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혁신 찾기
안병민 지음 | 토마토 출판사
숨은 혁신 찾기
안병민 지음
토마토출판사 / 2020년 4월 / 328쪽 / 15,800원
Chapter 1 변화의 열쇠는 가까이 있다 - 혁신을 빚어내는 첫 번째 힘 : 지혜와 전략
청도 할매는 경영의 달인이었다 부산 여행을 다녀오던 길에 들른 청도였습니다. 청도 맛집을 검색해보니 ‘청도 할매김밥’이란 곳이 뜨더군요. 찾아간 곳은 청도 버스터미널 근처 허름한 어느 건물. 그런데 가게 문을 열었더니 손님들이 홀 안에 가득합니다. 긴 줄을 따라 앞으로 가보니 작은 방이 하나 있습니다. 그 유명한 ‘청도 할매’가 방 안에서 무척이나 절제된 동작으로 묵묵히 김밥을 말고 계셨습니다. 매콤한 무말랭이 김치를 따끈한 밥과 함께 말아 넣은, 그 식당의 유일한 메뉴 할매김밥. 이게 두 줄에 천 원입니다. 한참을 기다려 산 김밥을 한입 가득 베어 무니 그 맛이 명불허전입니다.
“메뉴 줄이세요”: 많은 기업들이 고객의 눈길을 끌고 발길을 잡겠다는 생각으로 제품의 종류를 늘립니다. 가격대만이 아니라 무이자 할부 등 판매 조건도 고객 입맛에 맞춰 쫙 펼쳐놓습니다. 이런저런 구색이 갖춰지니 매출이 올라갑니다. 그런데 매출이 올라가긴 하는데, 동시에 비용 또한 늘어납니다. 제품의 종류가 늘어나니 원자재의 종류와 양도, 그것을 쌓아놓을 공간도 늘어나고, 작업공정도 복잡해집니다. 당연히 직원들의 숙련도도 떨어지겠지요. 그러나 보니 어느새 ‘제품 생산’이 아니라 ‘생산 관리’가 더 큰일이 되어버립니다. 이 모든 게 오롯이 비용으로 쌓여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게 됩니다. 이른바 ‘복잡성의 위험’입니다.
장안의 화제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백종원 대표가 늘 입에 달고 사는 말도 이겁니다. “메뉴 줄이세요.” 메뉴가 많으면 다수의 손님이 들이닥쳤을 때 제대로 된 응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전문성 없이 이것저것 다 하려다 보니 결국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는 겁니다. 다양한 품목의 식자재를 구비해두어야 하니 재고 관리도 일입니다. ‘선택과 집중’이라고 알고 있는 표현의 방점은 사실 ‘선택’이 아니라 ‘포기’에 찍혀 있었던 겁니다. 다시 말해, ‘포기와 집중’입니다.
1913년 T모델을 생산한 포드는 1만 3,000명의 직원들이 26만 대의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다른 회사들이 6만 6,000명의 직원으로 29만 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데 그쳤다니 생산성 차이가 현격합니다. “미국 사람들의 모든 지갑 사정과 모든 목적에 부합하는 자동차를 만들겠다”며 다양한 브랜드의 자동차를 출시했던 GM은 토요타와 렉서스, 단 두 개 브랜드만 운영하는 토요타에 고전했습니다. 41개 모델로 고객의 다양한 선택권을 강조하던 델컴퓨터 역시 단 6개 모델만 시장에 내놓은 애플컴퓨터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미친 듯이 심플”을 강조했던 스티브 잡스. 그는 복잡성의 위험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겁니다.
완성은 줄이는 일로부터: 고객과의 소통에서도 단순함은 미덕이자 경쟁력입니다. 24가지 잼을 갖다 놓은 부스와 6가지 잼을 갖다 놓은 부스의 판매율이 각각 3퍼센트와 30퍼센트였다는 실험 결과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세상, 고객을 위한다면 고객의 선택지를 다양하게 제공하는 것이 고객에게는 또 다른 고통이라는 방증입니다.
청도 할매김밥. 메뉴는 단 하나! 재료는 김과 밥, 무말랭이 김치가 전부입니다. 그러니 만드는 공정이 단순하고 효율적입니다. 손님과의 소통도 심플합니다. 청도 할매는 단지 김밥의 고수만이 아니었습니다. 복잡성 관리에 정통한 경영의 달인이었습니다. “완성이란 더 하는 게 아니라 더 떼어낼 것이 없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청도 할매에게서 김밥을 사 먹으며 곱씹게 되는 경영의 지혜입니다.
