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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처럼 앞서가라

신동준 지음 | 미다스북스



제갈량처럼 앞서가라



신동준 지음

미다스북스 / 2016년 8월 / 392쪽 / 15,000원





한발 앞서 통찰하라



‘세상을 앞서서 통찰’하라



천하 혼란기를 앞서서 통찰한 제갈량의 전략: 제갈량이 태어나 청년이 되던 때의 시기는 동한 말기로 황제는 어리석고 무능하기 그지없었고 조정은 극도로 부패했다. 환관들이 득세하였고, 황제는 공개적으로 매관매직을 일삼았다. 도탄에 빠진 나라 곳곳에서는 수많은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181년에 태어난 제갈량이 네 살 되던 184년에는 대규모 황건적의 난이 폭발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제갈량은 세상의 혼돈을 인식했고, 상대적으로 평온한 융중의 산촌에서 명사와 인재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때를 기다리며 오랜 시간 정진했다. 때문에 유비가 삼고초려 끝에 마침내 제갈량을 만나 어지러운 세상을 구할 방안을 물었을 때 오랜 시간 고심하고 연구해 온 대책인 ‘천하삼분지계’를 내놓을 수 있었다. 사가들은 이를 두고 융중에 있는 제갈량의 초가집에서 나온 대책이라는 취지에서 흔히 ‘초려대(草廬對)’ 또는 ‘융중대’로 부른다. ‘천하삼분지계’ 내지 ‘융중대’는 조조와 손권이 이미 중원의 북쪽과 동쪽에 웅거하고 있는 만큼 지금의 호북성인 형주와 사천성인 익주를 근거지로 삼아 중원의 서쪽에서 삼국이 솥발처럼 정립하는 구도를 만들라는 게 골자다.

당시 유비는 제갈량의 초가집을 3번이나 찾아간 뒤에야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유비는 곁에 있던 사람들을 물린 뒤 제갈량에게 물었다. “한 왕실이 기울고 무너지는 상황이오. 간신들이 주상의 명을 훔쳐 전횡하는 까닭에 주상이 피난을 가는 몽진을 해야만 했소. 나는 덕력(德力)을 헤아리지 않은 채 나름 천하에 대의를 펴고자 했으나 지혜와 술책이 모자라 마침내 실패에 처하는 창궐을 당해 오늘에 이르게 됐소, 그러나 뜻만은 아직 버리지 않았소. 내가 어찌 해야 좋을지 말해줄 수 있겠소?” 한왕실을 조속히 부흥시키고자 하는 유비의 절박한 심경이 절절히 드러나고 있다. 이때 제갈량이 내놓은 대책이 바로 ‘천하삼분지계’이다. 이 계책은 나름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삼국정립 방안을 담고 있다. 「제갈량전」에 따르면 당시 제갈량은 조조 및 손권과 맞설 수 있는 비책을 이같이 제시했다.

망해가던 유비를 급속히 부상케 한 제갈량의 비책: “형주는 북쪽으로 한수와 면수를 차지하고, 남쪽으로는 해변에 이르는 광대한 땅의 산물을 이용할 수 있으며, 동쪽으로는 오군과 회계군과 접하였으며, 서쪽으로는 파촉과 통하니 이곳은 무력을 쓸 만한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이곳을 차지한 유표는 이를 지킬 능력이 없으니 이는 하늘이 장군에게 도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장군께선 이곳을 취할 뜻이 있으신지요? 익주는 지세가 험하고 비옥한 땅이 천 리나 되는 하늘이 내린 땅으로 한 고조가 여기를 근거로 황제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이 땅을 차지한 유장은 어리석고 약하고, 북쪽의 장노도 그 위에 있지만, 그 많은 백성과 부유함을 아끼고 살필 줄 모르는 까닭에 지혜롭고 능력 있는 선비들이 현명한 군주를 바라고 있습니다. 장군께선 한나라 왕실의 후손으로서 천하에 신의를 중시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영웅들을 포용하고 현자를 목마른 사람처럼 구하고 있습니다. 만약 형주와 익주를 동시에 차지한다면 지형적 장애에 의존하면서 서쪽으로 융족과 화목하게 지내고, 안으로는 내치에 힘을 쓰십시오. 이어 천하에 변고가 생기면 1명의 상장군에게 명해 형주의 군대를 이끌고 완현을 거쳐 낙양을 향하게 하고, 장군은 친히 익주의 군사를 통솔해 진령 이북의 평원지대인 진천으로 진출하십시오. 그러면 백성들 가운데 그 누가 감히 대나무소쿠리밥과 물병으로 장군을 환영하지 않겠습니까? 실로 이리하면 가히 패업도 이루고, 한실도 부흥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형주의 유표와 익주의 유장을 몰아내고 두 곳을 차지함으로써 삼국정립의 상태를 만들어 놓은 뒤 칼을 갈다가 때가 왔을 때 조조와 손권을 치면 능히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는 취지이다. 떠돌이 신세였던 유비로서는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는 비책이다.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는 당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통찰에서 나온 천하통일 방략이다. 기울어 가던 유비 세력을 재정립하여 삼국을 정초하고, 나아가 그 이상의 원대한 꿈까지 꾸게 할 수 있는 미래적 통찰이 담겨 있었다.



