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트럭장사꾼
배성기 지음 | 지식공간
국가대표 트럭장사꾼
배성기 지음
지식공간 / 2016년 6월 / 287쪽 / 13,500원
왜 트럭장사냐고? 남은 게 트럭 한 대밖에 없어서!
빚 1억 5천, 중고 트럭 한 대: 처음 가져본 ‘내 가게’였다. 처음에는 그 가게에 경력직 판매사원으로 들어갔다. 단순한 취직이 아니라 내 가게를 차리겠다는 비전과 꿈을 품고 들어간 곳이었다. 새벽 첫차를 타고 출근해 막차로 퇴근하며 장사를 배운 지 8년여가 흐른 때여서 그간의 장사 노하우가 빛을 발할 시기이기도 했다. 평균 10만 원 남짓이던 청과코너의 하루 매출이 입사 후 수개월 만에 200여만 원으로 뛰어올랐다. 고공행진을 보이는 매출을 지켜보던 사장은 “인수할 생각은 없냐?”라며 청과코너를 인수하라고 나를 꾀었다. 번듯한 내 가게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던 때라 욕심을 참지 못하고 덜컥 계약을 했다. 그리고 계약서도장의 잉크가 마를 즈음 깨달았다. ‘아 낚였다!’
다섯 평도 안 되었지만 한 달에 나가야 할 고정비 성격의 돈이 700만 원이었다. 거기에 직원 월급까지 더하면 지출만 1,000만 원, 한 달 결산을 하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은 100만 원 남짓했다. 그래도 그때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믿고 있었기에 조금만 버티면 될 줄 알았다. 그러다 결정적인 직격탄을 맞았다. 2010년 여름, 물난리로 서울 한복판인 강남역이 물에 잠겼다. 물난리야 지나가면 그만이었지만 그에 따른 후속조치가 사단이었다. 서울 시청에서 물난리를 막기 위해 축구장보다 더 큰 규모의 물 저장탱크를 만들기로 했는데, 그 공사가 하필 우리 가게가 입점한 건물 바로 옆에서 진행됐다. 가게를 인수한 지 1년이나 지났을까, 1년 반짜리 먼지 날리는 대규모 공사가 시작되었다.
먼지가 고스란히 가게로 들어왔고, 가게를 들르던 고객들의 발길이 끊겼다. 월세는 꼬박꼬박 나가는데 손님이 없으니 며칠 만에 1톤 가까운 과일이 썩어나갔다. 공사가 시작되고 매출이 1/10로 줄었다. 5개월을 견뎠을 때 남은 건 그야말로 빚뿐이었다. 일을 하다 보면 신속히 결단을 해야 할 때와 신중히 상황을 주시해야 할 때가 있는데, 나의 경우는 전자였으나 나는 첫 가게라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감당 못한 빚이 터지고 더는 버틸 수 없게 되어서야 아내에게 이실직고했다. 아내는 자리를 보존하고 누웠지만, 결국 자기의 미용실까지 정리해서 급한 불을 꺼주었다. 마흔을 코앞에 둔 내게 남은 건 참패의 쓰라린 상처와 1억 5,000만 원이 넘는 빚 그리고 낡은 중고 트럭 한 대뿐이었다.
아내와 어머니는 취직을 하라며 직장을 추천했다. 두 곳 모두 200만 원 안팎의 월급을 준다고 했다. 하지만 그 돈을 받아서는 우리 네 식구 입에 풀칠도 할 수 없었고, 꿈을 구면서 미래를 설계한다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많지 않은 내게 길은 장사밖에 없었다. 유일하게 남은 낡은 중고 트럭 한 대가 최후의 보루였다. 몇 날 며칠을 아내와 다퉜다. 아내에게 정신 바짝 차리고 마지막으로 제대로 한번 해보겠노라고 했다. 결국 이번에도 아내가 져주었다. 2012년 6월 16일. 가게를 정리한 지 일주일도 안 된 날, 나는 1톤 트럭에 몸을 싣고 거리로 나갔다.
“그래 한번 해보자, 참외가 남나 내가 남나!”: 트럭장사를 시작하며 처음 찾아간 곳은 참외를 전문으로 하는 도매 창고였다. 강남에 가게를 갖고 있을 때 창고 주인이 찾아와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매장을 정리하는 것을 알고 찾아와 나에게 트럭장사를 권했다. 물론 자신이 파는 참외를 떼다가 해보라는 것이었다. 창고 주인이 가게에 찾아온 것이 3월, 내가 가게를 접고 트럭장사를 시작한 게 그해 6월이니 시기적으로 잘 맞아떨어졌다. 창고 주인은 하우스 참외가 나오는 3월부터 시작해 10월까지 참외를 팔고, 11월부터는 창고를 닫다시피 했다. 내가 찾아간 6월은 한창 참외가 나올 시기여서 나는 참외를 싣고 거리로 나갔다. 또 한 번의 고비가 올 때까지 그렇게 몇 개월을 참외와 씨름했다.
