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300만 원으로 꽃집 창업, 10년 만에 빌딩을 짓다

이해원 지음 | 원앤원북스



300만 원으로 꽃집 창업, 10년 만에 빌딩을 짓다



이해원 지음

원앤원북스 / 2015년 6월 / 316쪽 / 14,000원





용기 : 실패는 새로운 시작의 신호다



운명의 루비콘 강을 건너다 - 확신과 신념으로 인생은 동화가 된다: 1995년 여름, 절망의 벼랑 끝에 선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가 6년 동안 경영하던 신문사는 광고 수주가 끊기면서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거래처에서 받은 부도난 가계수표가 발단이 되어 집 안에 있는 모든 가구는 빨간 딱지로 도배되었다. 그야말로 절망의 벼랑 끝에 선 것이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문사를 운영할 때 LA지국장으로 미국에 건너간 K에게 연락했다. 전화를 하니 미국에서는 할 일이 많다며 얼른 미국으로 건너오라고 했다. 남자는 선택의 여지없이 미국행을 결정했다. 동생이 여비로 준 450만 원이 그의 전 재산이었다. 그런데 막상 미국행을 결심하고 공항에 가서 출국수속을 위해 여권을 제출하니 여권의 유효기간이 지났다는 공항직원의 말을 듣게 된다. 여권 재발급을 받으려면 일주일이 걸린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이 시간이 남자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신문사를 운영하면서 편집 기자로 함께 일했던 여자에게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전화를 한 것이다. 함께 술을 마시면서 일련의 모든 상황을 이야기했다. 술기운이 온몸에 흐르자 여자는 남자가 한없이 불쌍하게 보였다. 남자가 말했다. “어차피 바다 건너가는 건 마찬가지인데, 혹시 내가 제주로 가자고 하면 갈래?” “제주도요?” “그래, 제주도 말이야.” “영어는 잘 못하니까 미국보다는 제주도가 살기 좋겠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술기운에 여자는 제주행을 결심했다. 눈에 뭔가가 단단히 씌운 것이다. 운명이란 이렇게 예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오는가 보다. 빈털터리 남자를 따라 25년 동안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던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했으니 말이다. 그것도 15년이나 연상인 남자를 따라서…. 아무런 의논도 없이 제주행을 결심한 것이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너무나 죄송하고 미안했지만,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하다.

시작은 초라하고 불안했지만 한편으로는 설렜다. 1995년 8월 3일 이른 아침, 이렇게 해서 지금의 남편과 나는 제주로 출발했다. 완도에서 배를 타고 제주로 향하며 바다를 바라보니 가슴이 탁 트였다. “그래, 우리 제주를 한번 탈환해보자!” “그래요, 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 힘을 합쳐 제주에서 보란 듯이 크게 성공해요!” 우리는 손을 꼭 잡고 다짐하면서 제주 바다를 건넜다.

처음 제주도로 올 때 우리가 가지고 있던 돈은 남편 동생이 마련해준 450만 원과 내 적금통장의 1천만 원으로 총 1,450만 원이었다. 그런데 이 돈이 300만 원으로 줄어드는 데는 6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당장 현금이 들어오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판이었다. 300만 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시작하게 된 가게가 제주특별자치도 북제주군 조천읍 조천리 8평의 작은 꽃집 ‘조천화원’이다.



도전 : 낯선 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라



당신에게 300만 원이 있다면, 창업을 하라! - 어쭈,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우리 부부는〈오일장신문〉을 뒤적거리면서 세가 저렴한 가게를 찾았다. 괜찮은 가게를 얻으려면 최소한 1천만 원은 있어야 했지만, 우리에게 전 재산은 300만 원과 승용차 한 대가 전부였다. ‘조천리 중상동, 8평, 연세 180만 원, 방ㆍ부엌 있음.’ 때마침 북제주군 조천읍 조천리에 저렴한 가게가 나왔다. 우리가 가진 예산과 얼추 맞을 것 같았다. 바로 차를 몰고 가게를 보기 위해 조천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가게 주변을 살펴보니 인적이 드문 시골 마을이었다. 가게는 오랫동안 비워둔 상태였는데 두 사람이 겨우 누울 정도의 방과 작은 부엌이 딸려 있었다. 주인 할머니는 수리를 못 해준다며 무엇을 할 거냐고 물었다.

