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되는 회사는 실패에서 배운다
윤경훈 지음 | 원앤원북스
잘 되는 회사는 실패에서 배운다
윤경훈 지음
원앤원북스 / 2011년 3월 / 348쪽 / 15,000원
Part 1. CEO의 선택이 기업의 운명을 바꾼다경영 후계자, 기업의 미래를 결정한다 - 오오토야
일본의 역 앞에는 적당한 가격에 맛도 어느 정도 보장하는 한 식당이 있다. 그 식당의 이름은 '오오토야'인데, 전국에 직영점 124곳과 프랜차이즈 95곳, 해외에 38곳의 점포를 두고 있으며, 저렴한 가격대에 다양한 메뉴를 제공하는 대중적인 식당이다. 하지만 오오토야는 외식업체로서는 드물게 주식시장에 공개되어 연매상 168억 엔을 올리고, 정직원 332명, 아르바이트 3천72명을 두고 있다. 이 숫자로만 본다면야 오오토야는 성공한 기업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성장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그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먼저 오오토야가 창업한 시절로 돌아가 보자. 오오토야는 1958년에 선대 사장인 미츠모리 에이치가 도쿄의 이케부쿠로에 오오토야 식당을 개점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미츠모리는 가게의 전 메뉴의 가격을 균일하게 50엔으로 정함으로써, 당시 식당업계의 상식을 깨는 상술로 가게를 번창시켰다. 그런데 미츠모리에게는 대를 이을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미츠모리는 형의 아들인 히아미를 양자로 받아들였고, 히사미는 제국호텔 내의 레스토랑에서 수련을 쌓기 시작했다.
그런데 매일같이 식당일을 마친 후 긴자에서 술을 즐기던 미츠모리가 급성간경화로 쓰러져 얼마 후 세상을 떠나, 당시 스무 살이었던 히사미가 호텔 레스토랑을 그만두고 오오토야 식당의 사장 자리에 앉게 되었다. 햇병아리 사장이 식당을 경영하기 시작하자, 선대 사장 밑에서 일하고 있던 직원들은 히사미의 말을 좀처럼 듣지 않았다. 게다가 직원들은 청결함이 생명인 주방에서 조리를 하면서 담배를 피운다든지 주말에는 경마와 경륜 등 도박으로 시간을 보낸다든지 하는 생활이 일반적이었다.
히사미가 사장으로서 지위를 확실히 이어받지 못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오오토야 식당은 선대 사장 밑에서 신임을 받던 직원 중의 리더가 식당에 남아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거래 은행은 그동안의 신용을 믿고 대출을 해주었다. 때문에 오오토야 식당은 선대 사장이 경영하던 때와 같이 고객이 몰려들어 식당 운영은 선대 사장 때와 다를 바 없이 순조롭게 이어졌다. 그렇게 수년 동안 수익이 안정적으로 늘어나자, 히사미는 대학 근처에 점포를 추가로 개설했다. 물론 이들 가게도 선대 사장의 방침에 따라 운영했고, 다행히 계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해 나갔다.
