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가슴으로 세상을 훔쳐라
마쓰모토 유키오 지음 | 스페이스
뜨거운 가슴으로 세상을 훔쳐라
마쓰모토 유키오 지음
스페이스 / 2012년 7월 / 207쪽 / 13,000원
Part 1. Will. 원대한 목표를 세워라
무지개를 좇는 마음으로
프랑스 황제의 자리에 올랐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소년 시절 나폴레옹은 어느 날 뒷산에서 친구와 뛰어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저 멀리 산 너머에 또렷하게 떠오른 무지개를 보았다. 그때 나폴레옹은 "좋아, 저것을 꼭 붙잡고 말겠어!"라고 외치고는 친구와 함께 들판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도 무지개는 잡히지 않았다. 친구는 지쳐서 달리기를 멈췄지만 나폴레옹은 포기하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렸다. 여기서 '무지개'는 그저 단순한 일곱 색깔 무지개가 아니다. 이 무지개는 나폴레옹이 필사적으로 붙잡으려 했던 꿈이고 의지이며 인생 목표다. 포기하는 순간, 꿈은 한낱 부질없는 몽상이 되고 만다. 그러나 성공할 때까지 계속 내달리면 꿈은 이루어진다.
손정의도 나폴레옹처럼 소년 시절의 꿈, 즉 무지개를 좇았다. 무지개를 잡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마음속의 생각을 얼마나 큰 스케일로 그리고, 그것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지가 중요하다. 손정의는 19세에 다음과 같은 '인생 50년 계획'을 세웠다.
- 20대…이름을 알린다.
- 30대…사업 자금을 마련한다.
- 40대…큰 승부를 건다.
- 50대…사업을 완성한다.
- 60대…다음 세대에 사업을 계승한다.
사실 이때 손정의도 확실한 근거를 토대로 '50년 계획'을 세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 손정의 본인도 그때 일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당시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19살이었으니, 근거 따위는 전혀 없었습니다. 남들은 허풍이라고 하겠지만 저는 제 계획에 추호의 의심도 없었습니다. 근거는 없었지만 확고한 자신감, 즉 확신이 있어서 그런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그 계획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 그는 19세 때 꿈꾸었던 무지개를 거의 잡으려 하고 있다. 꿈이 이루어지려는 순간에 와 있는 것이다. 2010년 6월 '소프트뱅크 신(新) 30년 비전'- 앞으로 30년 후 시가총액을 20조 엔(약 280조 원) 규모로 확대해 세계 10위 안에 든다, 그룹사를 현재 800개 사에서 5,000개 사로 늘린다, 세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기업이 된다. - 을 보면 그의 무지개가 완성되어 감을 알 수 있다.
소프트뱅크 창업
손정의의 최종 목표는 '정보 통신 세계의 천하통일'이다. 그러므로 그 목표에 이르기 전에 거둔 작은 성공은 언제든지 버릴 수 있다. 손정의가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한 때는 1981년 9월. PC용 소프트웨어 도매 유통을 주 사업으로 하는 일본 소프트뱅크를 설립하면서부터이다. 하지만 사실 그는 일본으로 돌아오기 전 미국에서 '음성지원 자동번역기' 개발을 시작으로 이미 사업을 전개하고 있었다. 음성지원 자동번역기는 음성 합성 장치, 사전, 액정 화면을 초소형 컴퓨터에 연결한 장치인데, 나중에 샤프가 자사의 전자사전에 사용할 목적으로 손정의에게 특허료를 지불하고 매수했다. 손정의는 그 특허료를 자본 삼아 미국에 벤처 기업인 '유니슨 월드(Unison World)'를 설립했다. 그때 그는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인베이더 게임' 기계를 수입 판매해 수익을 올리기도 했고 버클리의 게임센터 빌딩을 매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미국에서의 작은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일본으로 돌아가 사업을 새롭게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새 출발을 하려면 자금적인 측면과 정신적인 측면에서 도움을 줄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다. 손정의의 새 출발에도 많은 사람이 함께했다. 그중 한 명은 그의 부인인 오노 유미다. 손정의는 구마모토현에서 의사로 일하던 그녀의 부모를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날아갔다. 미국에서의 사업 포기는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이십 대 청년의 뜨거운 열정으로 그녀를 위해 인생을 걸었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한 명은 당시 샤프 전무였던 사사키 다다시이다. 당시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대중화되지 않은 때여서 규슈의 구마모토에서는 원활하게 정보 수집이 이루어지지 않았을뿐더러 고객을 끌어들이는 것도 도쿄에 비해 현저히 어려웠다. 그때 손정의에게 '도쿄 진출'을 제안한 사람이 바로 사사키였다. 손정의는 그의 제안에 따라 도쿄 고지마치에 소프트뱅크를 설립했다.
