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작은 기업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안자이 히로유키 지음 | 비즈니스북스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작은 기업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안자이 히로유키 지음
비즈니스북스 / 2015년 5월 / 264쪽 / 14,000원
박리다매는 실패의 지름길, 적게 팔고 많이 남기는 사람들
장기 불황에도 성장을 멈추지 않는 그들만의 특징
국제 분업이 확대된 오늘날 시장에서는 ‘적게 팔고 많이 남기는 비즈니스 모델’이 더욱 중요해졌다. 패션계로 말하자면 스웨덴의 에이치앤드엠(H&M)이나 스페인의 자라(ZARA) 같은 거대 기업이 시장을 이끌고 있는 한편, 브루넬로 쿠치넬리 같은 ‘적게 팔고 많이 남기는 기업’도 꾸준히 세력을 늘리고 있다. 오늘날 일본의 경제 사정이 비록 절망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더라도 중소ㆍ벤처기업이 놓인 상황만큼은 매우 혹독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핑계만 늘어놓아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돌파구를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골리앗을 이긴 다윗들의 비밀을 엿듣다
성장하는 중소ㆍ벤처기업(직원 수 50~500명까지) 경영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성장의 열쇠와 로컬의 파악을 주제로 삼았다. 여기서 말하는 ‘로컬’이란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현실감을 느낄 수 있는 범위’라는 의미이다. ‘로컬’이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는 ‘글로벌’에는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아우른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중소ㆍ벤처기업에서 일하는 개인이 ‘글로벌’에 현실감을 느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방이나 국가를 ‘스몰 로컬’, 현실감을 느낄 수 있는 최대 범위를 ‘빅 로컬’이라고 부르고 싶다. 굳이 말하자면 유럽 회사의 ‘빅 로컬’에는 유럽연합과 북미, 아시아 회사의 ‘빅 로컬’에는 아시아의 몇몇 나라가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빅 로컬을 어디까지로 보느냐에는 경영자의 가치관과 경험이 큰 영향을 미친다. 당연하게도 경영자의 국제 비즈니스 경험이 풍부할수록 범위는 넓어지지만, 이 풍부한 경험이 오히려 다른 문화권과의 벽을 한층 더 높게 의식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개개의 가치관이 범위의 크기를 좌우하게 된다. 그래서 유럽이나 미국에서 성장하는 중소ㆍ벤처기업이 빅 로컬을 대상으로 어떻게 비즈니스를 전개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하고, 고찰한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그 과정에서 대략적인 경향은 볼 수 있었다. 특히 중소ㆍ벤처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영자의 비전이나 경영자원이 필수라고 하지만, 공통 주제에 대한 의견을 듣는 과정에서 각 사의 사고방식이나 그 배후에 있는 경험의 차이가 저절로 드러났다. 인터뷰는 다음과 같은 두 질문을 중심으로 실시했다. ①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열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게 된 구체적인 경험을 알려 주기 바란다. ② 해외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전개할 때 국경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으며 문화가 다른 비즈니스 파트너와 일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세계의 정보통신 서비스 기업에서 길을 찾아라
국경을 유리하게 이용하다_미니클립
미니클립(Miniclip)은 2001년에 창업자가 대학을 졸업한 직후 스위스에 설립한 온라인 게임 회사이다. 현재는 약 140명의 직원들이 스위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영국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다. 미니클립에서 개발한 게임은 컴퓨터와 모바일로 접속이 가능하고,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인도를 필두로 200개국 이상에 17개 언어로 제공된다. 그 결과 월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미니클립의 게임을 이용하고 있다. 현재까지 미니클립이 개발한 게임은 900종이 넘고, 매주 두 개씩 새로운 게임을 발표한다.
