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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해줘서 고마워요

고마쓰 나루미 지음 | 책이있는풍경



일해줘서 고마워요

고마쓰 나루미 지음

책이있는풍경 / 2017년 11월 / 211쪽 / 14,500원





일본에서 가장 소중한 회사라고 불리다



뜻밖의 주목과 변하지 않은 일상

2008년, 한 권의 책이 출간됐다. 『일본에서 가장 소중한 회사』라는 제목의 그 책은 경영학자이자 대학교수인 사카모토 고지가 전국의 6천 개가 넘는 중소기업을 방문한 끝에 그 존재를 알리고 싶은 회사 다섯 곳을 소개한다. 사카모토 고지는 우연히 일본이화학공업을 방문한 것이 책을 집필한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는데, 이 책은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반세기에 걸쳐서 지적장애인을 고용해왔으며 직원의 70퍼센트 정도가 장애인으로 이루어진 일본이화학공업. 금전적 이익만을 좇지 않는 이 오래된 분필 제조회사의 철학에 세상의 이목이 집중됐다.

같은 해 11월, TV도쿄에서 방영하는 경제방송인 〈일본경제 스페셜 캄브리아 궁전: 무라카미 류의 경제 토크 라이브〉에 일본이화학공업의 오야마 야스히로 회장이 출연했다. 오랜 기간 지적장애인을 고용해온 노력과 함께 “장애인에게서 일하는 행복을 배웠다.”는 오야마 회장의 말이 전파를 타고 이윤 지상주의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기업의 가치가 전해지며 큰 화제가 되었다. 일본이화학공업의 현재 경영자는 4대 사장인 오야마 다카히사다. 야스히로의 장남인 다카히사는 2008년에 아버지로부터 그 자리를 이어받았는데, 사장이 된 후 다카히사는 급격한 성장을 바라는 대신, 분필 업계의 현실에 발맞추며 장애인 고용과 분필의 품질 개량, 점유율 확대, 그리고 자사의 주력상품 개발에 매진했다.

나는 그에게 “일본이화학공업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그리고 가루가 날리지 않는 분필은 어떻게 개발됐고 또 어떻게 지적장애인들이 그 제조를 담당할 수 있게 되었나요?”라고 물었다. 그리고 미디어에 의한 눈부신 찬사 뒤에 숨어 있는 고난과 전망을 전부 듣고 싶다고 부탁했다. 다카히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작가님도 장애인 고용이라고 하면 ‘사회공헌에 힘쓰시는군요’, ‘훌륭한 사업을 하고 계십니다’라는 칭찬의 말이 먼저 떠오르시나보군요. 아버지가 일구어온 회사를 이어받은 나에게는 사회정의라든지 인생의 사명과 같은 거창한 목적의식은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안전하고 정교하게 분필을 생산하고, 진심을 담아 판매하는 것뿐입니다. 그것을 매일 쌓아 올린 것뿐이죠.”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장애가 있지만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을 보면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답니다. 그건 정말이에요.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힘이 되고 싶다고 순수하게 생각합니다. 또한 도움은 주더라도 우열은 없다고 생각하죠. 그들의 이러한 생각을 얻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장애인들을 받아들이는 환경을 만들어 그들을 고용하면 됩니다.”

