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일의 스캔들
민병국 지음 | 황금부엉이
1500일의 스캔들
민병국 지음
황금부엉이 / 2012년 3월 / 230쪽 / 13,000원
1장 변화는 나로부터
곧 망할 병원에 발을 내딛다
2005년 1월 말, 재단의 이사님이 나를 부르셨다. "이제 병원장도 한번 해봐야지. 민 교수가 맡아봐. 망해도 괜찮으니까." 작소병원(중앙대학교 용산병원. ‘작은 것도 소중히 하는 병원’이란 뜻)을 운영해보라는 제안이었다. 사실 당시만 해도 병원장은 경영자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그러니 모교인 중앙대에서 오랫동안 신경외과 전문의이자 교수로 몸담고 있던 내게 오너로서의 경력도 쌓아보라는 일종의 배려였던 셈이다. "망할 병원을 왜 맡으라고 합니까? 일으켜 세우라는 뜻이라면 한번 해보겠습니다." 비록 경영에 대한 지식도, 경험도 없었지만, 이왕 한다면 제대로 운영해보겠다는 포부로 담대하게 대답했다.
끌려가든가, 끌고 가든가: 재단에서조차 기대하지 않은 병원이지만, 적극적으로 변화를 시도해보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했다. 그렇게 씩씩한 발걸음으로 병원에 도착했지만, 현실은 이상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물론 이곳과의 인연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 2년 동안 이곳의 기획실장으로 근무했던 터였다. 그런데 직원일 때는 보이지 않았던 허점들이 병원장이 되니 뚜렷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병원 외관은 마치 비 오는 날을 그린 수묵화처럼 잿빛이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병원 안으로 들어서니 여러 명의 환자와 보호자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며 그 틈에 엉거주춤 선 채 엘리베이터가 멈추길 기다렸다. "치잉" 오래된 엘리베이터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납덩이처럼 무거워진 마음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병동 안으로 들어서자 쓸쓸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게다가 너무 지저분했다. 벽면에 여기저기 검은 때가 묻어 있었고, 바닥엔 슬리퍼 자국이 덕지덕지 남아 있었다. 밖엔 봄이 오고 있는데, 이곳은 한겨울처럼 추웠고 한마디로 칙칙했다. '이곳에 오래 있으면 안 아프던 사람도 아프겠구나.'
울적한 마음으로 생각하던 중 요의가 느껴져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쿠야!'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한 손으로 코를 틀어막아야 했다. 지린내가 진동해서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찝찝한 마음으로 겨우 볼일을 마친 후 개수대의 수도꼭지를 틀자, 이게 웬일인가. 누런 물이 콸콸 쏟아졌다. 너무 놀라 배수관을 보니, 형편없이 녹슬어 있었다. '과연 내가 이곳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씁쓸한 마음으로 병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솔직히 병원의 상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어젯밤에 불끈 솟았던 자신감이며 희망이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어버린 것만 같았다. 마음이 착잡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 대충 하며 끌려갈 것인가, 주도적으로 변화를 이끌고 갈 것인가. 어찌 됐든 양단간에 결단을 내려야 했다.
자율적으로 하는 공부가 남는다: 학창 시절, 나는 시험에서 수차례 고배를 마셔야 했다. 대학 입시만이 아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입시 때도 정시에 붙지 못해서 재수를 했고, 대학 입시 역시 떨어졌다. 사실 그때까지 공부가 재미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그저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제발 열심히 좀 해라"라며 다그치니 억지춘향격으로 책상머리에 앉아 있었을 뿐이다. 그러던 내가 대학에서 장학금을 탈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우등생이 되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을까? 이유는 바로 자율성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나란 사람은 스스로 계획하고 주도적으로 움직일 때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는 성향을 지녔던 것이다. 병원장으로서도 수동적으로 움직이면 끌려가겠지만, 능동적으로 변화를 시도하겠노라 작정하면 내 안에서 큰 힘이 발휘될 것이라 믿었다. 사실 사립병원에서 원장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는 위치란 걸 모르지는 않았다. 큰 목소리를 내봤자, 위에서 깨지고 밑에서 원성 듣기에 딱 좋다. 그러나 내 힘은 스스로 만든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 사람들도 결국은 나를 인정해주지 않겠는가. '원래 그런 일이란 건 없어.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모든 일이 달라지는 거야. 그래, 한번 해보자.'
