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 게임
벤 대트너, 대런 달 지음 | 북카라반
비난 게임
벤 대트너, 대런 달 지음
북 카라반 / 2015년 11월 / 260쪽 / 14,000원
우리는 왜 인정 욕구에 집착할까
인정받기 위해 길들여진 인간
우리는 누가 공로를 인정받고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지 문제에 휘말리기 쉽다. 인정과 비난에 대한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보다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인간의 많은 행동은 진화로 설명할 수 있다. 최근 진화심리학자들은 생존에 대한 압박이 어떻게 초기 인류의 사고와 행동을 형성했는지 밝혀내는 데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이를 테면 우리가 기름지고 달콤한 음식을 선호하는 이유,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을 때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이유, 인종차별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유 등을 진화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우리의 사고와 행동 방식은 과거 아프리카 대초원 시절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인정과 비난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성향도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세라 브로스넌과 프란스 드 발은 애틀랜타 여키스국립유인원연구센터에서 침팬지와 꼬리감는원숭이를 대상으로 동물이 불평등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연구했다. 두 학자는 침팬지와 원숭이가 토큰(작은 돌멩이나 파이프)을 내면 먹이와 교환해주었다. 침팬지와 원숭이들은 토큰의 대가로 오이나 셀러리를 받았는데, 일부에게만 오이 대신 맛있는 포도를 주자 직전까지 오이에 만족했던 녀석들이 불만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오이에 등을 돌리고 화를 내며 연구원에 오이를 집어던지기도 했다. 이런 원숭이와 침팬지의 행동은 직장에서 차별을 당했을 때 우리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한편 박쥐의 행동을 연구한 학자들은 박쥐가 인간처럼 사회적인 관계를 기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중앙아메리카 지역에 서식하는 흡혈박쥐는 밤에 활동하며 대형 동물의 피를 빨아먹는다. 이들은 먹이를 구하지 못하면 동료에게 도움을 구한다. 매일 밤 박쥐들이 동굴로 돌아오면, 그날 운이 좋아 끼니를 충분히 해결한 박쥐들이 피를 게워 끼니를 충분히 해결하지 못한 박쥐에게 전해준다. 흥미로운 점은 박쥐에게 공정함과 상부상조에 관한 본능적 감각이 있어서 누가 많이 베풀었고 누가 욕심을 부렸는지 기억한다는 것이다. 동료 박쥐에게 도움을 구했다가 거절당하면 다음에는 그 인색한 박쥐와 나누어 먹기를 거부한다. 인간 역시 상호적인 사회관계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인다.
존 스테이시 애덤스는 기업행동심리학자로 형평성이론을 개발했다. 애덤스는 직장에서 사람들이 언제 어떤 이유로 부당한 취급을 받는다고 느끼는지 설명하고, 불공평하다고 판단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예측했다. 애덤스는 직원들이 일에 투입한 것(시간이나 노력, 개인적인 희생 등)과 고용인에게서 받은 결과(급여나 인정 등)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형평성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공정함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이 있어서 투입한 것에 비해 결과물이 어떤지 다른 사람과 비교하려고 한다. 만일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승진을 하지 못한다면, 누가 봐도 태만한 동료가 모두 부러워하는 자리로 발령이 난다면 우리는 상사에게 등을 돌리고, 심지어는 원숭이가 오이를 던지는 것과 유사한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불공평하고 인색하며 상부상조하지 않는 조직이라고 인지하게 되면, 협력할 기분이 사라지고 내가 당한 부당함을 갚을 방법을 찾게 된다.
