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자본의 힘
가오펑 지음 | 모노폴리언
이야기 자본의 힘
가오펑 지음
모노폴리언 / 2016년 9월 / 284쪽 / 14,000원
PART 1 왜 이야기 자본인가?
새로운 경쟁력, 이야기에 있다
이미 알려진 유명인을 활용하라: 사람이 있는 곳에는 늘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가 있는 곳에는 늘 뜨거운 이슈가 있다. 전 세계에서는 매일 수만 가지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훌륭한 스토리텔링을 위해서는 ‘인물’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인물과 연결고리를 만들어서 당신의 이야기를 더 훌륭하게 만들 것인가? 여기서 당신은 날카로운 관찰력과 정확한 예측능력이 필요하다. 이야기 자본의 영향력은 그 안에 존재하는 유명인이 가진 사회적 영향력과 비례한다고도 할 수 있다. 유명인의 영향력과 그 이야기의 빠른 전파 속도를 이용하여 사람들이 주목할 만한 이슈를 잡는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주목을 성공시키면서 홍보하고자 하는 자신 혹은 자신의 브랜드를 원하는 이미지로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산쥬라는 일본의 한 속옷 제조회사가 있다. 이제는 고도의 산업화 영향으로 인해서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제품들은 품질 면에서는 나무랄 데가 없다. 즉, 모든 상품의 상향평준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었다. 산쥬 역시도 처음에는 일본 동종 업계 제품 중 기본적인 품질 외에 특별한 장점이 없는 제품을 내놓아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실제로 엄청난 광고비용을 투자하여 영업이익을 유지하고 있는 유명 브랜드 두 곳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는 수준이었다. 산쥬 같은 무명의 신진 기업은 평범한 제품을 계속해서 생산하면 대량의 재고가 쌓이게 될 상황에 놓였다. 결국 기업이 부도 위기에 처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기업의 브랜드명과 같은 이름을 가진 이 기업의 사장 산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평소에 알고 지내던 조치 대학의 우에다 야스오 교수를 찾아가 부탁했다. “지금 창고에는 팔지 못한 대량의 재고가 쌓여 있습니다. 장부에는 3천만 엔밖에 없고요. 설령 이 돈으로 광고를 찍는다 해도 사람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을 겁니다. 이제 우리 회사는 파산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부디 한 번만 혜안을 주어 도와주십시오.”
우에다 교수는 산쥬 사장의 계속되는 간곡한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 어떻게 하면 최소의 비용으로 최상의 효과를 끌어낼 수 있을지 연구해보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파산 직전인 산쥬를 위해서 시도해볼 수 있는 일은 모두 해보기로 결심했다. 우에다 교수는 곧바로 뉴욕에 있는 그의 제자를 찾아갔다. 그의 제자는 요미우리 신문 미국 뉴욕 기자단의 사진기자로 활동하고 있던 터라 세계 각국의 유명 정치가들을 만날 기회가 적지 않았다. 우에다 교수는 그 제자에게 얼마의 비용을 주면서 임무 하나를 맡겼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클린턴의 영부인 힐러리를 따라다니면서 기회를 틈타 사진을 찍으라는 지시였다.
이 사진기자는 매일 힐러리를 쫓아다니며 그녀가 나타나기만 하면 바로 사진을 찍었다. 어느 날, 그는 또 힐러리의 사진을 찍을 기회를 포착했다. 힐러리는 정장 치마를 입고 소파에 앉다 실수로 산쥬 브랜드의 속옷을 노출하고 말았다. 제자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다. 우에다 교수는 제자의 사진을 받아본 그 순간, 기회가 왔음을 직감했다. 3개월이 지나고 미국 대통령의 영부인 힐러리가 일본을 방문했다. 힐러리가 도쿄에 도착한 그날, 일본의 모든 신문사의 1면에 산쥬 속옷 광고가 실렸다. 광고에는 순간포착으로 찍었던 그때의 힐러리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한 줄의 광고문구가 적혀 있었다. ‘일본 남성분들께 비밀 한 가지를 알려드립니다. 힐러리가 입은 속옷은 바로 산쥬 속옷입니다.’ 힐러리 사진이 나온 이 광고는 순식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사람들 사이에서 가십거리가 되었다. 산쥬 속옷은 이 일로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산처럼 쌓였던 재고 상품들이 단 3일 만에 완판을 기록했다. 한 번에 수십 장을 사가는 고객도 있었다. 산쥬 자금 문제는 일순간 모두 해결되었다.