업의 본질, 나는 무엇을 파는가 지금껏 시계는 우리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성 제품이었습니다. 그러니 고장 나지만 않는다면 시계가 두 개일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시계를 하나만 갖고 있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제 시계는 ‘기능성 아이템’이 아니라 ‘패션 아이템’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스와치라는 브랜드 때문입니다. 스와치는 시계를 ‘패션’으로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그러니 색깔별, 소재별, 디자인별로 새로운 수요가 생겨납니다. 우리의 비즈니스가 고객에게 주는 가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에 따라 시장은 이렇게 달라집니다.
‘왜 사는가’에 집중하라: 관건은 업에 대한 재해석입니다. 우리는 유심히 지켜봅니다. 고객이 ‘무엇’을 사는지를 말입니다. 그걸 찾아내서 우리도 그걸 제공해주면 매출이 올라갈 거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무엇을 사는가’ 이전에 ‘왜 사는가’가 중요합니다. ‘왜 사는가’를 생각한다면 고객에게 파는 것은 ‘옷’이 아니라 세련된 이미지와 멋진 스타일, 그리고 매혹적인 외모이지요. 요는 ‘우리의 관점’이 아니라 ‘고객의 관점’입니다!
이제 주변을 다시 한 번 둘러보세요. 모든 게 다시 보일 겁니다. 예컨대 현대백화점은 ‘상품’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팔고, 아모레퍼시픽은 ‘화장품’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팝니다. 크루즈 회사 노르웨이지안 에픽은 ‘이동수단’이 아니라 ‘판타지’를 팝니다. 명품 오토바이 브랜드 할리데이비슨 역시 ‘오토바이’를 파는 게 아니라 ‘일탈적 저항정신’을 팔아 연간 35만 대의 판매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전 세계에서 월 1억 9,000만 개가 팔려나가는 오리온 초코파이가 파는 것은 ‘맛’이 아니라 ‘정’입니다. 식품이라는 이성적 측면에 포커스를 들이댄 게 아니라 정이라는 감성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고객과 소통했습니다.
마케팅은 ‘제품’이 아닌 ‘인식’의 싸움: 기업들도 이제 기존의 업에 대한 정의를 바꿔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스타벅스는 그런 측면에서 손꼽을 만한 모범 사례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모바일 결제 앱 중 하나가 바로 스타벅스 앱입니다. 스타벅스에서는 현금이나 카드를 내고 커피를 사는 고객이 많지 않습니다. 많은 고객들이 스타벅스 앱에 미리 충전해둔 돈으로 결제합니다. 스타벅스에서 제공하는 혜택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충전금액의 총액이 엄청납니다. 2018년 말 기준 한국 스타벅스가 보유한 충전금액만 940억 원이었습니다. 이자 수익만 해도 엄청날 수밖에 없습니다. 어찌 보면 스타벅스는 또 하나의 은행입니다. 이제는 금융서비스 기업이라 해도 그리 어색하지 않을 스타벅스. 업에 대한 부단한 성찰과 혁신 덕분입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사는 이유는 단지 ‘필요해서’가 아니라 ‘욕망’ 때문입니다. 이제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게 뭔지 살펴보는 것 이상으로, 고객이 ‘원하는’ 게 뭔지 살펴볼 일입니다. 마케팅은 ‘제품’이 아니라 ‘인식’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혁명의 시대, 생존 역량으로 무장하라 4차 산업혁명은 세계경제포럼 의장 클라우스 슈밥이 주창한 개념입니다. 증기기관의 1차 산업혁명, 전기의 2차 산업혁명, 컴퓨터와 인터넷의 3차 산업혁명에 이어 이제 인류의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차원을 달리하는 디지털 기술에 의한 혁명을 맞고 있다는 겁니다. IT와 경영 분야는 물론이거니와 정치권까지 나설 정도로 시대의 화두가 되어버린 4차 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고도 불리는 이런 변화가 진짜 혁명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혁명은 ‘불연속성’을 빚어냅니다. 기존 질서의 붕괴로 인한 패러다임 전환이 혁명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작금의 변화는 과연 혁명일까요? 여기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있습니다. 먼저 2010년을 기점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글로벌 기업들의 추락이 선명합니다. GM, 코닥, 모토롤라, 파나소닉, 필립스, 소니, 노키아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초일류 기업들이 몰락하거나 쇠락했습니다. 20세기 이후 세상의 100년을 지배한 굴지의 글로벌 기업들입니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단숨에 글로벌 리더로 급성장한 기업들도 있습니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테슬라, 넷플릭스 등입니다. 예외 없이 오늘을 선도하는 기업들입니다. 2010년을 기점으로 글로벌 경제의 리더들이 완전히 달라져버린 겁니다. 그러면 답은 뻔합니다. 바야흐로 혁명입니다.