고릴라보다 나을 것 없는 비난 본능
자기중심적 편향과 이중적인 기준 때문에 우리는 자신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게 객관적으로 대하지 못하는 듯하다. 자신의 결정과 행동은 아주 잘 이해하는 반면, 타인에게는 쉽게 짜증을 내고 비난을 퍼붓는다. 우리는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만 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관점과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타인의 행동에 대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종종 타인의 상황과 동기를 자연스럽게 단순화하고, 거기에 비난을 퍼붓는다. 우리에게는 다양한 상황에서 즉시 타인을 비난하려는 본능이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안에 자기 보호가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남을 희생양으로 삼아 책임을 전가하려는 충동도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코코라는 캘리포니아에 사는 암컷 고릴라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코코는 1,000여 개의 단어를 학습해서 연구원과 수화로 소통한다고 알려져 있다. 어느 날 밤, 코코는 가지고 놀던 장난감 고양이를 고장 냈다. 다음날 아침 코코를 담당하는 연구원이 어떻게 된 것인지 묻자, 코코는 대뜸 야간 근무하던 직원 탓이라고 대답했다. 초기 인류와 유사하게 코코는 자신의 잘못을 무심코 남의 탓으로 돌렸다. 벌을 받거나 ‘종족’(이 경우엔 코코를 담당하는 연구원 집단)에게 쫓겨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인류 조상들에 종족 집단에서 추방당하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인간의 선조인 유인원들도 그다지 어렵기 않게 책임을 남에게 떠넘겼을 것이다.
남을 희생양으로 삼는 행위는 고대부터 내려오는 관행으로, 대부분의 문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속죄라는 용어 자체는 성서에 나오는 유대교의 속죄일 의식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 의식에서는 염소가 인간의 죄를 짊어진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의식을 통해서 그 책임을 전가해왔다. 전가 대상은 토기를 비롯해 뱀이나 다른 동물, 때로는 인간까지 다양했다. 스코틀랜드 인류학자인제임스 프레이저는 이런 의식에 ‘악의 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이렇게 썼다
죄와 고통을 다른 존재에게 떠넘겨 대신 감당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미개인에게는 익숙한 사고방식이다. …… 나무나 돌 같은 짐을 우리 등에서 다른 사람의 등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신의 고통과 슬픔의 짐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 그가 대신 감당하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생각을 근거로 행동하며, 자신이 감당하고 싶지 않은 고난을 다른 누군가에게 떠넘기기 위해 수많은 불쾌한 수단을 만들어낸다.
프레이저는 고대인이 벌였던 기이한, 대개는 피를 불렀던 희생양 의식들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아랍 부족들은 역병으로 고통 받을 때, 병의 원인을 모두 가져가도록 낙타를 데려와 마을의 성스러운 장소에서 목을 졸라 죽였다. 인도 중부의 오래된 마을이 콜레라로 피해를 입자, 해가 진 후 주민은 모두 집으로 피신하고 성직자들이 거리를 다니며 지붕에서 지푸라기 하나씩을 뽑아 마을 사람들이 바친 쌀과 강황 등을 함께 태웠다. 성직자들은 닭의 몸에 칠을 한 뒤 연기가 이동하는 방향으로 몰고 가며, 닭에게 병이 옮겨가길 바랐다. 닭으로 실패하면 염소나 돼지를 이용하기도 했다.
가정에서 시작된 비난 게임
그건 아빠 탓이야
우리가 자의식을 형성하거나 가족 내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데 인정과 비난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가족과의 관계는 중요하다. 남들이 우리에게 잘한다, 혹은 잘못한다고 해주는 말이 우리 자신을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내 동료인 상담심리학자 브라이언 슈워츠는 어린 시절 즐거웠던 일(만들기, 아픈 사람 고쳐주기, 그리기 등)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은 자기 직업에 크게 만족했다고 말해주었다. 슈워츠는 상담을 받는 고객들에게 자기 직업을 여러 가지 행위의 집합이라고 생각해보라고 권유한다. 우리 직업에서 중요한 행위는 ‘연결하기’, ‘신뢰하기’, ‘협력하기’, ‘도와주기’ 등이 있다. 직장 내 관계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동료에게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인정받을 때다. 이사회에서 발표자로 뽑히는 것과 발야구 선수로 뽑히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지만, 우리가 느끼는 기분은 비슷하다.