기업이 성장하기 위한 세 가지 요소: 미니클립 부사장 크리스토퍼 버그스트레저는 이렇게 말했다. “성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객, 상품, 시장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전이나 기업 문화가 중요하다는 의견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저에게는 이 세 가지가 더욱 중요합니다.” 그의 말에서 게임 업계에는 다른 업계의 사업 감각과 구별되는 능력과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스위스의 이점을 적극 활용하다: 국경에 대한 의식이나 국경을 뛰어넘는 방법은 어떨까? 버그스트레저는 이렇게 말했다. “스위스는 다른 유럽 국가에서 접근하기 쉽고, 스위스 내에서는 4개 언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성이 초래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쉽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또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는 다른 문화를 알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 되고, 업무상 만난 사람들과 사적으로도 교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므로 다른 문화의 벽을 넘을 때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밖에도 스위스에는 비밀을 보장하는 은행계좌가 있다는 점과 제네바를 중심으로 국제기관이 모여 있다는 점을 비롯해 몇몇 정치적, 경제적 특징이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유럽연합에 가맹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럽연합의 지령이나 관련 법률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국경을 넘나들기가 수월하다. 이렇듯 국제적으로 관계를 맺기 쉽고 세율이 낮다는 특전이 국경을 넘나드는 온라인 게임 사업을 경영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성장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제조 기업에서 배워라
틈새 일용품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다_콜만
콜만(Corman)은 위생용품을 제조하고 의료기기를 수입해 판매하는 기업이다. 전체 사원이 120명 정도이고, 연간 매출액 규모는 약 5,000만 유로이다. 일본 오므론 사의 전자 부품과 의료기기를 이탈리아에 독점으로 수입ㆍ판매하는 업체가 콜만이다. 콜만이 최근 7년간 급격하게 매출을 늘리고 있는 분야는 면으로 만든 생리용품이다. 현재 약 1,000만 유로 규모로 26개국에 수출하고 있어 이 회사 비즈니스의 국제화를 단숨에 이끈 상품이 되었다.
필연적인 해외 진출: “위생용품 비즈니스는 대규모 설비를 동원해 생산하는 장치 산업이므로 인건비가 비싸든 싸든 관계가 없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면의 생산지와 소비지 사이의 담판이 됩니다. 실은 콜만이 해외 진출을 시작한 이유도 대량 생산한 제품의 판매처가 필요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외 시장을 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콜만 창업자의 차남이자 해외 시장을 담당하는 조르지오 만토바니는 콜만의 국제화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리고 때마침 자연 소재에 대한 수요가 특히 높아진 선진국의 요구에 제때 대응한 것이 콜만의 성장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상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만토바니는 해외 시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때는 공격적이지 않도록 항상 조심합니다. 상대를 이해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대부분 나라에서 제품을 판매하지만 프랑스에만 현지 법인을 만들었습니다. 프랑스의 유통 시스템이 이탈리아와 닮은꼴이어서 우리가 알기 쉬운 시장이라고 판단하여 현지 법인을 만든 것입니다. 독일은 그와 반대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콜만도 북미 시장에 처음으로 진출했을 때는 몹시 고생한 모양이다. “이탈리아인은 친근한 인상을 주기는 하지만 성실하지 못하다는 편견과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때때로 일부러 크리스마스나 신년에 이메일을 보내서 ‘이런 날에도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라고 끊임없이 어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즈니스에서는 매일 편견이나 선입관과 싸워야 하므로 이런 노력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작은 노력이 큰 효과를 부르는 법이다.
기업이 성장하기 위한 세 가지 열쇠: “기업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첫 번째 열쇠는 개방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문화입니다. 두 번째는 디자인입니다.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가 관계입니다. 신뢰가 기반이 되는 팀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토바니는 팀이 개방적이면서 일방적인 의견을 강요당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콜만이 그다음으로 중요시하는 요소는 디자인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 각국 시장에서 소셜 미디어를 이용한 홍보를 적극적으로 실시한다. 한편 해외 비즈니스를 총괄하는 만토바니는 핵심 팀을 유지하고 신뢰 관계를 다지기 위해 현장을 몸소 방문하는 일에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이메일을 비롯한 디지털 수단만으로는 커뮤니케이션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가 커뮤니케이션과 관계 유지를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싣는 횟수는 1년에 100회 이상이다.
