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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강미라 지음 | 가디언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강미라 지음

가디언 / 2014년 10월 / 228쪽 / 13,800원





CHAPTER 1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이상한 놈’들의 반란

김지운 감독의 액션 활극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는 깔깔이에 고글, 비행 모자를 쓴 ‘이상한 놈’이 등장한다. ‘좋은 놈’과 ‘나쁜 놈’ 사이에서 보물지도를 두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는 ‘이상한 놈’은 어설픈 생김새와 행동으로 애초에 다른 두 ‘놈’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도대체 어디서 주워 입었는지 모를 요상한 옷차림을 한 ‘이상한 놈’은 하는 말마다 듣는 사람을 속 터지게 하고, 하는 행동마다 어설프기 짝이 없다. 도망가다가 다른 두 ‘놈’에게 잡히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어설픈 탈출계획은 실패하기 일쑤다. 그런데 어설픈 ‘이상한 놈’에게 방심한 것일까, 아니면 ‘이상한 놈’이 사실은 상당한 실력자였던 것일까? 영화 속에서 제일 빨리 죽을 것 같았던 ‘이상한 놈’은 절체절명의 순간마다 기지를 발휘해 목숨을 부지하고, 종국에는 지도의 주인이 된다.

이 세상에서 영화 속 ‘이상한 놈’처럼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은 괴짜라 놀림을 받곤 한다. 하지만 그 ‘이상한 놈’이 손가락질을 딛고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스티브 잡스는 필수 과목 대신 듣고 싶은 과목 수업에만 들어가다 학교를 자퇴했고, 아인슈타인은 어느 학교에 가나 부적응자 소리를 듣다가 결국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에게 이상하다고 손가락질 받던 그들의 비범함은 시대의 한 획을 그었다.

심시티의 성공이 말해주는 것: 천재 개발자로 불리는 윌 라이트는 1960년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이 되던 해 아버지를 잃고 시골로 내려가 살았는데, 이 때문인지 그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조용히 구석에서 책만 읽고 있어 주변에서는 그를 ‘괴짜’ 혹은 ‘거인’이라 불렀다. 그만큼 윌 라이트는 ‘이상한 소년’이었다. 그는 유년 시절 몬테소리 학교에 다녔다. 몬테소리 교육은 훗날 그가 게임 ‘심시티’, ‘심즈’ 그리고 ‘스포어’를 창조하게 한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나뭇가지와 생활도구, 갖가지 장난감을 활용한 교육 과정 속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사물의 원리를 탐구하고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청년이 된 윌 라이트는 1980년대 초반 ‘마이크로소프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를 경험하게 되는데, 여기서 큰 충격을 받는다. 이 게임은 이름 그대로 비행기 조종을 사실적으로 구현한 시뮬레이터인데, 컴퓨터와 공학에 미쳐 있었던 그에게는 그렇게 흥미진진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이 게임에 푹 빠지게 됐고, 동시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의 정체가 게임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 후 윌 라이트는 ‘마이크로소프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에서 착안한 첫 게임 ‘반겔링만의 습격’을 구상했다. 1984년, 윌 라이트의 처녀작인 ‘반겔링만의 습격’이 완성되었다. 이 게임은 유통업체 브로더번드를 통해 출시되었는데, 미국과 일본에서 무려 75만 장이나 판매되며 히트를 쳤다.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윌 라이트는 ‘반겔링만의 습격’을 통해 여러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장난감, 컴퓨터, 기계 등에 미쳐 살았던 자신의 과거가 문득 생각났고, 이런 과정에서의 경험이나 즐거움을 혼자가 아닌 여럿과 공유하고 싶었다. 이미 첫 게임의 성공적인 출시로 자신감을 얻었던 윌 라이트는 게임을 활용하면 누구와도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 내다봤다. 그에게는 당시 어떤 게임이 유행이고, 또 어떤 문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의 즐거움을 세상과 공유하고 싶었고, 여기에 적합한 게임을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에 대한 첫 번째 아이디어는 ‘반겔링만의 습격’을 제작할 당시 이미 있었다. 윌 라이트는 게임의 배경을 구성하기 위해 직접 헬기를 타고 섬을 돌았는데, 하늘에서 바라본 지상의 전경은 마치 어린 시절 학교에서 가지고 놀던 장난감 같았다. 손으로 만지면 잡힐 것 같은 느낌, 바로 여기서 윌 라이트는 ‘이걸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수 없을까?’라는 기발한 상상을 했다. 세상을 바꾼 ‘심시티’는 바로 이런 독특한 발상에서 시작됐다. 윌 라이트가 하늘에서 본 세상은 곧 심시티 아이디어의 기반이 되었다.