당시 힐러리는 엄청나게 분노했다고 전해진다. 미국 국무성 대변인은 정식적인 외교 경로를 통해 산쥬를 고소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클린턴 대통령의 직속 고문은 생각이 달랐다. 그는 “산쥬는 유명인의 명성을 잠시 빌렸을 뿐이며, 만약 고소를 진행하면 이기든 지든 결과적으로 이익을 보는 쪽은 산쥬입니다. 그들에게 한 번 이용당했으면 됐습니다.”라며 고소를 만류했다. 아울러 산쥬 제품은 현재 일본에서만 판매되고 있는데 만약 고소를 진행하면 전 세계로 팔릴지도 모르니, 이번 일은 그냥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힐러리 속옷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파산 직전에 몰렸던 기업이 이처럼 유명인을 활용한 이야기를 통해 기사회생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왜 좋은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사람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라: 그저 그런 제품에 멋진 스토리텔링을 입히면 그 상품은 더 이상 평범한 상품이 아니다. 가격은 급등하고 특별한 제품이 될 수 있다. 평범한 제품을 특별한 제품으로 만들어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때문에 바로 이야기는 가장 가치 있는 자본이 될 수 있는 것이고, 이렇게 좋은 스토리텔링이야말로 상품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싱가포르는 인구 543만여 명에 면적이 약 716제곱킬로미터밖에 되지 않아 차로 한 바퀴 도는 데 2시간도 안 걸리는 도시 국가다. 그런데 전 세계에 여덟 개뿐인 5성급의 항공사 중 한 곳이 이 작은 나라에 있다. 물론 5성급 항공사는 매우 어려운 환경 속에서 탄생했다.
1970년대, 말레이시아에서 막 분리되어 나왔을 때 싱가포르에서는 자신만의 공항을 건설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싱가포르 항공은 정부 보조금도, 은행 대출금도 지원받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항을 건설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 당시 경쟁사는 그들을 비웃으며 말했다. “이런 작은 나라에서 자기 공항을 짓겠다고? 바다에 세우기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그러나 이러한 비웃음은 싱가포르 항공의 창립자인 추춘셍을 무너뜨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의 의지를 더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 바다에 못 지을 이유가 어디 있어?” 1981년, 마침내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이 완공되었는데 그것은 바다에 세워진 것이었다. 창이 국제공항 총면적의 반은 간척 사업을 한 곳이었다. 그러나 공항이 완공되고 나서도 문제는 있었다. 국제 항공노선이 하나도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싱가포르 항공은 이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당시 유명한 항공사들은 거의 모든 사업 기회를 점령하고 있었고, 싱가포르 항공이 국제 시장을 뚫기 위해서는 사실상 저비용 운영방식으로 고객을 확보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싱가포르 항공에 너무 큰 도전이었다. 이 길 말고는 정말 방법이 없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싱가포르 항공은 자신의 항공사를 이용해본 모든 여행객들이 그들 회사에 대해서 매우 깊은 인상을 갖게 만들고자 했다. 먼저, 싱가포르 항공의 아름다운 스튜어디스들은 매우 프로페셔널했다. 파리의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수공예 날염 옷감, 그윽한 싱가포르 전통의 멋을 지닌 사롱 유니폼은 아시아 여성의 매력을 최대한 발산해냈다. 싱가포르 스튜어디스를 봤을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당연히 싱가포르 항공이었다. 이에 대해 하버드 MBA에서는 이렇게 평가했다. “사롱을 입은 싱가포르 항공의 스튜어디스는 우아하고 세심하며, 친절하고 아름다운 아시아의 음성을 기내에서 현실로 연출해낸다.”
