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로 본 비즈니스 전략
석산 지음 | 북카라반
조선사로 본 비즈니스 전략
석산 지음
북카라반 / 2016년 1월 / 320쪽 / 14,000원
조선의 이성계와 명나라 주원장 - 누가 레인메이커인가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 명나라를 개국한 태조 주원장. 봉건사회에서 세계적 변혁을 주도한 이들은 산업사회의 기업가와 같다. 세계 최고 여론조사 기업인 갤럽의 짐 클리프턴 회장은 현대의 기업가를 과거 인디언 주술사를 뜻하는 레인메이커라 불렀다. 레인메이커는 기업의 CEO뿐만 아니라 영업이사, 기획부장, 관리실장, 홍보과장, 영업사원 등도 될 수 있고 심지어 기업의 주력 상품도 될 수 있다. 산업사회의 레인메이커들이 전혀 다른 차원의 신산업 동력을 발굴해내는 것처럼 주원장과 이성계도 전혀 색다른 나라를 만들었다.
14세기 중반 고려와 원나라에서는 전통적 강점이 더는 작동하지 않았다. 두 나라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강력한 통합력과 원대한 이상, 기동성의 세 가지 강점을 가지고 일어섰다. 몽골 제국인 원나라는 칭기즈칸이 13세기에 고비사막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건국했다. 그리하여 세계의 절반에 해당하는 유라시아 전역을 호령한 역사상 최대 제국이 되었다. 칭기즈칸은 역대 중국 왕조가 몽골 고원의 유목 부족이 뭉치지 못하도록 이이제이 전략을 펼쳐온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먼저 고원의 모든 부족을 통합했고 중원으로 내려가 유라시아 대륙을 돌풍처럼 달려 10만 군사로 약 3억에 가까운 주민을 정복했다.
후삼국시대에 일어선 고려는 옛 대제국 고구려의 영광을 되찾자며 삼한의 호족들을 통합해 일어섰다. 고구려 땅을 내줄 수 없다며 거란과 맞섰고 한때 거란의 조공을 받기까지 했으며 중국의 송나라마저도 고려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이렇게 세워진 원나라가 150년 만에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그런 고려를 창업 475년 만에 이성계가 조선으로 교체했다. 원과 고려의 말기 증상은 모두 유사했다. 첫째, 두 나라가 태동기에 지녔던 혁신 의지의 실종. 둘째, 지배구조의 낮은 투명성에 따른 비효율적 경영 판단. 셋째, 둘째에서 비롯된 고비용, 저효율이었다. 주원장과 이성계는 원나라와 고려 조정의 무사안일과 무한 반복되는 판단 착오를 보면서 역동적인 모델을 구상한다.
원나라와 고려 모두 조정 내부에서 통치권 쟁탈에 몰두했고 이 때문에 두 나라의 정신적 지주였던 종교가 함께 타락했다. 라마교에 탐닉하던 원 황제 혜종은 대규모 사찰에서 화려한 법회를 열어 국고를 탕진했고 승려 가린천에게 미혹당해 방중술에 빠져 지냈다. 본디 불교의 나라였던 고려 역시 후반기로 갈수록 권력과 불교가 결탁해 백성을 갈취했으며 개혁을 시도했던 공민왕도 노국 공주가 죽자 파계승 신돈에게 전권을 맡겨, 이후 고려의 국정은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진다.
중국 대륙에서는 주원장이 유교의 통치 이념을 내세우며 반원의 기치를 들고 거세게 일어났고, 삼별초항쟁 이후 원나라의 부마국이 된 고려에서는 신흥 세력 이성계가 전면 개혁을 내세우며 권문세족과 부딪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성계와 주원장은 레인메이커로서 몇 가지 특성을 보여주었다.
도전, 그 자체를 즐긴다: 이성계나 주원장 같은 사람들은 누구도 억누를 수 없는 열망이 기세로 표출되기 때문에 서로 알아본다. 눈빛과 걸음걸이와 전신에서 형형한 기세가 풍겨난다. 본래 고려의 이성계나 원나라의 주원장은 당시 사회의 체제 속에서 주도적 위치에 오르기 어려운 신분이었다. 이성계는 고려 변방 함경도 영흥의 일개 무장 출신이고 주원장은 건달로 지내다가 생계를 위해 홍건적에 들어갔다.
고려 고종 때 전주 호족 출신인 이성계의 고조부 이안사는 고을 수령이 자기 여인에게 집적대자 맞서 싸우다 투옥될 것을 우려해 170여 가구를 데리고 남경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원나라의 지방관이 된다. 이후 그의 아들 이행리, 손자 이춘, 증손자 이자춘도 원나라가 고려의 옛땅 함경도에 설치한 쌍성총관부의 지방관이 된다. 1355년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은 원나라가 기울고 있다고 일찌감치 판단하고 공민왕과 내응해 고려가 쌍성총관부를 수복하도록 돕는다. 그 공으로 동북면 병마사가 되었다. 이후 소년 시절부터 ‘동북면의 명궁’으로 명성을 날리던 이성계는 아버지를 도와 고려 변방을 지켰다.