생각의 틀 부수기
"방치NO, 변화YES." 병원에 와서 내가 처음으로 내건 캐치프레이즈였다. 이곳은 무엇보다 변화가 시급했다. 주도적으로 병원의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작정한 이상, 문제들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눈 가리고 아웅 하듯 적당히 병원을 이끌어가는 것은 내 사전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문제는 직원들이 내 생각에 조금도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해봅시다"라고 말하면, "원장님, 그건 규정을 위반하는 일인데요. 분명 재단에서도 반대할 겁니다"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휴!' 물론 이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동안 맡은 업무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새로 부임한 병원장이 변화를 외치며 갑자기 이런저런 잔소리를 해대니, 그들 입장에선 분명히 내 존재가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구태의연한 관념을 깨부수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한단 말인가. 머릿속이 복잡했다.
첫 걸음이 어렵다: 그러던 어느 날, 이벤트 회사 대표와 젊은 벤처 기업가와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다. 온통 병원에 대한 생각뿐이던 나는 그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일 먼저 뭘 해야 할까요?"
"돈을 쓰셔야죠."
벤처 기업가는 덤덤한 어투로 말했다. 그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이벤트 회사 대표가 말했다.
"부수십시오."
"무엇을 부수란 말인가요?"
"물건이든 벽이든, 일단 부서지는 것을 눈으로 보아야지만 마인드도 부술 수 있습니다."
'아하.' 이보다 더한 현답이 있으랴, 나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단박에 알아들었다. 생각만 해봤자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단 행동으로 옮기고 봐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직원들과 함께 회의를 열었다."병원의 벽을 부수려고 합니다."
"네? 아니, 멀쩡한 벽을 왜……."
"벽이 너무 높으니 소통이 안 되질 않습니까?"
"그래도 벽이 있어야 외부 사람들도 통제하고……."
직원들은 벽을 부수는 게 웬 말이냐며 이구동성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일단은 저지르고 봐야 했다.
준비된 날 아침 일찍 용역회사 차량이 왔고, 나는 그들이 준 쇠망치를 들고 비장한 각오로 빽빽한 병원 벽 앞에 섰다. 나와 용역회사 직원들은 병원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망치를 힘껏 내려쳤다. 담장은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속이 다 시원했다. 그것은 단순한 담장이 아니었다. 병원의 낡은 이미지나 구태의연한 관습이었다. 그 어떤 곳보다 두 팔 벌려 고객을 껴안아야 할 병원에 높다란 담장이라니. 벽을 부수고 나니, 직원들이 안 된다고 얘기하는 것쯤은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으리라는 배짱이 생겼다. 담장이 없어지니, 병원의 앞뜰이 훨씬 넓어졌다. 나는 그곳에 작은 화분들을 갖다 놓았다. 음산하던 병원에 드디어 봄이 찾아온 것 같았다. 작지만 큰 변화였다. 좌불안석의 심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직원들도 그제야 한마디 했다. "원장님, 이렇게도 할 수 있었네요. 안 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마음 안의 높다랗던 벽도 조금씩 무너지는 것 같았다.
시력이 아닌 마음으로 봅니다
관심과 애정으로 보는 것: 병원장이 된 이후, 나는 아침마다 회진을 돌 때 아무도 대동하지 않고 혼자 돌았다. 회진을 도는 이유는 병실에 무슨 문제는 없는지, 환자가 남모를 불편을 겪고 있지는 않은지 일일이 살피기 위해서인데, 우르르 같이 다니다 보면 하나하나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혼자 다니면 어느 침대의 매트리스가 찢어졌는지, 어느 병실 벽지에 땟자국이 선연한지 등등이 너무도 잘 보인다. 그러면 곧바로 직원들에게 얘기한다. "902호실 매트리스 다시 갈아줘요, 지금 바로!" "905호실 침대 삐걱거립니다. 손봐주세요. 지금 바로!" "어휴, 원장님은 도대체 시력이 어떻게 되세요? 어떻게 그런 걸 다 보시는지……." "시력으로 보는 거 아닙니다. 내 시력은 마이너스에요. 다 관심과 애정으로 보는 겁니다." 유난히 섬세한 성격은 병원을 경영하는 데 의외로 도움이 되었다. 남들은 그냥 지나치는 것도 내 레이더망에는 탁탁 걸리니, 바로바로 시정할 수 있었다. 잘못을 지적할 때는 절대 뜸 들이지 말도록 지시했다.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말아요, '지금 바로 대처하겠습니다'라고 말해주세요. 그래야 믿을 수 있으니까."