“꽃집을 하려고요.” “이런 촌에서 꽃집을?” 할머니의 표정은 탐탁지 않은 듯 보였다. 일단 가게를 나와서 동네를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방파제 입구 포장마차에서는 싱싱한 해산물을 팔고 있었다. 남편은 소라 한 접시와 소주 한 병을 시켰다. “건배!” “우리의 앞날을 위해!” 우리 부부는 낯선 동네 바닷가 방파제에 앉아 그렇게 소주잔을 기울이며 미래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나는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에게 300만 원이 있다면 300만 원의 절박함으로 시작하라. 그 절박함이 당신을 성공의 문 앞으로 이끌 것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해서 안 될 일은 없다. 우리는 300만 원으로 시작해서 불과 한 달 만에 절박한 상황을 극복하고 밥은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진실한 사랑은 시간을 뛰어넘는다 - 줄리엣의 편지처럼 가슴의 소리를 따라간다: 우리는 12월 중순경, 조천에 있는 가게로 이사를 했다. 연세 180만 원을 지불하고 나니 120만 원이 남았다. 준비 기간을 한 달로 잡고 예상되는 지출 내역을 뽑아보았다. ‘간판 50만 원, 전화 30만 원, 페인트 재료비 10만 원, 기타 잡비 10만 원, 예비비 10만 원.’ 한 달 안에 개업을 하고 돈을 벌지 않으면 굶어 죽을 판이었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가게라서 손볼 데가 많았다. 우선 꺼진 마룻바닥부터 고치기 시작했다.

“꽃집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음, 조천화원이 어때?” 남편은 바로 상호를 지었다. 이왕이면 ‘꽃집’이라는 단어보다는 규모가 있어 보이는 ‘화원’이란 단어를 택한 것이다. 조천리는 북제주군 조천읍에 속해 있었는데, 조천읍 단위에 포함되는 ‘리’는 신촌리, 조천리, 함덕리, 선흘리, 대흘리 등으로,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남편은 상호를 짓는 것부터 ‘조천 마케팅’을 염두에 두었다. ‘조천화원’이라고 하면 조천읍 단위를 다 포함하는 화원이 된다. 제주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함덕리에는 ‘함덕꽃집’이 있었다. 그러나 행정구역상으로는 함덕리조차도 모두 조천읍에 속해 있었다. ‘조천화원’은 조천읍 전체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기 위한 전략적인 상호였던 셈이다.

일단 로또부터 사고 나서 행운을 빌어라 - 빈털터리 엠제이, 어떻게 ‘부의 추월차선’으로 갈아탔을까?: 가게 수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가진 돈이 바닥나버렸다. 가게에 진열할 상품이 있어야 하는데 물건을 구매할 돈이 한 푼도 남지 않은 것이다. 용기를 내어 무작정 화훼 도매하는 농장 사장님을 찾아갔다. “사장님, 저희가 현재 가진 돈이 없습니다. 상품을 외상으로 부탁합니다. 결제는 2달 후에 할게요.” 생각해보면 정말 어이없는 부탁이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도매하는 농장 사장님들은 1달 외상을 조건으로 흔쾌히 허락해주셨고, 특히 생화 도매를 하는 에덴화원 사장님은 2달 후에 결제해도 되게 배려해주었다. 육지에서 온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외상 거래를 허락하다니…. 그만큼 제주의 사람들은 순박하고 인정이 넘쳤다. 조화로 된 상품은 벽에 걸고 생화와 관엽식물로 가게를 채웠다. 공간이 좁아서 상품을 조금만 들여놓아도 가득 차 보였다.

텃세가 세서 명당이다 - 어지간해선 조천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개업했다고 동네 사람들이 와서 작은 화분을 하나씩 구입해갔다. 위치가 너무 외져서인지 개업 당일인데도 점심때가 지나자 가게는 금세 한산해졌다. 물통을 나르고, 쓰레기를 치우고, 화분을 정리하고 나니 하루가 눈 깜짝할 사이에 가버렸다. 매출이 가장 궁금했다. “오늘 하루 매출 8만 5천 원.” “와, 이제 살았구나! 하느님 감사합니다.” ‘정말 다행이다.’ 하며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연고도 없는 동네에 와서 장사를 하고 첫날부터 현금이 들어오니 기분이 좋았다. 인생에서 위기는 절대 혼자 오지 않는다. 위기가 왔을 때 절망하지 말고 그 뒤에 감추어진 희망을 보아야 한다. 희망을 볼 수 있다면, 절망은 디딤돌 삼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위기가 곧 기회인 것이다.

눈빛으로 마음을 뚫고 그들과 뒹군다 - 세상에는 갈칫국을 ‘먹어본 사람’과 ‘먹어보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화원을 열기 전에 우리는 둘만의 마케팅 회의를 했다. 이 작은 동네에서 무일푼으로 할 수 있는 홍보 방법이 무엇일까? 일단 우리는 작은 꽃바구니를 만들어 동네 기관장이나 어르신들을 찾아 인사드리기로 했다. 또 그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무작정 마을 이장님 댁을 찾아가서 인사드리고 꽃바구니를 건넸다. 이장님은 무슨 꽃바구니를 가져왔냐고 말하면서도 좋아하셨다. 그러고는 귤을 먹으라고 한 상자 주셨다. 이장님을 시작으로 읍사무소, 소방서, 파출소, 농협 등 마을에 있는 관공서장님들을 찾아뵙고 조천에도 꽃집이 생겼다는 것을 알렸다.