분필 제조라인에서 일하는 지적장애인들

가와사키 공장 1층에 있는 분필 제조라인을 안내받은 나는 각자 맡은 공정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일본이화학공업의 역사를 느꼈다. 사장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분필 제조라인에서 일하는 직원은 14명에서 15명 정도 돼요. 전원이 장애인입니다. 매우 바쁘거나 결근자가 있는 경우에는 비장애인 직원이 라인에 투입되기도 하지만 보통은 지적장애인 직원에게만 이 일을 맡깁니다.” 다카히사는 분필 제조공정을 설명해주고 말을 이었다. “가와사키 공장 근처에는 특별지원학교가 여섯 곳 정도 있는데 그곳에서 해마다 학생 몇 명이 취업연수를 나옵니다. 그리고 분필 만드는 것에 흥미가 있고, 또 이 일이 자신과 맞는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있으면 가족들과 함께 취업 면접을 봅니다. 신입사원에게 일을 가르쳐주는 순서도 일반 기업과 많이 다를 겁니다. 우리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직원 본인의 이해력입니다. 자신의 이해력에 맞춰서 작업을 선택하기 때문에 오히려 입사 후에 기술 습득과 작업 습득은 모두 빠른 편이지요.” 작업장을 걸으며 생산과정을 빠짐없이 견학하면서 나는 오토메이션 공장에는 없는 사람의 에너지를 느꼈다. 공장 제조라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장인들의 공방 같았다. 일하는 집중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것을 사장에게 말하자, “장애인들은 고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있어요. 보통 사람이라면 집중력이 15분에서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그들은 몇 시간이나 집중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제조 도중에 분필에 불량이 생기는 경우도 물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흠집이나 기포를 장애인 직원들은 곧잘 발견한답니다. 이것은 로봇으로도 불가능한 작업이지요. 그들은 오차를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매의 눈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장의 설명을 들으면서 각각의 작업 모습을 지켜보니 그들이 숙련된 기술을 구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각각의 이해력에 맞추려는 노력

지적장애인들이 정확한 기술을 발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비장애인 직원이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그 방법을 획일적으로 가르쳐주기보다는 장애인 직원이 가진 각자의 이해력에 맞추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다카히사는 원료가 놓여 있는 장소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원료를 집어넣는 통 색깔을 각각 다르게 만들어서 실수의 위험을 줄이려고 노력했죠. 가루의 용량을 잴 때는 원료통과 같은 색깔의 추와 저울을 사용해서 계량합니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처음엔 우리도 말로 설명하고 그들도 알았다고 대답을 했대요. 그러나 막상 작업에 들어가면 실수가 많이 나왔다더군요. 하지만 색 맞추기 방법을 실시하여 계량을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는군요.”

그리고 작업을 둘러보는 비장애인 직원이 칭찬해주자 더욱더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가족과 사회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지적장애인이 오야마 회장과 직원들의 배려 덕분에 회사의 주력자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중요한 것은 억지로 무리하게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지적장애인들의 이해력에 맞춘 작업환경을 만드는 것이었죠. 아버지와 직원들은 그것에 주력하여 개선했어요.”

일본이화학공업의 에이스

다카히사 사장은 2층에 있는 키트파스 작업실로 나를 안내했다. 2층에 혼자 있던 사람이 입구에 선 나를 힐끗 보더니 곧바로 시선을 손으로 옮겼다. 다카히사 사장이 말했다. “이 사람이 우리 회사의 에이스 혼다 신지예요. 키트파스는 우리 회사가 사운을 내건 상품이죠. 그것을 혼다가 필두에 서서 제조합니다. 그의 꼼꼼함과 정밀함은 키트파스 작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죠. 혼다는 우리 회사에 꼭 필요한 존재이고, 그 열정과 집중력에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답니다.”

참고로 키트파스는 칠판에는 쓸 수 없다. 그러나 화이트보드나 유리, 플라스틱 등 물이 스며들지 않는 소재의 평평한 곳에는 쓸 수 있고, 젖은 천으로 그것을 쉽게 지울 수 있다. 분필처럼 가루가 날리지 않고, 화이트보드 마커처럼 잉크가 금방 줄어들지도 않으며, 지우기가 편해서 청결하고, 주 원재료를 화장품과 같은 파라핀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유아가 실수로 입에 가져가도 인체에 무해하다. 또한 물을 묻히면 물감으로도 사용할 수 있어, 사무용품이나 미술용품으로서도 참신한 상품이다.

지적장애인이 주 인력이 되는 회사

장애인이 제조를 담당하는 일본이화학공업에는 다양한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혼다는 ‘자폐증적 경향’이라고 진단받은 경우이지만, 그들이 가진 지적기능의 장애는 다양하다. 일본이화학공업은 직원들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장애증상이나 IQ를 확인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각각의 자리에 배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증상이나 지수는 일하는 데 장벽이 되지는 않는다. 다카히사는 1층으로 내려가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들이 분필과 키트파스를 만들어준 덕분에 이 회사가 운영되고 있지요. 나에게는 또 하나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장애인들이 운영하는 회사라도 안정된 경영을 실현해야 하고, 또 그들이 사회와 사람들에게 공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가는 것이죠. 물론, 넘어야 할 큰 산이기는 하지만 나의 목표는 안정된 회사 경영입니다.”

