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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사회적 창업하기

구도 게이 지음 | 에이지21
청년 사회적 창업하기

구도 게이 지음

에이지21 / 2012년 7월 / 320쪽 / 13,000원





01. 내가 NPO를 설립한 이유



대학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에 감명받아 신문기자를 동경하게 된 나는 한 해 재수한 끝에 세이조 대학 문예학부 매스커뮤니케이션 학과에 진학했다. 그 후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은 여름방학에 떠난 미국 여행이었다. 여행 중에 만난 타이완 친구들과 한 달을 보내고 난 뒤 나는 '대학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가야겠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그 후 일본으로 돌아와 대학 3학년 학기 말 시험을 마치고, 이듬해 2월에 다시 미국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대학을 그만두고 유학을 떠날 때부터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다. 이유도 목적도 묻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인생이니 네가 알아서 해라. 대신 자기 책임과 자기 결정이라는 걸 잊지 마라."

공부하지 말고 사업해라: 벨뷰 커뮤니티 칼리지 비즈니스 학부 회계학 전공을 택했다. 유학 초기의 수업은 내게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반년쯤 지나자 영어도 웬만큼 이해할 수 있게 되어 학교생활은 안정되었지만, 강의를 듣기에는 영어 실력이 모자라서 두꺼운 교과서를 몇 번이고 읽어야만 겨우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적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그 결과 성적도 수직 상승했다. 학교 밖 생활도 정신없이 바빴다. 세계 각국에서 유학 온 친구들과 토론하는 자리는 늘 내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장래에 관한 이야기를 해봐도 취직을 목적으로 미국에 온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조국을 위해 어떻게 이바지할 것인지, 몇 년 뒤의 기업 운영을 꿈꾸며 커리어 비전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가 나의 삶의 방식, 나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당시 유럽에서 유학 온 친구가 내게 말을 걸었다. "일본은 규제 완화 등의 여파로 앞으로 중년층과 고령층에서 대량 실업이 발생할 거야.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너에게는 진정한 기회야!" 내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자, 그는 이어서 말했다. "일단 정부는 일자리에서 밀려난 중장년층을 위한 고용 대책을 마련할 거야. 일부 기업은 그런 움직임을 미리 알고 비즈니스를 시작할 테고, 그때 버려지는 것이 바로 젊은 세대야. 앞으로 3, 4년 뒤면 사회에서 버려지고 배제된 젊은 세대의 문제가 고용 문제를 넘어서 사회의 골칫거리로 등장할 거야. 결국 무직 청년을 지원하는 '새로운 시장'이 생기는 셈이지." 마음 깊은 곳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내 부모님은 학원을 운영하셨다. 처음에는 보통 학원과 다르지 않았지만, 바다표범 손발증을 앓는 여자아이 부모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이자 그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전국 각지에서 비슷한 처지의 자녀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그리고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아이들과 청년들이 학원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대부분 10대 초반에서 20대였다. 나는 사회적으로 갈 곳 없는 그들과 공동생활을 시작해야만 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그가 한 말은 딴 세상이야기 같으면서도 어딘가 낯설지 않았다. 이런 나의 성장 배경을 이야기하자 옆에 있던 친구가 말했다. "지금 여기서 한가롭게 공부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기회가 생겼을 때 놓치지 말고 일본으로 돌아가 사업을 해봐. 공부는 나중에 해도 되잖아?" 결국 나는 편입시험에 합격한 워싱턴 주립대학을 포기하고 일본에서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청년 지원이 곧 사회적투자: 창업을 해보겠노라 마음먹었지만, 회사를 운영해보기는커녕 겨우 아르바이트한 경험이 전부였다. 그래서 청년 지원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유럽을 돌아보기로 했다. 동행으로 일본 청년 지원 분야에 정통하며 지금도 맹활약 중인 아버지가 나섰다. 시찰 장소는 현지의 청년 실업 지원 시설과 노숙인 지원 단체, 직업 훈련기관, 직업소개단체, 관공서 등이었다. 여러 시설을 방문하여 인터뷰했지만, 솔직히 지원 방법론적으로 새로운 것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청년을 지원하는 사회적인 가치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영국 정부와 협력하여 청년 지원에 주력하는 시설의 대표가 들려준 말이 '사회적투자(Social Investment)'였다. 난생처음 들은 말이었다. "투자와 사회적투자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대표는 친절하게 차이점을 설명해주었다. "투자는 자본을 시장에 투입하는 것입니다. 성공하면 큰 이익을 당신에게 가져다주겠죠. 사회적투자는 당신의 의지와 시간, 아이디어 등을 사회를 위해 투입하는 겁니다. '사회가 좋아지는 것'이 그 소득이고요."