싱가포르 항공의 관례 타파는 기내식에서도 나타난다. 기압의 변화로 인해 미각을 잃어버린 승객들은 기내 음식이 양초를 씹는 것처럼 맛이 없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싱가포르 항공에게 이 문제는 오히려 기회가 되었다. 1998년 9월, 싱가포르 항공은 자사만의 요리 전담 팀을 구성했다. 싱가포르 항공은 전 세계에서 유명 요리사들을 데려와 기내식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싱가포르 항공의 승객은 탑승수속 24시간 전에 무료로 메뉴를 주문할 수 있으며, 요리 팀이 직접 만드는 20여 가지의 음식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었다. 맛있는 식사 때문에 항공권의 가격은 당연히 높은 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 항공의 높은 품질에 대해서 승객들은 기꺼이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자 한다.
싱가포르 항공의 훌륭한 서비스는 싱가포르 항공의 항공편 이륙 전 업무 준비 시에도 나타난다. 이륙 전, 아름다운 싱가포르 항공의 스튜어디스들은 사전에 준비한 뜨거운 타월을 승객들에게 제공한다. 독특한 향기가 나는 뜨거운 타월은 승객을 포근하게 만들어주는데, 싱가포르 항공이 맞춤 제작한 이 유일무이한 향수는 이미 특허 등록이 된 상태다. 이 외에 싱가포르 항공은 가장 최신의 공중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출시했다. 모든 승객의 자리 앞에는 액정 스크린이 있는데, 이를 통해 승객들은 모두 99편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이런 싱가포르 항공의 서비스는 모두 무료다.
싱가포르 항공의 서비스들은 승객의 시각, 미각, 촉각 등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인상과 감동을 남긴다. 싱가포르 항공은 이런 혁신을 하고 나서도 멈추지 않았다. 싱가포르 항공의 CEO 추춘셍은 항상 이렇게 생각했다. ‘이런 혁신들은 모두 계속해서 이어져야 하고, 계속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 그의 지휘 아래 싱가포르 항공의 혁신은 매년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 싱가포르는 앞장서서 이코노미 클래스에 이어폰, 주류, 음료 그리고 간식을 무료로 제공했으며 기내에 위성전화 등을 설치했다. 2007년, 싱가포르 항공은 가장 먼저 A380기를 구매하여 운항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A380은 세계에서 가장 높고 넓으며 여행객 수송능력이 가장 큰 민간 여객기일 뿐 아니라, 가장 편안하고 호화로운 기종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항공의 10년간의 노력은 드디어 수확을 얻었다. 현재 싱가포르 항공은 세계 일류 항공사로 우뚝섰다. 추춘셍에 따르면, 싱가포르 항공의 목표는 ‘가장 큰 회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평이 가장 좋은 회사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항공사의 성공여부가 승객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싱가포르 항공의 모든 서비스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들은 스토리텔링을 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스토리텔링 자체는 무형의 상품이다. 그러나 교환하는 과정에서 상품은 그 이야기의 매체가 된다. 소비자는 비용을 지불하고 제품을 사는데, 사실 그들이 사는 것은 상품뿐만이 아니다. 상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구매 욕구를 만족시키는 이야기다. 그들은 제품과 이야기의 완벽한 결합을 통해 정신적인 만족을 얻는다.
볼보 또한 대중의 구매 욕구를 잘 파악하고 있는 기업 중 하나다. ‘볼보, 가장 안전한 차!’라는 슬로건의 반복적인 홍보로 볼보의 안전의식은 고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한번 생각해보자. 각종 브랜드가 자신의 화려함, 귀중함, 파워 등을 홍보할 때 만약 볼보도 그들과 같은 길을 걸었다면 내로라하는 멋진 자동차들 속에 그 존재가 파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볼보는 안전성을 브랜드의 가장 중요한 강점으로 내세웠고, 이로써 전 세계 소비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세상에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질주할 때 만약 생명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화려하고 비싼 차라 할지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위한다면 당신은 볼보에 기꺼이 지갑을 열 것이다. 당신이 사는 것은 차뿐만이 아니라 생명의 안전도 포함되어 있다.
