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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혁신의 설계자들

김환표 지음 | 북카라반
부와 혁신의 설계자들



김환표 지음

북카라반 / 2018년 8월 / 245쪽 / 14,000원





도전을 하는 설계자들



레이쥔 “샤오미는 애플ㆍ구글ㆍ아마존을 합한 회사다”



‘대륙의 실력’의 대표선수로 떠오른 샤오미: ‘대륙의 실수’라는 말이 있다. 값은 싸지만 품질은 조악한 제품을 만드는 중국 기업이 ‘실수’로 쓸 만한 좋은 제품을 생산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중국산 제품에 대한 조롱 섞인 농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륙의 실수가 다양한 제품군에서 잇따라 나타나면서 이제 대륙의 실수는 ‘대륙의 실력’이라는 의미로 재해석되고 있는데, 대륙의 실력을 이끌고 있는 주인공은 스마트폰 제조업체로 널리 알려진 샤오미(Xiaomi)다. 애플을 모방한 스마트폰으로 애초 ‘짝퉁 애플’, ‘카피 캣’ 등으로 불렸던 샤오미 폰은 2013년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을 꺾었고 2014년에는 삼성을 제쳤으며, 이젠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샤오미는 스마트폰의 성공 이후 태블릿PC인 ‘미 패드’, 스마트밴드인 ‘미 밴드’, 멀티탭인 ‘미 스마트 파워스트립’, 스마트 체중계 ‘미 스케일’, UHD TV ‘미 TV’, 공기청정기 ‘미 에어’, ‘스마트 에어컨’ 등을 선보이며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한편 샤오미의 가장 큰 무기는 가격 대비 성능이 놓은 가성비며, ‘샤오미 마니아’임을 커밍아웃하는 사람들도 가파른 증가 추세다. 참고로 샤오미제이션(Xiaomization, 샤오미化)은 ‘샤오미처럼 만들고 샤오미처럼 팔라는 의미’로, 제품의 영역 구분 없이 소비자의 일상적 삶과 관련이 있는 모든 제품을 생산하는 샤오미의 영역 확장 전략을 이르는 말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프로그래머가 되다: 샤오미 CEO 레이쥔은 1969년 태어났고, 1987년 우한 대학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프로그램 고수로 불렸던 그는 2년 만에 모든 커리큘럼을 마친 후, 남은 대학 생활을 프로그램 짜는 데 바쳤다. 그리고 대학 3학년이던 1989년 말 컴퓨터 바이러스가 중국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자 친구와 함께 ‘백신 90’이라는 프로그램을 공동 개발했으며, 이를 계기로 우한 전자상가에서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 후 그는 세상의 모든 컴퓨터에 적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전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대학 4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중문 워드프로세서 소프트웨어 회사인 싼써(三色)를 창업했다. 그는 허름한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며 첫 제품으로 중국어를 구현하는 PC카드를 만들었지만, 대형 업체들이 그가 개발한 제품을 모방해 만든 뒤 시장에 저가로 내다 판 탓에 반년 만에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 후 대학 졸업 후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베이징의 중관춘으로 이주해 1992년 6번째 멤버로 킹소프트(King Soft)에 입사했다. 바로 그해 마이크로소프트의 중국 공습이 시작되자 그는 킹소프트를 MS의 대항마로 키우기 위해 워드프로세서와 오피스 프로그램 등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개발에 힘을 쏟았지만, 시장을 장악한 MS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한계를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그 후 1998년 킹소프트의 CEO가 된 그는 갖은 우여곡절 끝에 2007년 킹소프트를 홍콩 증권거래소에 상장하는 데 성공했지만 곧 은퇴를 선언했다. 킹소프트를 이끌며 중국에선 IT업계의 대부로 불렸지만 자신이 16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상장한 킹소프트의 몸값이 2005년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바이두나 홍콩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알리바바 등에 훨씬 못 미친다는 사실 앞에서 무력감과 절망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태풍의 길목에 서면 돼지도 날 수 있다”: 레이쥔은 실패의 원인을 ‘시대와의 불화’에서 찾았다. 이런 이야기다. 그간 그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시장에서 승부를 보려고 한 우물만 팠는데, 이런 전략은 그를 중국을 대표하는 프로그래머로 만들어주었지만, 시대적 대세로 떠오른 인터넷을 간과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런 성찰을 바탕으로 그는 사업의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대의 흐름’을 읽는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그는 ‘시대의 흐름’을 ‘태풍’에 비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태풍의 길목에 서면 돼지도 날 수 있다.” 한편 그가 주목한 태풍은 크게 3가지였는데, 바로 전자상거래, 모바일 인터넷, 커뮤니티가 그것이었다. 이 가운데서 그가 가장 주목한 것은 모바일 인터넷이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게 바로 샤오미였다.

