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회사
수희향 지음 | 생각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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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지음
생각의나무 / 2012년 11월 / 216쪽 / 11,000원
남의 떡 그만 쳐다보자(기질에 맞는 꿈 찾기)
자유기고가 프리랜서 5년차 서승범 씨
올해로 자유기고가 프리랜서 5년차인 서승범 씨는 대학에선 역사학, 대학원에선 서양사를 전공한 역사학도이다. 어딘가 여유로움이 배어 나오는 이미지답게 가장 감동적인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훈 선생의 『자전거 여행』과 곽재구 선생의 『포구기행』을 꼽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김훈 선생을 글쓰기 멘토이자 역할 모델로 삼고 있단다. 곽재구 선생은 감상이 주가 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여행기를 쓴다면, 김훈 선생은 지식이나 사실을 뼈대로 삼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은데, 자신은 아무래도 후자의 글쓰기 스타일을 모색하는 것 같다고 한다. 게다가 김훈 선생의 느린 글쓰기 작법(그러고 보니 선생은 늦은 나이에 등단하여 느린 출발을 하고 있다)에서 나오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것 같은 단단한 글쓰기를 닮고 싶다고 한다. 글이 작가를 표현하는 도구라 한다면, 편안해 보이지만 속이 꽉 찬 것 같은 서승범 씨다운 이미지가 드러나는 글을 쓰는 것이 바람인 것 같다.
미국 흑인사를 졸업 논문으로 썼던 그가 학교를 떠나 세상과 가장 먼저 만들어낸 연결고리는 잡지사 기자였다. 여러 잡지사를 거치며 3년 반의 기자생활을 바탕으로 맡게 된 다음 일은 사보기획사 편집장 일이었다. 사회적 관점으로 보면, 분명 그의 커리어는 안정권으로 진입했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였다. 하지만 그에게 안정된 시간은 1년 반으로 충분했다. 첫째가 3살이 되고, 둘째 아이가 막 태어나려는 그 시점, 그는 1년 반의 편집장 생활을 정리하고 프리랜서 자유기고가로 독립을 선포해 버렸다. 만삭의 아내를 뒤로 하고 독립 선포라니, 얼핏 무모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 안정된 일을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하게 하였을까?
“제 기질에 도저히 안 맞았어요. 저는 혼자 조용히 글을 쓰며 살고 싶었는데 편집장은 기획부터 편집, 마케팅까지 모든 일에 전부 관여해야 하는 역할이잖아요. 한마디로 총감독 역할과도 같은 일인데, 그 일이 제겐 전혀 흥미롭지 않았어요. 거기다 또 하나 결정적인 요소는 사보 편집장은 워낙 트렌드를 창출해야 하는 일이라서 40대 중반이 넘어가면 트렌드를 잘 쫓아가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도 계속하기 어려운 포지션이에요. 제가 어찌어찌 버틴다 해도 결국에는 나와야 하는데, 그럴 바에는 정말이지 한 살이라도 일찍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역할 모델인 김훈 선생님이 떠올랐다. 그렇게 천천히 여행 작가의 길을 만들어가고 싶은 이에게, 매달 마감 시간에 쫓겨 모든 행정 업무부터 마케팅까지 담당해야 하는 일은 분명 기질적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내면탐구에 기반을 둔 자기계발 저자이자 상담가로 유명한 윌리엄 브리지스의 말을 빌자면, 사람들은 누구나 30대 중반이 되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에 대한 내적 욕구가 분출된다고 한다. 이때 내면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단순히 흘려버리거나 그냥 계속 억누르기만 하면, 이후 알코올이나 게임 중독처럼 감각적인 방법으로 해소하려고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즉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원하는 일이 대극에 놓여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마음속에서 나의 삶이 전환점을 맞고 싶다는 하나의 사인을 보내는 것이니, 심각하게 고려해볼 시점에 도달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서승범 씨의 경우는 자기 안의 소리를 잘 포착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분명 그는 전형적인 내향형 스타일로서,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하는 편집장보다는 자신만의 호흡으로 갈 수 있는 자유기고가나 작가가 어울린다. 더군다나 그의 말처럼 사보 편집장이란 일은 40대 중반이 넘어가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도 계속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감안해보면, 30대 중반에 기질에 맞는 자신만의 꿈을 위해 터닝포인트를 만들기 시작한 일은 분명 합리적인 용기라 칭할 수 있는 일이다. 자신의 판단이 결단코 깊은 생각 끝에 내린 아주 현실적인 결정이었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소크라테스는 틀리지 않았다(자신의 성격과 기질 파악하기)