동료와의 관계에는 때때로 가족에게나 기대할만한 만족감과 불만감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상사가 동료를 더 좋아한다거나 그 반대인 경우 상사를 부모와 비슷하게 느낀다. 직장에서 어떤 일이 계속 신경 쓰인다면, 이전에 가족에게 겪었던 일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전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어린 시절 느꼈던 감정이나 정서를 성인이 되어 만난 누군가에게 느낀다는 뜻이다. 그래서 상사는 의사(擬似) 부모가 되고 동료는 의사 형제가 된다. 우리가 가족 구성원의 특징을 무의식적으로 동료에게서 느낀다면, 혹은 직장에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을 마주한다면 정확하게 판단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능력이 크게 감소한다. 특히 공과를 평가하거나 평가받아야 할 때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상사가 엄격한 부모로 보이고 근무평가가 성적표로 느껴진다면 상황은 아주 흥미진진해진다.
나는 일전에 한 기업의 재무담당이사 한 명을 상담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나를 처음 보는 자리에서 “당신이 내 가석방 담당관이로군!”이라고 말했다. 인사부서에서 나에게 상담을 의뢰한 이유는 그 임원이 똑똑하지만 감성지능이 부족해서 직원들을 무섭게 대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가 직원을 심하게 야단쳤던 이유가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왜 나를 가석방 담당관이라고 생각했는지 물었다. “인사부서 말로는 내가 감성지능이 없다고 합니다만, 내 감성지능은 문제가 없다고요. 제길, 난 관리자가 되길 바란 적이 없어요. 내 반대를 무릅쓰고 관리자 자리에 앉히더니, 이제는 내가 ‘좋은 상사’가 못 되니까, 대인 관계 능력도 없는 멍청이라고 비난하고 있지 않소. 감성지능은 내게도 엄청나게 많으니 지도받을 필요 없고. 내가 코칭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정치적인 계략이오.”
그래서 나는 다른 질문을 했다. “감성지능 이야기는 당분간 하지 말고 정치 이야기나 해볼까요?” 그러자 그는 긴장을 풀고 조직 내 정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직장 내 거의 모든 일에는 정치적인 요소가 개입되어 있다. 안사부에서 코치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문제에 대해서지만, 실제로 겉으로 드러난 문제는 그 안에 숨겨진 복잡한 조직 문제의 징후일 뿐이다.
임원에게 무슨 일 때문에 인사부서가 나에게 전화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그는 최근 기업합병의 결과로 관리자가 되었고 그때부터 직원을 관리해야 했다. 직원들은 자기 업무로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그는 늘 사무실에 혼자 있지만, 여직원 한 명은 사사건건 그에게 직접 보고를 했다. 그녀는 그를 끊임없이 귀찮게 했다. 자기 자리가 없어질까 걱정한 나머지 항상 그에게 연락해 확인을 받았는데, 그가 보기에 정도가 심했다. 그는 인내심을 발휘해 정중히 아무런 문제가 없고, 그녀가 한 일에 만족하고 있으며, 일을 다 마친 후 결과물을 보내는 것이 매번 초안을 확인해달라는 것보다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어느 날 그는 복잡한 재무 모델 관련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전화해서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지, 질문하는 게 좋은지 물었다. 그는 너무 화가 나서 그만 귀찮게 하고 전화 끊으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 일 때문에 인사부서에 그의 관리 방식이 퉁명스럽고 불친절하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두 번째 만남에서 나는 그에게 인격 형성기의 경험 가운데 일과 관련된 것이 있다면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그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시작하자 왜 그가 그 여직원에게 그렇게 화를 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부모는 미국으로 이민 와 뉴잉글랜드의 이민자 공동체에 정착했고, 그는 동생 4명과 함께 작은 집에서 사느라 자기만의 공간이 없었다. 다른 동생들은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집에서 유일하게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인 식탁에서 난리법석을 피우며 노는 동생들을 조용히 시키느라 애쓰며 공부했다. 때로는 동생들이 숙제를 대신 해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그는 이제 뉴잉글랜드의 작은 집이 아니라 파티션이 질서 정연하게 줄지어 서 있는 회사에 있었지만, 그 여직원을 보면 여동생이 숙제를 대신 해달라고 조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런 무의식적인 연상 때문에 그는 지나치게 그녀를 비난했고, 결국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에게도 해가 되는 방식으로 행동했다.
