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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디아만디스, 스티븐 코틀러 지음 | 비즈니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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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디아만디스, 스티븐 코틀러 지음
비즈니스북스 / 2016년 2월 / 420쪽 / 16,800원
제1부 대담한 기술이 온다
어제의 세계는 잊어라, 기하급수 시대를 준비하라
[공룡 기업의 탄생] 1878년, 스물네 살의 조지 이스트먼은 로체스터 저축은행의 말단 사원이었다. 기다리던 휴가를 얻은 이스트먼은 산토도밍고로 가기로 했고, 여행의 추억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동료가 알려주는 대로 사진 촬영 장비를 몽땅 구입했다. 그런데 전부 구입하고 보니 그 장비라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스트먼은 끝내 이 휴가를 떠나지 못했다. 대신 이스트먼은 화학에 푹 빠져들었다. 당시만 해도 사진은 ‘습식’이었다. 하지만 이스트먼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 천부적인 소질이 있던 이스트먼은 채 2년도 안 되어 건판 제조법과 제조 기계를 발명했다. ‘이스트먼 건판회사’가 탄생한 것이다. 이스트먼의 발명가 기질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884년에는 롤필름을 발명했고, 4년 후에는 이 롤필름을 활용할 수 있는 카메라를 고안했다. 이렇게 해서 1892년 ‘이스트먼 코닥’이 탄생한다.
그 옛날 누군가가 조지 이스트먼에게 코닥의 사업 모델이 무엇이냐고 물었다면, 그는 아마 화학약품 자재상과 포목상의 중간쯤 된다고 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급변했다. “점점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는 ‘단순히 건판만 만들고 있는 게 아니라, 사진을 일상의 한 부분으로 만들고 있다’고요.” 이스트먼의 말이다. 그는 나중에 표현을 살짝 바꾸어 “사진을 연필처럼 간편하게” 만들고 싶었다고도 했다. 이후 100년 동안 이스트먼 코닥이 한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추억 비즈니스] 스티븐 새슨은 1973년, 사회 초년생이었다. 전기공학을 전공한 새슨은 코닥의 장치사업부 연구소에 입사하게 되었는데, 몇 달 지나지 않아 상관인 개러스 로이드로부터 부탁 하나를 받았다. 얼마 전에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전하를 트랜지스터로 쉽게 이동시킬 수 있는 CCD(전하 결합소자)라는 것을 처음으로 발명했으니, 그 장치를 코닥의 이미지 처리에 이용할 수 있을지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다. 결과는 과연 어땠을까? 뛰어난 기술자 몇 명과 소규모 팀을 결성해 연구를 시작한 새슨은 마침내 1975년 CCD를 이용한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와 디지털 기록 장치를 만들어낸다.
나중에 새슨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 장치를 시연하게 되면 말이죠. 그러니까 1976년에 코닥 같은 회사에서, 필름 없이 사진을 찍고 종이에 인쇄하지 않고 전자 화면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장치를 시연하면, 사람들이 기술에 관해 물어볼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런 질문은 하나도 없었어요. 사람들은 ‘언제쯤 제대로 출시되느냐’, ‘언제쯤 상용화될 것 같으냐’ 같은 것만 물어보았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96년, 코닥은 14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기업이 되어 있었다. 코닥은 사실상 분야 하나를 독점했다. 미국에서 코닥은 필름 시장의 90퍼센트, 카메라 시장의 85퍼센트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코닥은 자신들의 사업 모델을 잊고 말았다. 코닥의 시작은 분명 화학약품 및 종이 사업이었지만, 코닥이 시장 지배자가 된 것은 ‘편의 사업’에 종사하면서부터였다. 다시 말해 코닥은 ‘추억을 기록’하는 사업을 했다. 그렇게 추억을 기록하는 데 디지털카메라보다 더 편리한 것이 또 있을까? 그러나 20세기 말의 코닥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코닥은 디지털카메라가 자신들의 화학 사업과 인화지 사업을 좀먹고, 궁극적으로는 자기 경쟁을 강요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코닥은 디지털카메라 기술을 그대로 사장시켜버렸다. 그래서 이 신기술을 무시했던 코닥은 시장을 장악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됐고, 오히려 시장에서 수세에 몰리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앞을 내다보라] 1965년 고든 무어는 그동안 IC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의 수가 12개월에서 24개월마다 2배로 늘어났다는 사실을 눈치챘고, 이런 추세가 10년을 이어져왔으니, 앞으로도 이 추세가 10년은 더 유지되리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다소 빗나갔다. 무어의 법칙은 거의 60년째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분야의 발전은 기하급수적 성장의 전형 그 자체인데 숫자를 하나씩 더해가는 ‘산술급수적 성장’과 달리, 1이 2가 되고, 2는 4가 되고, 4는 다시 8이 되는 ‘기하급수적 성장’은 한 번에 2배씩 성장을 거듭하고, 무언가 곱절씩 커지게 되면 그 결과는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다.