비슷한 시기 중국 대륙에서는 반원의 기치를 든 주원장이 용트림을 했다. 그는 빈민 지역인 호주에서 최빈민층의 자제로 태어나 17세에 전염병으로 양친과 가족 모두를 잃고 고아가 된다. 탁발승이 되어 구걸하며 겨우 연명하다가 25세 때 굶주림을 참지 못해 도적 떼인 홍건적의 곽자흥에게 몸을 의탁한다. 이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곽자흥의 양녀 마씨와 결혼한다. 보석은 모래 속에 묻혀 있어도 빛이 나는 법이다. 주원장은 곽자흥이 죽자 그 일족을 전멸시키고 홍건적을 장악한 뒤 남경 공격을 추진한다. 이후 적극적으로 인재를 모으며, 불살(不殺) 정책을 내세우고 약탈자의 모습이 아닌 정권 인수 능력을 지닌 지도자의 이미지를 만들어간다. 당시 중국에서는 송나라의 한족을 무너뜨린 원나라 몽골족에 대한 원성이 자자했다. 이에 주원장이 ‘한족 왕조 회복’을 기치로 내걸어 한족의 ‘떠오르는 태양’으로 부각된다.
주원장이 한참 중원을 누비며 위명을 떨칠 때, 이성계는 한반도에 출몰하던 왜구와 홍건적, 여진족 등을 막아내며 주목받는다. 기병 전술의 천재 이성계가 거느린 북방 기병은 2,000명 정도로 적들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기병대들이 적진을 교란시키는 동안 이성계는 말을 타고 순식간에 적진으로 깊이 쳐들어가 적장을 단칼에 벴다. 홍건적 20만 명이 쳐들어 왔을 때에도 기병 2000명을 이끌고 적장을 베었고, 1362년 원의 나하추가 수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쌍성총관부를 탈환하려고 침략했을 때도 별동대를 이끌고 후방 수뇌부를 기습 공격해 섬멸했다. 나하추는 이성계에게 패하자 자신이 타던 말을 이성계에게 바치며 화친을 청한 뒤 주원장을 찾아가 투항했다. 이성계가 북방 이민족과 남방 왜구의 침략과 맞서 싸우며 백전백승하던 1367년 어느 날 33세의 이성계는 주원장의 명성을 듣는다. 주원장이 원 세력을 몰아내며 중원을 경략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자신보다 낮은 신분으로 원을 뒤엎고 있을까?’ 궁금해진 이성계는 천리마를 타고 여진족 출신 이지란과 함께 주원장이 머물고 있던 낙양까지 머나먼 거리를 직접 찾아갔다. 그때 주원장은 군막에 머물며 원과의 일전을 앞두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 조우했을 뿐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았다. 이 짧은 순간에 이성계를 얼핏 본 주원장은 왕재임을 기억해두었고, 이성계는 한눈에 주원장이 천자가 될 인물임을 직감했다. 사람은 자기 눈높이만큼 타인을 본다. 즉, 인물이 인물을 알아본다. 이성계는 주원장에게서 자신이 품은 창업의 웅지를 보았고, 조선 개국의 키포인트인 ‘배원친명’을 결심한다. 감성지능의 저자 대니얼 골먼은 탁월한 성공을 거둔 기업가들의 순간적 결정과 일반인들이 긴 시간을 들여 엄청난 데이터를 보고 내리는 결정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없음을 발견했다.
기업가에게는 데이터를 넘어서는,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직감이 있다. 이는 통찰력이 크고 넓기 때문이다. 세상을 넓게 보고 나와 다른 의견도 다른 것으로 매도하지 않고 참고할수록 순간적 판단력이 향상된다.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일수록 순간적으로 정확하게 결단해야만 할 경우가 많다. 그런 순간에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싶다면, 나와 다른 의견도 경청하며 통찰력을 길러야 한다. 평소 다양한 계층의 사람을 만나 다양한 분야의 문화를 경험하면 좋을 것이다.
탁월한 기업가들은 급변하는 시대에 순간적 직감으로 정확한 결단을 내릴 수 있다. 당시 주원장은 하락세인 원 왕조에 결정적 타격을 주는 일에 몰두했고, 이성계는 부패할 대로 부패한 고려 조정의 대안이 되고자 몰두했다. 천하 통일에 몰두하는 주원장과 새 왕조를 만들려는 이성계, 두 사람의 집념 어린 몰두에 동화된 주변 사람들도 사력을 다해 목표를 향해 함께 전진했다.