샤오미는 중국어로 ‘좁쌀(小米)’을 뜻한다. 크고 거창한 것을 버리고 작은 것, 디테일한 것에서부터 시작해 세상을 바꾸는 기업이 되겠다는 의미를 담은 사명이다. 샤오미의 로고 미(MI)에는 2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모바일 인터넷으로, 이는 샤오미가 모바일 인터넷 회사가 될 것이며 스마트폰은 사업 중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미션 임파서블로, 샤오미에게 불가능한 임무는 없다는 뜻이다. 2010년 4월 6일 ‘I have a dream’이라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명연설을 모방한 보도자료를 시작으로 샤오미를 선보인 레이쥔은 2011년 8월 16일 샤오미 폰을 처음으로 내놓았는데, 출시 30시간 만에 예약이 매진되고, 일주일 만에 중국 시장에서 중국산 브랜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제2의 스티브 잡스’가 되길 원치 않는다: 레이쥔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18세였을 때 저도 스티브 잡스의 팬이었지만, 스스로 제2의 스티브 잡스가 되길 바란 적은 없습니다. 샤오미도 결코 애플이 될 수 없고요. 잡스는 마치 신처럼 우리가 우러러보는 우상입니다. 그렇게 심플하고도 완벽한 디자인은 쉽게 따라잡을 수 없죠. 그와의 사이에 엄청난 격차가 있다는 걸 잘 알지만 전 절망하지 않습니다.”

겸손의 의미인가?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이는 샤오미가 애플과 다른 회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실제 레이쥔은 잡스에게서 적잖은 영감을 얻었지만 사업 방식은 잡스와 크게 달랐다. 이와 관련해 성현석은 “샤오미가 애플을 흉내 낸다고 흔히 말한다. 하지만 그건 겉만 본 평가다. 샤오미 사업 모델은 구글에 가깝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애플은 제품을 팔아서 이익을 낸다. 마니아가 열광하는 제품을 만들고, 대신 높은 이윤을 챙긴다. 하지만 IT 기업들은 공짜를 뿌려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방식을 종종 쓴다. 잡스는 이런 방식을 경멸했다.”

그뿐인가? 레이쥔은 전자상거래 시장의 패자로 군림하는 아마존의 사업 방식까지 차용해 사용했다. 레이쥔 자신도 스스로 샤오미의 사업 모델은 애플보다 아마존과 닮았다고 말하는데, 이는 아마존처럼 전자상거래 방식으로 샤오미를 만들었다는 뜻에서 한 말이다. 아마 잡스와 레이쥔의 가장 큰 차이점은 소비자와의 관계 설정일 것이다. 예컨대 잡스는 고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소비자와의 소통을 경원시했지만, 레이쥔은 잡스와 달리 소비자와의 피드백을 회사 성장의 핵심으로 간주했다.

‘오직 팬을 위해’: 오늘날의 샤오미를 일군 일등공신은 샤오미의 팬덤인 ‘미펀(米粉)’이다. 미펀은 샤오미의 열렬한 추종자들을 일컫는 말인데, 2015년 1월 현재 미펀은 1,000만 명에 달한다. 이와 관련해 후이구이는 “샤오미의 팬덤 경제는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사용자 왜곡 자기장’을 만들어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미펀은 남다른 정신력으로 샤오미라는 세계를 구축했다. 그래서 제품, 기술, 마케팅, 운영 등 샤오미 내부에서 이뤄지는 연구 개발에서 미펀은 최고의 원동력으로 간주된다. 샤오미는 사용자 왜곡장이라는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우고 광대한 사용자를 피라미드의 기반으로 삼았다.”

