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의 감각, 초연결지능
조슈아 쿠퍼 라모 지음 | 미래의창
제7의 감각, 초연결지능
조슈아 쿠퍼 라모 지음
미래의창 / 2017년 4월 / 416쪽 / 18,000원
우리 시대의 본질
사부들
난화이진은 특별한 젊은이였다. 열여덟 살 때는 전국 검술 대회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두 배 많은 사람을 상대로 우승했고, 스물두 살 때는 중국 최고위 군 장교들에게 정치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 1년 뒤 쓰촨의 산악 지방에서 3만 명의 군사를 지휘했다. 난화이진은 무사였던 어린 시절에 검술에 통달하려면 우선 정신부터 예리하게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정한 고수 검객은 공격당하거나 공격할 때 정신이 먼저 움직인 다음 검이 움직이는 법이다. 난화이진이 어메이 산에서 선(禪) 수행을 하게 된 것도 바로 정신을 날카롭게 단련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난화이진은 정신을 더 수련하기 위해 어메이를 떠나 구도 여행을 떠났다. 그 여정은 이 대가에서 저 대가로, 사원에서 대학으로, 그리고 티벳의 오두막으로 이어졌다. 세상을 느끼고 인식하는 법을 계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는데, 방랑하며 깨우치는 동안 여러 불교 종파의 깨달음을 배우기도 했다. 의학에서부터 서예에 이르는 모든 것에 통달했다. 훗날 그는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자 1949년 타이완으로 향했다. 그런 뒤 타이베이와 홍콩, 미국에서 수십 년을 살았다. 스승으로서 명성이 높아진 것이 이 시기였고, 이후 그는 중국 불교의 살아 있는 모범인 ‘난 사부(master)’로 남았다.
1990년대 중반 중국이 세계를 향해 다시 문을 열었을 때 난화이진은 중국으로 돌아왔다. 중국 최고의 세력가들이 그를 초빙했기 때문이다. 난 사부는 장쑤 성 타이후 연안에 사립학교를 설립했다. 이곳이 내가 89세인 난 사부를 처음 만난 곳이다. 난 사부가 타이후 캠퍼스에서 가르치려던 것은 전시에 청두를 떠나 기나긴 방랑길에서 배우려고 했던 것과 궁극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때그때 발생하는 사건의 본질을 감지할 수 있는 직관을 계발하는 법이었다.
참고로 프리드리히 니체는 지난 세기 말 당시, 마치 광기처럼 보였던 산업혁명을 견뎌내기 위해 인간에게 ‘여섯 번째 감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니체는 여섯 번째 감각이 역사의 리듬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인류의 삶에는 일정한 속도와 경향이 있어서 자기 속도를 유지하려면 장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코스 전체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니체는 역사에 대한 감각이 우리 삶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아무도 이 새로운 감각을 계발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기도 했다. 비극을 예상했던 것이다. 이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보여주었듯 니체의 생각은 옳았다.
이 책은 새로운 직관, 내가 ‘제7의 감각’이라고 부르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니체의 여섯 번째 감각이 변화하는 산업 시대에 맞추어져 있다면, 제7의 감각은 누구나 무엇이나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새로운 시대를 겨냥한다. 이때 연결은 인터넷 연결만이 아니라, 현재 도처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규정하는 전체 네트워크를 말한다. 게다가 기차와 공장이 니체 시대를 맹공격했던 것처럼, 훨씬 더 빠르고 똑똑한 연결이 이제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 있고 많은 문제들을 양산하고 있는데, 이 책의 주장은 이 모든 문제가 똑같은 원인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바로 네트워크 때문이다. 따라서 네트워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해야 이 시대에 이용당하지 않고 시대를 주도할 수 있다.
내가 베이징에서 산 지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중국인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고 있는데, 가까이 있던 별실의 문이 열렸다. 그런데 그 방의 문이 열리자 나이 든 중국 정부 인사들이 우르르 몰려가 사각턱의 강렬한 인상으로 미소를 짓는 한 남자 주위를 맴도는 것이 보였다. 머지않아 중국의 최고 권력자가 될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지나가며 우리에게 고갯짓으로 인사를 했다. 나는 그가 가고 나서 친구에게 물었다. “저 사람을 어떻게 알아요?” “같은 사부 밑에서 공부했어요.” 중국 공산당 간부들의 정신적 스승에 대해 그렇게 우연히 알게 되어 놀라웠다. 바로 난 사부였다.
