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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이트 컨설팅 김경준 대표의 통찰로 경영하라

김경준 지음 | 원앤원북스
딜로이트 컨설팅 김경준 대표의 통찰로 경영하라

김경준 지음

원앤원북스 / 2014년 4월 / 504쪽 / 19,000원





1부 비즈니스의 본질을 통찰하다



프랑스 레스토랑과 순대국밥집

음식 문화가 발달하려면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 귀족층의 존재입니다.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걱정 없이 오로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재미있게 사는 사람들이 존재해야 합니다. 둘째, 지리적 조건입니다. 바다, 강, 평야, 산간 등 다양한 지형에서 갖가지 재료와 양념이 조달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두 가지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나라는 프랑스입니다. 역사적ㆍ지리적 조건을 충족한 프랑스는 일찍이 서양식 요리의 원형을 형성하고, 세계적으로 고급 서양식 요리의 대명사가 됩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서민음식이라 할 수 있는 해장국과 순대국은 푸짐한 고기국물과 건더기로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저렴한 장터 음식입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A와 B라는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A는 프랑스 유명 요리학원에서 공부하고 귀국해서 프랑스 레스토랑을 차렸습니다. 격조 있는 분위기, 정통 프랑스 요리를 기반으로 나름대로 명성을 얻고 인정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요리잡지 단골 모델인 셰프의 화려한 외양과는 다르게 실제로 돈을 벌지는 못합니다. 워낙 재료비가 많이 들고 다른 원가구조도 높기 때문이죠. 반면 B는 순대국밥집을 차렸습니다. 종일 냄새나는 돼지 내장을 손질하고 반찬으로 내놓을 김치도 자주 담가야 합니다. 가게는 소란스럽고 격조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맛집으로 소문나면서 손님이 늘어나 돈을 잘 법니다. 사업 관점에서 본다면 프랑스 레스토랑은 전형적인 외화내빈이고, 실속을 차리는 쪽은 순대국밥집입니다. 사업이란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고 돈을 버는 일입니다. 폼 잡는 것과 돈이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돈을 못 버는 프랑스 레스토랑은 아무리 격조가 있어도 사업으로는 실격입니다.

뉴욕 양키스의 유니폼에 선수 이름을 새기지 않는 이유

야구의 원조는 미국입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최고 명문 팀은 자타 공인 뉴욕 양키스입니다. 양키스는 이태리 구찌, 프랑스 샤넬과 같은 미국 프로야구의 명품입니다. 명품에는 전통이 존재합니다. 양키스도 그렇습니다. 양키스의 전통은 개인보다 팀워크, 철저한 규율, 불굴의 투지로 미국의 정신을 표상하고 있습니다. 미국 프로야구에서 유니폼에 등 번호를 처음 붙인 것이 양키스입니다. 양키스는 등번호 외에 선수 이름을 새기지 않습니다. 세계 최고 연봉의 스타 선수들이 달랑 번호만 붙이고 있습니다. 양키스의 전통은 선수들 한 명 한 명이 뛰어난 선수이기 이전에 모두 똑같은 양키스 팀의 일원이라고 봅니다. 수염도 긴 머리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단정한 용모와 예의 바른 몸가짐이 양키스의 상징입니다. “양키스에는 패배를 허락하지 않는 공기가 있다. 그런 팀이 날 원하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다.” 일본 출신 강타자 스즈키 이치로의 말입니다. 이처럼 단순한 스포츠 팀이 아니라 미국 정신의 표상으로 인정받는 양키스 브랜드는 “양키스는 승리한다. 우승한다. 감동을 주고 사랑을 받는다. 또 돈을 번다.”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내게 승리는 숨 쉬는 것 다음으로 중요하다. 숨 쉬고 있다면 승리해야 한다.” 이 말의 주인공은 2010년 타계한 전 뉴욕 양키스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입니다. 보스(the boss)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양키스를 35년간 경영하며 메이저리그 최고 구단 차원을 넘어 현대 프로 스포츠의 아이콘으로 만들었습니다. 1973년 그가 1천만 달러의 헐값에 인수할 당시 양키스는 과거의 영광만을 추억하는 하위권 팀이었지만, 4년 만에 월드시리즈 2연속 제패로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2014년 현재 양키스의 가치는 25억 달러로 평가되니, 250배 이상 가치가 늘어난 셈입니다. 양키스를 인수했을 때 그는 전통의 명문을 부활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은 스타 선수를 통해 관중석을 가득 메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양키스라는 최고 구단에 속한 사람은 그에 걸맞은 최고의 자세, 태도, 예절을 지녀야 한다며 선수들의 외모와 복장을 세세하게 간섭하고, 긴 머리와 수염을 금지했습니다. 일부 선수들이 반항했지만 “머리를 기를 거면 구단에서 나가라.”고 하면서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양키스는 미국 프로야구의 명품이 되었습니다. 명품은 제품의 질과 가격의 차원을 뛰어넘는 꿈과 정신이 브랜드에 깃들어 있습니다. 양키스는 단순히 게임에 이기고 우승하기 때문이 아니라 전통의 가치로 미국인의 꿈과 정신을 상징하는 프로 스포츠 팀이 되었습니다.

