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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속 성장

린쥔 지음 | 올림



쾌속 성장

린쥔 지음

올림 / 2015년 8월 / 296쪽 / 15,000원





치톈의 탄생 - 정난옌, 열정의 사업을 찾다

량젠장의 발탁을 거부하다: 1991년 3월 스물세 살이었던 정난옌은 중산 대학 컴퓨터학과를 졸업하고 광둥성 경제무역위원회 전산센터에 들어가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난옌은 이내 매일 차나 마시면서 프로그램을 만들다가 퇴근하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생활이 아니라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1993년, 경제무역위원회를 사직하고 동창생 둘과 함께 광둥라오예컴퓨터시스템개발회사를 설립했다. 그들이 수주한 첫 프로젝트는 호텔의 IT관리시스템 제작이었는데, 반년 후 그 프로그램은 포산의 한 호텔에 제공되었고, 첫 번째 수입으로 7~8만 위안을 손에 넣게 되었다.

이어서 ‘천리마 호텔관리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면서 화남 제일의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회사는 나중에 ‘광저우완쉰 컴퓨터소프트웨어주식회사(이하 ‘완쉰’으로 약칭)’로 상호를 바꿨다가 나중에 홍콩 상장기업에 매각되었다. 완쉰은 호텔관리 소프트웨어 개발과 판매를 겸하는 회사로 정난옌은 영업도 해야 했는데, 이를 통해 그는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시장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7년 후 그는 시트립의 창업자인 지치(나중에 ‘루자’와 ‘한팅’을 창업함)를 만나게 되는데, 당시 창립된 지 1년밖에 안 된 시트립은 화남시장을 개척하는 동시에 화남지사의 설립을 계획하고 있었다. 정난옌은 시트립 남중국지구 최고책임자가 되어 화남지역의 마케팅 업무를 총괄하게 되었다. 당시 시트립 화남지역의 영업 실적은 화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였다.

처음 반년 동안 정난옌은 인력 확충부터 시작했다. 또 비즈니스 운영은 물론 마케팅과 경영에도 문외한이었던 그는 매번 상하이에 가서 회의를 할 때마다 자기보다 직급이 낮은 본사 팀장에게 모르는 문제에 대해 하나하나 가르침을 구했다. 2001년부터 시트립 본사에서 화남지역에 목표를 부여하기 시작했지만 정난옌은 2년 연속 주어진 목표량을 소화하지 못했다. 얼마 후 화남지사는 정난옌의 지휘하에 시트립 지역조직 가운데 가장 먼저 공항에 나가 회원카드를 발급하는 마케팅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2003년, 사스(SARS)가 창궐할 때 많은 회사들이 인원 감축을 시작한 상황에서, 정난옌은 반대로 직원 교육훈련을 기획하는 한편, 직원들을 교통 요충지에 파견하여 유동인구의 변화를 조사하고 시장동향을 파악하게 했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으로 화남지역은 마침내 성장의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사스의 광풍이 물러가자 화남지역은 곧바로 대반격을 시작하여 판매 임무를 완수하고 시트립의 주력 영업지역으로 자리 잡았고, 업무량이 회사 전체의 30%를 차지하였다. 이를 계기로 정난옌은 시트립의 마케팅 담당 부사장으로 승진하여 상하이 본부로 가게 되었다.

정난옌에게 시트립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학교였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 경영, 인사 등 기술 이외의 영역을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참고 견디는 인내력과 앞으로 과감하게 나아갈 수 있는 패기를 체득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또 한 가지 생각을 품게 되었다. 자신이 회사를 만들어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고, 이 생각은 갈수록 강렬해졌다.

정난옌의 세 번째 선택: 2004년 봄 정난옌은 광저우 진르 투자재경자문회사(이하 ‘진르투자’로 약칭) 사무실로 라오허를 만나러 갔다. 라오허는 유명한 식음료회사인 로버스트의 창업자이자 진르투자의 이사장인 허보취안이었다. 중국 1세대 창업자인 그는 로버스트를 프랑스계 식품회사인 다넝 그룹에 매각한 뒤, 하버드 대학의 방문학자로 한가한 세월을 보내다가 잠시 귀국하여 투자 기회를 찾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단번에 의기투합했다. 정난옌이 말했다. “루자(2002년 6월, 시트립의 경영진 4명이 서우두여행국제호텔그룹(이하 ‘서우루그룹’으로 약칭)과 합자하여 창업한 회사)의 사정을 살펴보시고 시트립의 중저가 호텔에 대한 고객들의 수요를 따져보십시오. 저는 시장 전망이 아주 밝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주 잘해낼 수 있는 사업이기도 하고요.” 허보취안도 간단하게 대답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후에 다시 만나, 허보취안이 미화 800만 달러를 투자하여 최대주주로서 이사장을 맡고, 정난옌이 CEO를 맡는다는 개괄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때 정난옌의 나이 서른여섯이었다.