노동시장과 사회에서 동떨어져 있는 그들의 문제는 나고 자란 환경, 한순간의 실수, 그들을 배척하는 사회 구조 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또 사회를 지배하는 문화적 풍토가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자기 책임, 근성 부족, 의욕 결핍으로 그들을 몰아세우고 내버려두는 사회는 결국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반대로 지원서비스를 통해 청년이 사회에 참여하게 되면, 결국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납세자로서 사회를 뒷받침하는 버팀목이 된다.

NPO 법인을 차리다: 나는 귀국 후 2001년에 청년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내 주위에는 월급이라 할 수도 없는 돈을 받지만, 뜻을 함께하는 동료가 조금씩 늘었다. 그리고 2004년 5월에 NPO 법인 '소다테아게넷'을 설립했는데, 이 법인은 무직 청년에게 지원서비스를 제공하여 사회적투자를 실현하고, 청년의 사회 참여와 경제적 자립을 지속적으로 지원하여 사회 복귀를 돕고 있다.

청년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형 NPO: 소다테아게넷은 사업형 NPO로 설립되었다. 수익자가 부담하는 주력 사업과 정부 위탁사업, 기업 협력사업 등에서 이익을 얻고, 그렇게 얻은 이익은 청년 지원사업 확충과 신규 사업에 투자한다. 나의 경영 수완은 아직 서툴러서 항상 이익을 내는 건 아니며, 이익이 거의 없거나 적자에 허덕이는 해도 있다. 경영자로서 좀 더 성장해야 한다. 소다테아게넷에서는 니트족(교육이나 훈련을 받지 않고 일도 하지 않으며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15~39세의 젊은이)과 은둔형 외톨이(일체의 사회활동을 거부한 채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사람)에 국한하지 않고, 현재 무직 청년이 사회의 일원으로 제 몫을 다하고 일자리를 구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집중 지원하고, 지원서비스에서 얻은 이익으로 사업을 계속 운영하고 있다.

현재 (2010년 12월 1일 기준) 소다테아게넷의 본부는 도쿄 다치카와 시에 있다. 그 외 도쿄 도내에 사업소 3곳, 사이타마 현, 가나가와 현, 오사카 부에 각각 한 곳씩 있다. 직원은 61명(상근자 34명, 비상근자 27명)이다. 직원 연령은 이십 대 초반부터 육십 대 후반까지이며, 여직원 비율은 50퍼센트를 넘는다. 그 외에 인턴 대학생과 자원봉사자, 안건별로 등록된 강사가 250명 있다. 급여는 경력과 직급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연봉이 300만 엔(4,500만 원)에서 350만 엔(5,200만 원) 정도이다. 사회보험은 그런대로 갖춰져 있고, 주택수당과 가족수당도 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제도 도입했다.

2009년 매출 34억 9천만 원: 2009년도 소다테아게넷의 매출은 232,769,051엔(약 34억 9천만 원)이다. 이익률은 5.28퍼센트이다. 대략 주력사업 매출이 40퍼센트이며 위탁사업 매출이 60퍼센트이다. 보조금은 받지 않았다. 주력사업은 우리 힘으로 청년 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고, 위탁사업은 납세자의 이해를 바탕으로 청년에게 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협력사업이다. 나는 주력사업 매출이 소다테아게넷의 본래 경영 실적을 반영한 숫자라고 생각하며, 위탁사업 매출은 우리의 지원서비스가 가진 가치와 기대치를 반영한 수치라고 파악한다.

