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최종학 교수의 숫자로 경영하라 3
최종학 지음 | 원앤원북스
서울대 최종학 교수의 숫자로 경영하라 3
최종학 지음
원앤원북스 / 2014년 7월/ 484쪽 / 19,500원
1부 회계를 알면 숨겨진 이면이 보인다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 및 대우조선해양 인수 실패와 그 뒷이야기 - 한화그룹
2008년 10월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한화그룹을 선정했다. 이로써 포스코, GS, 한화, 현대중공업 등이 벌였던 치열한 경쟁은 한화의 승리로 끝났다. 이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몇몇 언론이 부도덕한 기업인 한화에게 인수자격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2002년 한화가 예금보험공사에서 대한생명을 인수하기 위해 분식회계를 했고, 맥쿼리증권과 이면계약을 맺었으며, 그 결과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한생명을 헐값에 인수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사실인지 살펴보자. 먼저 대한생명 인수 직전 ‘부의 영업권(Negative Goodwill)’ 회계처리를 하면서 분식회계를 했다는 주장에 대해 알아보자. 주식 매입가가 매입대상 기업의 공정시장가치보다 낮으면 이를 부의 영업권이라 한다. 부의 영업권은 20년 이내의 합리적인 기간 동안 균등하게 환입되어 이익으로 인식된다. 당시 대한생명 인수를 위해 컨소시엄에 참여했던 한화석유화학과 한화유통은 모두 주식의 취득과 관련해 발생한 부의 영업권을 일시에 환입해 수천억 원을 당기이익으로 인식했다. 그 결과 양호한 신용등급을 획득해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대한생명 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좀 더 저렴한 비용으로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2011년 회계감리를 통해 한화그룹 계열사가 부의 영업권을 일시에 환입한 것이 분식회계에 해당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해당 기업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20년 이내의 합리적인 기간 동안 부의 영업권을 환입한다고 규정되어 있을 뿐 합리적인 기간이 어느 정도이고 어떻게 계산하는지에 관해서 명백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당시와는 회계기준이 달랐지만 2011년부터 국내에 도입되어 사용되고 있는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르면 부의 영업권은 해당 항목 발생연도에 즉시 이익으로 인식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즉 IFRS에 따르면 한화가 행한 방법대로 하지 않으면 오히려 분식회계가 된다. 검찰도 한화가 고의적으로 분식회계를 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아 이 사건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번에는 이면계약 논란에 대해 살펴보자. 한화는 대한생명을 인수하기 위해 일본 오릭스, 호주 맥쿼리보험과 컨소시엄을 맺었다. 3사의 지분비율은 63%, 30%, 7%였다. 컨소시엄을 구성한 것은 총 1조 6천억 원이나 되는 인수가액을 홀로 마련하기 벅차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당시 매각조건에 보험업종에 속한 회사를 우대한다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룹 내에 보험사가 없는 한화가 맥쿼리를 끌어들인 것이다. 그런데 예금보험공사가 2005년 제기한 대한생명 인수 무효소송의 원인이 여기서 발생했다. 예보는 맥쿼리와 한화가 이면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대한생명 인수가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한화 측에서 맥쿼리에 대여하고, 추후 맥쿼리의 지분을 한화 측에서 인수하며, 대한생명 일부 자금의 운용권을 맥쿼리에 준다는 내용으로 이면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자금을 대여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상거래이니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일정 시간이 경과한 후에 맺는 지분인수 계약은 일종의 콜옵션으로 기업 인수합병 과정에서 흔히 체결되는 것이다. 한화와 맥쿼리의 계약과 관련해 한화가 잘못한 점은 옵션계약 사실을 공시하지 않은 것이다. 경영상 중대한 사건인 만큼, 계약 체결 시 공시를 통해 주주들에게 알렸어야 한다. 따라서 공시 관련 규정 위반으로 금융감독원이 한화 관계자를 처벌했다면 이 점에 관해서는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옵션 내용을 매각 당사자에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은 매각조건에 규정된 바가 없으므로 이를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재무적 측면에서 살펴본 현대건설의 몰락과 부활 - 현대건설
2010년 범 현대가의 일원인 현대상선ㆍ현대엘리베이터 측과 현대자동차 측은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둘러싸고 광고전까지 벌이며 현대건설 인수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처음에는 5조 5천억 원의 인수자금을 제시한 현대상선 측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듯했다. 하지만 현대상선은 채권단이 요구한 자금출처를 증명하지 못해 우선협상자 지위를 박탈당했다. 채권단은 5조 1천억 원을 제시해 입찰에서 2위를 차지했던 현대자동차에 현대건설을 넘기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고 정주영 회장이 설립하고 현대그룹의 모태가 된 현대건설은 2000년 말 파산한 후 채권단 손에 넘어갔다가 10년 만에 아들 정몽구 회장이 경영하는 현대자동차에 돌아갔다.