그 후에도 손정의는 인생의 고비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사업을 확대하고 위기를 극복했다. 출판업에 진출했을 때는 도쿄 아사히야서점의 다나베 사토시 상무, 투병 중에는 도라노몬 병원 의사인 구마다 히로미쓰 선생, 투자 사업의 조언이 필요했을 때는 현재 SBI 홀딩스의 CEO인 기타오 요시타카 대표, 소프트뱅크의 큰 전환점이 된 야후 출자 당시에는 야후 공동 창업자인 제리 양(Jerry Yang)이 있었다. 또한 서로 실력을 겨루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 소프트뱅크 휴대전화 사업에 발전의 계기를 마련해 준 아이폰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 등 그의 동반자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은인과 공로자를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손정의는 매년 4월 30일부터 5월 2일 사이에 하루를 '은인 감사의 날'로 정해 소프트뱅크의 휴일로 지키고 있다. 이처럼 의리가 두터운 것도 손정의가 주위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역경을 딛고
손정의의 호적을 보면 출생 기록이 1957년 8월 11일 사가현 도스시 고켄도로 무번지(無番地)로 되어 있다. 그것은 그가 예전의 국철 선로 옆 무허가 판잣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또 그의 조부는 한국에서 건너온 밀항자였고, 그의 부모는 돼지와 닭을 치고 때로는 불법으로 술을 만들어 팔면서 필사적으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판잣집에서 자란 어린 시절, 돼지에게 먹이려고 얻어온 음식 찌꺼기를 리어카로 나르던 할머니의 모습…….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이처럼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았던 부모와 할머니의 모습이 아로새겨져 있다. 손정의는 판잣집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을 역경이 아니라 오히려 구김살 없이 자랐던 시절로 회상한다. 그보다는 1990년 일본으로 귀화하기 전까지 재일 한국인 3세라는 사실이 더 큰 역경으로 작용한 것 같다.
손정의의 역경은 계속되었다. 1982년 사내 건강 검진에서 심각한 만성간염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는 즉시 입원했고 완치될 때까지 3년여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투병 생활을 했다. 그리고 하는 수 없이 사장직을 대리인에게 맡겨야만 했다. 병세 역시 심각하여 최악의 경우 죽음까지 각오해야 하는 상황으로 '앞으로 5~6년'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정보 혁명의 기수였던 손정의의 목숨을 다름 아닌 '정보'가 구했다.
손정의는 당시 간염 치료에 대한 학술 논문을 수소문하여 샅샅이 읽었는데, 그중에서 도라노몬 병원의 의사인 구마다 히로미쓰의 논문을 발견했다. 그리고 구마다의 스테로이드 이탈 요법을 활용하여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손정의의 강인함과 끈질김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이제 틀렸다'고 포기하지 않고 자기 목숨을 구할 온갖 정보를 수집한 끝에 결국은 최선의 치료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손정의에게는 투병이라는 역경도 결과적으로 감사해야 할 긍정적 요소로 작용했다. 역경은 그에게 인재를 외부에서 관찰할 기회와 지식을 충전하는 시간을 제공했고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었으며, 살아갈 힘을 샘솟게 해 준 것이다.
Part 2. Idea. 끊임없이 혁신하라.
최고를 만들어내는 힘, '기세'
『료마가 간다』는 젊은 시절 손정의의 인생 지침서였다. 또 그가 역경에 부딪힐 때마다 펼치는 책이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인생 지침서는 『손자병법』이다. 그의 애독서였던 『손자병법』에 손정의의 사업을 비추어 보자.