상품을 뛰어넘어 경영 이념까지 디자인하라
중소ㆍ벤처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키워드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열쇠는 규모를 불문하고 거의 같다. 지금까지의 인터뷰에서도 비전, 인재, 역량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등장했는데, 이 가치들의 중요성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만큼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몇몇 인터뷰에서 살짝 언급된 다른 키워드들이다. 바로 디자인, 룰 메이킹, 오픈, 로컬 네 가지이다. 흔히 이 키워드들은 다양한 제품을 한꺼번에 취급하는 대기업에서나 고민해야 하는 주제라고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변화에 재빨리 대응해야만 하는 중소ㆍ벤처기업도 고민해야 할 가치가 있는 주제이다. 여기서는 우선 디자인을 깊이 들여다보기로 하자.
스몰 디자인과 빅 디자인
‘디자인이야말로 경영의 근간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말에 걸맞을 만큼 디자인에 예산을 쏟는 경우는 드물다. 이 책에서는 기존에 통용되어온 ‘색상이나 형태’라는 시각과 관련된 디자인을 ‘스몰 디자인’이라고 부르고, 사회나 사업, 조직처럼 모양 이상의 것을 포함하는 디자인을 ‘빅 디자인’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이 중간에 위치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어느 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이나 모두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메이드 인 이탈리아’는 일상생활의 스몰 디자인에 깃든다
이탈리아는 ‘디자인 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매출을 늘리고 브랜드 가치를 높인 사례가 산더미만큼 많다. 가정용 레인지후드 제조사인 엘리카그룹(Elica Group)도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엘리카는 직원이 3,000명인 회사로 제품의 약 40퍼센트가 자체 브랜드로 생산되고 나머지는 위탁생산 방식으로 가전업계나 주방설비 제조사로 공급된다. 엘리카그룹의 고객 리스트에는 일렉트로룩스, 보쉬, 지멘스, 제너럴일렉트릭처럼 가전이나 주방설비 업계의 강자들 이름이 나열된다. 엘리카그룹의 교육 부문 매니저 줄리아 슈토는 엘리카의 디자인 철학을 이렇게 말한다.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 엘리카의 방침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이 촉진되고 전에 없던 새로운 수단과 능력을 손에 넣게 됩니다.” 엘리카그룹이 디자인을 혁신하기 전까지 일반적으로 주방은 멋지게 디자인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면서도, 레인지후드만은 어느 업체나 마찬가지로 무미건조하게 디자인되었다. 그러나 엘리카그룹이 이 레인지후드에 말끔한 디자인을 가미하여 업계에 이노베이션을 일으키면서 사고의 전환이 시작되었다. 이렇듯 ‘디자인과 동떨어진 물건을 디자인한다.’라는 새로운 생각이 업계에서 앞서 나가기 위한 방법이다.
이탈리아는 빅 디자인에 약한가
이탈리아 기업의 브랜딩에는 앞서 설명한 스몰 디자인이 공헌했다. 그렇다면 사회나 사업 등의 빅 디자인은 어떤가. 빅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나라는 사실 이탈리아가 아니다. 유럽 중에서는 북유럽과 영국의 행정이나 교육기관, 디자인 회사의 활약이 눈에 띈다. 이들의 발언과 이탈리아인의 발언에는 그다지 차이가 없다. 굳이 차이를 찾는다면 홍보의 기교가 다르다는 점뿐이다. 그러나 그 결과 이탈리아 디자인은 국외에서 과소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탈리아를 지원사격하기 위해 이탈리아에는 스몰 디자인을 강점으로 삼는 산업이 다양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다. 자동차, 가구, 잡화, 패션, 직물 등 산업이다. 이런 산업이 북유럽과 영국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적인 수준의 영향력과 규모에서는 이탈리아가 한발 앞선다.
개인의 삶과 기업의 일을 조화롭게 만드는 조직 디자인
일과 삶이 조화를 이루는 조직 디자인
근로시간 단축이나 유연 근무제, 육아 휴직은 여유가 있는 대기업에서나 실시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그러나 사원에게 가정 문제가 생겼을 때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은 중소ㆍ벤처기업이다. 인재를 구하기도 쉽지 않지만 그 인재가 가정사나 개인 문제로 비운 자리를 메우는 일도 중소ㆍ벤처기업에 더욱 절실한 과제가 된다. 한편 스위스 정부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고 중소ㆍ벤처기업을 보조하는 정책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실제로 스위스 국가경제사무국(SECO)은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매뉴얼을 작성했다. 100페이지가 넘는 이 매뉴얼에는 어떻게 가정 문제에 대처하면서 비즈니스를 전개할 수 있는지 참고할 만한 체크리스트와 사례가 실려 있다.