청년에게 제공하는 세 가지 서비스: 현재 우리의 주력사업은 세 가지 서비스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청년의 사회 참여와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두 번째는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이다. 부모도 사회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한 청년과 함께 고민하고 괴로워하는데, 부모에게는 '유이(結)'라는 사업을 통해 개별 상담과 워크숍 두 가지 서비스를 함께 제공한다. 세 번째는 주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지원사업인데, 이는 본의 아니게 곤란한 지경에 빠지지 않도록 '예방'의 관점에서 강사 육성과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학교 현장의 요청을 받아 강좌를 운영한다.

정부 위탁사업은 계획적으로: 위탁사업이란 국가나 지자체와 협력하여 사회문제 해결에 주력하는 사업이다. 청년 지원 분야에서 NPO가 위탁받는 공급사업은 우리처럼 돈 없는 NPO가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조직의 존망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놀랍겠지만 이것이 사실이고 구조적인 문제이다. 첫 번째로 위탁사업은 원칙적으로 '이익'을 예산에 계상할 수 없다. '원칙적으로'라고 표현한 이유는 간혹 일반판매관리비, 즉 위탁업자가 '챙길 몫'으로 일정 비율(5~10퍼센트)을 계산해 넣어도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한 것은 위탁사업에 드는 비용의 지급 방식 때문이다.

지급 방식은 크게 두 종류로, 첫 번째는 '정산(精算) 처리', 두 번째는 '개산(槪算) 처리'이다. 이 지급 방법이 NPO의 수지와 재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위탁사업은 다음 연도 위탁사업에 관한 기획제안서의 바탕이 되는 기초자료를 보고 신청 여부를 판단한다. 이 기초자료가 1월 말에서 2월 중순 사이에 발표되는데, 일주일 혹은 열흘 안에 제안을 마감한다. 그리고 기획제안서를 심사하여 3월 말쯤 결과를 발표한다. 심사를 통과하면 4월 1일부터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

일을 시작하는 것도 벅찬데, 자금 문제는 더 큰 압박이다. 예를 들어, 올 4월 1일부터 이듬해 3월 31일까지 연간 1,200만 엔짜리 위탁사업을 맡았다고 치자. 단순하게 매달 100만 엔이 인건비(급여)와 사업비(강사초청비용)로 소다테아게넷 계좌에서 빠져나간다. 이 사업의 지급 방법이 '정산 지급'인 경우, 소다테아게넷 계좌에 위탁 금액인 1,200만 엔이 이체되는 것은 빠르면 이듬해 4월이다. 당연히 1년간 사업비용은 모두 소다테아게넷이 대신 지급해야 한다.

'개산 지급'일 경우에는 어떨까? 개산 지급 기간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3개월 혹은 6개월마다 입금한다. 정산 지급보다는 덜 힘들지만, 그래도 사전에 큰돈이 빠져나가면 경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소다테아게넷은 위탁사업으로 발생한 지급 부담을 금융기관의 자금융자에 의존하는데, 금융기관에서 빌린 자금에는 3퍼센트 안팎의 이자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 이자는 당연히 위탁사업비에 계상할 수 없다. 재무 전문가가 보면 '왜 그런 사업을 기획제안서까지 써내면서 하려는 건지' 궁금할 것이다. 나는 구태여 그 이유를 찾고 싶지 않다. 민관협력사업인 위탁사업을 통해 우리는 주력사업에서 실현하지 못한 '무직 청년에게 무료로 지원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텍스 페이어(tax payer)와 텍스 이터(tax eater): 지금 눈앞에서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청년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가? 아니면 자기 책임이라는 시각으로 보는가? 일본에서는 그런 상황에 놓인 청년을 놓고 그 지경에 이른 원인과 경위에 주목한다. 태어날 때부터 질병과 장애를 갖고 태어나, 그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학대와 집단 따돌림, 학업 부진 등 성장 과정에서 어려움에 직면하여 주위의 도움 없이 사회와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성인이 되기도 한다. 왜 사회가 청년을 지원해야 할까? 이 부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나는 열심히 일해서 세금을 내는데, 왜 '저런 녀석들'을 세금으로 지원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아직도 지인에게 이런 말을 듣곤 한다.

"그들도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고 괴로워하고 있어."

"그렇다면 이러쿵저러쿵 떠들지 말고 일하면 되잖아? 이를 악물고 일하면 못할 게 없어!"