베이징에서 저녁 식사를 했던 그해 봄, 나는 난 사부의 학교에 초대받는 행운을 누리게 됐다. 내가 처음 방문했던 주말 밤, 그는 가차 없는 질문으로 손님들의 힘을 빼고 나서 우리 시대에 대한 견해를 밝히기 시작했는데, 그는 우리가 ‘신기원의’ 동요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세기에 인류의 가장 큰 위협은 폐렴이었습니다. 20세기에는 암이었지요. 우리 시대에 나타날, 특히 21세기 초에 나타날 병은 광기입니다. 어쩌면 정신병이라고 부를 수 있겠네요. 다음 세기는 특히 격동적일 것입니다. 이미 시작됐지요. 그리고 이 ‘광기’와 ‘정신병’은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습니다. 정치, 군사, 경제, 교육, 문화, 의학, 이 모든 것이 병에 걸릴 것입니다.”
난 사부는 21세기에 정보, 휴대폰, 데이터 패킷을 포함해 우리 삶과 연결된 모든 비트의 물결이 소모의 병을 전염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병이 우리의 뇌에도 전염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권력과 안정에 대한 생각과 우리의 제도들이 붕괴할 것이며, 그런 시대에는 과거에 믿음직했던 것들이 쓸모없어지고 심지어는 위태로워질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직관만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난 사부에게 이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탐구를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물었다. 사부는 “당신은 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고 신랄하게 답했다. 난 사부는 담배를 빨아들이고 잠시 뜸을 들였다. “하지만 당신이 연구한다면, 어쩌면 소진처럼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300년간의 전쟁 시대에 20년간의 평화를 힘들게 이끌어낸 사람입니다.” 소진은 2,000년 전 전국시대의 영웅이었다. 중국 전체가 혼돈으로 붕괴되어 있었는데, 소진은 그 시대의 광기를 꿰뚫어보고 통합해 평화롭게 안정시켰다.
우리는 왜 소용돌이 치고 혼란스럽고 모욕감을 주는 세상을 향한 이 여정을 타이후 연안에서 시작한 것일까? 세상을 보는 진정으로 새로운 방식, 즉 새로운 본능을 훈련하기 위해서는 평정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난 사부의 가르침은 수천 년에 걸쳐 동서양의 철학이 깨달은 것이었다. 즉, 정의나 진리 혹은 미에 대한 새로운 본능이 탄생하려면 정신의 구조가 달라져야 하는데, 그것은 느린 사색으로 가능한 것이다. 혁명이 시작되는 이 순간에 어떻게 네트워크가 작동하며, 어떤 영향을 줄지 인식하려면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네트워크 한가운데에서 고요한 정지화면과 같은 순간들이 있어야 한다. 난 사부가 산꼭대기에 올랐던 것과 같은 방법을 각자 찾아야 한다. 새로운 풍경을 바라볼 관점이 필요하다.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 몇 년 되지 않아 곧 제7의 감각을 타고났거나 훈련으로 가지게 된 사람들과 가지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경쟁이 일어날 것이다. 미래를 막으려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게 되듯 제7의 감각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싸움에서 패할 것이고, 그렇게 해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제7의 감각을 가진 서로 다른 집단들이 격렬하게 경쟁하는 시대가 될 것인데, 이 경쟁하는 힘들은 상충하는 이익과 이상과 목적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아울러 네트워크들이 네트워크들과 싸울 것이다. 이런 연결된 시대의 집단들은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승자는 무자비할 것이다. 그다음에 제7의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연결, 기계, 기계가 연결되어서 건설된 지능 시스템 자체와 경쟁하게 될 것인데, 그 싸움이 어떻게 결판날지는 아직 확답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미래는 우리 앞에 냉정한 도전처럼 놓여 있다.
네트워크 권력의 시대
제7의 감각은 어떤 사물이 연결에 의해 바뀌는 방식을 알아채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힘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특별히 현대적인 것들뿐만 아니라, 군인, 주식, 언어 같은 평범한 것들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고, 연결이 사물의 본질을 바꾼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아채는 능력을 의미한다. 연결은 이미 여러 대상의 본질을 바꾸어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도 네트워크가 가장 단단해 보이는 대상들의 본질조차 변화시키고 심지어 파괴하는 것을 계속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연결된 힘을 인식하지도 이해하지도 활용하지도 못하는 것은 미래에 가장 큰 비극의 원천이 될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골치 아픈 문제들이 이미 많이 발생하고 있다.