예컨대 내가 샌타모니카에 있는 우리 집 거실에서 산술급수적으로, 성큼성큼 큰 걸음(한 걸음이 대략 1미터라고 했을 때)으로 30번을 움직이면, 나는 결국 30미터 떨어진 곳, 즉 길 건너편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똑같은 곳을 출발해 ‘기하급수적으로’ 30번을 움직이면 어떻게 될까? 나는 10억 미터 떨어진 곳, 다시 말해 지구를 26바퀴 돌고 난 지점에 서 있게 된다. 코닥이 범한 오류가 바로 이것이었다. 코닥은 기하급수의 힘을 과소평가했다.
[6D - 기술의 진보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 우리가 코닥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이런 변화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기하급수 특유의 특징들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이 부분의 설명을 돕기 위해 나는 ‘기하급수의 6D’라는 도식을 만들었다. 6D는 각각 디지털화(Digitalization), 잠복기(Deception), 파괴적 혁신(Disruption), 무료화(Demonetization), 소멸화(Dematerialization), 대중화(Democratization)를 말한다. 6D는 기술 진보의 과정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반응이며, 거대한 격변과 기회로 이어지는 급격한 발달 과정을 로드맵처럼 보여준다.
① 디지털화 - 혁신이 일어나려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교류해야 한다. 교류 속도는 인쇄술의 발명과 함께 어느 정도 가속화되었다가 컴퓨터의 등장으로 폭발적으로 빨라졌는데, 컴퓨터는 아이디어를 디지털로 구현하고, 저장하고, 교환할 수 있게 해주었다. 게다가 이런 전파 과정은 기하급수적 성장곡선을 따라 일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6D의 첫 번째 과정은 ‘디지털화’다. 물리적 형태였던 제품 또는 프로세스가 디지털 형태로 바뀌기만 해도 기하급수적인 성장 잠재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② 잠복기 - 디지털화 다음에 오는 것은 잠복기이다. 잠복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하급수적 성장을 눈치채지 못한다. 작은 수를 2배 해봤자 여전히 매우 작은 수이기 때문에, 그저 “느릿느릿 산술급수적으로 성장하나 보다.” 하고 오인하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하지만 벌써 대격변의 시기는 코앞까지 와 있다. 이들 숫자가 소수점 단위를 넘어서는 순간(1,2,4,8이 되는 순간), 20번만 곱절이 되면 100만 배, 30번만 곱절이 되면 10억 배의 발전을 이루게 된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기하급수적인 성장이 파괴적 혁신을 일으키는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이때쯤이다.
③ 파괴적 혁신 - 파괴적 혁신 기술이란 쉽게 말해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고 기존 시장을 파괴’하는 모든 혁신을 말한다. 안타깝게도 파괴적 혁신은 언제나 잠복기가 지난 후에야 시작되기 때문에, 새로운 원천 기술은 위협적으로 보이기보다는 웃어넘길 만큼 하찮게 보일 때가 많다.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도 그랬다. 화학약품 및 종이 사업의 분기 수익에 집착하고 있던 경영진은 머지않아 파괴적 혁신이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실제로 코닥은 회사 문을 닫게 된다. 본래 자신들이 하려던 사업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고 앞날을 내다보지 못했던 100년 기업은 결국 좌초했고, 기하급수적 성장이 파괴적 본성을 경고하는 또 하나의 반면교사 사례로 남게 됐다.