핵심을 간파하고 요체를 잡아라



‘강자 앞에서는 연합전선을 구축’하라



천하삼분지계를 실현하는 제갈량의 전략: 황건적을 진압하고 형식적으로라도 한헌제를 모시면서 조조는 더욱 강력해졌다. 조조는 군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요충지인 형주를 공격하려고 하였다. 아직 제대로 자리도 못 잡고 세력도 기울어가는 유비로서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제갈량은 천하삼분지계를 본격적으로 실현하고, 위기에 빠진 유비를 구하기 위해 손권을 끌어들이는 방안을 건의했다. 당시 손권은 군사를 거느리고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제갈량은 손권을 찾아가 이같이 유세했다. “나라가 큰 난리에 빠지자 장군이 강동에 웅거하게 되었습니다. 유비께서는 한수 남쪽에 군사를 거둬 조조와 나란히 천하를 다투고 있습니다. 지금 조조는 황건적의 난을 진압하여 하북 일대를 이미 평정하고 마침내 형주까지 깨뜨려 그 위세가 온 나라를 진동하고 있습니다. 장군은 역량을 헤아려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장군이 점거하고 있는 오월 땅의 군사로 조조와 능히 맞설 수 있다면 어찌 조기에 조조와의 관계를 끊지 못합니까? 만일 그리할 수 없다면 어찌하여 무기를 내려놓고 조조를 섬기지 않는 것입니까? 지금 장군은 겉으로는 복종을 표방하는 명분에 기대고 있으나, 속으로는 잠시 미뤄두며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태가 위급해진 만큼 이제 결단하지 않으면 화가 머지않아 닥칠 것입니다.”

손권이 말했다. “만일 그대의 말과 같다면 유비께서는 어찌하여 끝내 조조를 섬기지 않는 것이오?” 제갈량이 대답했다. “유비께서는 왕실의 후예이고, 걸출한 재능이 세상을 덮는 인물이고, 많은 선비들이 마치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것처럼 흠모하고 있습니다. 일이 성공하지 못하면 이는 하늘의 뜻입니다. 어찌 다시 조조의 신하가 될 수 있겠습니까?” 손권이 발끈해서 화를 내며 말했다. “나는 오 땅과 10만 군사를 모두 들여 바치면서 남의 통제를 받을 수는 없소. 나의 계책은 이미 결정됐소. 유비가 아니면 조조를 감당할 자가 없소. 다만 지금 막 패한 직후라 과연 어떻게 지금의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겠소?” 제갈량이 말했다. “유비 군주의 군사는 비록 장판에서 패하기는 했으나 지금 부대로 복귀한 병사와 관우가 이끄는 수군 정예병을 합쳐 1만 명이 있습니다. 강하에 모인 유기의 병사 또한 1만 명보다 적지는 않을 것입니다. 조조의 군사는 먼 길을 오느라 몹시 지쳐 있습니다. 듣건대 유비 군주를 추격하기 위해 기병부대가 하루 밤낮에 300여 리를 달려왔다고 합니다. 또한 조조가 이끄는 북방 출신 군사들은 수중전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또 형주의 백성들이 조조에게 붙은 것은 병세로 핍박한 결과이지 마음으로 따르는 게 아닙니다. 지금 장군이 용맹한 장군에게 명령을 내려 수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유비 군주와 함께 공동으로 모의하고 힘을 합쳐 공격하면 틀림없이 조조의 군사를 격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조는 패하면 틀림없이 북쪽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러면 형주와 오의 세력이 강대해져 마침내 3국이 서로 대립하는 양상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성공과 패배의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오늘에 달려 있습니다.”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곧바로 주유와 정보 및 노숙 등에게 명해 군사를 이끌고 가 유비를 도와주게 했다. 상대의 결단을 촉구하는 제갈량의 적극적인 설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매사가 그렇듯이 아무리 좋은 복안을 갖고 있을지라도 이를 실천에 옮겨야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천에는 크고 작은 리스크가 따르기 마련이다. 리스크를 감수할지라도 예상되는 이익이 커야만 사람들은 결단을 하게 된다. 제갈량은 이런 이치를 통찰했다. 유세 과정에서 ‘조조는 군대가 패하면 틀림없이 북쪽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러면 형주와 오의 세력이 강대해져 마침내 3국이 서로 대립하는 양상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설득한 게 그렇다. 손권에게 확실한 이익을 제시해 보인 덕분에 손권의 결단을 이끌어낸 것이다.