참고로 왜곡장이란 미국 드라마 〈스타트렉〉의 ‘머내저리’ 편에 나오는 말로, 외계인이 고차원적인 정신력을 이용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힘을 가리키는 말인데, 애플의 한 직원이 ‘현실 왜곡장’이라는 표현으로 잡스를 묘사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미펀이 남다른 정신력을 발휘하며 왜곡장을 발휘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건 샤오미가 미펀에게 제품이 아니라 이른바 ‘참여감’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참여감이란 소비자에게 제품과 회사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제공함으로써, 고객과 회사가 친구가 되어 사용자와 함께 놀면서 회사가 성장한다는 개념이다. 참여감의 핵심은 고객을 ‘신’이 아닌 ‘친구’로 보는 것으로, 샤오미가 기업 슬로건을 ‘오직 팬을 위해’로 지은 이유이기도 하다.

참고로 샤오미가 미펀에게 제공하는 참여감은 이런 것들이다. 샤오미는 미펀과의 협업을 통해 매주 샤오미 커뮤니티에서 샤오미의 운영체제인 미유아이(MIUI)를 업데이트하고 있으며, 제품 연구 개발과 브랜드 홍보 등도 SNS를 활용해 미펀과 함께 진행한다. 이렇게 모든 것을 미펀과의 협업을 통해 진행하기 때문에, 샤오미는 새로운 운영체제를 출시할 때마다 개발했다는 표현을 쓰지 않고 사용자들과 함께 ‘발전시켰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샤오미의 성공은 마케팅의 승리라고 할 수 있겠다.

샤오미는 왜 ‘만물상’이 되려 하는가?: 레이쥔은 2015년 독일에서 열린 ‘세빗(CeBIT)’에 참석해 샤오미의 스마트홈 솔루션 ‘미홈’을 선보이면서 “샤오미의 스마트홈 전략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모든 기기들을 연결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모든 가전의 스마트화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레이쥔이 꿈꾸는 야망은 샤오미의 스마트 기기들로 이루어진 이른바 ‘샤오미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한편 레이쥔은 샤오미는 ‘스마트폰 제조 회사’가 아니라 ‘애플ㆍ구글ㆍ아마존’을 합한 트라이애슬론 회사라고 말한다. 애플ㆍ구글ㆍ아마존의 장점만 모아 ‘소프트웨어ㆍ하드웨어ㆍ인터넷’이 수직으로 통합된 회사가 바로 샤오미라는 것이다. 이것이 레이쥔이 샤오미 폰과 연동되는 다양한 하드웨어를 저가에 내놓으면서 샤오미를 만물상으로 키우는 이유다. 레이쥔은 샤오미 생태계 구현을 위해 샤오미 폰 생산보다 샤오미의 운영체제인 MIUI를 먼저 만들었다고 하는데, 샤오미가 거대한 IT업계가 각축을 벌이는 ‘사물인터넷ㆍ스마트홈’ 시장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보도록 하자.



질문을 하는 설계자들



리드 호프먼 “인터넷 시대엔 모든 직장인이 각자 하나의 1인 기업이다”



CEO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SNS, 링크드인(Linkedin):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SNS는 무엇일까? 2015년 경제 전문지 『포천』이 조사 발표한 자료를 보면, 링크드인으로 비중은 22퍼센트였다. 트위터가 10퍼센트를 기록해 2위를 차지했으며, 세계 최대의 SNS인 페이스북을 사용한다는 CEO는 한 명도 없었다. 링크드인은 ‘기업 간(B2B)SNS’라고 불리는 비즈니스 SNS인데, 링크드인은 홈페이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링크드인으로 당신의 비즈니스를 도와줄 검증된 전문가를 찾고 성공을 거두십시오.”

링크드인은 2002년 이른바 ‘페이팔 마피아’ 가운데 한 명인 리드 호프먼이 창업했다. 페이팔 마피아는 페이팔을 창업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실리콘밸리 내에서 이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링크드인은 초기에 전문가들을 위한 SNS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비즈니스 인맥 형성과 정보 교류, 구인ㆍ구직 목적을 포함한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링크드인의 네트워크는 3단계로 구분된다.