내 친구마저 청년을 지원해야 하는 필요성을 이해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여 이해와 공감을 얻고, 더 나아가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게 설득해야 한다. 장기간에 걸친 사회적 고립, 누군가에게 혹은 뭔가를 위해 일할 기회의 결여는 청년에게서 자기 긍정감을 빼앗고, 자신의 존재 의미에 의문을 갖게 한다. 그들에게 한 걸음 내디딜 계기조차 주어지지 않으면, 청년은 사십 대가 되고 오십 대가 되고 어느새 육십 대가 되고 만다. 사회의 버팀목이 되어야 할 세대가 어느 사이 사회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세대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저출산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사회의 기둥 역할을 하는 세대에게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그런데 그 기둥 역할을 해야 할 청년 세대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면, 지금 세대는 물론 다음 세대가 떠안아야 할 짐은 더 무거워질 것이다. 하지만 계기만 주어지면 그들은 사회의 버팀목으로 '수십 년'을 충분히 활동할 수 있다. 영국인지 독일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일본에 시찰하러 온 청년 지원 단체 직원이 이런 말을 했다. "청년을 내버려두면 텍스 이터(tax eater)가 되고, 잘 지원하면 텍스 페이어(tax payer)가 됩니다. 그런 이유로 온 사회가 청년 지원에 나서야 합니다."



02. 청년 지원사업을 시작하다



창문을 닦아 드려요!: 2004년 당시 '니트족'이라는 말이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부모들의 상담 요청이 부쩍 늘었다. 그러나 자식은 따라오지 않고 부모만 상담하러 오는 경우가 많아, 부모 자식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조언이나 이런저런 지원 정보를 챙겨드리는 데 그쳤다. 그러던 중 지원서비스를 체험하러 오는 청년이 하나둘씩 늘더니, 같은 해 12월에 우리는 몇 명의 청년을 받아들였다. 일단 받아들이긴 했지만,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이렇다 할 안내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지역과의 연결고리도 없었고, 청년 지원에 동참해줄 기업을 찾는 일은 시작도 못한 상태였다.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고, 뭐든 해야 한다는 초조한 마음만 남아 있었다. 그때 처음 기획한 일이 '창문을 닦아 드려요!'라는 사업이었다. 우리는 걸레와 물통을 들고 상가를 돌며 주인에게 부탁했다. "창문을 닦아 드립니다. 물론 공짜입니다. 저희는 청년을 지원하는 NPO인데, 할 일을 찾고 있습니다. 부디 창문을 닦게 해주세요." 뭐 이런 이상한 사람들이 있느냐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당연한 반응이다. 갑자기 젊은 녀석들이 청소도구를 들고 몰려와서 공짜로 창문을 닦게 해달라고 간청하니 말이다. 창문을 다 닦고 나서 거액을 뜯어내려는 게 아닌가 싶어 의심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 당연한 반응도 모른 채 상점가를 돌아다녔으니 '창문을 닦아 드려요!' 사업은 연전연패였다.

쓰레기 줍기 소동: 청년이 활동할 수 있는 장을 개척하는 일이 예상외로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뭔가 좋은 수가 없을까 매일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던 중 나는 목장갑에 집게와 쓰레기봉투를 들고 쓰레기를 줍기로 했다. 오전에 두 시간, 오후에 두 시간. 그러던 어느 날, 쓰레기를 주우러 나갔던 남자 직원 한 명이 나이 지긋한 아저씨에게 끌려서 사무실로 들어왔다. "너희 매일 이 동네에서 뭐하는 거냐?" 직원은 겁에 질려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다가, 이윽고 은둔형 외톨이 청년이나 인관관계를 맺는 데 불안해하는 청년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과 아직 제대로 된 지원 메뉴가 없어 매일 쓰레기를 줍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흥미가 발동했는지 질문을 했다."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원인이 뭐야?"

"잘 모르겠습니다. 각자 사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런 녀석들이 집에 틀어박혀 있는 생활을 그만두고, 이곳에 다닐 결심을 한 거지?"

"은둔형 외톨이에서 벗어나고 싶은 청년이 많습니다. 일하고 싶어 하고, 부모님께 더는 폐 끼치고 싶지 않다고들 말합니다." "자립하려면 뭐가 필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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