아무리 이성적인 소비자라 하더라도 감정적으로 휘둘려 논리적인 구매 행동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구매 욕구에는 기능성 측면 외에도 심리적인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 볼보는 먼저 소비자에게 구매 욕구에 부합하는 안전성을 내세워 소비자의 마음을 흔들었다. ‘가장 안전한 차’라는 슬로건이 사람들 마음속 깊이 파고들자 소비자는 점점 이 슬로건을 믿게 되었고, 결국 볼보의 마니아가 된다. 볼보는 안전을 소재로 일련의 이벤트를 벌였고, 마침내 소비자에게서 인정받고 호평을 얻었으며 세계 명차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PART 2 훌륭한 이야기 자본의 특성들
사랑과 인생, 이야기의 본질
루이 비통, 인생은 여행이다: 루이 비통은 명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브랜드에 속한다. 그런데 이 루이 비통이란 브랜드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브랜드 창업자인 루이 비통은 이 브랜드 속에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특별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루이 비통은 프랑스의 어느 한 가난한 목수 집안에서 태어났다. 생계를 위해 프랑스 궁전에 들어간 루이 비통은 귀족들을 위해 여행용 트렁크에 짐을 싸는 일을 전담했다. 19세기 당시 유럽의 귀족들은 휴가를 떠날 때마다 항상 큰 나무 트렁크에 짐을 꾸렸다. 나폴레옹 3세가 즉위할 무렵, 프랑스의 영토가 확대되었고, 이는 유제니 황후의 여행에 대한 욕구를 크게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가장 유행하던 교통수단은 기차였는데, 이는 황후에게 큰 고민거리였다. 기차가 덜컹거리면 휴대한 여행용 트렁크가 흔들려 쉽게 엎어졌고, 아름다운 의상이 자꾸만 구겨지는 것이었다. 가난하지만 손재주가 많았던 루이 비통은 황후의 의상을 트렁크 안에서 고정시켜 구겨지지 않도록 했다. 루이 비통은 이 일로 황후의 눈에 띄었을 뿐 아니라 큰 신임을 얻게 되었다. 황후를 위해 일하면서 그는 여행자의 니즈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었다.
1854년, 루이 비통은 궁을 떠나 파리에 자신의 첫 번째 가죽 공방을 열었다. 가죽에 대한 감각과 손재주가 뛰어났던 루이 비통은 휴대하기 편하고 내구성이 뛰어난 여행용 트렁크를 만들었다. 여행자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그는 여행용 트렁크를 질긴 캔버스로 만들었고, 이후 그가 만든 트렁크는 여행을 즐기는 귀족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4년 뒤, 루이 비통은 가죽 공방의 규모를 크게 늘리고, 파리 근교에 첫 번째 공장을 세웠다. 루이 비통은 생산 과정에서 여행자의 실질적인 고민을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디자인 또한 실용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유행을 선도하고 전문성을 띠도록 애썼다.
1871년, 루이 비통은 프랑스 스크리브 거리에 새 매장을 열었고, 1875년에는 런던 중심가에 지점을 열었다. 회사의 발전은 제품 혁신에 더욱 단단한 기반을 다지게 하였다. 1889년에는 단단한 여행용 트렁크의 기준이 될 제품이 세상에 나왔다. 장거리 여행의 흔들림에 최적화되어 여행할 때 안심할 수 있고, 편안함을 주는 제품이었다. 지금까지도 이 여행용 트렁크는 루이 비통의 자랑이자 자부심이다. 1896년에는 루이 비통의 아들 조르주 비통이 아버지의 이름에서 딴 L과 V를 조합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노그램 캔버스를 디자인했다. 디자인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루이 비통’이 박힌 독특한 패턴의 모노그램 캔버스 트렁크는 풍부한 이야기와 고상하고 우아한 디자인에 힘입어 유행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위 이야기에서의 루이 비통이 지녔던 유래 깊은 여행 철학은 이 브랜드의 광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루이 비통의 여행용 트렁크는 당신과 어디든 함께합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고요해진 삶을 느낄 수 있습니다. 루이 비통의 여행용 트렁크는 당신의 행복한 하루하루와 함께합니다.’ 160년이란 시간을 지나온 오늘날의 루이 비통은 여행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술 두 병을 넣을 수 있는 케이스와 책을 읽거나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접이식 책상과 의자까지 출시했다. 스피드가 생명인 이 시대에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 반대로 정신적 빈곤을 겪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루이 비통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정신 건강을 향상시켜 삶의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래서 이 기업은 ‘삶은 여행이다.’라는 주제로 여행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