[후반부 3D] 디지털화와 잠복기, 파괴적 혁신은 세상을 급격히 바꿔놓았다. 하지만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연쇄 반응은 그 영향이 계속 누적되면서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에 이야기할 3D, 즉 무료화, 소멸화, 대중화는 앞서 이야기한 3D보다 훨씬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① 무료화 - 무료화란 등식에서 돈이 사라져버린다는 뜻이다. 코닥의 경우, 사람들이 더 이상 필름을 사지 않게 되면서 그들이 전통적으로 해오던 사업이 ‘증발’해버렸다. 한때는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코닥의 매출원은 이제 디지털카메라만 있으면 ‘공짜’인 것이 되어버렸다. 어찌 보면 이런 변화는 크리스 앤더슨이 『프리』에서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의 후속판이라 할 수 있다. 앤더슨은 그 책에서 경제에서 돈을 가장 쉽게 버는 방법 중 하나는 물건을 무료로 나눠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프리』를 썼던 당시에는 경제학자들조차 시장에서 일어나는 공짜 개념에 대해 연구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막상 ‘무료화’가 들이닥쳤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에 당했는지조차 몰랐다. 더욱이 무료화는 잠복한 상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기존 업계에서 이런 급격한 변화에 대비되어 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② 소멸화 - 무료화가 제품과 서비스에 지불하던 ‘돈’이 사라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반면, 소멸화는 ‘제품과 서비스’ 그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코닥의 경우 필름이 사라진 것은 문제의 시작에 불과했다. 디지털카메라가 생긴 데 이어 스마트폰이 발명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마트폰에는 수백만 화소의 고화질 카메라가 장착되는 것이 기본 사양이 되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스마트폰이 히트를 치자 디지털카메라 자체가 소멸화된 것이다.
③ 대중화 - 이제 스마트폰을 구입하면 필름과 카메라가 공짜로 따라오지만, 그래도 여전히 스마트폰을 살 때 드는 경성 비용(hard cost)은 그대로 남는다. 대중화란 이런 경성 비용이 누구나 지불할 수 있고 이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낮아지는 것을 뜻한다. 대중화야말로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기하급수적 연쇄 반응의 종착역이자, 무료화와 소멸화의 당연한 결과다. 물리적인 물건들이 ‘비트’로 바뀌고, 그 비트들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대량으로 관리되면서 비용이 ‘0’에 가까워질 때 대중화가 일어난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가 그랬고, 이들 기기로 인터넷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무선 통신 서비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재 구글과 페이스북은 지구상 모든 인류가 무료 내지는 초저가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드론과 벌룬, 위성 등을 띄우는 데 경쟁적으로 수십억 달러를 쓰려 하고 있다.
5대 유망 기술
[기하급수적 환경의 도래] 3D 프린팅은 현재 잠복기에서 파괴적 혁신으로 이행 중인 여러 강력한 기하급수 기술 중 하나에 불과하다. 내가 예상한 사업적 기회로 가득한 5가지 기술은 네트워크와 센서, 무한 컴퓨팅, 인공지능, 로봇공학 그리고 합성생물학이다. 기하급수 기업가로 성공하고 싶다면 이런 분야의 잠재력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기하급수 기업가들은 필요한 모든 힘을 수중에 갖고 있다. 수십억 달러짜리 회사가 이토록 빨리 만들어진 때는 없었다. 다음번에는 수조 달러짜리 산업들이 새로 만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기하급수 산업의 잔치에 한몫 끼겠다고 결정을 내리기 전에 가장 먼저 내디뎌야 할 첫걸음은 ‘이 길을 갈 수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일이다.
제2부 대담하게 생각하라
스컹크 워크스와 몰입
[냉전 시대에 등장한 조직혁신 방법론] 1943년 록히드의 수석 엔지니어 클래런스 켈리 존슨은 미 국방부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방금 유럽 상공에 독일군 제트 전투기가 출현했는데, 미국도 그에 맞설 전투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기한이 촉박했으나 켈리에게는 생각이 있었다. 켈리는 록히드의 시설로 가장 똑똑한 엔지니어 몇 명과 기계공 몇 명을 소집했다. 그리고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디자인을 해보라고 지시하면서, 록히드의 거대한 관료형 조직이 접근하지 못하게 벽을 둘러쳤다.