업의 본질에 대한 자신만의 확실한 관점이 있는가?

1993년은 삼성 신경영이 시작된 해입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꿔보자.”라는 도전적인 슬로건이 상징이었습니다. 당시 삼성은 업의 개념과 업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강조했습니다. 단순히 어떤 물건을 어떻게 만들어서 누구에게 판매한다는 차원을 넘어 본질적 개념을 정립해야 사업의 현재와 미래가 보인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렇다면 가정주부의 업의 개념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백미는 해피니스 메이커(happiness maker)라는 표현입니다. 신문기자로 일하는 친구에게 업의 개념을 물어보았더니 “조기경보자”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기자는 남보다 일찍 어떤 문제의 발생 가능성을 알리는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치는 소년’이라는 것입니다. 술집은 어떨까요? 술집은 예쁜 마담과 술을 마시고 기분을 전환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만약 80세 할머니와 술을 마시는 곳이 된다면 당신은 갈 수 있을까요?

실제로 100세가 넘어서도 일본 도쿄 긴자에서 인기를 누리던 마담이 있었습니다. 1948년 도쿄 외곽에서 커피숍을 연 뒤 1951년 긴자로 옮겨 53년 동안 <길베이아이>라는 조그만 바를 운영하다 101세가 되던 2003년 작고한 아리마 히데코입니다. 그녀는 “술집은 샐러리맨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곳, 마담은 술을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 손님이 즐겁게 술을 마시도록 도와주는 사람”으로 정의했습니다. 그녀는 진급에 실패한 샐러리맨에게는 위로 편지를, 성공한 사업가에게는 축하 편지를 쓰는 일을 평생 거르지 않고 했습니다. 정작 술은 90세가 넘어서야 한 모금씩 마시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손님들과 풍부하고 격조 있는 대화를 하기 위해 매일 3개 신문을 읽으면서 시사지식을 꾸준히 습득했는데, 단골손님 가운데는 전직 총리를 포함하여 소설가, 재계 총수 등 명사들이 즐비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술을 매개로 인생 상담업을 했던 것입니다.

게임벤처와 <개그콘서트>의 성공비결은 철저한 운영관리

창조경제가 부각되면서 창조성의 첨단이라고 하는 게임회사의 역량이 궁금하던 차에 엔씨소프트에 있는 지인에게 “도대체 오늘날 엔씨소프트가 있게 한 창조성은 어디에서 나왔고, 어디에서 키우고 있는가?”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흔히 창조적 기업문화가 중요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다 겉만 보고 하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핵심은 철저한 관리운영 능력이다. 게임 산업이 기술에 대한 이해와 창의적 아이디어에서 출발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관리운영 능력은 이를 사업으로 연결시키는 기초체력이다. 관리운영 능력이 없어도 한두 번 히트작을 낼 수는 있겠지만, 꾸준히 성공작을 내면서 흐름을 따라가고 오랫동안 성공하기는 불가능하다.” 한때 흥행작으로 혜성처럼 떠올랐지만 후속작이 따라주지 않아 쇠락한 많은 게임회사와, 엔씨소프트를 비롯해서 살아남은 게임회사들의 차이점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1999년 선보인 <개그콘서트>는 코미디의 암흑기에 나타난 기대주에서 지금은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노래는 30년 묵어도 감동을 받지만, 유머는 두세 번만 들어도 식상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코미디 프로그램이 15년을 이어오면서 계속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고, 오랫동안 꾸준히 출연하면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개그맨들의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언론이 분석한 개그콘서트 프로그램의 성공비결은 경쟁, 협업, 기획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공정하고 치열한 시장경제, 구성원들의 협업과 팀워크, 긴 안목의 기획력이라는 삼박자가 <전국노래자랑> 다음의 장수 예능 프로그램을 탄생시켰다는 해석입니다. 수많은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개콘’은 이제 단순한 예능 프로그램의 차원을 넘어 변화와 혁신의 아이콘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서수민 PD는 개콘의 장수비결로 철저한 규율과 운영관리를 강조합니다. 공채 기수에 따른 선후배 간의 철저한 위계질서와 무조건 주 5일 연습실에 나와 오후 1~6시까지 연습하는 엄정한 규율이라는 기초체력을 바탕으로 조직력과 시스템을 보완하는 것이 장수비결이라 자평합니다. 갈갈이 박준형, 마빡이 정종철, 달인 김병만 등 간판스타들이 프로그램을 떠나도 다른 개그맨들이 계속 부상하면서 유지되는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게임회사와 코미디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조직의 기초체력은 분명한 원칙과 규율에 근거한 철저한 관리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이 바탕 위에 다양한 기술과 아이디어, 지식과 협업이 결합되어 최고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2부 역사에서 경영의 지혜를 배운다