첫 번째 단계는 1촌 인맥으로, 실제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하며, 초청을 수락한 사람들도 자동적으로 ‘1촌 인맥’이 된다. 2촌 인맥은 1촌을 통해 한 다리 건너 연결되는 사람들이고, 3촌 인맥은 2촌을 통해 연결된 네트워크다. 자신이 아는 사람을 여섯 단계만 거치면 전 세계 모든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는 ‘케빈 베이컨의 법칙’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링크드인의 네트워크다. 링크드인은 미국에선 최고의 비즈니스 도구로 인정받는다. 예컨대 『포천』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의 임원이 모두 링크드인 회원이며, 『포천』선정 100대 기업 중 73곳이 링크드인을 활용해 인력 채용을 하고 있으며, 2015년 12월 기준으로 가입 회원은 4억 명에 가깝다. 한편 링크드인은 채용 솔루션, 마케팅 솔루션(광고), 회비 등에서 매출을 올리는데, 채용 솔루션 부분의 영향력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예컨대 2016년 1분기의 총매출 중, 채용 솔루션 부분은 회사 매출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빌 게이츠처럼 세상을 바꾸겠다: 1967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난 호프먼은 학창 시절 공부엔 큰 재능을 보이지 못했지만 게임을 아주 잘했는데, 12세 때 그는 자신이 즐겨 하던 롤플레잉게임 〈룬퀘스트〉에 버그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개선점을 이야기하기 위해 제작사 케이오지움을 무작정 찾아갔고, 당시 호프먼은 버그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게임 개발자에게서 약 160달러를 받았으며, 케이오지움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한동안 그곳에서 게임 개발에 참여했다.

그 뒤 그는 스탠퍼드 대학에 입학해 인지과학을 공부했고, 그 뒤에는 마셜 장학금을 받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해 철학을 공부했다. 대학원 진학은 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지만, 대학원에 진학한 지 1년 만에 그는 교수가 되는 꿈을 포기했다. 대학원 시절 철학서를 썼는데, 이 책을 몇 명밖에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일을 계기로 빌 게이츠처럼 세상을 바꿀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를 세워 영향력 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런 생각을 품고 대학 밖으로 나온 그는 개인정보 관리가 가능한 휴대기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무작정 벤처 캐피털을 찾았다. 하지만 혹평과 함께 더 배우고 오라는 조언을 들어야 했다.

이에 호프먼은 최첨단 기술을 배우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친구의 도움으로 1994년 애플에 취직했다. 하지만 2년 만에 사직서를 내고 일본의 컴퓨터 회사 후지쓰에서 1년간 근무했다. 그리고 1997년 인터넷의 폭발적인 성공을 보면서 호프먼은 드디어 때가 익었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해에 호프먼은 소셜 데이팅 서비스 ‘소셜넷닷컴(Socialnet.com)’을 창업했는데, 사회와 인간에 대한 그의 관심사를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호프먼은 소셜넷닷컴을 이성 간의 데이트, 프로페셔널 네트워킹, 룸메이트 찾기 등 3가지 관계망으로 구성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자신이 가장 큰 애정을 보였던 프로페셔널 네트워킹은 시들해지고, 이성 간의 데이트 관계망만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소셜넷닷컴은 실패한 서비스는 아니었다. 하지만 애초 호프먼이 구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호프먼과 소셜넷닷컴 이사진 사이에서는 갈등이 발생했고, 결국 호프먼은 1999년 소셜넷닷컴을 박차고 나왔다. 이후 호프먼은 스탠퍼드 대학에서 함께 공부했던 피터 틸에게 함께 회사를 차리자는 제안을 했다가 틸에게서 오히려 페이팔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고 페이팔에 합류했다.

페이팔에서 금융 기관과의 관계, 규제 관련 분쟁, 미디어와의 관계 조율 등 대외 관계 업무를 총괄했는데, 2002년 페이팔이 온라인 경매 사이트 이베이에 15억 달러에 팔리면서 호프먼은 1,000만 달러를 손에 쥐었고 1년간 쉬기로 마음먹고 호주로 향했다. 하지만 머리를 식히기 위해 떠난 호주행은 머릿속에 떠오른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2주일 만에 끝이 났으니,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게 바로 링크드인이었다. 2002년 12월 링크드인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호프먼은 6개월간의 개발 끝에 2003년 5월 5일 링크드인 웹사이트를 오픈했다.

게임 이론에 근거해 구축한 링크드인: “모든 사람들이 온라인 직업 프로필을 갖게 된다면? 회사가 지면이나 웹사이트 공고를 보고 지원한 사람들을 선별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자기들에게 필요한 정확한 프로필을 가진 사람에게 직접 접근할 수 있다면?” 이는 호프먼이 링크드인을 창업할 때 가졌던 생각이라는데, 호프먼은 왜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건 인터넷이 촉발한 속도 혁명에 따라 ‘개인 브랜드’ 시대가 개막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링크드인의 정체성을 전문가 네트워크로 삼은 것도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 경력을 가진 사람들을 묶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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