나는 이러한 가족에서 파생된 감정 전이가 매우 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이가 긍정적일 때도 있다. 따뜻하고 서로 도와주는 관계가 생기고 끈끈한 정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역학 관계가 긍정적인 경우보다 훨씬 자주 나타난다. 미셸 콘린은 2004년 『비즈니스워크』에 「내가 나쁜 상사라고? 그건 아빠 탓이야」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 글은 전이가 업무에서 어떻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다룬 최초의 글이다. 이 글에서 콘린은 어느 첨단기업 임원이 회의석상에서 흥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임원은 다른 동료가 질문과 함께 설명을 요구하자, 포위당한 느낌이 들면서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느꼈던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자신이 비난받고 있다고 느끼자 상사의 책임이 더 크다는 식으로 행동하고 말았다. 경력을 망친 다른 임원들과 비슷하게, 그가 보인 심리학적 반응은 처음에 막으려고 했던 비판(실제 비판이었는지 혼자서만 비판이라고 생각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보다 더 심각한 어려움의 원인이 되었다. 이런 과잉 반응은 심리학적으로 탄광의 카나리아 같은 역할을 한다. 곧 더 큰 재앙이 닥친다는 의미다.
비난 게임의 심리적 배경
비난하지 않으면 비난 받는다
1950년, 뛰어난 수학자였던 앨버트 W. 터커는 ‘죄수의 딜레마’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인간이 상황에 따라 얼마나 행동이 극적으로 달라지는지 생생하게 묘사했다. 고전적인 형태의 죄수의 딜레마는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친구와 내가 경찰에 체포되었다고 가정해보자. 하지만 경찰은 우리를 기소할만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 우선 경찰은 친구와 나를 각자 다른 방에 가두어 서로 모습을 보거나 의사소통을 할 수 없게 했다. 그다음 각각의 방에 들어가 나와 친구에게 똑같은 제안을 했다. “친구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면 풀어주겠네.” 두 사람 모두 밀고자가 되길 거부하며 아무런 증언도 하지 않는다면 1년형을 받게 된다. 두 사람 모두 증언한다면 감옥에서 3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친구가 증언을 하고 나는 하지 않는다면, 나만 10년형을 받고 친구는 풀려날 것이다.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증언하거나 하지 않거나. 친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종종 회사에서 죄수의 딜레마에 처한다. 특히 일이 잘못되어서 긴장감이 고조되었을 때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 가령 누군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하자. 상사는 내가 저지른 실수인지, 내 동료가 저지른 실수인지, 혹은 둘 모두의 잘못인지 알려고 할 것이다. 상사는 나와 내 동료를 사무실로 따로 불러 이야기를 나눈다. 이런 상황에서 동료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일종의 보상이다. 내게 돌아오는 처벌이 줄어들거나 처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죄수의 딜레마 시나리오에서 친구를 고발하는 것을 ‘배신’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까다로운 점은 친구와 내가 모두 이기적으로 행동해 상대방을 배신한다면 친구와 내가 모두 침묵을 지켰을 때보다 결과가 나빠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두 사람에게 최적의 결과는 두 사람 모두 침묵을 지켜 서로에게 협조할 때다. 그러려면 반드시 상대방을 믿어야 한다. 하지만 감옥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상황, 혹은 회사에서 문책이나 강등, 해고의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서 상대방을 믿기란 매우 어렵다. 다시 말하지만 두 사람이 가장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신뢰가 있어야 한다. 서로 비난하는 일이 많은 직장에서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상호 최적의 효용’을 얻기 어렵다.
물론, 죄수의 딜레마는 극단적인 시나리오다. 현실에서 누구의 책임인지 알기 위해 그런 절차에 의지하는 상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신뢰가 있어야 협력이 가능하고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점은 일상의 현장에서도 유효하다. 또한 상사가 늘 누구의 잘못인지 찾아다니며 처벌로만 직원을 관리한다면 배신의 문화가 생겨나 협력이 사라진다. 해결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 유일한 방법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방법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과감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선택은 사실 굉장히 강력한 방법이며, 장기적으로 특히 그러하다. 그 이유는 신뢰가 없으면 사람들 사이에 비난이 생기지만, 비난을 감수하면 신뢰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