불패의 공식이 덫이 되다: 혁명의 이면에는 ‘성공의 덫’이 있습니다. 지금껏 성공을 보장해주던 불패의 공식이 오히려 덫이 되어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겁니다. 우리의 ‘핵심 역량’을 ‘핵심 경직성’으로 만들어버리는 ‘역량파괴적 환경 변화’ 때문에 우리의 차별적 강점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그러니 이런 혁명적 변화의 시기에 ‘개선’의 효용은 제로입니다. 아니, 마이너스입니다. 디지털카메라를 제일 먼저 개발하고도 필름의 감도 개선에 투자했던 코닥의 몰락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개선이 아니라 혁신이 필요한 겁니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기술은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입니다. 관건은 ‘데이터’입니다. 다시 말해, 편집이 불가능했던 오프라인의 우리 삶이 온라인 속의 데이터로 바뀌는 겁니다. 그렇게 바뀐 데이터를 잘라내고 붙이고 편집하여 다시 오프라인 속 삶을 재구성하는 것, 이것이 4차 산업혁명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그리고 가져다줄 변화의 핵심입니다. ‘초연결’, ‘초지능’이라는 키워드가 그렇게 도출되고, 이는 곧 ‘초경쟁’으로 이어집니다. 이제 기업 경영의 입장에서도 이처럼 180도 달라진 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역량과 전략이 필요한 배경입니다.
달라진 세상, 달라진 경영: 4차 산업혁명을 맞아 기업에 필요한 새로운 역량, 그 첫 번째는 ‘경쟁의 범위에 대한 새로운 시각’입니다. 이제는 특정 상품이 아니라 상품간 총체적인 관계가 가치를 창출합니다. 아마존과 월마트의 사례가 그 전형을 보여줍니다. 월마트는 직원 20만 명을 배달 요원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어차피 출퇴근하는 길, 직원들의 동선을 파악하고 고객이 주문한 제품을 배달해주는 겁니다. 효율의 제고이자 배달 업무의 개선입니다.
하지만 아마존의 전략은 판을 달리합니다. 고객이 ‘내일’ 주문할 물건을 ‘오늘’ 배달해주겠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고객의 주문 데이터를 분석해 구매 주기를 파악해 고객이 주문도 하기 전에 배송해주겠다는 게 아마존의 전략입니다. 고객의 시간을 분석함으로써 고객의 일상생활 전체에 대한 시간 접근권을 확보하면 고객이 어떤 상품을, 어떤 상황에서,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알게 되어 고객 니즈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우리 비전은 세상사람 누구든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언제 어디에서나 찾고 살 수 있는 장소를 온라인상에 만들어 지구상에서 가장 고객중심적인 회사가 되는 것이다.”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의 말입니다.
두 번째 역량은 ‘집ㆍ분권화’입니다. ‘분산원장 기술’로도 불리는 블록체인은 분산적 자율 시스템의 주춧돌입니다. 매개 기업이나 개관이 없어도, 중앙집권적 공권력의 보호가 없어도, 개인 간, 시공간의 경계가 없는 자율거래를 가능케 해주는 게 블록체인입니다. 본부와 현장은 다이렉트로 연결됩니다. 조직 내 계층은 자연스레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수평적 조직문화는 필수입니다.
하지만 오해는 금물입니다. 분권화만 화두가 아닙니다. 분권화를 통한 새로운 플랫폼 혹은 비플랫폼 기반의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는 반면, 강력한 집권적 본부 역시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체 시장을 읽고 다양한 사업 분야를 총괄, 조율하는 역량은 이처럼 복잡한 비즈니스 환경에서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현장에는 자율권을 최대한 부여하면서 본부에서는 강력한 분석 총괄 기능이 필요합니다. 이른바 ‘기업집단 2.0’ 모델입니다.