예로 중소ㆍ벤처기업은 대기업처럼 별도의 탁아소를 마련할 여유는 없지만, 직원 한 명 한 명의 사정을 파악하기 쉬우므로 각자의 사정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데, 그 방법으로 탄력근무, 파트타임, 재택근무를 운용하는 방식도 기재되어 있다. 다음에 소개할 사례를 살펴보면, 일과 삶의 균형이란 대외 홍보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현실에 뿌리내린 비즈니스 방침이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윤리자본주의를 실현하여 더욱 성장하다_브루넬로 쿠치넬리
브루넬로 쿠치넬리(Brunello cucinelli)는 1978년 이탈리아 중부 페루자 시 근교에 캐시미어 회사를 설립했다. 2013년에는 직원 약 1,000명 규모로 성장해 매출이 3억 2,200만 유로가 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중 약 80퍼센트가 북미와 유럽, 그 외의 시장에서 팔리고, 나머지 20퍼센트가 이탈리아 내수 시장에서 팔린다. 지금은 에르메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브랜드로 부유층 소비자에게서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윤리자본주의의 경영철학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귀사의 성장을 이끄는 열쇠는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에 창업자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인재, 비전, 사업 집중 같은 요소들이 중요하지요. 하지만 해마다 매출을 10퍼센트씩 늘리겠다고 염두에 둔 경우라면 몰라도, 해마다 30퍼센트씩 매출을 늘리겠다는 목표를 가졌다면 이 세 가지 요소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중요한 요소는 따로 있습니다. 첫째 타인을 존중하는 경의, 둘째 자신을 긍정하는 존엄, 셋째 창조력입니다.”
이 경영철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쿠치넬리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그는 농민의 아들이었다. 그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부친이 농사를 그만두고 시멘트 공장의 노동자가 되었는데, 매일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버지의 표정은 결코 환하지 않았다고 한다. 육체적 피로에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는 정신적 고통이 더해진 듯했다. 어린 쿠치넬리는 노동이 이렇게 사람을 아프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민한 결과, 인간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기업을 세우고 싶다고 꿈꾸게 되었다.
상대의 고정관념을 뒤엎고 신뢰를 쌓다: 그는 대학에 입학했지만 얼마 못 가 중퇴하고 아내 페데리카가 시작한 양품점 일을 거들면서 이를 계기로 캐시미어 이노베이션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에게 최초의 해외 시장은 독일이었다. 그런데 독일인은 이탈리아인들이 철저하지 않고, 정직하지 않고, 정확하지 않고, 성실하지 않다고 여겼다. 따라서 쿠치넬리는 독일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애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정교하고 솔직하게 장사하는 독일인이 기대하는 이상의 실적을 내면 결과는 반드시 따라온다고 믿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렇게 독일에서 쌓은 신뢰를 발판으로 삼아 노력을 거듭해, 미국 등지에서도 시장의 신뢰를 얻게 되었다.
회사의 발전은 곧 지역 사회의 부흥이다: 이 회사에서 1985년이라는 해가 의미 깊은 이유는 본사를 솔로메오 마을로 이전한 전환점일 뿐 아니라, 솔로메오 마을을 재생하는 출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솔로메오는 중세의 낡은 건물만이 존재하는 쇠퇴한 마을이었다. 하지만 쿠치넬리는 아내 페데리카가 자란 이 마을을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동시에 어린 시절부터 꿈꾸었던 인간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업을 실현하기로 했다. 쿠치넬리는 사무직은 물론이고, 공장 생산직 노동자들에게도 출퇴근 기록부를 폐지하고, 사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인사 체계를 도입했다. 또 사원식당은 이탈리아의 시골이라면 어디에나 있을 법한 안락한 대중식당 같은 분위기로 연출하여 더욱 친근한 인상을 풍기도록 했다. 또 현장 노동자에게도 이탈리아의 다른 공장 노동자보다 평균 20퍼센트 많은 급여를 지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