“장애인 고용을 지속하기 위해선가요?” “아니요, 그뿐만은 아닙니다. 감사의 마음 때문이죠. 나를 시작으로 비장애인 직원 전체가 장애를 가진 동료들에게서 일하는 기쁨을 배웠습니다. 장애인 직원들은 우리가 쌓은 공정에 따라 일만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한마음으로 작업하고, 혼신을 다해 회사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장애인 직원들은 한순간 한순간 일하는 기쁨을 온몸으로 나타내고 그것을 직장에 되돌려 줍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얼굴에 자연히 미소가 번지죠. 삶과 일, 그 기쁨을 나는 매일 그들에게서 배우고 있습니다.”

참고로 일본이화학공업의 홈페이지에는 ‘비전과 목표’로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다. ‘일본에서 가장 강하고 친절한 회사를 목표로 한다. 경영적으로도 강하고, 정신적으로도 강하며,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사람과 환경에 친절한 상품을 만들 것이다.’ 또 공장의 뒷마당에는 마쓰사카 세쓰조가 기증한 조각인 ‘일하는 기쁨 상’이 있는데, 거기에 야스히로 회장의 말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일하는 기쁨 -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은 사랑받는 것, 칭찬받는 것, 도움을 주는 것,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 이 네 가지라고 한다. 일을 하면 사랑 이외의 세 가지 행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일을 하면 그 사랑까지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일본이화학공업주식회사 사장 오야마 야스히로,1999년 5월’

오야마 회장 그리고 오야마 사장으로 이어진 경영이념. 분필 산업을 책임지는 직원들의 인생을 취재할 기회를 만난 나는, 첫 번째 걸음으로서 이 회사의 에이스인 혼다와 그 가족을 만나고 싶어졌다.



장애인을 둔 가족들의 생각



일을 가져라, 혼다 신지와 그의 어머니 이야기

“일본이화학공업에 근무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혼다 신지의 어머니 유로는 가장 먼저 그렇게 말했다. “혼다는 일본이화학공업의 에이스라고 오야마 사장님이 말씀하셨어요. 모든 직원들이 의지하는 존재라고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유코는 미소를 지었다. “다 여러분 덕분에 지금의 신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에 책임감을 갖고, 또 분필 만드는 일에 기쁨을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죠. 부모로서 이 이상의 행복은 없답니다.”

혼다 신지는 1978년에 혼다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신지는 두 살이 되도록 말을 하지 못했고, 유코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들을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몇 가지 검사를 받은 후 의사는 ‘자폐증적 경향’이라는 진단을 내렸다고 한다. 아이의 성장이 기쁨이어야 할 젊은 어머니 유코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일 밤 자신을 원망했다.

그 마음을 어떻게 다잡은 것일까? 유코가 말했다. “유아상담실을 찾아가 선생님과 일대일로 대화를 나눌 때에는 역시 나를 원망하는 마음밖에 들지 않았어요. 그러나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모임에 참석하고 나서부터는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어요.” 유아상담실 소개로 1년 동안 다닌 치료센터에서는 강사가 신지에게 회화 수업도 해주었다. 유코는 단어를 기억하고 말하는 아들을 대견스럽게 바라봤다. 그곳에서 새로운 만남도 있었다. 유코는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 얻은 공감과 다양한 정보 덕분에 자폐증적 경향을 보이는 아들의 성장을 정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성장과 함께 유코와 신지가 마주해야 하는 시련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었다. 혼다 일가는 신지를 장남으로 차남과 삼남을 둔 5인 가족이었다. 유코가 말했다. “아래 동생과는 두 살 터울인데 신지는 그 아이를 라이벌처럼 생각했어요. 다행히 둘째는 건강했죠. 그런 동생이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나는 왜 고등학교에 못 가?’ 하고 묻고,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나는 대학 못 가?’ 하고 묻더군요. 동생이 하는 건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해서 동생을 좋은 경쟁자로 생각했어요. 동생과 똑같이 나아갈 수는 없었지만, 경쟁을 하면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자라난 것 같아요.”