하루에도 수십 번 병원을 도는 이유: 나는 수시로 병동을 돌았다. 하루에 다섯 번, 아니 문제가 생기면 그보다 더 자주 몇 번이고 돌았다. 웬만하면 8시 이전에는 퇴근하지 않았다. 회식이 있는 날엔, 회식이 끝나고 곧장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서 또 한 바퀴를 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늦게 병원을 돌아보고 있는데, 보호자 한 분이 세면장의 벽면에 부착된 핸드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있는 게 아닌가. 바람이 좁은 틈으로 나오는 바람에 머리를 말리려고 불편하게 몸을 구부린 채 말이다. 보고 있는 내가 민망할 정도여서 차마 말도 못 걸고 일단 자리를 피했다. 나는 즉시 모든 세면장에 벽걸이형 헤어 드라이어를 설치했다. 틈날 때마다 병원을 돌지 않았다면 미처 모르고 지나쳤을 법한 불편함이었다. 이처럼 수시로 병실을 돌아다니니, 직원들에게는 내가 엄청 부지런한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 그렇지만 부지런해서 돌아다닌 건 아니었다.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했으니, 약속을 지켜야 했다. 병원을 바꾸기로 결심했는데, 사과나무 아래에서 입 벌리고 있다고 사과가 입속으로 떨어지겠는가. 무조건 고객 곁으로 먼저 다가가야 했다. 그래야 그들도 나에게 말을 걸어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2장 함께 가는 길
마중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라
"905호실 이불에 뭐가 묻었어요. 바꿔야겠어요."
"원장님, 아직 바꿀 때 안 됐는데요?"
"집에 이불 더러워지면 바로 빨지 않나요?"
"그거야……."
물론 다섯 명 이하의 핵가족과 몇백 명이 있는 병원을 똑같이 관리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도 나는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해진 청소날이 아직 안 되었으니 환자더러 꿉꿉해도 참아달라고 해서야 되겠는가. 병동 페인트칠 역시 마찬가지다."벽이 너무 더러워요. 다시 칠합시다."
"원장님, 벽칠은 5년에 한 번씩 하고 있습니다만……."
"그럼 칠한 지 4년째에 입원한 환자는 기분이 찜찜해도 참아야 할까요?"
"그렇긴 하지만……."
서비스란 수시로 점검해서 고객의 불편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뭔가 문제가 생겨서 불편을 호소한 다음에야 허둥지둥 조치를 취하면 이미 한발 늦은 셈이다. 이 생각은 몇 년 전 호텔 화장실에 들렀을 때 확실히 굳어졌다.
독수리처럼 고객을 낚아채라: 처음 대형 병원에 오는 환자들은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어리둥절하다. 분주히 왔다갔다하는 의사와 간호사, 팔목에 링거를 꽂고 휠체어에 앉아 있거나 간이침대에 누워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환자들이 가득한 공간이 낯설고 때로는 무섭기까지 했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몸도 아파 죽겠는데, 접수처는 어디인지, 엘리베이터는 어디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나 역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적이 있으니 병원에 들어섰을 때의 어리둥절함을 익히 알고 있다. 누구를 붙잡고 물어보기도 마땅치 않아서 한동안 주춤댔던 그 당혹스러움을 말이다. '이럴 때 마치 위험에 처한 올리브를 구하듯 듬직한 뽀빠이가 나타나준다면 얼마나 마음이 편안해질까?'