국내 1위의 건설사였던 현대건설은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를 맞았다. 국내 건설경기가 급격히 위축되었고, 이라크에 건설 중이던 공사대금 1조 원을 받지 못했다. 악재가 겹치면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00년 삼일회계법인은 현대건설이 계속 기업으로 존속할 가능성이 불확실하다는 감사의견을 발표했다. 한때 최고 4만 원대까지 올랐던 현대건설 주가는 2000년 들어 2천 원대로 급락했다. 2000년 말 기준 현대건설의 유동부채는 무려 6조 8천억 원, 자본은 -8,572억 원, 당기순손실은 3조 원에 달했다. 더 이상 회사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 결과 만기가 돌아온 기업어음 224억 원을 상환하지 못하고 파산했다. 이런 상황에 처하자 현대건설에 자금을 댔던 은행들이 채권단을 구성했다. 채권단은 현대건설을 인수해서 직접 경영하고 회사를 살린 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2001년 4월 현대건설은 무상감자를 공시했다. 대주주 일가 보유 지분 15%에 대해서는 경영실패 책임을 물어 완전 감자를 하고 소액주주 지분은 5.99 대 1의 비율로 감자했다. 이런 형식의 감자를 차등감자라고 한다. 감자 결과 대주주 일가의 지분이 완전히 사라져 대주주는 경영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감자가 끝나고 채권단은 1조 9,750억 원의 대출금을 주식으로 전환했다. 그 결과 현대건설은 채권단을 새로운 최대주주로 맞이하게 되었다. 출자전환으로 부채가 대폭 줄어들고 자본이 증가하면서 현대건설은 자본잠식 상태에서 벗어났다. 출자전환 이후 부채총액이 줄고 인력감축이나 비핵심사업 매각 등의 비용절감 노력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회사 상황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2004년 한국거래소의 상장폐지 규정이 강화되면서 현대건설에 문제가 발생했다. 이전에는 자본 전액이 잠식되면 상장폐지에 해당되었으나 규정이 바뀌면서 자본의 50%만 잠식되어도 상장폐지 대상이 되도록 바뀐 것이다. 자본 잠식 기업이 상장폐지 위험을 모면하려면 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늘리거나 누적 결손금을 없애야 한다. 채권단은 상장을 유지하기 위해 9.05 대 1의 무상감자를 실시하였다. 모든 주주에게 적용되는 균등 감자였다. 채권단은 감자를 한 직후 전환사채 5,889억 원을 출자전환했다. 현대건설은 감자를 통해 자본금을 줄이면서 동시에 이 금액을 누적결손금과 상계 처리했다. 자본금과 누적결손금이 동시에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 전환사채 출자전환을 통해 자본금이 다시 늘어났다. 상장폐지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이후 현대경영의 경영상황은 조금씩 개선되었다. 국내에서는 부동산 붐이 일면서 신용등급이 상향조정되었고, 2006년에는 기업회생절차를 졸업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지만 해외 건설시장에 주력해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2010년 매각작업이 진행되었고 치열한 경쟁 끝에 현대자동차가 새 주인이 되었다.
2부 의사결정의 중심에 숫자경영이 있다
영구채권은 부채인가, 자본인가? - 두산인프라코어
2012년 10월 두산인프라코어는 5억 달러 규모의 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이로써 두산인프라코어는 앞으로 상당 기간 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이번 채권 발행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회계기준원, 회계학회, 산업은행까지 동원된 논쟁이었다. 그 이유는 이 채권이 영구채권(perpetual bond)으로, 자본인지 부채인지 구분이 애매한 하이브리드(hybrid) 채권이기 때문이다.