건강한 남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신지를 받아주었다. 유코가 말했다. “점점 커가는 과정 속에서 둘째는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보통 형제 관계와는 다르다는 것을 초등학생 무렵에는 완전히 이해해줬죠. 자신이 형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신지와, 형을 이해하는 둘째, 그 모습에 안도했습니다. 형제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셋째는 신지보다 더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어요. 이 아이는, 신지에게는 없던 패닉 증상이 있었어요. 그래서 나는 막내 주위를 떠날 수가 없었죠.”

신지는 초등학생 때 전학을 반복했지만, 중학생 때부터는 아버지가 지방근무를 했기 때문에 사이타마 현 구마가야 시에 있는 한 학교를 3년 동안 다녔다. 유코가 말했다. “신지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남편의 원래 근무지였던 가와사키로 다시 이사를 가게 됐어요. 그래서 신지는 초등학교 선배들이 다녔던 양호학교의 고등부에 들어가게 됐어요. 선배들이 많았던 그 학교에서 신지는 마음 편안하게 공부를 했답니다. 운동도 하고 기술훈련 실습도 했지요. 그리고 선생님과 면담을 하면서 진로상담도 했습니다.” 신지는 이 양호학교의 실습생으로 1998년 4월 일본이화학공업에 들어갔다. 같은 해 11월, 직원 고용을 결심한 일본이화학공업은 신지를 정식 직원으로 받아들였다.

참고로 일본이화학공업에는 네 가지 채용 조건 - ① 식사와 화장실을 포함해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할 것 ② 간단해도 좋으니 의사표현을 할 것 ③ 열심히 일할 것 ④ 주변에 폐 끼치지 말 것 - 이 있었는데, 이 조건을 신지는 어려움 없이 통과했다. 직업을 가진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아들의 생각을 지지해준 부모. 그리고 반드시 일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은 신지. 그러한 생각이 결실을 맺어 정사원이라는 길을 열어주었다. 유코는 말했다. “성장해가면서 증상이 잦아들 거라며 현실에서 도망치던 시절이 지금은 멀게만 느껴집니다. 신지는 자폐증적 경향이라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야만 하죠. 일본이화학공업은 그런 아이에게 직장이 되어준 거예요. 그뿐만 아니라 신지는 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겠다는 자기 삶의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정말 기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일하는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서 - 회사가 극복한 어려움



4대에 걸친 일본이화학공업의 역사

일본이화학공업을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들어준 것은 다른 기업에는 없는 신념이었다. 다카히사 사장은 말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힘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좋은 일을 한다, 이것이 우리 회사의 신념입니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장애인들과 함께 일하다 보면 초심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들은 누구에게나 매우 친절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장애인 직원들과 같이 일하면 나도 자연스럽게 친절해집니다. 그들은 그런 존재입니다. 게다가 삶과 일, 기쁨과 슬픔이라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깨우쳐주기도 합니다. 장애인 직원들은 감사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요.” 장애인, 비장애인이라는 틀뿐만 아니라, 세대나 성별까지, 지금껏 쓰고 있던 색안경을 벗고 사람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장의 표정은 절대 오만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단지 강한 의지만이 느껴졌다.

“상품 생산은 매우 훌륭한 작업입니다. 그것을 사내에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본이화학공업이라는 브랜드와 그 품질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기쁨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은 직원들에게 있어서 최대의 행복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를 내뿜는 듯한 사장의 표정이 기업의 건강함과 힘을 말해주고 있었다. 앞으로 일본이화학공업이 걸어가야 할 길을 이야기하는 다카히사의 표정은 온화하고도 강직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회사도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나 절대 바뀌지 말아야 하는 것도 있지요. 그것은 ‘일하는 행복’과 그 ‘실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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