세 번째 역량은 ‘투과성 조직’입니다. 이제 조직 내부의 역량만으로는 시장을 주도할 수가 없습니다. 조직 내외부의 역량을 총동원해야 합니다. ‘벽 없는 조직’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가치를 창출하는 자원이나 역량 보유고로서의 조직 역량은 쇠퇴하고 있습니다. 내외부를 막론하고 유사시 필요한 역량을 재빠르게 결집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형식적인 조직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유연성과 개방성이 경쟁력입니다. 필요할 때마다 ‘헤쳐 모여’가 가능한 조직이 승리합니다. 외부 역량을 활용하기 위한 비즈니스 생태계의 혁신이 필요합니다. ‘열린 혁신’의 씨앗이 거기서 만들어집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혁명의 주체가 될 것인지 혹은 방관자, 아니 낙오자가 될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상황에 대한 인식과 의지의 문제입니다. 해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나락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혁명’이기 때문입니다.
Chapter 2 상식에 과감한 질문을 던지다 - 혁신을 빚어내는 두 번째 힘 : 창의와 통찰
파괴적 혁신 시대, 언제까지 ‘개선’만 하고 있을 것인가 연일 쏟아져 나오는 최고급 사양의 스마트폰들에 고객들의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지금껏 알고 있던 모든 IT 기술의 총화입니다. 고객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겠다는 제조업체들의 불타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하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마냥 반갑기만 한 건 아닙니다. 업그레이드된 스팩은 비싼 가격을 동반해 100만 원을 훌쩍 넘는 가격의 스마트폰이 연이어 출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능과 스펙의 전쟁터 한구석에 슬며시 틈입한 누군가가 있습니다. 애플과 삼성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IT 거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동안 힘을 길러온 중국 기업 화웨이와 ZTE, 샤오미입니다. 화웨이는 중국 내 메이저 네트워크 및 통신장비 업체로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입니다. 통신장비 시장에서는 무차별적인 저가 공세로 경쟁사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붙였습니다. ZTE 또한 만만찮은 회사입니다. ZTE 그룹은 1985년 설립된 중국 최대의 통신설비 회사입니다. 이들은 거대한 내수시장을 발판으로 인내하면서 기다려왔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한국 시장에서 꺼내 든 무기가 바로 저가 보급형 스마트폰입니다. 이 스마트폰의 국내 판매 가격은 20만~40만 원대로 지금 각광받고 있는 스마트폰들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가격입니다. 물론 사양은 삼성과 애플에 비하면 한참 떨어집니다. 그렇다고 불을 보듯 뻔한 싱거운 싸움이 될 거라 치부하기엔 뭔가 꺼림칙합니다. 이른바 ‘파괴적 혁신’의 냄새가 짙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파괴적 혁신: 혁신에는 ‘지속적 혁신’과 ‘파괴적 혁신’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버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의 구분법입니다. 그는 ‘파괴적 혁신’의 중요성에 주목하며, ‘파괴적 혁신’의 프로세스를 밝혀냈습니다. ‘지속적 혁신’은 기술적으로 성능을 향상시키는 혁신으로 한층 높은 성능을 원하는 시장, 즉 ‘하이엔드(고급품)’ 시장을 겨냥합니다. 반면 ‘파괴적 혁신’은 성능은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한, 파괴적 기술에 의한 혁신을 가리킵니다. 주류 시장의 하위 시장에 자리잡은 뒤 진화하거나, 주류 시장과는 다른 가치 기준을 지닌 새로운 시장에 뿌리를 내리는 게 ‘파괴적 혁신’의 특징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터넷 전화입니다. 인터넷 전화가 처음 시장에 등장했을 때는 음질이 무척이나 나빴습니다. 인터넷망을 활용하기에 통화료가 무료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대화 도중 뚝뚝 끊어지는 음성은 사용자들을 짜증나게 했습니다. 주류 시장에서 자리잡지 못했던 인터넷 전화는 점차 기술이 발전하면서 단점이 조금씩 보완되고 개선되었습니다. 그 결과 인터넷 전화는 기존 유선전화 시장을 야금야금 잠식했고, 이제 대세는 인터넷 전화입니다.
처음 파괴적 기술이 시장에 선을 보이면 주류 시장의 주류 기업들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어차피 성능이 떨어지기도 하거니와 가격이 싼 ‘로엔드(저가품)’ 시장은 이익이 적어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파괴적 기술이 나타나서 고객을 끌어가더라도 처음엔 미미한 수준입니다. 그러나 기존 기업들이 상위 시장을 찾아 끊임없이 ‘도망가는’ 사이 파괴적 기술을 앞세운 신규 기업들이 그 뒤를 쫓으며 서서히 시장을 장악해나갑니다. ‘역량 파괴적 환경 변화’를 감시하지 못하고, ‘성공의 덫’에 걸려 헤어 나오지 못한 수많은 초우량 기업들이 그렇게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