그렇게 경영이 순조롭자, 히사미는 자신이 경영에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감을 가지게 되어, 4호점을 개설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 4호점은 선대 사장의 방침에 따른 점포와 달리, 히사미 사장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가게 방침을 정했다. 젊은 층을 겨냥해 실내에는 재즈음악이 흐르고, 분위기도 호텔 레스토랑과 비슷한 실내 디자인으로 꾸민 식당이었다. 하지만 이 4호점은 연일 적자였고 그 손실은 날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사미 사장은 "지금은 인고의 시기다. 조금만 참으면 고객이 모일 것이다."라고 말하며, 주변의 걱정을 뒤로했다. 그 결과 다른 점포의 경영까지 위태롭게 만들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4호점은 문을 닫고 말았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3호점에서 화재가 발생해 당장 안정적으로 들어오던 수익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히사미 사장은 자금난을 해소하고자 주거래 은행에 대출을 부탁했으나, 은행 측은 4호점의 실패를 보고 난 후 대출을 거절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가입해 있던 화재보험의 보험금을 받아 자금난에서 겨우 벗어났고, 영업을 재개할 수 있게 되었다. 히사미 사장은 후일 "이때 처음으로 주위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정식메뉴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식당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이후 히사미 사장은 선대 사장이 운영하던 오오토야 식당의 주 고객이 남자라는 사실에 착안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히사미 사장은 역 근처라는 식당의 입지적 조건에 기반을 두고, 최저가격을 유지하면서 여성들이 드나들기 쉬운 가게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개인적 취향에 맞춘 점포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선대 사장의 기존 운영방침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것도 아닌, 새로운 안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동시에 히사미 사장 스스로도 자신이 직접 주방에 들어가 조리하고 서빙도 하며 직원과 함께 땀을 흘렸다. 그뿐 아니라 사장 스스로 월급과 교통비도 받지 않고 자택에서 가게까지 3km를 자전거로 출퇴근하기 시작하면서 직원들에게 스스로 반성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자 노력했다. 결국 이러한 필사적인 재생의 노력 때문인지, 직장 여성들을 중심으로 가게의 입소문이 퍼져 매상이 올라 가게의 수도 늘어나기 시작했고, 지금도 점포 수를 확대해나가고 있다.
오오토야는 경영 위기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산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이 실패학의 관점에서 검토해야 할 중요한 문제인데, 구체적인 실패 원인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경영 승계의 과정에서 선대 사장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아들이 충분한 준비 없이 사장의 지위를 이어받은 탓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대 사장이 후계자 양성을 위한 수업을 제국호텔의 주방이라는 전혀 이질적인 공간에서 한 것이다. 당시 오오토야의 직원들은 그런 호텔 음식을 먹어본 적도 거의 없으며, 그러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생활방식 또한 판이하게 달랐다.
때문에 히사미가 경영수업을 받으면 받을수록 앞으로 같이 일할 직원들과의 공감대가 멀어졌고, 그 결과 상호간의 의사소통은 어려워졌다. 즉 후계자의 경우 자신이 승계할 기업의 환경과 경영수업을 받는 기업의 환경이 서로 상반된다면 적어도 그 차이를 이해하는 과정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째, 식당을 이어받은 후 선대 사장 때부터 사업이 순조로웠던 탓에 새로운 사업을 추진함에도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처럼 선대의 유산을 자신의 실적으로 착각하는 경영은 2세 경영자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셋째, 후계자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경영자로서 받아야 할 전문적인 경영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었다는 점이다. 히사미 사장의 경우 초창기에 빠진 자금난은 무리한 점포 확대를 이유로 들 수도 있지만, 전문적인 경영인으로서 경영능력을 배우기보다는 요리라는 사업의 생산물에만 치중했다는 것을 문제로 들 수 있다. 즉 반드시 경영대학원을 나오지 않아도 식당 정도라면 경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이한 사고방식에 경영 실패의 원인이 감추어져 있다고 하겠다.
Part 2. 윤리의식과 위기관리능력이 기업의 미래를 결정한다인재에게 가장 힘든 것은 도덕성을 지키는 것이다 - 노무라 증권
노무라 증권이라는 금융 명가에서 발생한 내부자 거래의 문제를 통해 일류기업의 경영에 내재된 과제를 살펴보자. 노무라 증권의 기업정보부에 근무하는 중국인 사원 레이유와 그의 지인인 소 씨 형제는 레이유가 사내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내부자 거래를 해서 이익을 남겼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2007년 4월경에 노무라 증권과 인수합병 계약을 체결하고 있던 후지츠가 TOB(주식공개매수)를 실시해 후지츠 디바이스를 완전 자회사로 삼을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기업정보부 내에서 근무하고 있던 레이유는 이 사실을 정보가 알려지기 전에 입수하여 친분이 있는 소 씨 형제들에게 알렸다.