트럭장사를 시작하고 몇 달을 억척스럽게 참외만 팔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길에서 아는 형을 만났는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직도 거기서 참외 떼다 파는 거야? 거기 참외 안 좋기로 소문났는데, 참외 등급 속여서 판다고 이 바닥에 소문 다 났어.” 나는 처음에 절대로 믿지 않았다. 그런데 이후에도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비슷한 소리를 했다. 그 길로 산지로 내려갔고, 농민들과 도매상들을 만나서 여러 이야기를 들은 후에야 나는 그야말로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트럭장사를 시작한 지 1년 반 만에 창고를 옮기고 독립적으로 트럭 장사를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좋은 물건을 싸게 주는 창고를 찾아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트럭장사 초기에 내가 지불한 수업료는 돈으로 쳐도, 시간으로 쳐도 제법 비쌌다. 그런데 그 덕에 나는 좀 더 예민하게 트럭장사의 물건을 가려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일로 인해 내겐 꿈이 하나 생겼다. 내가 트럭장사를 해서 빚을 다 갚고 나면 나 같은 트럭장사들을 위한 무언가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밑바닥에서 재기를 꿈꾸며 찾아오는 이들에게 잘 모르는 초짜라고 이용해먹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걸 하겠다는 결심이었다. 트럭장사들을 양성하고 좋은 물건을 대주는 창고를 운영하는 것도 좋은 목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럭장사 사관학교 〈국가대표 과일촌〉: 빚을 청산하고 나니 새로운 꿈과 비전에 대한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그 즈음에 〈국가대표 과일촌〉이라는 인터넷 카페도 운영하고 있던 터라 블로그와 카페를 오가며 일 얘기와 사는 얘기를 올렸다. 강남의 가게에서 장사할 때 내가 만든 브랜드가 〈국가대표 과일촌〉이었는데, 한동안 나의 모든 것을 담았던 것이라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당시 내 일이 트럭장사이다 보니 일상을 기록할 때 트럭장사 이야기도 가끔씩 올리기 시작했다.
그 즈음 어느 날, 물건을 떼러 지방에 다녀오느라 조금 늦게 나온 날이었다. 횡단보도가 있는 사거리에 트럭을 세우고 물건을 매만지고 있는데 주변에 서 있던 트럭 몇 대가 연거푸 자리를 정리하고 떠나기 시작했다. 종종 이런 일을 봐왔던 터라 별 생각 없이 있는데 옆 트럭의 아저씨가 다가왔다. “오늘 이 차 때문에 장사 글러먹었다고 몇 친구가 다른 자리 찾아 나섰어요. 그거 아세요?” 알고 보니 내 트럭이 들어오면 주변 장사가 잘 안 된다고 트럭장사 사이에 소문이 나서 다 자리를 뜨는 것이라고 했다. 미안한 마음에 캔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제가 죄송하네요.” “그거야 뭐 어쩔 수 있나, 다 같이 길에서 장사하는 처지에. 그런데 혹시 장사 좀 가르쳐볼 생각 없소? 내 아는 분이 트럭장사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이런 차에서 배우면 아주 잘 배울 것 같아서 소개를 좀 해주고 싶은데…….”