인터넷으로 경제형 호텔에서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다: 정난옌은 자신이 창업하고자 하는 경제형 호텔을 ‘치톈(七天, 7 Days Inn)’으로 명명했다. 정난옌이 치톈을 창업할 때 경제형 호텔업계는 두 맹주를 거친 상태였다. 첫 번째 맹주는 진장즈싱이었다. 하지만 국영기업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업계 1위 자리를 유연하고 빠른 루자에 넘겨주고 말았다. 루자와 자본으로 다투는 것은 죽음에 이르는 길이었다. 시트립이 갖고 있는 자본의 흡입력은 치톈을 훨씬 능가했다. 루자의 성장모델을 따라 한다는 것도 가능한 방법이 아니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루자보다 발전 속도가 더 빠르고, 관리가 더 인성적이며, 비즈니스모델이 보다 창의적이고 복제 가능성이 더 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경제형 호텔 가운데서 새로운 선도적 브랜드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치톈이 어떻게 해야 선배들과 다른 길을 가면서도 후발주자로서 더 앞서 나가는 길을 마련할 수 있을까? 정난옌은 인터넷에서 비결을 찾기로 했다. 그는 이때부터 중국 네티즌들의 소비 심리와 행동, 습관에 관한 분석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5인의 치톈 창업 드림팀 - 사람이 먼저고 일은 그다음이다

만약 2008년의 금융위기가 없었다면 치톈은 더 짧은 기간에 상장에 성공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년 3월 첫 번째 체인호텔을 개장한 이후, 2009년 11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되기까지 4년 남짓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으니, 정난옌과 그의 동료들은 쾌속 성장의 기적을 이뤄낸 것이다. 4년 만의 상장 신화는 CEO 정난옌의 공이 크지만, 창업 초기부터 든든한 버팀목으로, 유연하면서도 정연한 질서를 보여준 경영진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이런 창업팀이 구성되어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데는 선인후사(先人後事, 사람이 먼저고 일은 그다음)라는 경영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린웨저우라는 후배: 2004년 11월, 린웨저우가 치톈에 합류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알던 사이로 정난옌이 2년 선배였다. 두 사람 모두 화난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이하 ‘화난사대부고’로 약칭) 컴퓨터동아리의 회원이었고, 중산 대학교 컴퓨터학과에 진학했다. 린웨저우는 졸업 후 정난옌이 창업 멤버로 참여한 완쉰에 입사했고, 정난옌이 퇴사한 뒤에는 그의 업무를 이어받았다. 정난옌의 눈에는 린웨저우가 IT 기술 면에서 자신보다 뛰어날 뿐만 아니라, 사유방식이 매우 체계적이어서 자신의 도약적인 사유방식과 상호 보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린웨저우도 대학 시절 학생회장을 역임한 정난옌이 함께 창업할 수 있는 믿음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제형 호텔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선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린웨저우의 합류로 정난옌은 선도적인 정보화시스템을 갖춘 경제형 체인호텔 창업이라는 꿈을 향한 훌륭한 조력자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치톈은 시작부터 정보화시스템 영역에서 경쟁업체들보다 앞서면서 선두를 유지했고, 이후 전자상거래의 여러 분야에서도 업계의 선두자리를 고수했다.

객실이용률이 40%도 안 되었던 창업 초기: 2005년 3월, 치톈의 첫 번째 호텔이 광저우 베이징루에 들어섰다. 그런데 교통이 불편했다. 택시가 호텔까지 진입하지 못해 손님들이 직접 짐을 끌고 일정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전통호텔업계의 관점에서 보면 절대로 선택해선 안 되는 위치였지만, 치톈의 당시 자본력으로는 선택할 수 있는 부동산이 많지 않았다. 1호점의 뒤를 이어 개조공사를 시작한 2호점 강딩점과 3호점 커춘점이 2005년 중국수출입상품박람회(이하 ‘박람회’라 약칭) 기간에 개업했다.