당시 게임들은 ‘파괴’와 ‘경쟁’을 기반으로 상대방을 깨부수면 다음 판으로 넘어가는 방식이었다. 윌 라이트는 이 공식을 완전히 뒤집어보기로 했다. 파괴와 경쟁이 아닌 ‘창조’와 ‘건설’이 기반이 되는 도시설계 게임을 구상한 것이다. 그는 곧바로 게임 개발에 돌입했다. 플레이어가 시장이 되어 도시를 발전시킨다는 스토리는 어디에도 없던 새로운 것이었다. 프로토타입을 완성하고 들떠 있던 윌 라이트는 게임 유통사를 찾아가 새 게임을 선보였다. 그런데 이 혁신적인 게임은 유통사 직원들에게 전혀 환영받지 못했다. 직원들은 “도대체 이 게임은 언제 끝나냐?”고 물어봤다. 이기고 지는 것도 없고, 그냥 건물만 내리 짓고 있으니 게임 같지도 않다며 유통사는 난색을 표했다. 그 이후 다른 유통사들을 만났지만 반응은 한결같았다. 어떤 유통사도 그의 게임을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 “이것도 게임이냐”며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다.

이대로 끝날 것 같았던 ‘심시티’의 운명은 윌 라이트가 맥시스의 공동창업자 제프 브라운을 만나면서 달라졌다. 뜻이 맞은 두 사람은 5년의 개발기간을 거쳐 심시티를 재정비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심시티’는 게임스컴 등 각종 게임 시상식에서 24개의 상을 휩쓸며 최고의 상품으로 등극했다. 심지어 자연재해, 건물 설계, 주민 복지, 경제적 상황 등 도시 하나를 통째로 경영하는 게임 방식은 교육적 가치를 인정받아 교재로 채택되기도 했다. 심시티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그것은 ‘이상한 게임’이었다. 당시 각광받는 게임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화끈한 액션도, 짜릿한 파괴도 없었으니 ‘이게 뭐야?’라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파괴의 패러다임에서 창조의 패러다임으로 발상을 전환한 심시티는 ‘혁신’이 되었다. 한마디로 ‘이상한 놈’이 승리한 것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남들과 달리 유별나게 행동하며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남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어쩌면 보편적인 것만 추구하며 손해 보는 것을 꺼리는 뭇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너무나 불확실하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보다는 ‘모난 돌이 성공한다.’라는 표현이 더 자주 통한다. 모난 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모난 돌이 주변에 있다고 정으로 때릴 필요도 없다. 바야흐로 모난 돌들이 혁신을 일으키고, 그들의 참신한 발상이 미래를 밝히는 시대다.