2000년 1월 4일, 손정의의 소프트뱅크 주가가 종가 10만 3,000엔(당시 기준으로 약 110만 원)을 기록하면서 시가총액을 11조 3,000억 엔(약 120조 원)까지 끌어올렸다. 드디어 소프트뱅크가 도쿄 증권거래소 1부에서 '10조 엔 클럽'의 일원이 된 것이다. 당시 10조 엔 기업은 NTT 도코모, 도요타 자동차, 세븐일레븐, NTT, 소니, 이렇게 다섯 개 기업뿐이었다. 유형의 상품을 전혀 제조하지 않는 미래형 기업인 소프트뱅크가 20년도 되지 않는 기간에 일본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기업으로 성장한 셈이다. 그만큼 손정의와 소프트뱅크에는 '기세'가 있다. 기세가 없었다면 10조 엔을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스포츠 경기를 보면 실력 있는 선수가 분위기에 밀려 기세 좋은 선수에게 질 때가 있다. 이는 개인뿐 아니라 팀 역시 마찬가지다.
『손자병법』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잘 싸우는 자는 이것을 기세에서 구하고 사람에게서 구하지 않는다.'(故善戰者, 求之於勢, 弗貴於人). 여기서 말하는 '이것'은 승리를, '사람'은 개인적인 힘과 용기를 뜻한다. 전쟁을 잘하는 자(리더)는 개인의 능력이 아닌 팀의 기세와 종합적인 힘을 이용하여 승리한다는 것이다. 기세라는 말을 들으면 미국 서부의 카우보이가 떠오른다. 카우보이가 동쪽으로 몇 백 마리나 되는 소를 몰아가면 소 무리에 기세가 형성되기 때문에 한 마리가 반대 방향으로 가려 해도 큰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무리의 힘에 휩쓸려 간다. 리더는 이렇게 기세를 만들어내는 카우보이이며, 이를 위해 '당근과 채찍' 즉, 보상이나 동기부여와 벌칙을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손정의는 무려 10조 엔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기세를 만들어냈다.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그의 그릇이 얼마나 비범하고 큰지 알 수 있다. 손정의는 오래전부터 '최고'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즐겨 썼다. 그러나 업계 최고이기만 해서는 사람들의 진심 어린 신뢰를 얻지 못한다. 손정의는 '최고 지향성' 외에도 풍부한 정보와 열정, 그리고 명확한 의지, 더 나아가 비전까지 갖춘 리더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믿고 따르는 것이다. 손정의는 기세를 만들어낼 줄 아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다.
'10배의 그릇'으로 바라본다
인터넷 증권 거래 시스템인 'e-트레이더'의 창립자 크리스토스 코차코스는 손정의를 '인터넷의 50년 후를 내다보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현재 일본의 경영자 중에는 아직 '4단계 디지털 정보 서비스 시대가 왔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상황에서 인터넷 시대의 몇십 년 앞을 꿰뚫어 본다니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야후의 창립자인 제리 양 역시 신생 기업인 야후에 1억 달러를 투자했던 손정의를 '15년, 20년 후를 냉정하게 내다보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 후에도 손정의가 지속적으로 투자했던 야후는 모두에게 잘 알려진 대로 결국은 조 단위의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19세 때 세운 50년 계획과 비교해 볼 때, 50대 초반인 지금 손정의는 대부분의 목표를 성취했고 심지어 일부는 계획보다 더 빨리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손정의는 이러한 개인적인 인생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기업조차도 생명체로 간주하며 그 수명을 300년으로 보는 것이다. 100년은 너무 짧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손정의가 또 큰소리를 친다.'고 비웃는다 해도 저는 창업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진지하게 '큰소리'를 칠 것입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성실하고 정직한 큰소리를 칠 것입니다." '허풍선이'란 실현되지 않을 일을 호언장담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손정의처럼 말한 대로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허풍선이가 아닌 '거대한 꿈과 뜻을 외치는 위대한 인물'이라 해야 옳다. 손정의가 오해를 받고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은 사람들이 시대의 단계를 잘 모를뿐더러 그들의 스케일이 손정의에 비해 너무 작은 탓이다.