정난옌의 고민은 광고도 할 수 없고, 호텔의 위치 또한 충분한 주목을 끌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소비자들에게 치톈을 알릴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고심 끝에 정난옌은 자신만의 회원시스템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초빙되어 온 마케팅 본부장은 전통호텔 출신이라 회원제를 중시하지 않고 시트립 같은 채널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이로 인해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가격 체계가 혼란스러워져 가격우위를 상실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었다. 이런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회원제를 추진할 수 있는 마케팅의 고수였다. 그러던 중 2005년 6월, 리춘톈이 경영진에 합류했다. 그가 참여하자 치톈의 마케팅팀에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개척의 선봉 리춘톈: 리춘톈은 회원시스템을 정리하고 고강도의 인적 프로모션을 실행했는데, ‘첫 번째 숙박 특가 77위안’ 방식을 제시하여 회원들을 유인했다. 그리고 기존의 텔레마케팅 방식을 만나서 얼굴을 보며 자문을 해주는 마케팅 방식으로 바꾸고, 기존 호텔의 ‘유동적인 가격, 회사별 계약’ 방식을 표준화된 회사협의서로 대체했다. 또 판매원이 호텔업계에서 중시하는 ‘고객 유지’가 아니라 마케팅에 집중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판매부의 임무는 고객 유치에 집중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리춘톈의 눈에 가장 좋은 영업모델은 ‘하루 전 객실예약 100%’였다. 이를 위한 일련의 활동들이 전개되었는데, 처음으로 호텔 내에서 회원카드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온라인마케팅을 시작했으며, 사이트의 첫 번째 개정판을 만들었다. 또 창사공항에 직접 나가 회원유치를 시도했고, 주요 도시에 10개의 직판팀을 파견했다. 참고로 정난옌은 내륙의 새로운 지역으로 들어가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리춘톈에게 ‘군사관제’ 식으로 이들 지역을 개발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리춘톈은 강한 추진력으로 솜씨를 증명해 보였다. 광저우와 선전, 창사, 베이징, 상하이, 난창 등지에 이어 충칭, 청두, 우한, 난징, 시안, 허페이 등의 도시를 잇따라 치톈의 수중에 넣으면서 강력한 기세로 시장을 확장해나갔다.

500대 기업에서 온 운영본부장 한차오판: 치톈에 고객들이 구름처럼 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만원 상황이 지속되면서 처음으로 운영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침 그 시기인, 2005년 8월,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하나인 BP(영국의 세계적인 석유회사) 출신의 한차오판이 치톈이 합류했다. 한차오판은 치톈의 체인점 운영규범을 직접 관리하면서 새로운 분점의 개점 속도, 즉 분점이 언제 개업할 수 있고 얼마나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는지도 함께 관리했다.

네덜란드의 다국적기업에서 온 황지: 2005년 12월, 회원직판(온라인여행대행사인 OTA를 통하지 않고 회원에게 직접 판매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실시한 지 반년 만에 공실률 제로가 실현되었다. 광둥성에서 새로 개설한 분점들이 만원을 기록함에 따라 신규 분점의 지속적인 개발이 가장 중요한 업무로 떠오른 치톈은 시장 개척을 책임질 장수를 찾기 시작했고, 당시에 한 네덜란드 회사의 아태지역 구매 책임자로 일하던 황지를 영입했다. 쾌속 성장 시기에 치톈은 거의 일주일에 하나씩 분점을 개설했는데, 이는 개발부(후에 투자발전부로 이름을 바꿈)가 사방으로 뛰어다닌 결과였다. 이로써 ‘호텔개발 - 객실판매 - 호텔운영’의 기본 라인업이 제대로 갖추어졌다. 가장 앞 단계인 호텔개발(임차직영점/가맹관리점)은 황지가, 그다음 단계인 호텔의 객실판매는 리춘톈이, 마지막으로 객실을 예약한 고객을 맞이하는 호텔운영은 한차오판이 이끄는 업무체계가 갖추어진 것이다. 정난옌은 IT 능력을 가진 CEO로 회사를 통솔하고, 린웨저우는 IT 능력을 가진 CIO로 회사운영과 객실판매 및 호텔운영에 필요한 IT를 개발하여 지원해주는 일을 맡았다.