그 길로 아저씨는 내 연락처를 물었고 며칠 뒤에 트럭장사를 시작하고 싶다는 분이 직접 나를 찾아왔다. 전부터 트럭장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실제로 누군가에게 트럭장사를 가르쳐줄 기회가 생길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막상 장사를 해보려는 사람을 만나보니 도움이 절실해 보였다. 일단 내가 아는 것만큼만 알려드리자는 마음으로 수락했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알려줄 것이 참 많았다. 트럭을 사서 고치는 일부터 트럭 창고를 알아보고 거래를 시작하는 일, 트럭을 대고 목을 잡아서 장사를 하는 방법 등등, 게다가 ‘만만하게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자세도 중요하다.’는 잔소리도 만만찮게 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시행착오를 줄여줄 욕심에 이것저것 알려주는 데 며칠이 족히 걸렸다. 그 과정에서 나도 배운 게 많아 이 이야기를 블로그와 카페에도 올렸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사람들이 트럭장사에 대한 문의들을 해오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트럭장사를 계속하면서 이들과 협업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날 고민하던 중 떠오른 게 ‘트럭장사 맨투맨 집중교육’이었다. 나는 블로그의 닉네임을 ‘배 감독’으로 정하고, 집중교육의 이름은 ‘트럭장사 사관학교’로 정했다. 그렇게 하여 스스로 커리큘럼을 짜고 정리한 뒤 일사천리로 트럭장사 맨투맨 집중교육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면접도 교육비도 없었다. 연락이 닿으면 오라고 해서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차를 타고 나가 일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생각도 행동방식도 많이 달랐다. 내가 진정성을 갖고 알려주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겪어보니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어중이떠중이가 ‘체험 삶의 현장’같은 느낌으로 동행하는 것은 막겠다는 생각에, 고심 끝에 생각해낸 것이 면접과 교육비인데, 이는 이 일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의 진정성을 거를 최소한의 장치였다.
면접을 하면 절실한 사람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고, 직접 돈을 쓰게 하면 정신을 차리고 집중할 수 있겠거니 생각했다. 나는 절실하게 필요해서 트럭장사를 시작하려는 사람을 가려내는 절차를 마련했고, 이런 과정을 거쳐서 〈국가대표 과일촌〉일원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2014년 4월, MBC의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내 이야기가 알려졌는데, 나는 자영업을 시작해 멋지게 말아먹고 다시 재기를 꿈꾸는 트럭장사로 소개됐고, 이 방송은 트럭장사 배 감독을 세상에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안 파는 시간은 있어도 못 파는 시간은 없다 - 장사에 꿈을 담는 ‘꾼’의 노하우
트럭장사 유통기한은 3년: [가장 먼저 하는 일, 계획] 〈국가대표 과일촌〉일원들의 지갑에는 명함 크기의 종이가 하나씩 끼워져 있다. 힘들 때마다 꺼내보며 초심을 상기할 수 있도록 지니고 다니는데, 그 종이에는 자신만의 목표와 계획이 분명하게 적혀 있다. 트럭장사를 시작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명확한 목표와 꽉 짜인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더도 덜도 말고 3년짜리의 계획(3년 동안 내가 이루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얻고 싶은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국가대표 과일촌〉일원들이 들려준 3년짜리 목표는 이런 것들이다. 번듯한 가게를 차릴 목돈을 마련하고, 노하우를 배우는 것, 아내와 함께 문구공장을 시작하는 것, 부동산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그건 계획이 될 수 없다. 계획은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적이어야 한다.
[트럭장사는 디딤돌이다] “트럭장사는 직업이 아니다.” 이 말은 〈국가대표 과일촌〉일원들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이다. 트럭장사는 평생 직업이 아니라 원하는 삶의 밑천을 마련하게 해줄 디딤돌이다. 벽돌을 열심히 모아 건물을 지어야지, 벽돌 모으는 일에 머물러 있으면 삶이 허무해진다. 마찬가지다. 트럭장사를 열심히 해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해야지 트럭장사에 머물러 있으면 그다음 삶이 사라진다.
트럭장사, 이것만은 알고 시작해라: [트럭장사의 발, 트럭 구입] 차량을 구입할 때 다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내 차에 진열한 물건이 잘 보이겠는가, 많아 보일 수 있는가, 손님들이 쉽게 볼 수 있겠는가.’ 이 점을 고려해 자신의 목적에 맞는 차량을 고르면 된다. 라보라는 조그만 트럭도 좋고, 1톤 트럭도 좋다. 하지만 1톤 트럭을 넘어서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차체가 너무 높아 장사에 불편하기 때문이다. 1톤 트럭은 매대의 높이를 살펴야 하는데, 기아와 현대 둘 중에 선택하라면 현대 차를 권한다. 현대의 트럭은 짐 싣는 칸이 좀 낮게 설계되어 있어 물건을 진열하는 데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트럭 세팅법] 트럭이 정해지면 장사를 할 수 있게 차량을 세팅해야 하는데, 초기에 차량 꾸미는 데 드는 비용은 80만 원 안팎이면 적당하다. 트럭장사들은 천막 두른 차를 ‘호루차’라고 부르는데, 천막이 있으면 비바람으로부터 물건을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에 트럭장사를 시작하면 너도나도 천막을 두른다. 하지만 〈국가대표 과일촌〉에는 호루차가 한 대도 없다. 내가 천막을 치지 못하도록 막기 때문이다. 호루차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우선 번화가에 차를 세우기 힘들다. 주변 상인들은 가게 앞에 호루차가 서 있으면 쫓아 나와 간판을 가린다, 시야를 좁힌다 역정을 낸다.