그늘에 놓인 해시계, 기질적 장점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이 사람들의 재능을 보다 포괄적인 측면에서 관측한다면, 마커스 버킹엄과 도널드 클리프턴의 ‘강점혁명’은 재능과 기질을 한데 엮은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 두 사람은 30여 년 동안 각 분야 2백만여 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스트렝스 파인더’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는데, 이 프로그램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기질적 장점 다섯 가지를 알려주는 테스트다. 스트렝스 파인더에선 사람들이 지닌 기질을 서른네 가지 테마로 분류하고, 각각의 기질이 어떻게 장점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지 사례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낭비되는 장점을 ‘그늘에 놓인 해시계’라고 표현했던 벤자민 프랭클린은 “인생의 진정한 비극은 충분한 강점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갖고 있는 장점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데 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스트렝스 파인더 개발자들은 모든 사람들은 기질에 따라 저마다의 장점이 있고, 이 장점들을 개발한다면 자신만의 고유한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기질적 장점이란 어떤 것일까? 한 연구원 선배의 사례를 빌어 설명하자면, 선배의 다섯 가지 장점은 ‘탐구심, 초점, 관계자, 신념, 책임’이었다. 얼핏 보면 장점이라기보다는 기질로 익숙한 단어들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기질들은 실생활에서 어떻게 장점으로 활용되는 것일까?
우선 탐구심의 경우는 선배 스스로도 자신에게 이런 장점이 있는지 몰랐다고 한다. 오히려 무언가 하나를 알아내기 위해 책 한 권을 다 읽거나, 하나의 주제를 알기 위해 한 분야 전체를 파고드는 스스로가 더딘 사람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모습은 탐구심을 지닌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캠벨이 강조했던 독서법은 하나의 주제를 섭렵하기 위해서 한 저자의 모든 저서를 공부하고 거기서부터 방사선형으로 독서를 확대해나가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절대적으로 탐구심이 없으면 실천하기 어려운 공부 방법으로서 탐구심이 얼마나 큰 장점이 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 초점이 발휘되는 경우는 해마다 연초면 꼬박꼬박 세우는 연간 계획표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흔히 ‘놀면서도 할 건 다 하는 친구’, 이미지 그대로 여러 가지 일이 있어도 그중 중요한 일을 순서대로 다 해내는 스타일이다. 초점 테마를 장점으로 지닌 다른 예를 들자면, 동시에 여러 가지 사건이 벌어져도 본능적으로 우선순위가 매겨지는 사람들이다. 우선순위를 정해서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능력, 그 또한 초점 테마가 지닌 장점이다.
또 책임감의 경우는 자타가 공인하기 비교적 쉬운 장점이다. 그만큼 겉으로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굳이 테스트를 하지 않아도 책임감이 강한 이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드러난다. 다만 그런 이들 중에서도 테스트를 했을 경우 책임감보다 우선순위가 더 높은 다른 기질들이 장점으로 내재된 경우도 많다. 대개 사람들의 테스트 결과를 보면 두세 가지는 평상시 스스로도 짐작 가능했던 장점이지만, 두세 가지의 경우는 ‘내게 이런 면도 있었구나’ 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영역도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한 가지 정리하자면, 앞에서 언급한 가드너의 다중지능과 스트렝스 파인더 결과를 살펴보면서 이제 서서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느 분야에 기질적 장점을 지녔는지에 대한 윤곽이 잡힌다는 사실이다. 선배의 경우 다중지능에 의하면 자기성찰지능, 언어지능 및 인간친화지능이 높다. 여기에 탐구심, 초점, 관계, 신념 그리고 책임감이 강점테마이다. 이제 선배가 연구원을 졸업한 뒤에도 꾸준히 책 읽기를 좋아하고, 사색하면서 글쓰기를 즐기고, 연구원 누구와도 모나지 않게 어울리며, 보이지 않는 연구소의 디딤돌 역할을 하는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간다.