도덕을 앞세워 설득하는 것은 일견 그럴듯하기는 하나 자칫 역효과를 낼 수 있다. 겉으로만 응하고 속으로는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전국시대 말기 열국의 군주들이 인의를 들먹이며 호통을 치는 맹자 앞에서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차비’를 쥐어주며 속히 다른 곳으로 내보낸 게 그 증거다. 인의도덕을 전면에 내세우면 아무리 난세일지라도 이를 정면에서 반박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살벌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열국의 군주들이 정작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바로 나라의 이익이나 군주의 이익이다. ‘이익을 동반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손권으로 하여금 “남의 통제를 받을 수 없소.”라고 호언하게 만든 것은 격지이언(激之以言, 자존심을 건드려 격동시킴) 계책을 적극 활용한 덕분이다. 제갈량은 흔히 법가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손권을 설득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당대의 종횡가로 손꼽을 만하다.

설득과 협상 관련 분야의 현대적 고전이 된 로버트 치알디니의 책 『설득의 심리학』에 보면 설득의 기본적 조건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6원칙을 제시한다. 1. 상호성의 원칙 2. 일관성의 원칙 3. 사회적 증거의 원칙 4. 호감의 원칙 5. 권위의 원칙 6. 희귀성의 원칙 등이 그것이다. 제갈량이 오나라로 찾아가 손권과 그 부하들에게 유세하는 과정에는 『설득의 심리학』에서 제시하는 설득과 협상의 실전적 적용이 적나라하고 생생하게 드러난다. 제갈량은 당대 최고의 설득과 협상의 전문가로 위기에 빠진 유비를 구함과 동시에 그 협상의 결과로 손권과의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강력하던 조조에게 막대한 타격을 가하게 되는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 것이다.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판단하라



‘겉치레를 버리고 실질’로 나아가라



후대인의 존경과 추앙을 받는 제갈량의 비결: 조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브랜드의 성격이 ‘대담성과 능력’이라면 제갈량을 상징하는 브랜드의 특성은 ‘사심 없는 통찰력’일 것이다. 제갈량은 언제나 1인자인 유비의 뜻을 받들고 국가에 목숨을 바쳐 충성했으며, 승상이라는 최고통치자의 자리에서도 결코 사사로운 이익을 얻고자 하지 않았다.

삼국시대는 기본적으로 혼란기였다. 혼란의 시기일수록 조직은 단순하고 효율적일 필요가 있다. 공평무사하고 청렴한 지도자 제갈량은 이 점을 미리 통찰하고 있었다. 때문에 제갈량이 『편의 16책』 「치란」에서 ‘겉치레를 버리고 실질로 나아갈 것’을 강조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갈량은 기본적으로 나라의 기반을 튼튼히 하고 백성들의 생업을 안정시키기 위한 전략을 추구한 것이다. 이것은 춘추시대 중엽 제환공을 도와 첫 패업을 이룬 관중의 부국강병 계책과 맥을 같이 한다. 『관자』 「치국」에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 나온다. “무릇 치국의 길은 반드시 우선 백성을 잘살게 하는 데서 시작된다. 백성들이 부유하면 다스리는 것이 쉽고, 백성들이 가난하면 다스리는 것이 어렵다.” 관중사상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이와 같은 필선부민(必先富民, 무릇 치국의 도는 반드시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만드는 것)이다.