더 큰 단점은 물건이 손님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는 것이다. 조금만 멀리 있어도 차양 때문에 물건을 알아보기 힘들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물건을 보며 지나가는 손님들에게도 호루차는 매력이 없다. 너무 장사꾼 냄새가 나기 때문에 선뜻 다가서지 않는다. 천막을 대신할 만한 것으로 가장 좋은 것은 접이식 차양을 설치하는 것이다. 필요할 때 펼쳤다가 접는 형태가 가장 안정적이다. 한편 트럭장사는 밤에도 장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조명 세팅도 필요하다. LED등은 배터리가 크게 닳지 않아 야간장사에 부담이 없다. 아울러 다양한 집기를 넣는 수납공간도 필요하다. 차 위나 짐 싣는 아래, 바퀴 사이에 캐비닛을 달아두면 물이나 플랜카드를 넣고 수시로 빼 쓸 수 있어 요긴하다.
[장사할 물건을 구입하는 세 가지 방법] 트럭 세팅이 완료되면 물건을 구입해야 한다.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은 서울, 경기 주변의 도매시장이나 지방의 공판장, 그리고 일명 ‘창고’로 불리는 트럭장사들의 물류창고 등이다. 그때그때 조금씩 물건을 구입해 장사하길 원한다면 도매시장을 이용하는 것이 낫다. 지방의 공판장은 사과만 전문으로 하는 곳 등 각 지방의 특색 과일에 맞게 도매시장처럼 경매를 하는 곳이다. 물건을 보관할 곳이 있다면 한 번씩 지방에 내려가 공판장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초보 딱지를 뗄 동안은 전문으로 물건을 공급해주는 일명 ‘창고’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초보들의 큰 고민거리는 시기마다 어떤 품목을 팔아야 할지 잘 모른다는 것인데, 여기서는 이 점을 보완할 수 있다. ‘창고’의 장점은 트럭에서 팔릴 수 있는 물건을 합리적인 가격에 가져온다는 점이다. ‘창고’를 이용하다 보면 조금 싼 곳이 있다고 개구리처럼 폴짝폴짝 옮겨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권할 일이 못 된다. 당장은 이익인 것 같아도 길게 보면 오히려 불리하다.
[품목 선정도 전략이다] 트럭에 물건을 갖다 놓는다고 다 팔리는 것은 아니다. 생물장사 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에 물건이 귀가 열렸다느니 귀가 먹었다느니 하는 표현이 있다. 말 그대로 귀가 열린 품목은 트럭이든 가게든 어디서나 잘 팔리지만, 귀가 먹은 품목은 아무리 싸게 준다 한들 절대 팔리지 않는다. 초보에게는 이것을 아는 게 힘든 숙제 중 하나이다. 프로 장사꾼에게도 숙제이긴 마찬가지다. 매장을 운영하든 트럭장사를 하든 언제나 중요한 고민거리인 게 매년 똑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잘 팔렸는데 올해는 안 팔릴 수도 있고, 이게 과연 팔릴지 고민했던 게 의외로 잘 나가기도 한다. 시장은 구매 패턴도 항상 움직이기 때문에 품목을 변경할 때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장사의 목을 잡아라] 트럭장사 초보나 일 년 정도 된 사람들의 최대 고민은 ‘자리’이다. 자리에 따라 팔리는 품목이 있고 안 팔리는 품목이 있다. 매일 같은 자리에 들어가는 스타일의 장사라면 그 동네에서 잘 팔리는 품목을 빨리 알아야 하고, 매일 가는 장사 스타일이 아니라면 잘 팔리는 곳을 찾아다녀야 한다. 단속반 때문에 자리 잡는 게 힘들다면 아파트 부녀회나 앞도바 또는 깔세를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앞도바는 가게 앞 여유 공간에 난전을 펼치고 장사하는 것이다. 깔세는 말 그대로 한 곳에서 한 달 내내, 때론 몇 달 동안 장사를 하는 것인데, 약간의 목돈이 필요하고 품목도 한 가지로 승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편 봄부터 가을까지 지자체의 행사를 쫓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행사장 장사도 있는데, 이것은 행사장을 전문으로 알선해주는 곳을 찾아서 연결하면 된다. 지방 5일장도 있는데, 여기도 전문으로 알선해주는 곳이 있다.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쫓아 장사의 목을 잡으면 되는데,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대원칙은 ‘고객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