소 씨 형제들은 정보를 입수한 다음 달, 디바이스 사의 주식 7천 주를 1천170만 엔에 매입했고, 이후 정보가 발표되어 주가가 오르자 매각해 약 490만 엔의 차익을 남겼다. 그 외에도 오지제지 사의 TOB를 받고 있던 호쿠에츠 제지 사의 주식을 사전에 구입해서 차익을 남기는 등의 방법으로 21차례나 내부자 거래를 통해 4천만 엔의 이익을 취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이 밝혀지면서 노무라 증권에게 인수합병에 관한 자문을 구하고 있던 기업들이 해약을 하는 사태가 연이어 발생했다.
그러면 어떻게 이들 중국인 사원이 노무라 증권의 중추인 기업정보부에 배치되어 노무라라는 금융 명가의 신용을 실추시키는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원인을 살펴보자. 레이유는 2002년 교토 대학 약학부를 졸업했다. 그런데 경제학부나 금융공학을 전공한 이공학부도 아닌 레이유가 기업 인수합병을 주관하는 증권회사에 입사하게 된 배경에는, 2000년 이후 일본 내 제약회사간의 인수합병이 급속히 진행되는 추세로 인해 레이유의 전문지식에 대한 노무라의 높은 평가가 있었다. 또 중국 경제의 성장이 두드러지는 상황을 보면서, 이후에 중국에서도 거대한 인수합병이 전개될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아울러 중국의 경우 일본보다 인맥을 더 중시하는 풍토도 있었다. 그래서 중국인 사원을 채용해 향후에 다가올 기회를 잡고자 하는 거시적인 노무라 증권의 경영전략이 내포되어 있었다.
하지만 노무라 증권처럼 기업의 인수합병을 다루는 기업에서는 당연히 내부자 거래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철저한 법령준수 체제를 마련하고 있었다. 동시에 증권회사 자체의 법령준수뿐만 아니라, 도쿄증권거래소에서도 인수합병을 계획하고 있는 기업의 주가와 거래 상황은 수시로 감시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노무라 증권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내부자 거래의 문제가 왜 발생했는가 하는 점은 금융업계의 경영에 있어서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으므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 번째 문제는 글로벌 인재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능력과 윤리의식의 검증에 관한 문제다. 당시의 채용과정에 대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중국인 유학생을 채용하는 데 있어서 법무부서의 일부 담당자들 사이에서 중국 유학생의 경우 결과를 중시한 나머지 법령준수 의식이 다소 결여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라 증권은 일본인 사원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사내연수와 도덕교육 체제를 중국인 사원에게 같이 실시했다. 결국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서는 문제의 예방에 필요한 것은 도덕성과 능력이라는 잣대의 저울을 가지고 기업의 철학에 적합한 인재를 찾는 것인데, 이 점이 결여되었다는 것이 이번 노무라 증권의 실패 요인이라고 여겨진다.
두 번째 문제는 노무라 증권의 경영진이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에서 나온 점으로서, 경영진이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즉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원 개인의 단순한 잘못으로 치부하려는 징후가 노무라 증권의 모습에서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영진의 대응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지적되어 왔던 노무라 증권 내의 경영진 상호간의 보호주의적인 관계에 원인이 있다. 즉 노무라의 경영진(우지에 회장, 고가 회장, 이나노 부회장과 도다 부회장)은 타사와는 달리 모두 서로 절친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점을 지적하고 책임의 소재를 밝히기보다는 서로 감싸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위와 같은 노무라 증권 내부자 거래의 사례 분석을 정리해 보면, 우선 명가라고 칭할 수 있는 일류기업에게는 일반적인 기업과는 다른 품격과 윤리의식이 요구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 경영진의 화합만이 기업의 발전을 초래한다는 획일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경영진 내의 의견충돌과 대립이 기업의 발전을 방해한다는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기업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는 새로운 시점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Part 3. 변화에 강한 기업이 시장을 주도한다금융시장의 공황에도 살아남는 것이 생존경영이다 - 야마토 생명보험
회사의 경영 실패는 경영자나 직원들의 잘못이 아닌 외부 요인에 의해서도 발생한다. 이번에는 금융위기라는 외부 요인에 의해 기업이 도산한 사례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없는지 살펴보자. 리먼브러더스가 도산하고 잇달아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이 경영난에 직면하게 되자, 미국 금융위기의 파장은 일본에서도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금융위기의 혼란이 현실로 나타난 것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등에 직접 투자한 금융기관이다. 그 중에서도 생명보험회사와 같이 고객들의 자금을 운용해 보험금과 연금을 지불하는 기업이 금융위기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번에는 이 회사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경영자의 실패보다 외부 요인에 의해 도산한 기업의 실패요인을 분석하고자 한다.