갤럽의 클리프턴 회장은 기업가 자질을 검증하는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기업가는 타고난다’고 결론 내렸다. 이른바 명문 MBA 출신 중에서 기업가가 많이 나올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MBA 출신 가운데 기업가의 자질을 가진 사람은 0.5퍼센트 정도에 불과했다. 만일 기존 조직이 기업가 자질을 가진 사람들을 고용했다면 그들의 혁신적 가치와 고객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창업의 길로 간다. 주원장과 이성계가 그런 케이스다. 그래서 주원장도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원나라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이성계도 500년 고려에 도전했다. 창업주나 창업군주는 모두 이 기업가 정신이 충만하다. 아무리 큰 기업이나 나라도 기업가 정신이 약화되면 쇠락한다. 기업가 정신에는 재능의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지만 환경도 중요하다.
‘무엇’이라는 질문 대신 ‘왜’ 그래야만 하는지 물어라: 기업가는 전통이나 인습 등 당연시되는 모든 것에 회의를 갖는다. 물론 리스크가 따른다. 이 리스크를 최소화하되 그렇지 못할 경우 감수한다. 레인메이커의 특징은 시대를 알고, 시대의 유동성을 수용하도록 자신의 그릇도 키우고 구성원들을 자각시킨다. 고려는 귀족과 무신 중심의 불교 나라로 400년 이상을 이어왔다. 당신이라면 이런 나라에서 사대부 중심의 성리학을 내세울 수 있겠는가? 이성계는 그렇게 했다. 그래야 레인메이커다. 동서고금에 혹독한 시련을 거치지 않은 레인메이커는 없다. 주원장과 이성계는 이런 과정을 거쳤다.
이성계는 주원장을 만나고부터 친명반원 정책을 모색했고, 이런 이성계 주변에 고려 말 유입된 성리학을 따르며 신권(臣權) 중심의 왕도 정치를 주장하던 이색, 정몽주, 권근, 정도전 등이 차츰 모여들었다. 이들 신진 사대부들이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이후 권력을 장악했으며 정도전 등은 고려 왕실을 해체하고 아예 새 왕조를 만들고자 했다. 이에 온건파인 정몽주가 반대하다가 선죽교 위에서 이방원이 보낸 조영무의 철퇴를 맞았다.
고려의 왕실을 지켜줄 충신이 사라지자 결국 고려는 475년 동안의 통치를 끝으로 막을 내려야 했고 이성계는 그 후 공양왕을 폐하고 1392년 왕위에 올랐다. 그렇게 조선 500년의 서막이 열렸다. 그에 앞서 주원장은 1368년 스스로 황제에 올라 명나라를 세웠으며 세계 재국 원나라를 ‘양 치던 고향’ 몽골로 몰아냈다. 몽골의 힘으로 잠시 유지되던 아시아와 유럽의 평화는 무너지고 유럽에 백년전쟁이 발발한다.
주원장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한 명나라를 세웠고 이성계도 숭유억불의 조선을 개국한 것이다. 한 조직의 리더는 그 조직의 가치를 권위적으로 재분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조직의 크기에 비례해 리더가 구사할 힘도 커진다. 리더가 변화를 주도하거나 제대로 읽으면 조직은 승승장구한다. 변혁의 시대 또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자 할 때 특히 주원장과 이성계가 가진 기존 체계에 대한 의문 방식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주원장은 기존 조직의 통치 개념과는 다른 내부의 절실한 요구를 감지했다. 원을 통치하는 몽골족의 지배를 벗어나려는 한족의 심리를 감지하고 한족의 국가 재건을 내세웠다. 이성계는 패권 정치에 실망한 고려인들에게 성리학에 근거한 왕도 정치를 제시하며 신바람을 일으켰다. 또한 제한적인 고려의 인재 등용 정책과 달리 인재 기용의 풀을 넓혔다. 본래 고려의 통치 그룹은 셋이었다. 고려 전기의 문벌 귀족 가문과 무신정권 때 득세한 일부 가문 그리고 무신의 난 이후 대원 관계에서 등장한 권문세족 등이었다. 이들 귀족 가문의 자제들은 음서제 등으로 등용되었다. 그러나 이성계는 고려 조정과 달리 다양하게 인재 등용의 폭을 넓혔다.