허가된 사람이 아니면 새 프로젝트의 목적에 관해 단 한 마디도 들을 수 없을뿐더러 이 팀의 임무에 대해 한마디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직원들은 임시로 빌린 서커스 천막에 묵었는데,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멀리 떼어놓으려고 일부러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나는 플라스틱 공장 옆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실은 말을 하고 싶어도 입을 벌리기가 쉽지 않기도 했다. 그곳에 모인 엔지니어 중 한 사람인 어브 컬버가 이곳을 ‘스컹크 워크스’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스컹크 워크스는 효과를 발휘했다. 정확히 143일 뒤, 미국의 첫 군용 제트기가 미 국방부로 배달된 것이다. 군사 프로젝트임을 감안해보면 그 정도 기간에 군납 업체들은 보통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는커녕 서류에 결재도 다 받지 못한다. 그러나 록히드의 스컹크 워크스는 이후 수십 년간 똑같은 성공 사례를 계속 만들어냈고, U-2, SR-71, 나이트호크, 랩터 등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비행기들을 줄줄이 내놓았다. 같은 방법론을 채용한 결과였다. 이런 비행기들 덕분에 미국은 냉전에서 승리하기도 했지만, 이들 프로젝트가 더 큰 영향을 끼친 곳은 조직 운영에 관한 부분이었다. 이후 반세기 동안 기업들이 대담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싶을 때면, 종종 스컹크 워크스가 그런 혁신을 성공시켜주곤 했다.
예로 애플의 공동 설립자 스티브 잡스도 이 방법을 사용한 적이 있다. 잡스는 1980년대 초 실리콘밸리의 굿어스 레스토랑 뒤편에 건물 한 채를 세냈다. 그리고 20명의 뛰어난 설계자들을 모아 자기만의 스컹크 워크스를 꾸리고 첫 번째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었다. 스컹크 워크스라는 방법론은 ‘어떻게 그렇게 매번 훌륭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 지금의 기업가들 혹은 대담한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인데, 아주 많은 관련이 있다.
[스컹크 워크스의 비밀 1 - 어려운 목표] 대담한 과제를 정복하는 일은 단순히 기술적으로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말도 못 하게 어렵다. 이 책을 쓰면서 인터뷰한 혁신가들이 하나같이 강조한 사항도 바로 ‘멘탈 게임’의 중요성이었다.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은 스컹크 워크스의 비밀이다. 전통적으로 ‘스컹크 워크스의 비밀’이라고 하면 켈리 존슨이 제시한 14가지 원칙부터 분석하게 마련이다. 유용한 접근법이고, 우리도 조금 후에 그 원칙들을 살펴보겠지만, 그 전에 먼저 이야기하고 넘어갈 것이 있다. 바로 이 방법론의 DNA에 새겨진 아이디어, 즉 해당 프로젝트의 ‘목적’에 관한 이야기다.
기업들이 일상적으로 스컹크 워크스의 방법론을 이용하지는 않는다. 혁신을 가속화할 수 있는 이 방법론은 언제나 ‘비’일상적인 사업과 관련된다. 스컹크 워크스는 심리학자들이 ‘어렵고 높은 목표’라고 말하는, 아주아주 어려운 목표에 도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법론이다. 그리고 스컹크 워크스가 성공할 수 있는 비밀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목표의 ‘어려움’이기도 하다. 1960년대 말에 심리학자 개리 레이섬과 에드윈 로크는 동기를 부여하고 성과를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목표 설정’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하지만 목표라고 해서 다 같은 목표는 아니다. 레이섬은 이렇게 말한다. “가장 많은 동기를 부여하고 생산성을 높이려면 목표를 크게 세우는 것이 최선의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관건은 주의력과 끈기다. 이 2가지가 성과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목표가 크면 주의를 더 집중하게 되고 더 끈기 있게 매달리게 된다. 그 결과 훨씬 더 효과적으로 일하고, 실패하더라도 기꺼이 일어나 다시 도전하게 된다.” 이것은 기하급수 기업가에게 매우 중요한 정보다.
하지만 로크와 레이섬은 이렇게 어렵고 높은 목표가 정말로 마법을 발휘하려면 특정한 중재자, 즉 조건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헌신이다. 레이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자신이 하는 일을 믿어야 한다. 큰 목표는 개인의 가치와 그 목표가 이루려는 결과가 서로 일치할 때 가장 좋은 효과를 낸다. 그렇게 해서 모든 조건이 만들어지면 우리는 온전히 그 일에 헌신하게 된다. 훨씬 더 많이 주의를 집중하고 실패에 대한 회복력도 커져서 결과적으로 생산성이 훨씬 더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