민생을 안정시키려면 군주 스스로 절제하며 사치를 멀리해야 한다. 그러나 군주가 아무리 절제하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황실과 관청이 이를 본받지 않을 경우 그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최고통치권자는 할 일 없이 국록을 축내는 관리를 퇴출시키고 필요하지 않은 사업에 대한 비용은 제거해야 한다. 제갈량이 ‘겉치레를 버리고 실질로 나아갈 것’을 강조함과 동시에 불필요한 관직을 줄이고 유사한 관직을 합치도록 역설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통 크게 용서’하고 ‘통 크게 배려’하라



일곱 법 잡았다 일곱 번 놓아준 제갈량의 생각: 223년 유비가 죽고 나서 촉한의 실질적인 최고 통치자이자 군사책임자가 된 제갈량이 나라 안을 정비한 뒤에 가장 먼저 한 일은 남만 지역 정벌이었다. 유비의 뜻을 이어받아 북벌을 단행하기 전에 우성 후방 지역의 근심을 해결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남만 정벌 원정에서 제갈량은 남만 지역의 추장인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주는 이른바 ‘칠종칠금(七縱七擒)’의 신출귀몰한 전략을 보여주었다. 이후 칠종칠금은 상대를 마음대로 잡았다가 놓아주는 경지를 이르는 성어로 굳어졌다.

제갈량이 사로잡은 맹획을 풀어준 뒤 술과 음식을 내주고 말까지 내줘 타고 가게 하자 장수들이 제갈량에게 물었다. “맹획은 남만의 수괴입니다. 그를 다행히 사로잡아 남방이 평정된 셈이었는데 승상께서는 어찌하여 그냥 놓아 보내시는 것입니까?” 제갈량이 웃으면 말했다. “내가 그를 사로잡는 것은 주머니 속의 물건을 꺼내는 이른바 낭중취물(囊中取物)과 진배없소, 그러나 그를 심복시켜야만 이곳을 평정할 수 있소.”

제갈량의 남정은 기본적으로 융중대 때 언급한 무화책(撫和策)에서 출발한 것이다. 무화책은 남방을 안정시켜 이민족과 한족이 서로 편히 지내는 사이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 제갈량은 남정을 통해 이를 완성시킨 셈이다. 중국이 3세기 초 서남쪽 이민족이 사는 지금의 운남성과 귀주성 일대를 관도에 끌어들인 것은 전적으로 제갈량의 공으로 보아야 한다. 제갈량은 이처럼 ‘용서와 배려’를 통해 군사작전의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때문에 2천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운남성과 귀주성 일대에는 제갈량을 모시는 사당이 수없이 많고, 많은 사람들이 제갈량을 흠모하고 존경하고 있다.



기본에 충실하고 사실에 근거하라



‘창의적으로 발상’하라



창의적으로 혁신을 이룬 제갈량의 지혜: “촉군들이 「목우유마경」을 읽는데 경문을 읽기만 하면 목우유마(木牛流馬)가 명령대로 움직인다고 한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역시 제갈량을 더욱 신비스런 인물로 만들기 위해 목우유마를 이용해 위나라 군사의 식량을 탈취하고 사마의의 목숨을 거의 빼앗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삽화를 끼워 넣었다. 이로 인해 후세에는 목우유마를 거의 하늘에서 내려온 ‘천마’와 같은 것으로 여기는 상황이 빚어졌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비록 제갈량이 목우유마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군량운송의 어려움이 근원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험난하기 그지없는 ‘촉한의 도로사정’ 때문이었다. 제갈량이 병사들을 면양에 주둔시키며 농사를 짓게 한 것도 군량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코자 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삼국시대 당시 산악지대의 운송수단은 기본적으로 사람과 가축이었다. 기산으로 나아가는 길은 산과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어 말이 끄는 4륜거로는 군량을 운송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제갈량은 고심 끝에 기존의 4륜거를 개량해 목우유마를 만들어낸 것이다. 목우유마 덕분에 촉한의 군사는 군량수송의 어려움을 상당 수준 덜 수 있게 되었다. 목우유마와 같은 편리한 운송기구를 만들어낸 제갈량의 지혜는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촉한의 군사가 목우유마를 이용해 식량 운반에 따른 병력손실을 막게 된 것은 전적으로 제갈량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 「제갈량전」에서 ‘제갈량은 선천적으로 기발한 발상인 교사(巧思)에 뛰어났다’고 평했다. 목우유마를 만든 데 이어 화살을 연이어 발사하는 기계장치인 연노를 개선했다는 「제갈량전」의 기록 역시 제갈량의 창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제갈량이 삼국시대의 모든 인물 가운데 지금까지도 가장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렇듯 제한된 조건 속에서도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모범’을 보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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