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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 코드

에이미 윌킨슨 지음 | 비즈니스북스



크리에이터 코드

에이미 윌킨슨 지음

비즈니스북스 / 2015년 9월 / 352쪽 / 16,000원





Code 1 빈틈을 찾아라



새로운 발상의 채집가들

발명가 딘 카멘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떤 문제를 보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이 분야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왔는지 개의치 말고 전혀 다른 업계로 눈을 돌려 혹시 지금 이 문제에 적용하면 해법이 될 만한 기술이 있는지 찾아보자.” 카멘은 세그웨이 PT 주행기, 오토시린지 약물주입펌프, 아이봇 전지형 휠체어 등을 개발한 사람이다. “나는 다른 분야에서 다른 사람이 찾은 해법을 찾아서 그냥 살짝 바꿔봅니다. 그러면 어쩌다 한 번은 통해요.”

카멘은 이처럼 간극을 뛰어넘어 아이디어를 이식하는 태양새형 크리에이터이다. 그는 뉴햄프셔 주 베드퍼드에 있는 널찍한 육각형 집에 사는데 그곳은 원래 헨리 포드 소유였던 대형 증기기관차를 비롯한 각종 별난 물건들로 가득하다. 카멘은 다른 분야에서 효력을 발휘하는 해법을 찾아서 그 용도를 바꾼다. 세그웨이 PT를 설계할 때 그는 항공우주 산업에서 이용하는 자이로스코프 기술을 차용해서 제품이 쓰러지지 않고 달릴 수 있게 했다. 아이봇 휠체어는 위아래로 둥글게 원을 그리며 서로 위치를 바꿀 수 있는 두 열의 바퀴를 활용해 탑승자가 계단을 ‘걸어 올라가고’ 최대 180센티미터까지 ‘일어설’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가 만든 루크 암 의수(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루크 스카이워커의 이름을 땄다)는 착용하기만 하면 불가능한 동작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태양새형 크리에이터는 어떤 사람인가? 태양새형은 기존의 개념을 변형해 다른 지역, 다른 사업에 이식하고 낡은 아이디어를 쇄신한다. 태양새는 아프리카, 아시아, 호주 일부 지역에 서식하는 작은 새를 말한다. 벌새처럼 태양새도 꿀을 주로 먹고 산다. 그래서 이 봉오리 저 봉오리로 날아다니며 꽃가루를 옮긴다. 태양새형 크리에이터는 태양새처럼 실제 현장에서 효과를 내고 있는 발상들을 채집한다. 그래서 기존의 아이디어를 다른 용도로 쓰는 것이 아주 강력한 발견 기법이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다. 태양새형은 이곳의 해법을 옮겨서 저곳의 필요를 충족시킨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의 CEO 하워드 슐츠는 이탈리아로 출장을 갔을 때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을 인상 깊게 보았다. “여럿이 마음 편히 어울리는 모습이 마치 가족 같아 보였습니다.” 그것은 밀라노 같은 도시의 중요한 문화적 특성이었다. 그 시절에 미국인들은 집 밖에서 커피를 마실 때 동네의 작은 식당을 주로 이용했다. 여기서 슐츠는 ‘제3의’ 찻집 문화를 일굴 기회를 봤다. 직장과 가정 사이에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공장소로 카페를 만드는 것이었다. 미국에는 아직 그런 곳이 없었다. 다른 데서 통하는 아이디어를 이식할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되진 않았다. 슐츠가 미국에서 에스프레소 바를 열겠다고 마음먹고 처음으로 차린 일 조르날레는 이탈리아 카페의 분위기를 그대로 흉내 낸 것이었다. 보타이를 맨 종업원과 오페라가 흘러나오는 배경음악까지 판박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슐츠는 시애틀 사람들이 그런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기존의 개념을 살짝 변형해서 오페라 대신 재즈와 블루스를 틀고 손님들이 굳이 바에 서서 커피를 마시지 않도록 의자를 놓았다. 이렇게 재단장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슐츠가 편하게 커피를 홀짝이며 노트북으로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원하는 미국인들의 마음을 간파한 데 있었다.