한번은 조천초등학교에서 마을 운동회가 열렸다. 사람을 좋아하고 나누기 좋아하는 남편은 타고난 성품을 발휘하며 마을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운동회에 가서 인사도 하고 사람들과 막걸리도 마시면서 친분을 쌓았다. 운동회가 열린 날 저녁 장목거리식당 장우찬 사장님이 우리 가게에 오셨다. 남편과 술을 함께 마시고 난 후 친해진 분이었다. 좁은 가게 방에서 담소를 나누던 중에 문득 동네 어른들을 소개해주겠다고 하셨다. 여하튼 장우찬 사장님 덕분에 마을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조천에서는 마을 사람들과 돼지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며 때론 함께 갈칫국을 먹는 것이 최고의 마케팅이었다. 작은 마을에서의 성공 전략은 눈빛으로 그들의 마음을 뚫고, 진정으로 그들과 함께 뒹구는 것이었다.

잔칫집과 제삿집을 찾아다니면서 인사를 하는 것은 가장 좋은 동네 홍보 전략이었다. 경조사에 인사를 가면 좋은 인상을 주고 바로 친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몇 달이 지나자 꽃집에는 남편을 찾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두드려라, 황금의 문이 열린다 - 300배 축복, 조천에도 ‘명동’이 있다: 1년 남짓 지났을 때 조천에도 서울의 명동 같은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천은 동네의 위치에 따라 상동ㆍ중동ㆍ하동으로 나뉘는데, 조천에서 장사가 가장 잘되는 동네는 바로 조천 명동인 상동이었다. 그곳에는 새마을금고, 한국전력 지소, 소방서, 빵집, 약국, 철물점, 미용실, 슈퍼마켓, 식당 등 웬만한 상점이 모두 모여 있고 초등학교와 읍사무소도 가까이에 있었다. 그런데 조천화원은 한참이나 외진 중동과 하동의 중간 지점에 있었다. 상동에 위치한다면 장사가 훨씬 잘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상동에는 빈 가게가 없을 뿐만 아니라 권리금 없는 가게가 나오는 일도 드물었다.

이제나저제나 가게가 나오길 기다리던 차에 조천 명동에 위치한 한국전력 지소가 이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관공서가 있던 터라 권리금은 없었다. 남편은 우리가 꼭 그 자리로 가게를 옮겨야 한다고 했다. 연세는 300만 원이었다. 지금 가게보다 2배 정도 넓었고 작은 방과 부엌도 있었다. 조천 명동에 권리금 없는 가게가 나왔다고 하니까 우리를 포함해서 동네 사람 6명이 그곳을 얻으려고 경쟁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던 차에 알고 지낸 누님뻘 되는 분이 그곳 사장님과 인척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그분에게 “누님, 한전 자리에 저희가 들어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주인아저씨에게 잘 말씀해주세요.” 하고 부탁했다. 그분은 선뜻 가게 주인인 장보익 사장님을 소개해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장우찬 사장님도 거들어주셨다. 그분의 영향력이 컸는지 조천 명동의 한전 지소 자리에는 조천화원이 낙점되었다. 8평밖에 안 되는 좁은 가게에서 20평 되는 넓은 가게로 옮기니 식물을 많이 들여놓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매장을 옮김과 동시에 우리의 자산도 300만 원에서 대략 1천만 원가량 증가했다. 우리에게 이러한 발전은 300배의 축복과 같은 것이었다. 확장 이전하는 날, 떡과 수건을 사은품으로 돌리고 나서 설레는 마음으로 제2의 도약을 준비했다.



실행 : 죽기 살기로 돌파하라



하이텔 단말기에서 찾은 보석 - 제주꽃배달전문점: 조천에서의 장사는 딱 한 집 먹고살 정도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좀 더 매출을 올릴 수 있을지 매일 궁리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한국통신 제주본부에서 무료로 컴퓨터 단말기를 빌려준다는 〈제주일보〉의 기사를 보았다. 당시에는 컴퓨터가 매우 고가였기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 구입하기는 부담스러울 때였다. 남편은 당장 한국통신으로 달려갔고, 단말기를 빌려오자마자 서툴게 키보드를 눌러가면서 사용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빌려온 단말기는 간단한 검색만 가능하고 인터넷은 너무 느려서 사실상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전국에 있는 전화번호를 쉽게 검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전국에 있는 꽃집들을 지역별로 나누어 검색하기 시작했다. 수만 개의 꽃집 상호와 전화번호가 검색되었다. “와, 이렇게 많은 꽃집이 있는 줄 미처 몰랐네.” 틈만 나면 꽃집들의 주소와 상호, 전화번호 등을 검색해보면서 모니터를 노려보더니 어느 날 남편이 소리쳤다. “제주꽃배달전문점! 바로 이거야! 꽃배달을 조천 지역에만 한정할 게 아니라, 제주 전 지역으로 확대하는 거야.” 생각해보니 안 될 것도 없었다. 당시에는 꽃배달을 전문적으로 하는 꽃집이 없었다. 전화번호부를 검색하다가 서울 목동에 ‘목동꽃배달전문점’이라는 상호가 눈에 띄었고, 그것을 본 남편은 ‘제주꽃배달전문점’을 생각해냈다.