IMF 경제위기 당시 우리 정부는 은행들이 자본 확충을 위해 영구채권을 발행하는 경우 이를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인정해주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자본은 부채보다 조달 금리가 높고 조달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발행이 쉽지 않다. 하지만 영구채를 발행하면서 자본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여 사용하면서도 재무제표에 표시되는 부채 비율을 낮출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후 영구채권은 2011년 IFRS 도입 이후 다시 주목받게 된다. IFRS는 부채의 일반적인 정의를 좀 더 구체화해서 ‘발행자가 현금결제 의무를 통제할 수 없다면 부채로 분류’하도록 규정했다. 새로운 정의에 따라 기존 기업회계기준에서 자본으로 분류되던 상환우선주는 IFRS 도입 시점부터 부채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만기가 없거나 만기 이후에 재연장이 가능한 영구채권은 부채가 아니라 자본으로 분류하게 되었다. 물론 이자율이 상당히 많이 가산된다면 영구채권을 발행한 기업이 가산기간 이후에도 영구채권을 상환하지 않을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명백하게 상환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부채로 분류할 수 없으니, IFRS상 자본으로 분류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IFRS 도입 이후인 2012년 10월 두산인프라코어가 산업은행을 통해 영구채권을 실제로 국내에서 발행하자 많은 논란이 벌어졌다. 이 영구채권은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발행되었다. ① 만기 30년(두산인프라코어가 별도 통지를 하지 않을 경우 만기 자동 연장) ② 발행금리 3.25% ③ 5년 후 가산금리 5%, 그 후 2년 후 추가 가산금리 2% ④ 이자 지급 연기 가능(단, 이자 미지급 시 배당금 지급 금지) ⑤ 5년 후 두산인프라코어가 콜옵션을 행사해 상환할 수 있음 ⑥ 콜옵션 미행사 시 투자자는 은행에 풋옵션을 행사해 상환을 요청할 수 있음 ⑦ 회사 청산 시 선순위 부채가 됨.
여기서 중대 이슈가 되었던 것은 ⑥번 조건이다. 이 조건은 만약 두산인프라코어가 채권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채권 투자자들이 은행에 채권상환을 요청할 수 있으며, 그렇다면 은행에서 채권을 지급해야 한다는 의미다. 즉 은행이 보증을 해주었다는 의미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자본에 보증을 해주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부채를 빌리는 데 보증을 해준 것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두산인프라코어가 영구채권을 발행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금융위원회가 이에 제동을 걸었다. 금융위원회는 영구채권의 실질적 성격이 부채에 더 가까우며, 영구채권 발행이 허용되면 부실기업이 눈 속이기용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에 금융감독원이 나서서 금융위원회의 견해에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파장이 커지자 금융위원회는 영구채권이 자본인지 부채인지 여부를 판단해달라고 회계기준원에 요청했다. 그러자 회계기준원은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에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2013년 5월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의 결론이 발표되었다. 영구채권을 자본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영구채권 발행을 둘러싼 논란은 일단락되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두산인프라코어의 주가는 상승했으며, 다른 기업들도 속속 영구채권을 발행했다.
3부 회계제도의 보완과 개선, 어떻게 할 것인가?
우회상장과 상장폐지의 악순환을 막으려면? ? 네오세미테크
2010년 8월 네오세미테크가 상장폐지되었다. 2010년 3월 분식회계가 적발된 후 5개월 만에 증권시장에서 퇴출된 것이다. 이 회사의 퇴출 전 시가총액은 4천억 원대로 코스닥 기업 중 26위였다. 시가총액으로 볼 때 역사상 가장 큰 기업이 상장폐지된 셈이다. 네오세미테크와 관련해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문제가 발생하기 직전인 2009년 10월 우회상장을 통해 코스닥시장에 상장되었다는 점이다. 2009년 10월 상장해 2010년 3월 거래정지되었으니 상장된 기간은 5개월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우회상장 과정과 관련된 금융감독원이나 증권거래소에 대한 비판이 다수 제기되었다.