나만의 방법을 모색한다면 오르지 못할 나무는 없다(천직의 시장성 검토하기)
첼리스트에서 납관사로
첼리스트에서 납관사로 삶을 전환하는 이야기를 다룬 일본 영화가 있다. 시신을 염하는 납관사란 직업은 나를 포함한 다른 일반인들에게 굉장히 생소하고 낯선 직업인 것 같다. 그런데 고상하면서도 화려할 것 같은 첼리스트가 왜 납관사의 일을 하게 되었을까? 타키타 요지로 감독은 이 사연을 일본 영화 특유의 잔잔한 감동과 함께 <굿 앤 바이>에서 참으로 뭉클하게 풀어내고 있다.
다이고는 도쿄 한 악단의 첼리스트인데 슬프게도 훌륭한 첼리스트로 손꼽히는 카잘스키의 재능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첼리스트이다. 다이고는 악단이 해체됨과 동시에 실직을 하게 된다. 고가의 첼로를 악기사에 팔고 돌아서는 다이고는 어딘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독백을 한다. 누구라도 레드오션의 정글에서 하루하루 목숨 건 전쟁을 하다 어느 날 그곳을 빠져나오게 된다면, 그것이 자의에서든 타의에서든 비로소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마음 한구석이 일렁이는 순간이다.
그렇게 화려한 도쿄의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간 다이고는 고액수입 보장이라는 신문광고만 보고 일자리를 찾아가게 되었다. 사장은 이력서를 보자는 말도, 면접도 없이 무조건 오케이란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다이고에게 내려진 첫 번째 미션은 홀로 살다 죽은 지 꽤 오랜 시간 방치되었다가 발견된 시신의 납관 작업이었다! 첫 관문치고는 세도 너무 세다.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일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인류 역사만큼이나 길게 전해져 오는 진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시작하게 된다. 절대 임시직이라고 굳게 결심하며 아내에겐 사실을 숨긴 채로 말이다.
그런데 그 일의 수입이 너무 짭짤하다는 것이 큰일이었다. 죽도록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건 돈이 유일한 이유가 될 수도 있다. 크면 클수록 빠져나오기는 더욱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차라리 돈이나 적으면 훌훌 털고 나오련만 다이고는 점점 더 난감한 상황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러한 다이고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장은 이 일이 그의 천직이라고까지 하니 끔찍할 뿐이다.
한편 가만히 살펴보니 사장은 그다지 이 일에 대해 고민이 없는 것 같다. 고민을 하기는커녕 일할 때 모습은 전문적인 수준을 넘어 엄숙하기까지 하다. 마치 자신만의 예식을 치르는 것 같다고나 할까. 어느 날 임신한 아내가 다이고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되고, 결국 납관 일을 그만두려는 그에게 사장은 “생물은 생물을 먹고사는 거야. 그런데 식물은 달라. 그렇지만 이 음식들, 너무 맛있단 말이지. 미안하게도 말이야.”라고 말한다. 생물은 생물을 먹고 산다. 그런데 인간만 유독 삶이 죽음이 되고, 죽음이 삶이 되는 자연 순환의 법칙에 저항하는 존재이다. 죽는 순간까지 죽음을 피하려 하고, 절대 자신이 다른 존재의 밑거름이 된다는 생각은 잘 하지 못한다. 이 순간이었다. 다이고가 납관 일이 자신의 천직임을 깨닫는 순간이. 사실 그가 어떤 삶을 어디에 담아 세상과 만나느냐의 차이일 뿐, 음악을 통해서든 납관을 통해서든 그가 진정 세상에 들려주기를 희망했던 것은 사랑이었음을 마침내 깨달았다. 그리고 들판에서의 장엄한 첼로 연주 장면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다르지 않고 그 삶을 통관하는 자신만의 메시지가 있다면 어떤 일로 세상과 만나느냐는 표현의 수단일 뿐임을 말하고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 맞다(최소한의 생존경비 확보하기)
바닥과 만나는 1인 지식기업가들
온라인 마케팅 전문작가 김정한 씨는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삼국지》라고 한다. 중국어를 할 줄 몰라 원전을 읽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 국내에 나와 있는 《삼국지》는 모든 번역자들의 책을 죄다 섭렵하여 내용만 봐도 누구 번역 작품인지를 알 정도라고 하니, 가히 그의 《삼국지》 사랑이 짐작된다. 그는 왜 이렇게 《삼국지》에 깊이 빠져 있는 걸까? 