고대 그리스와 헤겔의 시간, 철도산업과 시테크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구분했습니다. 크로노스는 물리적으로 흘러가는 객관적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특정 의미가 부여된 주관적 시간입니다. 크로노스는 하루, 한 달, 1년처럼 객관적으로 흘러가지만 카이로스는 사건별로 진행되며, 천천히 가거나 급속히 흐르기도 하고, 때로는 거꾸로 흐르기도 합니다. 역사에서 시간의 개념은 크로노스입니다. 객관적으로 주어진 시간에 인간들이 참여하고 상호작용으로 만들어가는 사건들의 연속과 그 결과물들이 역사입니다.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시간 개념과 관련하여 떠오르는 사람은 헤겔입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무렵에 날개를 편다.”라는 그의 문장은 유명합니다. “동물들에게는 시간이 없다.”라는 문장도 있습니다. 역사를 절대정신의 구현과 확장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했던 헤겔의 관점에서, 본능으로 움직이는 동물들은 단순한 생존만 반복하기에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인간에게만 시간이 있다는 의미인데, 그리스 사람들이 카이로스를 진정한 시간으로 인정한 것과 마찬가지 맥락이라 하겠습니다.

근대 경영의 관점에서 시간의 개념은 19세기 철도의 역사와 함께 시작됩니다. 과거에는 체계적이고 정교하게 표준시간을 설정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철도망이 발달하면서,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들이 서로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뉴욕, 보스턴, 시카고 모두 동일한 표준시간에 맞추어야 했습니다. 즉 10분의 오차가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에 시간을 정확하게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생겨났고, 이것이 근대 경영의 기본 개념이 되었다는 것이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의 관점입니다. 1990년대 ‘시테크’란 단어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업의 시간 원가를 분석할 때 임원의 1분은 500원, 과장의 1분은 250원, 대리의 1분은 150원으로 산정한다면 10분 동안 커피를 마시며 노닥거리면 수천 원이 깨지고, 결국 원가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입니다. 시테크라는 단어가 나타내듯 이제는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효과적으로 집중하는 것이 테크놀로지가 되었습니다. 피터 드러커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는 것은 개선할 수 없다.”라는 경영학의 유명한 명제를 남겼습니다. 마찬가지로 기업을 포함해 어떤 조직에서나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관리하고 개선하는 것은 모든 활동의 근간이 됩니다.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 삶과 죽음을 대하는 사생관

로마는 국가를 구한 전쟁영웅에게 수도 로마에서 개선식을 거행할 수 있는 명예를 부여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개선식이 열리는 하루는 인간으로서 최고의 성취를 인정받고 로마 시민으로서 최고의 영예를 얻는 그야말로 인생 최고의 날입니다. 그런데 이 개선식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환호하는 시민 사이를 자랑스럽게 행진하는 개선장군의 바로 뒤를 노예가 따라 걸으면서 “메멘토 모리”를 계속 외치는 것입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인데, 인생 최고의 날에 일종의 초치는 내용을 바로 등 뒤에서 외치면서 졸졸 따라다니는 셈입니다. 이러한 행위의 의미는 ‘인간으로서 최고의 영예를 받고 신의 경지에 오른 듯 느껴지지만, 너 역시도 언젠가는 죽는 인간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교만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항상 잘나갈 때 조심해야 합니다.