CHAPTER 2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내일을 위한 협상

협상의 승자는 누구?: 1914년 7월 28일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일어난 세계 전쟁으로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전쟁으로 무려 900만 명 이상의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폭력이 난무하면서 무고한 희생자들이 속출했다. 전쟁이 4년 4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세계의 권력지도 또한 천천히 변해갔다. 러시아에서는 군주제가 붕괴되고, 독일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공화국이 세워졌다. 또 미국이 참전을 결정함으로써 많은 군수물자와 재정이 연합군에 지원되었다. 이로써 전쟁의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1918년, 끝까지 버티던 독일이 마침내 항복하면서 제1차 세계 대전은 종결되었다. 1919년 1월,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연합국과 패전국 독일 사이에 베르사유조약이 체결되는데, 이 조약은 패전국 독일에 대해 철저히 보복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조약에 따라 독일은 해외식민지를 모두 잃었고, 본국의 알자스와 로렌을 프랑스에 반환하였을 뿐만 아니라, 벨기에ㆍ폴란드ㆍ체코슬로바키아에 각각 일부 영토를 할양함으로써, 인구 15%와 영토의 10%를 잃었다. 또한 독일에 전쟁의 책임을 물어 연합국에 막대한 금액의 손해배상을 하도록 했고, 엄격한 군비제한이 부과되었다. 육군병력은 10만 명 이내, 해군의 군함 보유량은 10만 톤 이내로 제한했으며, 참모본부 의무병역제도가 폐지되었고, 잠수함의 보유도 금지되었다. 육해군의 무장에 대해서도 엄한 제한과 감시를 받았다. 이로써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독일은 완전히 난관에 빠지게 되었다. 독일과 승전국들의 표정은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뺏을 수 있을 만큼 모든 것을 빼앗은 승전국은 그제야 만족한 듯 돌아갔다. 하지만 일방적이고 무자비한 베르사유 조약은 결코 ‘조약’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명령’이라고 불렀다. 여기까지만 보면 승전국은 종전 협상에서 한 치의 실수 없이 승리했다. 만일 독일이 멀리 우주로라도 이사를 갔다면 베르사유조약은 승전국들의 완벽한 협상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승리는 불행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공격하듯, 갈 곳 없는 독일이 반격을 도모한 것이다. 베르사유조약으로 독일 경제는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승전국에 대한 분노는 점점 높아졌고, 정치도 혼란스러웠다. 사람들은 전쟁만큼이나 괴로운 이 시기를 누군가는 끝내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절박한 삶과 분노를 터트릴 출구가 필요했던 독일 사람들 앞에 히틀러가 나타났다.

제1차 세계대전의 종식을 진심으로 바랐다면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어떤 대화들이 오가야 했을까? 상대에게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 열을 올리기보다는 양측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제시했다면 ‘히틀러’는 나타나지 않았을지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역사의 가정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

그랜트 장군의 위대한 협상: 베르사유조약이 있기 40여 년 전,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북부군의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은 게티즈버그전투 후 사기가 꺾인 남부군을 몰아붙여 결국 애포매톡스 코트 하우스에서 남부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의 항복을 받아낸다. 그리고 두 사람은 전쟁의 승자와 패자로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그러나 그들의 만남이 기록된 그림을 보면 누가 승장이고 패장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얼핏 보면 제복에 긴 칼까지 찬 오른쪽의 백발 남성이 승장 같지만 사실 그 맞은편에 수수한 정장 차림에 흙 묻은 장화를 신은 사람이 북부군의 그랜트 장군이다. 둘의 만남은 패장인 리 장군의 요청으로 이루어졌다. 패색이 짙어진 전쟁 말기, 리 장군은 항복을 하기 위해 만남을 요청했던 것이다. 그 당시 전쟁 후 패전한 수장은 죽음을 면치 못했다. 리 장군 역시 자신의 죽음을 각오하고 항복하는 자리에 나갔다. 그림에서 보이는 제복과 칼, 깨끗한 장화는 최소한 군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며 마지막을 맞이하려는 리 장군의 의지의 표출이었다.

두 장군이 만난 자리에서 드디어 리 장군이 항복을 선언했다. 그는 패자로서 경제적ㆍ정치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마침내 그랜트 장군이 리 장군에게 요구사항을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리 장군이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단 하나의 조건이었다.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시오. 패잔병들, 남부군 장교는 타고 온 말과 권총을 가져가도 좋소.” 심지어 그랜트는 굶주린 남부군 패잔병들에게 식량을 제공하면서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것을 당부했다. ‘무사히 돌아가라.’ 이 기이한 항복 조건에 리 장군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목숨을 잃을 각오로 참석한 리 장군은 예상치 못한 그랜트 장군의 관대함에 감복했다. 그랜트의 요구대로 고향으로 돌아간 로버트 리 장군은 작은 대학의 학장을 지내며 여생을 마무리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옛 장교들이 그를 찾아와 북부군을 비난했지만 전혀 동조하지 않았다. 또한 리 장군은 죽기 전까지 워싱턴 D.C를 단 한 번 방문했는데, 이는 그랜트 장군의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제1차 세계대전과 남북전쟁 모두 승자와 패자가 명백히 갈린 전쟁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연합국은 승자에게 주어지는 경제적ㆍ정치적 권리를 마음껏 누린 반면, 그랜트 장군은 승자의 권리보다 더 큰 가치를 생각했다. 그랜트 장군이 지키려고 한 가치는 ‘통합’이다. 전쟁이 끝났으니 남과 북으로 나뉘어 싸운 세월의 흔적을 조금씩 지워가기를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다. 베르사유조약 이후 승자와 패자는 ‘승리에 도취된 자’와 ‘복수를 꿈꾸는 자’가 되었지만, 남북전쟁이 끝난 후 승자와 패자는 ‘통합을 이루려는 자’와 ‘그를 지지하는 자’로 관계를 맺게 되었다. 장기적으로 하나의 목표를 가진 파트너가 된 셈이다.