네오세미테크의 창업주 오명환 사장은 공학 박사 출신의 전문가다. 이 회사의 주력 품목은 갈륨비소를 이용한 반도체 웨이퍼였다. 이 상품은 2001년 정부에서 세계일류상품으로 인정을 받았고, 회사는 최우수벤처기업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후 회사는 태양전지 웨이퍼 사업에 진출했다. 2006년 대만 수출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의 기업과 수출계약을 맺을 정도로 사업이 확대되었고, 지속적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신규투자를 수행했다. 2008년 환경보호와 녹색성장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회사는 더욱 각광받기 시작했다. 국내 대기업들에 웨이퍼 납품 계약을 맺었고 코스닥 시장의 스타주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자산규모와 이익이 급증했다. 2001년 130억 원에 불과하던 총자산은 2008년 2,200억 원으로 증가했고, 2007년 13억 원에 불과하던 이익은 2008년 230억 원으로 늘었다.
그러던 중 회사는 2009년 10월 코스닥 시장에 우회상장했다. 우회상장이란 비상장사가 상장사와 합병하는 형태로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것을 말한다. 주식시장에 상장되기 위해서는 증권거래소의 복잡한 상장심사 절차와 공모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비상장회사가 시장가치가 없는 유명무실한 상장회사와 합병하면,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뒷문을 통해 주식시장에 진입한다고 해서 백도어 리스팅(back door listing)이라고도 한다. 네오세미테크는 2009년 10월 ㈜모노솔라를 통해 우회상장했다. 이 회사는 2006년 코스닥에 상장한 회사로 네오세미테크에 부품을 공급하는 특수관계회사였다. 2009년 9월부터는 네오세미테크의 오 사장이 ㈜모노솔라의 대표를 겸하고 있었다. 우회상장 이전에 모노솔라의 경영권을 장악하여 우회상장을 진행한 것이다. 상장 시점의 주가는 15,510원이었다.
상장 직후 첫 번째 발행된 감사보고서에서 회계감사인인 대주회계법인이 네오세미테크의 재무제표를 신뢰할 수 없다며 ‘의견거절’을 선언했다. 의견거절이 발표되자 동사의 주식은 증권시장 규정에 따라 즉시 거래정지되었다. 이 시점의 주가는 8,500원이었다. 거래정지가 된 상태에서 3개월간 상장폐지가 유예되었고 재감사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3개월 후 발표된 재감사 의견도 역시 ‘의견거절’이었다. 회사의 회계기록을 전혀 신뢰할 수 없으므로 재무제표를 믿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네오세미테크는 정리매매를 거쳐 증시에서 퇴출되었다. 퇴출 시점의 정리매매가격은 295원이었다. 15,510원에 상장된 기업의 주가가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휴지조각처럼 가격이 급락한 것이다.
상장폐지된 후 대주주의 추악한 모습들이 속속 알려졌다. 오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의견거절 소식이 알려지기 직전 보유 주식을 대규모로 내다 팔았다. 내부자 거래를 한 것이다.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오 사장은 친인척 명의로 홍콩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가짜 웨이퍼를 포장해 홍콩으로 선적하고 수출했다고 매출로 회계장부에 기록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2천억 원대의 가공매출이 발생했다. 또한 페이퍼컴퍼니로부터 물품을 가짜로 수입하면서 거래대금 519억 원을 해외 비밀 구좌로 빼돌렸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오 사장은 동생의 여권을 이용해 마카오로 출국하여 잠적해버렸다. 이런 내용을 보면 대주주가 처음부터 사기를 치기 위해 재무제표를 조작하면서 상장을 준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 증권거래소는 공시 관련 규정을 강화하고 금융감독원은 우회상장에 대한 규정을 대폭 강화하는 규제안을 내놓았다. 우회상장을 하더라도 직상장과 비슷한 수준의 엄격한 심사를 받아야 하고, 금감원에서 지정한 감사인으로부터 감사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추가되었다. 이렇게 기업들이 우회상장을 할 때 누릴 수 있는 이점들이 사라지자 2011년 이후에는 우회상장하는 기업의 숫자가 급감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