태양새형 크리에이터는 실효성 있는 아이디어를 알아보고 그것을 다른 데 접목할 방법을 궁리한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가 어떤 이유로, 어떤 식으로 효과를 발휘했는지 따져본 후 유사점이나 차이점을 살린다면 같은 효과를 발휘할지 생각해본다. 슐츠 같은 태양새형 크리에이터들에게는 이러한 계산이 몸에 배어 있다. 태양새형 크리에이터가 해법을 멀리 이식할수록 획기적인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빈틈이 좁으면 점진적으로 혁신이 일어나고 빈틈이 넓으면 더 참신한 창조물이 나온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건축가형 크리에이터

건축가형 크리에이터는 어떤 사람인가? 이 유형의 크리에이터들은 백지 한 장으로 시작해서 마침내 건물을 세우는 건축가들처럼 백지 상태에서 해답을 찾는다. 건축가형은 일단 무엇이 ‘없는지’를 확인한다. 기존의 해법에 주목하지 않고 현재 빠져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주목한다. 침묵에 귀를 기울이고 남들이 등한시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것이 감지되면 “왜?”라고 묻는다.

우주여행은 비용이 많이 들고 매우 복잡한 사안이다. 엘론 머스크는 우주여행 비용을 극적으로 절감하기 위해 기존의 로켓보다 더욱 발전된 로켓을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 머스크는 기존의 로켓들이 왜 그렇게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지에 의문을 가졌다. 그가 보기에 로켓 개발은 비용은 일절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최대한의 성능을 갖출 수 있도록 진행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로켓은 거의 대부분 딱 한 번만 사용되고 폐기되기 때문에 비쌀 수밖에 없었다. 머스크는 결국 로켓의 재사용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정부가 위험을 기피하는 대형 항공우주 기업들로부터 실비 정산 방식으로 실제 제작비용 전액을 보전해주는 것도 로켓 비용이 비싼 이유 중의 하나로 보았다. 정부로부터 로켓을 수주 받은 보잉, 록히드 마틴과 같은 기업들은 로켓 부품을 하청기업들에 맡겨 생산하고 있어 비용도 더 많이 들고 로켓의 구조도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머스크는 기술 발전의 기폭제가 될 새로운 기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마침내 스페이스엑스를 설립했다.

건축가형 크리에이터는 이런저런 가정을 분석하고 다양한 변수를 시험해서 새로운 해법을 도출한다. 머스크는 먼저 이렇게 물었다. “로켓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로켓은 알루미늄합금, 티타늄, 구리 탄소섬유 등 값비싼 재료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로켓의 가격에서 이러한 자재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2%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 머스크는 훨씬 적은 비용으로 로켓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 현재 스페이스엑스는 로켓 부품의 80%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

새 길을 닦으려면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뚝심 있게 전진해야 한다. 스페이스엑스는 세 번의 실패 끝에 마침내 2012년 5월 로켓 발사에 성공했다. 그 후 머스크가 잇따라 개발에 성공한 차세대 로켓들은 나사와 유럽우주기구 같은 국가 차원의 우주탐사 프로그램에서 개발된 로켓들의 10분의 1 정도의 저렴한 비용으로 화물 탑재 캡슐을 우주로 보내고 있다. 이 경우에서 보듯이 건축가형 크리에이터는 ‘문제를 찾는 사람’이다. 이들은 마찰점, 걸림돌, 장벽을 알아보고 새로운 해법을 도출해낸다.

조화의 창조자, 통합자형 크리에이터

크리에이터들 중에는 다양한 곳에서 해법을 끌어와서 혼합할 줄 아는 통합자형 크리에이터들도 있다. 연 매출 36억 달러의 패스트캐주얼 멕시코 식당 치폴레의 설립자 스티브 엘스를 뉴욕 본사에서 만났을 때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꼬맹이 때부터 선택이란 걸 잘 못했어요. 부모님이 뭘 고르라고 하면 ‘둘 다요!’라고 대답했죠. 원래 그런 사고방식을 타고난 것 같아요.”

엘스는 어렸을 때부터 텔레비전으로 요리사 줄리아 차일드가 나오는 방송을 즐겨 봤다. 일찍이 초등학생 때 홀란데이즈 소스 만드는 법을 터득했고, 고등학생 때는 요리책을 수집하고 자신이 만든 요리로 만찬을 열곤 했다. 엘스가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 주 하이드파크의 미국요리원에 들어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후 그는 샌프란시스코로 거처를 옮겨 레스토랑 스타스에서 유명한 요리사 제러마이아 타워와 함께 일하게 됐다.