사람은 자기 그릇만큼 다른 사람을 평가한다. 주원장도 한눈에 알아본 이성계를 고려 권문세족은 무시했다. 고려사회는 전통 귀족사회로 지방 향리 출신은 중앙에 중용되기 어려웠다. 태생적으로 이 한계를 지닌 이성계는 귀족 출신이 아닌 인재들과 함께 전혀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밖에 없었다. 이성계는 자신과 같은 지방 향리 출신뿐 아니라 반대 세력인 일부 귀족들 심지어 오랑캐로 부르며 혐오하던 여진족까지도 포용했다. 주원장은 세계 제국이라는 하드웨어에 가려진 한족의 열망을 대변했다. 당시 한족은 자신들의 오랜 전통을 무시한 몽골의 풍속에 짓눌려 있었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는 당시 원나라를 무너뜨리는 주원장을 보고 당시 세계가 나아갈 미래를 보았다. 그에게 정도전, 하륜 등 걸출한 인재가 합류했고 이성계는 이들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성계는 왕에 오른 뒤 다섯째 아들 이방원을 명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이방원이 명나라 태조가 된 주원장에게 “이성계가 제신들의 추대로 새 나라를 만들었다”고 통보했다. 그러면서 이방원이 품속에서 이성계의 화상을 꺼내 바쳤다. 이 그림을 본 주원장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짐이 일찍이 경의 부친을 만난 적이 있소. 이미 그때 그대의 부친을 임금 될 만한 인물로 짐작했소.” 그러더니 내시에게 필묵을 가져오라 했다. 붓을 든 주원장은 이성계의 초상화 옆에 일필휘지로 써 내려갔다. ‘탁탁진중일견인’ 탁탁은 주원장이 머물던 낙양이 있는 진의 이름이다. 오래전 그곳에서 얼핏 본 이성계를 기억했던 것이다. 주원장은 초상화를 이방원에게 돌려주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경에게도 군왕의 기상이 엿보이는구려, 하하…….” 이방원은 주원장의 말에 뜨끔했다. 35년 전 부왕 이성계가 주원장을 만났던 때는 자신이 태어난 해였다. 그만큼 주원장은 사람 보는 눈이 탁월했고 그런 시각으로 주위 인재를 구성해 미래를 선점할 수 있었다.
주원장 같은 글로벌 역량과 창의성을 지닌 인재라 하더라도 함께할 동조자를 확산시켜야만 한다. 이를 위한 3가지 원칙이 있다. 먼저, 조직원의 절실한 욕구를 파악해 그 욕구를 성취 가치가 있는 사명으로 만들어야 한다. 칭기즈칸 이후 원나라는 세계 제국으로 군림하며 지배층을 몽골인으로 채웠다. 중화 민족이라 자부한 한족의 자부심은 여지없이 짓밟혔다. 최고 빈민 출신 주원장은 이러한 한족의 정서를 알고 ‘원 황실은 몽골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이런 주원장에게 한족은 하릴없이 빠져들었다.
또한, 나와 함께라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현실적 기대감을 높여야 한다. 고려 말 왜구는 39년 동안 1년에 평균 15회 이상 침입했다. 북방을 지키던 이성계가 왜구 침입을 막기 시작하면서 왜구들의 침범 횟수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혹 침공했더라도 이성계가 나타나면 퇴각했다. 권력 다툼과 수탈에 눈먼 친원 귀족들에 비해 살신성인하고 능력까지 갖춘 이성계는 고려 백성에게 구세주로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각자의 능력을 구체적으로 현실화할 과정을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권력은 말 위에서 잡아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려와야 한다. 이성계나 주원장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이성계는 권력을 잡은 후 집권 이념과 정책 대안을 내놓은 신진 사대부를 측근에 배치했다. 고려인들은 무인 중심의 이성계 측근에 ‘민심이 천심’이라는 성리학자들이 포진하자 이성계를 더욱 신뢰했다. 주원장도 초기에 홍건적을 끌고 무자비하게 세력을 확대했으나 그 후 불살 정책을 표방하고 대륙에 군웅할거하던 유력자들을 등용하며 지도자로서 권력 유지 능력과 인품을 보여주었다.
기업가 정신은 혁신을 창출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혁신이 성공하거나 상업화로 연결되진 못한다. 주원장이나 이성계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나라를 꿈꾼 혁신가는 있었다. 하지만 레인메이커는 단순한 혁신가가 아니다. 레인메이커가 온 땅에 비를 내리듯이 기업가는 동조자를 확산시켜야 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이를 대중화ㆍ상업화라고 표현할 수 있다. 주원장과 이성계가 성공한 이유도 자신들의 새로운 가치를 인정하고 따르는 사람들을 모으고 포용했기 때문이다. 기업가는 상업화를 통해 신규 수요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증가시킨다. 인류의 발전에는 혁신적 아이디어 못지않게 대중화ㆍ상업화가 중요하다. 이성계와 주원장은 처음 뜻을 세우고 거듭 실패하면서도 자신을 키웠다. 그 과정에서 도전ㆍ질문ㆍ확산의 3단계를 거치며 앞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