전쟁, 평화, 네트워크
과거에 강과 산, 공기의 흐름이 상업과 전쟁을 일으켰듯, 미래의 역학에는 네트워크가 크나큰, 종종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무엇보다 오늘날 즉각적으로 연결되지 않고는 강에서, 산에서, 하늘이나 우주에서 일을 할 수가 없다. 이렇게 서로 맞물린 네트워크가 이루고 있는 풍경은 새로운 지형을 드러낸다. 그것은 바다 표면 아래에서 융합하고 있는 거대한 신대륙이라도 된다는 듯 매일매일 커진다. 국가들이 국가들과 싸우는 세상이 국가들이 네트워크와 싸우는 세상으로, 그리고 네트워크가 네트워크와 싸우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미래에는 과거에 국가들이 서로를 파괴했듯이 네트워크가 국가를 파괴할 것이 확실하다. 무역, 경제, 생물학, 데이터의 연결된 시스템이 외교 업무의 전제조건이 될 것이고, 그 조건을 갖추지 못할 경우 군사와 경제의 풍경이 달라질 것이다.
네트워크 파워의 출현은 이미 새로운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2009년 이란의 대통령 부정선거에 항의해 시위하던 한 시민이 정부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사망하는 모습이 유튜브 동영상으로 세계에 알려졌고, 해킹 단체 어나니머스는 멕시코 마약 왕들, 테러리스트, 러시아 TV 채널을 공격했다. 생물학적 감시 센서가 전염병, 생물학적 공격의 예상치 못한 재채기를 감시하기 위해 도시들에 퍼져 있다. 버그들의 네트워크가 나타날까봐 감시하는 기계들의 네트워크도 있다. 모든 분야에서 충돌이 이미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시야에는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전쟁이 무질서하게 일어나고 있다.
증권 거래에서부터 무역 블록에 이르기까지, 현대적 네트워크 시스템에서 힘은 과거와 다르다. 작은 힘들이 엄청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하나의 잘못된 상품 거래가 시장을 엉망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그러면 무질서의 양동이를 국가, 기업, 무역 회사에 기울이게 될 수도 있다. 컴퓨터 네트워크의 뒷구멍으로 몰래 들어가는 한 명의 해커가 국가의 방어 시스템을 도어스톱처럼 적극적으로, 전문용어를 쓰자면 ‘벽돌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과거에는 거대한 산업의 힘을 막으려면 다른 거대한 산업의 힘이 필요했고, 그러한 힘든 승리의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승리는 준비할 수 있었다. 심지어 막을 수도 있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우리 시대의 가장 가공할 만한 물리적 구조물, 즉 근대, 시장, 정부조차 그것들이 연결된 신경계에 가상의 공격을 받으면 간단하게 마비될 수 있다. 이런 공격(어떤 경우에는 사고)은 네트워크의 속도로, 그러니까 즉시라고 할 수 있는 속도로 이것들을 마비시킨다.
지금 우리가 들어서고 있는 세계는 센서로 가득 찬 데이터가 지속적으로 흐르는 곳이다. 그 흐름들은 우리의 집과 우리의 심장을 똑같은 호기심을 지니고 관찰할 것이다. 그리고 이 끊임없는 관찰에서 배운 것을 기억하고 생각할 것이다. 네트워크는 억누를 수 없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서 아주 작은 구멍까지 찾아 이용한다. 예를 들어, 2000년 미국 항공사 네트워크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알카에다나, 우리가 알아서 고쳐지겠지 하고 내버려두고 아직 고민을 시작하지도 않은 국제 질서의 약점을 공격하는 새로운 힘들에 대해 생각해보라. 우리는 네트워크로 조직화된 테러리스트 집단이나 컴퓨터의 연쇄적 오류에 맞닥뜨려 이 연결된 시스템들에 뽑아버릴 플러그가 없다는 사실에 종종 절망한다.
제7의 감각
‘맵리듀스’ - 공간과 시간의 압축
“인간은 계몽을 미룰 수 있다. 잠시 동안만”이라고 임마누엘 칸트가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썼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인간은 네트워크에 얽히는 것을 미룰 수 있다. 잠시 동안만.” 아무튼 제7의 감각이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아는 것이다.