수직절단으로 높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창출하다

치톈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듣게 되는 것은 ‘수직절단’이다. 수직절단이란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자원을 중점 투자하여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더 잘해내고,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최대한 도려내거나 원가를 통제하는 것이다. 제한된 자원을 고객들이 가치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동시에, 회사 내 모든 업무 프로세스와 경영활동을 고객들의 핵심적 요구인 ‘편안한 수면’에 맞춰 설계하고 개선한다는 것이다. 수직절단이라는 이념을 확립하고 잘 집행한 덕분에 치톈은 보다 선진적이고 민첩한 IT와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갖출 수 있었다.

치톈, 높은 가성비의 대명사: 치톈은 신점이 문을 열어도 개업식은 없다. 이런 행사에 소요되는 비용도 원가관리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저우 커춘에 있는 치톈 본부에 가본 사람들은 로비에 프런트데스크조차 없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치톈은 이런 데에 원가를 낭비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에 아무런 연락 없이 불쑥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경제형호텔사이트’가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치톈의 가격 대비 성능(가성비)이 중국 경제형 호텔 가운데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치톈의 가격은 다른 브랜드 호텔에 비해 확실히 실속이 있다. 이는 정난옌이 “나는 고객들의 브랜드 충성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상태에서 10~20%의 가격 차이가 커다란 흡인력을 갖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과 일치한다. 현재 치톈의 가격은 150~170위안인데, 경쟁업체들은 대개 200위안 전후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실속 있는 가격 외에 치톈은 보다 많은 양질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여 고품질을 요구하는 비즈니스여행 고객들로부터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직절단을 통해 성급호텔과의 차별화에 성공하다: 대부분의 호텔들이 외관이 화려하고 멋있는 것을 자랑하지만, 치톈이 외관에서 추구하는 것은 직접적이고 눈에 잘 띄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호텔들이 로비를 아주 화려하고 호화롭게 치장하지만, 치톈은 로비를 아늑하게 꾸몄다. 또한 치톈은 로비가 반드시 1층에 있어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치톈의 분점들은 대부분 대형 건물 중간 몇 개 층을 임차하여 사용하므로 임차하는 첫 번째 층에 로비를 설치한다. 아울러 수많은 호텔들이 피트니스시설과 중국식 및 서양식 식당을 구비하여 여러 층을 점유하고 있지만, 치톈은 이 모든 것들을 없애버렸다. 인테리어는 검소하면서 아늑하다. 객실면적도 넓지 않지만 구조가 실용적이다.

이 모든 것들이 치톈이 수직절단으로 성급호텔들과 다르게 형성한 모습이다. 치톈은 역산 방식으로 수직절단을 추진한다. 먼저 고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가격을 산출한 다음, 이 가격에 맞춰 원가를 계산하여 어느 부분을 줄일 수 있고 어느 부분을 잘라내야 하는지 살피는 것이다. 이처럼 불필요한 원가 부분을 잘라낸 다음에는 어떤 부분을 추가해야 하는지를 고려한다. 이런 식으로 고객들에게 이익을 돌아가게 하면서도 원가를 관리하는 것이다. 다소 웃기는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원가관리는 바늘 하나 실 한 줄에 미칠 만큼 세밀해야 한다. 예컨대 조그만 장식품이나 탁자에 조각된 문양은 보기에 좋을 수 있지만 룸메이드가 객실을 청소하는 데 1~2분의 시간이 더 소요될 수 있다.

이처럼 치톈이 작은 부분까지도 중시하는 것은 인방비(人房比 : 호텔 직원 대 객실의 비율) 자체도 경제형 호텔에서는 반드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원가구성 부분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치톈은 인방비에 공을 들여 0.23에 도달했는데, 이는 동종업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런 의미에서 치톈은 성급호텔과 초대소의 시장점유율을 제압했다고 할 수 있다. 전자는 크기만 하고 실용적이지 않고 후자는 싸기만 하고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치톈에 수직절단의 기회와 가능성을 제공했고, 치톈은 효과적인 원가관리를 통해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선발주자를 추월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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