쉬는 날이면 엘스는 샌프란시스코의 미션 지구로 가서 멕시코 요리의 양념, 향취, 풍미에 흠뻑 빠져 살았다. 어느 날인가 한 멕시코 음식점에 갔는데 대기 손님 줄이 가게 밖으로까지 나가서 모퉁이를 끼고 돌 정도가 됐다. 그렇게 기다려서 먹어도 좋을 만큼 요리가 신선하고 매콤하고 맛있었다. 엘스는 줄을 선 손님이 몇 명이고 줄이 얼마나 빨리 줄어들며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얼마어치를 먹는지 적은 다음에 얼른 셈을 해봤다. 그랬더니 그 식당은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엘스는 신이 나서 제약회사 간부인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티브, 그러니까 부리토 장사를 하겠다고?” 2주 후 엘스는 콜로라도 주로 가서 생애 첫 식당 임대차계약에 서명했다. 그렇게 1993년에 치폴레 1호점이 문을 열었다. 엘스는 기존의 패스트푸드 식당과 정반대의 패스트푸드 식당을 만들 계획이었다. “치폴레를 시작할 때 고급 식자재를 쓰면서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적당한 가격에 음식을 팔고 싶었어요.” 미국요리원에서 갈고닦은 솜씨와 멕시코 음식 거리에서 익힌 기술을 잘 버무려서 그는 ‘패스트캐주얼’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식당을 창조해냈다.

경계선을 넘어 아이디어를 이식하는 태양새형이나 백지 상태에서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건축가형과 달리 통합자형 크리에이터는 기존의 요소들을 혼합해서 참신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통합자형은 서로 반대되는 것들을 조합해서 새로운 진로를 개척한다. 양념을 특이하게 조합하면 이색적인 음식이 나온다. 복고풍과 현대식을 융합하면 새로운 유행이 시작된다. 그런데 통합이란 것이 남의 결과물일 때는 당연하게 보이지만 직접 하기란 쉽지 않다. 통합자형 크리에이터는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을 아우를 기회를 발굴하고, 이질적인 요소들이 잘 어우러지게 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어떻게? 재료들을 문자 그대로 잘 어울리게 버무리는 것이다.



Code 2 앞만 보고 질주하라



지평선에 시선을 고정하는 이유

레이서들이 레이싱에서 시속 300킬로미터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빛을 보고 달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레이싱 카가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기 때문에 도로에 그려진 차선이나 다른 레이서의 위치를 보면서 운전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들은 지평선에 초점을 맞추는데, 고속에서는 손이 시선을 따라 저절로 움직인다.

크리에이터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장기적인 목표를 마음속에 간직함으로써 눈앞의 장애물을 헤쳐 나간다. 마치 레이저 광선을 쏘듯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순간순간에 집중하며 시장에 걸맞고 사람들의 필요를 채울 상품을 만들어낸다. 두 손으로 운전대를 잡은 크리에이터들은 경쟁자들과 위치를 비교하거나 업계의 규범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나름의 운전법이 있다. 이들은 지평선에 시선을 고정하고, 목표 지점을 유심히 살피며, 과거에 대한 향수를 멀리한다.

맨땅에서 시작해 5년 안에 연 매출 10억 달러를 기록하는 기업은 매우 드물다. 실리콘밸리에서조차도 그런 성장세는 찾기 어렵다. 그런데 함디 울루카야는 요거트 사업으로 5년 만에 10억 달러를 달성하는 초고속 성장을 이룩했다. 터키 동북부의 에르진잔 출신인 울루카야는 1994년에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은 왠지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칭 ‘낙농장 집 아들’인 그는 뉴욕 시에서 한참 떨어진 곳으로 거처를 옮긴 후 농장에서 일하며 뉴욕 주립대학교 올버니캠퍼스에서 수업을 들었다. 터키의 시골 마을에서 자란 울루카야는 미국에서도 시골 생활이 몸에 맞았다.

언젠가 울루카야를 보러 온 그의 아버지는 미국 치즈가 너무 밍밍하다며 불평을 했다. “너 치즈를 만들어라. 제대로 된 치즈가 뭔지 보여줘.” 울루카야는 난색을 표했다. 가업을 물려받으려고 미국에 유학까지 온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2002년에 마음을 바꿨다. 뉴욕 주 존스타운의 조그만 건물에서 페타 치즈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유프라테스’라는 브랜드를 붙여서 식당과 식품공급 업체에 납품했다.