그래서 나는 병원 문을 들어서는 고객만 유심히 살펴보고 도와주는 일을 담당할 직원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문을 열고 들어선 고객이 두리번거린다 싶으면 무조건 다가가세요. '저기요' 하고 묻기 전에 '뭘 도와드릴까요'라고 먼저 여쭙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병원엔 '오늘의 안내'라는 마크가 찍힌 가운을 입은 안내 도우미가 탄생했다. 고객에게 불편할 틈을 주지 않을 만큼 잽싸게 움직여야 하는 게 그들의 업무였다. 우리는 일대일 에스코트 후 몸이 불편한 고객들을 위해 문서작성도 대신 해주기로 했다. 고맙게도 직원들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고, 의외의 친절함을 경험한 고객들은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병원 문을 나서곤 했다. "이 병원에 오면 부잣집 사모님이 된 것 같아요, 호호." 일대일 에스코트를 받으니 당연히 대접받는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달의 칭찬 사연에서 서비스의 효과는 여실히 드러났다.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는 바람에 거동이 불편해 걱정이 많았어요. 병원에 혼자 와야 하는 처지였거든요. 그런데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직원분이 바로 제 앞에 휠체어를 갖다주시더라고요. 친절하게 밀어서 엘리베이터 앞까지 데려다 주시고 말이에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른 직원분이 인계받아 저를 진료실까지 데려다 주셨어요. 너무너무 달라진 병원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에요."
독수리의 시력은 8.0이라고 한다. 사람이 독수리의 시력을 따라갈 순 없지만, 세심한 관심과 집중력으로 병원에 들어서는 고객들을 예리하게 관찰한 후,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는 속도로 재빠르게 그들의 마음을 읽고 다가가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고객에게 먼저 다가가는 서비스 아니겠는가.
고객이 찾기 전에 고객을 찾아가는 서비스: "마중물이라는 거 혹시 알아요?" 어느 날 아침 회의 시간에 내가 직원들에게 물었다. 다들 그게 뭘까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데, 한 직원이 말했다. "네, 원장님. 알고 있어요. 펌프에 먼저 붓는 한 바가지 물이잖아요." "맞아요. 우리가 고객을 맞는 서비스는 그 마중물 같아야 한다고 봐요. 새 물을 맞이하기 위한 한 바가지 물처럼 고객을 미리 마중해야지, 고객이 손짓한 다음에 찾아가면 이미 늦은 거 아니겠어요?" 조금 더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기, 고객이 눈치 주기 전에 그들의 마음을 알아차리기, 애프터서비스가 아닌 비포서비스가 되기. 이것이 바로 우리의 역할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마중물 서비스는 특별한 게 아니라,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인 것이다.
병원은 환자만 오는 거 아니잖아요
보호자들도 우리의 고객: 병원장으로 취임한 해의 가을쯤이었다. 건물 밖에 나가보니, 보호자들이 추위에 떨며 나무 아래에 쭈그려 앉은 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병원은 환자에게나 보호자에게나 넉넉한 위로의 공간이 되어야 하는데, 서로 맘 놓고 대화를 나눌 공간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보호자들도 엄연히 병원의 고객인데, 너무 무심했구나.' 그래서 나는 나무 아래에 소박한 테이블과 의자를 두기로 했다. 적은 예산이지만 디자인과 색깔 등 최대한 병원 분위기에 어울릴 수 있도록 내가 직접 대형 마트에 가서 심혈을 기울여 골라왔다. 파라솔까지 갖춰두니, 마침내 감나무와 은행나무 아래에 휴식처가 탄생했다. 지금까지는 방치되었던 공간이지만 이렇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갖춰놓으니, 보호자들이 무척이나 좋아했다. 사실 환자도 환자지만, 아픈 환자를 간호하는 보호자들도 몸과 마음에 탈이 날 수 있다. 그런 그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안도감에 우리 모두 뿌듯했다.
우리 병원엔 보호자 전용 식당이 없었다. 사실 식당을 새로 만들기엔 공간이 없었던 터라, 고객들이 원하는데도 엄두를 못 내던 터였다. 그래서 보호자들은 매번 식사할 때마다 병원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데, 근처에 식당도 별로 없었다. "직원 식당을 함께 이용합시다. 직원이 12시에 식사하고 보호자들은 12시 30분부터 식사할 수 있게 하면 되잖아요." 그랬더니 영양과에서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보호자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일단 한발 물러섰다가 몇 달 후 다시 의견을 냈고, 결국 보호자들에게도 식권을 판매할 수 있었다. 옹색하나마 그들을 위한 식당이 생기자 보호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당연한 건데 고마워하니 오히려 면목이 없었다. 직원들이야 편하게 일하고 싶은 게 당연하겠지만, 리더는 항상 그 관성과 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발 아니 반 발도 나아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