Part 3. Confidence. 자신감을 가져라
손정의와 빌 게이츠
손정의와 빌 게이츠, 이 두 사람은 비슷하기도 하지만 다른 점도 많다. 손정의는 정보 혁명의 4단계에 와 있으므로 3단계를 중심축으로 하는 빌 게이츠보다 발상 면에서는 앞선다고 할 수 있다. 빌 게이츠는 인터넷이 커뮤니케이션 혁명에 있어서 '정보의 고속도로'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 "종이와 전화라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진화하여 컴퓨터가 되었다."라며, 컴퓨터의 연장선상에서 인터넷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 생각도 옳지만, 손정의의 5단계론이 훨씬 더 스케일이 크다. 그것이 과거로부터 미래로 진화해 가고 있는 현재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도 많다. 먼저 아이디어 내기를 즐겨한다는 점과 둘 다 발명가 또는 기술자 출신이기 때문에 순수하게 컴퓨터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사업을 시작한 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 싶다. 빌 게이츠는 13세라는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게다가 그는 지금까지도 '명령만 제대로 하면 완벽하게 작동하는' 컴퓨터의 특성에 매료된다고 하니 성격적으로도 완벽한 기술자인 모양이다.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로 '즐겁게 놀았다.'라고 말하는 빌 게이츠는 컴퓨터에 관한 지식을 배운 것이 아니라 컴퓨터를 좋아해서 즐겁게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발상의 스케일에 있어서는 손정의가 우세하지만, 사실 이타심에서는 빌 게이츠가 앞선다. 이는 두 사람의 장·단점을 떠나 개성의 문제인데, 최근에는 그 차이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디지털 정보 기술과 하드웨어 분야의 영웅 중 하나인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철학 중 제일 유명한 것이 '모든 가정에 수돗물처럼 전기 제품을 공급한다.'라는 일명 '수도 철학'이다. 이는 그야말로 자기 회사의 이익을 따지기 전에 세상에 많이 베풀고 나누려 하는 이타심의 절대치를 보여준다. 빌 게이츠 역시 10대 시절부터 '모든 가정과 모든 책상에 컴퓨터를 공급한다.'라는 기본 이념을 갖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정확히 일치하는 이런 생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손정의는 아직 세상에 대한 기여보다는 자기 회사의 규모를 키우는 것을 우선시한다. 그러나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손정의 역시 '이타'를 최우선으로 삼게 되리라 생각한다.
'괜찮아, 최고가 될 수 있어!'
손정의는 언제나 최고를 지향하는 경영자다. 그런데 손정의가 이처럼 최고를 지향하게 된 데에는 어릴 때부터 틈날 때마다 '괜찮다, 너는 반드시 최고가 될 거야.'라고 말해주었던 부친의 영향이 크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1등을 많이 했던 그였지만, 그렇다고 2~3등을 했던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부친은 그럴 때에도 '너는 최고가 될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캐나다의 에릭 번(Erick Berne) 박사가 30년 전에 주장한 '교류 분석 이론'에 따르면, 상대에게 나타내는 관심과 정서적인 자극을 '스트로크(stroke)'라고 하며, 사람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관심, 즉 스트로크를 받았을 때 의욕과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물론 관심 중에는 상대를 비판하거나 헐뜯는 부정적인 스트로크도 있다. 그러나 아무 관심도 없는 제로 스트로크보다는 훨씬 낫다. 일본에서는 옛날부터 '동네 따돌림'이 사회적 제재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동네 따돌림은 집에 불이 나거나 사람이 죽지 않는 이상 아무도 그 사람과 만나거나 이야기하지 않고 무시하는 제로 스트로크의 형벌이다. 사람은 '야단맞을 때'가 그나마 행복한 것이다. 아무 말 없이 포기하면 그 관계는 끝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로부터 최고라는 긍정적인 스트로크를 지속적으로 받았던 손정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계속 들었던 그 말은 손정의의 인생을 크게 바꿔 놓았고 성격 형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어떤 상황에 부딪혀도 '괜찮아, 할 수 있어!'라고 믿는 긍정적인 사람으로 자라게 했다. 일본으로 귀화할 때도 그의 이러한 성격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작용했다. 미국 유학을 끝내고 귀국해서 귀화를 신청했더니 당국에서 "손씨 성은 일본에서 전혀 쓰이지 않으므로 인정할 수 없다."라면서 접수를 거절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일단 부인의 성을 손씨로 바꾸었다. 그 후 "손씨 성을 쓰는 일본인이 있다."라면서 허가를 받아낸 것이다. 사실 손정의는 자신을 인터넷 시대의 국제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므로 국적에 집착하거나 귀화에 크게 구애되지는 않는다. 다만 한 번 스스로 정한 일이니 어떻게든 해내는 데에 집중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