우선 네트워크는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권력을 분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계몽의 시대 이전에 권력은 사제, 왕, 전사들의 손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종교개혁에서부터 산업혁명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들이 점차로 그 권력들을 침식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대다수에게 정치 참여의 기회를 주고 성장하는 중간계급에게 번영을 주려 했다. 그러나 네트워크는 매번 유례없이 강력하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동시에 분산시킨다. 네트워크는 이전 어떤 세대보다 우리 세대에게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한다. 또 새롭고 강력한 기업들과 프로토콜에 더 큰 영향력을 집중시킨다. 우리가 알아채야 할 징조는 이런 것이다. 수많은 사용자 그리고 엄청난 재산을 거느린 기업들이 숨 가쁜 속도로 늘어날 수 있다. 드론, 파생상품, 연결된 테러리스트, 자신의 나라에서 빠져나왔지만 기술의 망으로 연결된 이민의 물결, 이 모든 것이 네트워크 권력의 산물이다. 세상의 많은 부분이 아직 완전히 연결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혁명의 시대에 산다고 말하는 이유다.
둘째, 네트워크들은 많은 부분으로 복합되어 있지만 본질상 복잡하다. 이는 중요한 구분이다. 제트 엔진은 복합적이고 뇌우는 복잡하다. 두 가지 다 다수의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후자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복잡계는 창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는 수백만 건의 상호작용에서 생겨났다. 자동차 공유 서비스, 금융 위기, 정치 운동도 다르지 않다. IS도 연결에서 생겨났다. 이런 과정이 머지않아 끝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점점 빨라질 것이다.
셋째, 와레즈(Warez)꾼들과 해커들의 뒤를 따라가는 동안 네트워크의 특징이 명백해졌다. 연결된 시스템들은 약점 투성이일 뿐만 아니라, 그 중심핵은 역사를 좌우할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해커들은 이런 권력의 핵을 지배하기를 갈망한다. 모든 것을 연결하고 있는 시스템을 지배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곳에 연결된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이다. 무역, 정치, 금융, 이 모든 시스템이 이런 논리를 보여줄 것이다. 그 결과 역사적으로 당연한 것들이 전도된다. 과거에는 중요한 사건들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방식으로 발생했다. 전쟁, 혁명, 선거가 그랬다. 지금부터 역사는 영향력이 명백하지만 탄생을 막을 수 없는 알고리즘과 네트워크 설계의 조작 속에서 비밀리에 결정될 것이다.
넷째, 시스템 내부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무엇에 의존하는지를 아는 것도 필요하다. 과거를 상인, 현자, 군인들이 지배했다면, 우리 시대는 젊고 기술에 정통한 집단에 점점 더 많이 의존한다. 그들을 가장 잘 훈련하고 보유한 국가들과 회사들(혹은 테러 집단들)이 막대한 이득을 취할 것이다. 이 집단들이 젊다는 것은 커다란 이익인 동시에 가장 큰 위험이기도 하다. 그들은 역사와 정치학, 철학에 대해 네트워크에 대해서만큼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은 세상을 코드를 써야 할 컴퓨터로 보는 경우가 많다.
다섯째, 우리는 미래의 많은 부분을 결정할 새롭고 보이지 않는 공간을 밝혀냈다. 이런 토폴로지(Topology)들은 힘이 작용하고 있는 연결된 장이다. 주식이 거래되고 사이버 공격이 발생하고 수입품이 이동하거나 생물학적 데이터가 기록되고 연구되는 망이다. 이 모든 것이 이루는 풍경은 한순간에 바뀔 수 있다. 토폴로지의 지배는 과거 바다나 하늘, 혹은 자본의 지배만큼 중요할 것이다.
여섯째, 네트워크는 시간의 압축을 위한 것이다. 네트워크가 기술적으로 뛰어난 것이지만, 이 시스템들의 심장에 고동치고 있는 것은 대단히 인간적인 욕망이다.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은 것을 하려는 욕망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 더 많은 것을 하려는 욕망이다. 시간 압축이 바로 우리가 연결을 갈망하는 이유다. 계몽의 시대에 자유를 요구했던 것처럼, 지금은 시간의 압축을 요구한다. 그것은 기존의 어떤 제도도 부응할 수 없는 근본적이고 정치적인 요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