서울의 교통 상황에 비하면 제주도는 천국이다. 어디를 가나 막히는 곳이 없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1시간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어 제주 전 지역으로 배송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조천화원은 제주꽃배달전문점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제주도 전 지역에 꽃배달을 시작했다.

밀물이 들어온다, 당신만의 배를 만들어라! - 전화 한 통화면 만사 OK!: “제주꽃배달전문점, 전화 한 통화로 카드 결제 OK! 꽃배달 OK!” 이것은 우리가 제주도 지역 일간신문에 넣은 광고카피다. 1단 광고로 넣었는데 효과는 대단했다. 당시에는 주문을 하고 카드 결제를 하려면, 으레 매장을 방문해서 카드단말기에 카드를 긁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각 카드사와 ‘수기특약’이란 계약을 체결해 고객이 방문하지 않고 카드번호만 알려주어도 결제가 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카드사 수기특약 업체라는 홍보 문구를 사용하면서 제주꽃배달전문점의 신뢰와 명성이 나날이 높아졌다.

조천화원의 전화번호를 넣고 광고를 하니 고객들의 신뢰를 얻기에 지역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지역별로 신제주점, 제주점, 서귀포점으로 각각 전화를 개설한 뒤 착신전환을 해놓고 주문 전화를 조천화원에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제주 전 지역에 꽃배달을 시작했다. 제주도의 주요 일간지라 할 수 있는 〈제주일보〉, 〈제민일보〉, 〈한라일보〉 등에도 광고가 나갔다. 전화통에 불이 나면서 직원을 뽑아야 했다. 주문을 받고 꽃을 꽂고 배달을 하면서 매장은 정신없이 돌아갔다. 그래서 딸 서진이는 태어나고 2주가 지났을 때 바로 옆집에 있는 쌀집 아주머니에게 맡겼다.

자이를 밟으며 암벽을 기어올라라 - 떨어져도 죽지 않았다면 다시 올라가라: 한국통신에서 하이텔 단말기를 빌려온 후부터 인터넷 마케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시에는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업체가 많지 않았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홈페이지 제작을 의뢰했다. 드디어 홈페이지가 완성되고 온라인에서 제주꽃배달전문점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한 페이지를 넘기는 데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렸다. 홈페이지를 제작한 업체에 A/S를 요청해도 속도는 개선되지 않았고 새로운 상품을 올리거나 수정하는 데 일주일 이상 걸렸다. 홈페이지 제작의 결과는 실망스러웠지만, 카드사와 수기특약을 체결한 뒤 전화 주문이 빗발치면서 매출은 급성장했다.



상상 : 한계 없는 상상을 하라



8평을 넘어 100평으로 - ‘특별한 기회’가 절묘한 ‘타이밍’이다: 서진이가 태어난 지 6개월이 되자 세 식구가 눕기에는 방이 너무 좁았다. “그렇잖아도 조천에서 장사를 하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 제주시로 나가야 할 것 같아.” 남편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 무렵 제주시 연동에 위치한 꽃집이 〈오일장신문〉에 매물로 나왔다. ‘B업체-꽃집 매매, 권리금 2천만 원, 연세 300만 원.’ 하우스로 지어진 꽃집이었는데 실내에는 가건물로 된 살림집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권리금이 내심 부담스러웠지만 마음에 들었다. 또한 그 꽃집이 제주 이마트 협력점으로 꽃을 납품하고 있다는 이유로 더욱 욕심났다. 하지만 가게 주인은 이마트 매장은 본인들이 직접 운영하고 연동의 가게만 인수하기를 원했다. 우리는 가게 주인에게 “이마트 꽃 매장 운영권을 함께 넘겨주면 인수할게요.”라고 제안했다. B꽃집 사장은 다음 날 이마트 꽃 매장도 함께 넘기겠다고 전화를 해왔다. 그의 아내가 아이를 보면서 꽃집을 운영하는 것을 버겁게 느끼고 있었고 매출도 저조하던 차였다. 그렇게 하여 우리 부부는 꽃집을 창업한 지 2년 만에 8평 매장에서 제주시 연동에 있는 100평 매장으로 확장 이전을 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