카르페 디엠은 가장 유명한 라틴어 경구 중 하나입니다. ‘오늘을 잡아라’로 직역되는 이 문구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오늘을 즐기라는 의미로 되풀이해서 강조하면서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카르페 디엠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구 중 “현재를 즐겨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의 부분 구절입니다. 운명은 신의 영역이므로 미지의 미래를 고민하지 말고 오늘에 집중하라는 의미입니다. 메멘토 모리의 ‘죽음을 기억하라’와 카르페 디엠의 ‘오늘을 잡아라’는 외견상 상충되지만 맥락은 동일합니다. 유한한 인생, 소멸되는 운명 속에서 인간의 유한성을 자각하되 오늘의 삶에 충실하라는 뜻입니다. 잘 살아온 사람이 잘 죽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삶과 죽음에 대한 관점, 즉 사생관이 인간의 품격을 유지하는 기본 바탕이라 생각합니다.

로마의 멸망 원인을 둘러싼 일반화의 오류가 비롯된 배경

천년 제국 로마가 멸망한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목욕을 좋아해서 호화로운 대규모 목욕탕을 만들어 즐겼기에 대량의 연료가 필요했던 것이 원인이 되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연료를 조달하기 위해 무리하게 삼림을 벌채하다가 삼림이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농토가 황폐해져서 농민들의 생활이 곤란해지고 사회가 불안정해져서 망했다는 시각입니다. 납중독을 원인으로 들기도 합니다. 로마의 수도관이 납으로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로마 귀족은 은식기, 평민은 납식기를 주로 사용했는데 여기서 납중독이 생겨났고, 로마인들의 체력과 정신력이 떨어져서 패망했다는 것입니다. 팍스 로마나 시대에 방탕하고 사치스런 풍조가 유행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해 결과적으로 사회의 건강성이 무너져서 패망에 이르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목욕탕론과 납중독론은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현상의 단면만 보고 원인을 무리하게 추론하고 판단하는 오류입니다. 로마인들이 대형 목욕탕을 짓고 대규모로 연료를 소비한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하지만 땔감 사용을 멸망의 주요 원인으로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로마는 도로 인프라가 우수하고 시장경제가 발달했기 때문에 국지적 연료부족이 발생할 수는 있어도 체제가 멸망할 정도로 심각해지기는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또한 로마의 수도는 교외에서 시내까지 물을 끌어온 뒤 마지막 단계에서 납관을 통과하는 구조입니다. 수십 미터의 납관을 통과하는 동안 물이 납에 오염되기는 어렵습니다. 납으로 만든 식기가 문제였다고 하는데, 로마 멸망 이후에도 납식기는 오랫동안 사용되었습니다. 결국 로마가 멸망한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복합된 결과일 것입니다. 수십 가지, 수백 가지가 모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하더라도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이유를 추출해 내는 것이 과학입니다. 여기에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관점과 세계관의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의 멸망은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오랜 기간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고 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멸망 원인이 한 가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어떤 나라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변화를 늘 직시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알게 해주는 것일지 모른다.”라고 정리했습니다.

더플코트와 바바리로 본 유행과 혁신전파의 메커니즘

근대 세계의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나라는 영국입니다. 20세기 초반까지 300년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는 세계 최강국이었습니다. 대영제국은 법률과 제도에서 철도와 자동차, 나아가 스포츠와 복식에서도 현대의 기준을 형성합니다. 오늘날 신사복 스타일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20세기 초반 영국 전성기의 왕세자였던 윈저공입니다. 윈저공은 초강대국의 왕세자에 미남이고 사교술이 좋아서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인기인이었습니다. 당시 상류층 젊은이들은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 드레서로 꼽히는 윈저공의 취향을 앞다투어 따랐다고 합니다. 이것이 시간을 두고 일반인들에게 퍼지면서 지금의 신사복 스타일이 완성되었습니다. 당시 스웨터는 하층 노동자들의 생활복이었는데, 윈저공이 1922년 세인트 앤드류스 골프클럽에서 처음 입기 시작하면서 신사들의 평상복이 되었고, 이제는 세계인의 생활복이 되었습니다. 토머스 버버리의 가게에서 만든 트렌치코트도 윈저공이 ‘바바리’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이름이 굳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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