, 아무도 그것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 찰스 슈왑이 기꺼이 나스닥의 생태계에 한쪽 발을 들여놓는다면, 분명 다른 기업들도 그 뒤를 따를 것이었다. 그래서 나스닥은 이중 상장을 할 용의가 있는 기업들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는 적어도 5~6개 사가 동시에 이중 상장을 발표하기를 원했다. 이내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 중 하나인 휴렛 패커드에서 큰 힘을 실어 주었다. 칼리 피오리나의 의중에는 나스닥에 상장을 함으로써 나스닥의 백엔드 거래 시스템에 휴렛 패커드 기술을 판매하기에 더 좋은 위치를 점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매우 흥분했다.
결국 2004년 1월까지 6개 기업이 이중 상장을 하기로 결정했다. 참여 기업은 휴렛 패커드, 월그린, 케이던스 디자인 시스템즈, 찰스 슈왑, 컨트리와이드 파이낸셜, 아파치였다. 모두 시가 총액이 높은 기업들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기업들이 이에 동참할 것이다. 이것은 대단한 첫걸음이었고 뉴욕 증권 거래소에 대한 위협적인 경고가 되었다.
한편 2006년 나스닥은 시장에서 신규 상장의 3분의 2 가량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현장에서 경쟁자와의 끝없는 경쟁에서 우리는 점점 약간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나의 다섯 번째 우선 과제인 ‘2위 자리에 만족하지 않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경쟁 우위를 점유하려는 노력은 국내로 제한되지 않았다. 이후 바이두, 웨이보, JD닷컴 등이 나스닥에 상장되었고, 이제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존경받는 브랜드가 되었다.
성장을 위한 투쟁 나는 볼링을 통해 배운 한 가지 교훈이 있었다. 가장 중앙에 있는 핀을 목표물로 삼거나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정중앙에서 한 칸 오른쪽이나 왼쪽에 있는 핀을 겨냥하라는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내가 경영진들에게도 똑같은 지시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볼링장이 인수합병이라는 훨씬 더 큰 지분을 두고 다투는 장으로 대체된 것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