야마토 생명보험은 1947년에 설립된 일본에서도 오랜 역사를 가진 생명보험회사의 하나인데, 개인보험과 연금보험으로부터의 자금을 부동산, 금융파생상품, 헤지펀드 등이 운용하는 하이리스크하이리턴의 금융상품에 투자하고 있었다. 실제로 과거에 야마토 생명보험이 올린 고수익은 이러한 자산운용의 결과였다. 그런데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그동안 운용하던 유가증권 등의 손실이 급격히 불어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 결과 야마토 생명보험은 예상외의 급격한 자산 감소로 인해 도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생명보험회사가 파산하는 경우, 그 주요 원인은 자산의 운용이율이 예상이율을 밑도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하지만 야마토 생명보험의 경우에는 운용이율이 예상이율을 밑돌지 않았다. 즉 운용실적이 저조했던 어느 해 13억 8천600만 엔의 적자가 발생했을 때에도, 보험지급 여력의 비율은 건전성의 지표인 200%를 넘는 555%를 확보함으로써 생명보험회사가 도산에 이를 어떠한 이유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의 금융위기 때에는 기존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의 예상 폭을 훨씬 뛰어넘는 주가 폭락으로 야마토 생명보험의 손실이 현저히 발생한 것이다.
물론 이런 위기 상황이 발생하자 회사는 사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투자위원회를 설치해 향후 대처 방안을 협의한 결과 서브프라임 관련 상품의 매각, 닛케이평균선물의 숏 포지션에 의한 리스크 관리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금융시장의 난조에 손실의 확대가 멈추지 않아 보유하고 있던 위험준비금과 가격변동 준비금까지 손실을 메우는 데 투입되었다. 그렇게 하여 보험지급 여력은 급격히 줄어들어 도산 직전에는 26%까지 떨어졌다. 즉 안정권에 있던 보험회사가 하루아침에 도산한 것이다.
야마토 생명보험과 같은 경우 보험지급 여력도 충분했고, 나름대로 리스크 관리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년에 한 번이라고 불리는 금융위기의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경우 그 대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불가항력이라고 포기한다는 것은 더욱더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경영자들이 이러한 금융위기에 직면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2가지 점에서 예방책을 마련했어야 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금융상품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다. 참고로 2005년 일본 TV 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투자가 짐 로저스는 "주택가격이 계속 상승된다는 전제 하에서 지불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융자를 제공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러한 비상식적인 시장은 머지않아 붕괴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비상식적인 상품에 투자를 한다는 것은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와 학습 노력의 부족을 의미한다. 금융위기라는 예기치 못한 현실이 나타나더라도 만약 이러한 비상식적인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를 자제했더라면 도산에는 이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두 번째는 개인보험자의 자산을 운용한다는 특성을 고려한다면, 보험지급 여력 준비금의 충분한 보유가 확보되었어야 했다. 즉 생명보험회사라는 특성상 공격보다는 방어에 비중을 두는 신중한 투자 원칙이 제일 우선되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인생을 돌본다는 생명보험 관련 기업이 지켜야 할 근본적인 이념이 등한시되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야마토 생명보험의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금융위기는 평상시라면 도산에 이르지 않을 기업이 도산에 이르는 불가항력적인 요인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에게 불가항력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