어느 날 요거트 제조 설비가 완비된 공장을 매각한다는 전단이 울루카야의 손에 들어왔다. 크래프트 푸드 공장을 닫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곧 뉴욕 시에서 300킬로미터쯤 떨어진 사우스 에드메스턴이라는 작은 마을로 차를 몰고 가, 84년 된 낡은 공장을 살펴보고 나서 공장을 인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친구들은 그를 말렸다. 울루카야의 수중에 있는 돈이라고 해봐야 고작 몇천 달러가 전부였다. 그 공장을 사지 말아야 할 이유는 5만 가지도 넘었다. 그 공장에 조금이라도 가치가 남아 있었다면 크래프트 푸드라는 건실한 기업이 왜 공장 문을 닫으려고 했을까? 그러나 울루카야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미국에서 시판되는 그 어떤 요거트보다 우수한 고단백 저지방 그릭요거트를 만들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울루카야가 보기에 미국 요거트는 너무 묽고 달며 방부제와 색소가 들어간 덩어리지 ‘진짜’ 요거트가 아니었다. 터키에서 요거트는 중요한 기초식품이므로 울루카야는 어머니가 가족 농장에서 만들어준 걸쭉하고 톡 쏘는 맛의 요거트를 먹고 자랐다.

그는 미래를 보는 눈으로 결정을 내렸다. 광고에 쓸 돈도 없고 브랜드 인지도도 없어서 자신의 요거트가 진열대의 맨 아래에 놓이리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울루카야는 소비자들의 시선을 확 끌도록 포장을 과감하게 디자인했다. 그의 요거트 용기는 기존 요거트 용기보다 더 둥글고 더 납작하고 더 튼튼했다. 용기에 두르는 비닐 필름에 밝은 색깔로 이름을 선명하게 표시하고 뚜껑에는 로고를 찍어서 소비자가 용기를 내려다보면 브랜드가 보일 수 있게 했다. 울루카야는 이렇게 말했다. “사업을 하다 보면 한동안은 대박을 칠 것 같아서 좋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바람이 빠질 때가 있어요. 그런데 기업의 설립자라면 궁극적인 목표에 시선을 고정하는 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그 목표가 더는 보이지 않으면 보따리를 싸야죠. 난 항상 그 목표가 보였습니다. 늘 내 머릿속에 있었으니까요.”

크리에이터들은 지금 있는 곳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곳을 보며 움직인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트렌드를 예측해야 하고 성공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치폴레의 설립자 스티브 엘스 또한 해마다 ‘세계 최고의 부리토’를 더 맛있게 만들기 위해 온 정성을 쏟는다. 그는 매장 벽에 ‘최고의 부리토’나 ‘최고의 레스토랑’ 같은 문구가 쓰인 상패를 붙이지 못하게 한다. “상을 받은 건 과거의 얘기잖아요. 그래요. 어떤 사람은 우리 부리토가 최고라고 생각했겠죠.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아무 의미 없어요. 우리는 그것보다 더 좋은 부리토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크리에이터들은 지평선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현실에 절대 안주하지 않는다. 다음 것을 만들기 위해 날렵하게 움직인다.



Code 3 우다 루프로 비행하라



크리에이터의 성공 패턴, 우다 루프

미 공군 조종사로 한국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던 존 보이드는 미국 공군에서 30년 경력을 지닌 조종사이자 전략가였다. 보이드는 미국의 세이버젯기가 소련의 미그기보다 속도나 상승 고도 면에서 뒤지는데도 공중전만 치르면 미군이 거의 백전백승을 거두는 이유에 주목했다. 보이드가 양국 기체의 성능을 비교해보니 미그기는 최고 속도가 더 빠르고 최고 상승 고도가 더 높았으나 그 두 가지 강점 영역 사이에서 전환 속도가 떨어졌다. 미군 전투기는 미그기보다 능력은 조금 떨어졌으나 더 신속하게 전환이 가능했다.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전환이 가능했으니 미군 조종사들이 한발 앞서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공중전에서 소련 조종사가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는 이미 상황이 바뀐 후였다. 일분일초가 중요한 전투에서 계속 한발 늦은 결정을 하니 미그기는 십중팔구 불덩이가 되는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보이드는 급변하는 상황에 과감하게 대응하면 적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전투의 형세를 바꿀 수 있고 따라서 적을 교란하고 상황을 장악할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보이드는 민간인 수학자 토마스 크리스티와 머리를 맞대고 공중전에서의 에너지기동성 이론을 정립했고 이후 이 이론은 전투기에 당연히 적용돼야 할 원리로 자리 잡았다. 그는 자신의 수학 능력과 비행 경험을 접목해 F-16의 설계에도 일조했다. F-16은 중량이 전 세대인 F-15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으며 초고기동성을 자랑하는 초음속기로, 기체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선회하는 하이G 배럴롤이라는 기술을 저속에서도 쉽게 펼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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