좋은 협상가란?: 협상의 의미는 계속 진화해왔다. 상대방으로부터 더 많은 이익을 얻는 데 목적을 둔 ‘분배적 협상’에서 경제적 이익의 공정한 분배를 추구하는 ‘통합적 협상’, 마지막으로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서로 감정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가치 중심 협상’으로 의미가 변화했다. 그렇다면 이 시대 좋은 협상가는 어떤 사람일까? 내가 원하는 협상 결과만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협상 결과는 물론, 협상이 끝난 뒤 상대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는 사람이다. 더 중요한 것은 협상 상대와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협상이 끝난 뒤 상대의 감정을 좋게 만들어, 더 좋은 ‘관계’의 진전을 갖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협상이다. 협상할 때 자신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게 된다. 자신의 것을 빼앗으려는 적과 감정적으로 좋게 협상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그리고 어느 한쪽이 뺏거나 빼앗길 수밖에 없는 협상이 끝나면 이 둘의 관계는 황폐 그 자체다.

협상을 잘하는 사람들은 논쟁이 되는 이슈에만 집중하기보다 이슈에 얽힌 사람을 이해하고, 상황을 둘러싼 모든 맥락을 고려하여 다각적으로 접근한다. 협상을 그저 조건과 숫자가 오가는 거래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협상할 때 상대를 ‘사람’이 아닌 ‘조건’으로 대하면 자칫 협박이나 기 싸움으로 변질될 수 있다. 그럴 경우 자본이나 회사의 규모, 알력을 행사해 당장에는 협상에서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멀리 볼 때 대외적인 신뢰나 평판이 한순간에 추락함으로써 더 큰 손실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른다.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을 때 협상은 제대로 풀린다. ‘하수는 승리를 취하고 사람을 잃는 반면 고수는 승리를 넘기고 가치를 얻는다.’ 이것은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잃지 않는 것이고 그 사람이 나중에 더 큰 가치를 가져올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1930년, 프린스턴 대학의 에이브러햄 플렉스너 원장은 세계 최고의 싱크탱크를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세계 곳곳의 유명 학자들을 스카우트하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도 그중 한 명이었다. 원장이 편지를 보냈다. “연봉을 얼마나 드리면 저희 학교로 오시겠습니까?” 당시 독일에서 연구활동을 하던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회신했다. “제가 그보다 더 적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3,000달러를 주십시오.” 편지를 읽고 잠시 고민하던 플렉스너 원장은 이렇게 답장했다. “1만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협상은 당연히 타결되었고, 아인슈타인은 프린스턴 대학에 부임했다.

플렉스너 원장이 제안한 연봉은 세상 물정을 몰랐던 아인슈타인이 원하는 것보다 3배 이상 많았고, 당시 미국 교수들이 받는 평균 연봉인 7,000달러보다도 훨씬 많았다. 어떤 사람은 말도 안 되는 협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인슈타인이 요구한 금액은 3,000달러였으니까. 하지만 이것이 진짜 성공한 협상이다. 플렉스너 원장은 1만 달러로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마음을 사버렸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 프린스턴 대학에 재직하면서 기념비적인 연구 성과를 만들어내자 하버드대, 예일대 등 미국 유수의 명문 대학들이 그에게 엄청난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프린스턴 대학을 떠나지 않았다.

인생을 살면서 협상은 계속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협상법이라 해도 실무에서 실행해보면 매번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협상 상황이나 상대가 변하며, 수천억 달러짜리 대형 계약을 위한 비즈니스 협상이든 부부간에 이루어지는 일상의 소소한 협상이든 모두 당사자들에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상대방을 존중하고 서로 윈윈할 수 있는 협상, 가치를 만들기 위한 협상을 해야 한다. 눈앞의 이익을 거두기에 급급해서 사람을 잃으면 결국 인생이라는 협상에서 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대방과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접점을 찾아 서로 만족하고 배려하며 존중하는 협상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협상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급선무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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