김정한 씨에게는 《삼국지》가 삶이고, 스승이고, 멘토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김정한 씨가 1인 지식기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20년 전만 해도 딱히 1인 지식기업가의 길을 먼저 걸은 선배나 멘토를 찾을 수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야생정글을 맨몸으로 헤쳐 나가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삼국지》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지표와도 같은 역할이 되어 주었단다. 《삼국지》는 매일을 처절하게 싸우는 그에게 때로는 위로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교훈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자극이 되기도 하면서, 인간들의 욕망과 투쟁, 성공과 실패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현장에서 현장으로 극한의 삶을 지나쳐 온 그는, 1인 지식기업가가 되려면 최소 2년은 바닥 생활을 할 각오를 하고 시작하라고 한다. 《삼국지》에서 영웅들이 영웅으로 등극하기 이전의 삶들처럼 말이다. 그가 1인 지식기업가의 길을 걸어보니, 《삼국지》가 그냥 소설이 아니라 인간들의 삶을 지독히도 바닥까지 처절히 그리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누구나 와신상담의 기간을 거치지 않고서는 스스로의 삶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욕망경비라니, 언감생심이다. 그럼 어떻게 욕망경비를 통제할 수 있을지 대가에게 노하우를 전수받으면 좋을 듯하다. 누가 좋을까?
솥단지의 다리는 세 개다(수입의 다각화와 집중화 만들기)
최소 생존경비 다음 삶, 포트폴리오 인생
1인 지식기업가가 된다는 것은 어느 한순간에도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 되고, 최소한 감나무를 있는 힘껏 흔들기라도 할 마음을 늘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제 생존기간 연장을 위해 일감을 확보할 차례이다. 찰스 핸디는 스스로를 사회 변화를 유심히 관찰하고 생각하는 사회철학자일 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회는 그를 경영 구루 혹은 1인 지식기업가의 대부라고 부른다. 그 자신은 1인 지식기업가의 길을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그 시간을 완주했을까? 대가인 만큼 멋들어진 계획으로 시작하여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여정을 완수했을까?
찰스 핸디가 1인 지식기업가로 들어선 계기는 아주 우연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이 우리에겐 참 안심이 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한다. 다국적 기업인 셀을 거쳐 런던 경영대학원의 경영학 교수에 이어 윈저성의 세인트 조지 하우스의 학장을 역임하고 있던 핸디는 아직 자신의 계약 기간이 1년이나 남은 어느 날 학교 측에 우연히, 정말 우연히 젊은 후임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말을 한다. 그러나 그는 절대 진심이 아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저 영국식 신사의 예법상, 계약을 1년 남긴 상황에서도 젊은 후임자들이 거론되다 보니 자신이 먼저 그렇게 겸손하게 말하면 학교 측에선 오히려 적극적으로 잡아 주리라는 기대에서 그리 했다고 털어놓는다. 그의 어린아이 같은 진솔함 앞에 슬며시 미소가 나온다.
그러나 아뿔싸, 학교 측에서는 정말이지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요청 아닌 요청을 잽싸게 수락하여 그는 하루아침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직장을 잃고 길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훗날 그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그날 이후로는 아무리 사회적으로 예의를 차려야 하는 경우라도 절대 자신이 진정으로 의미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상대방의 마음을 떠보는 일을 두 번 다시 하지 않는다고 한다. 얼마나 뼈아픈 경험에서 오는 산 교훈이었는지 짐작할 만한 부분이다. 그리하여 핸디는 느닷없이 1인 지식기업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평상시 언젠가는 사회철학자를 천직 삼아 원하는 분야에 대해 집필을 하며 살겠노라 꿈을 꾸던 핸디였지만, 막상 엄청난 자유의 시간이 주어지는 1인 지식기업가의 삶이 시작되자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했었다고 한다. 매일 수없이 오고 가던 전화도 전부 끊기고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삶은 상상했던 것처럼 좋지도 근사하지도 않고 그저 사람을 멍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