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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가 경영전략에 답하다

에구치 요코, 요시다 카츠미 지음 | 지식공간
삼국지가 경영전략에 답하다

에구치 요코, 요시다 카츠미 지음

지식공간 / 2011년 1월 / 256쪽 / 13,500원



1명으로 100명과 싸우게 하다 - 란체스터 법칙




유비가 삼고초려의 예를 갖추어 제갈공명을 군사로 맞아들였을 무렵, 위나라 조조는 하북과 중원을 제패하고 형주를 치기 위해 10만 대군을 출정시켜 신야로 진군했다. 신야에는 유비가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나 군대는 불과 수천 명. 유비는 조조의 대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 것인가? 조조 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비는 서둘러 제갈공명을 불렀다.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제갈공명이 자신 있게 대답한 다음 관우, 장비, 조자룡(조운)을 불러 비책을 설명했다.

조조 군은 맹장 하후돈이 지휘하고 있었고, 그 뒤를 하후란, 우금, 이전이 따르고 있었다. 신야에 가까울수록 길은 점점 좁아졌다. 그러나 하후돈은 행군 속도를 늦추지 않고 신야의 중심부를 향해 진격했다. 마침내 가파른 언덕을 오르자 시야가 탁 트였다. 저 너머에 '조(趙)'라는 글자가 박힌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유비 군의 장수인 조자룡의 깃발이었다. 압도적으로 수적 우위에 있던 조조 군은 하후돈을 필두로 조자룡을 향해 돌진했고, 하후돈과 조자룡은 말을 몰아붙이며 공방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힘의 균형추는 하후돈 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하후돈의 강력한 일격을 가까스로 받아낸 조자룡이 고삐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유비 군이 흩어지며 퇴각하기 시작했다. 기세가 등등해진 하후돈은 조자룡을 맹추격했다. 사실 조자룡은 겁을 먹고 도망친 것이 아니었다. 전투를 벌인 뒤 열세에 몰린 척하며 후퇴하라고 제갈공명이 일러두었던 것이다. 조자룡은 박망파라고 불리는 좁고 험한 길로 달아났다. 이 길은 남북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 길이 좁았다. 기마 한 필이 간신히 다닐 정도였다. 왼쪽에는 산이 솟아있고 오른쪽에는 숲이 우거져 있었다.

이때 진격 대열의 중간에 있던 우금이 급히 말을 몰아 하후돈에게 달려갔다. "장군! 멈춰야 합니다. 이 길은 갈수록 좁아지고 수풀이 무성해집니다. 적이 화공으로 덤벼들지 모릅니다." 하후돈은 아차 싶었다. 그러나 말머리를 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숲에서 불붙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승천하는 용처럼 불길이 치솟았다. 그리고 강풍에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 한편 절벽 위에서는 관우의 양자인 관평이 지휘하는 군대가 함성을 지르며 마른 나무 묶음에 불을 붙여 내던졌다. 화공을 피해 달아나려는 병사들과 말들로 박망파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놀란 하후돈은 간신히 불길을 뚫고 후퇴했다.

그때 후방에 있던 조조 군의 중군(中軍)이 멀리 불길이 솟구치는 모습을 보고 하후돈이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급히 군대를 이끌고 전방으로 말달리는데, 그 앞을 장비의 복병이 가로막았다. 박망파의 오른쪽 숲에 숨어서 불길이 솟기만을 기다리던 매복병이었다. 장비는 창을 붕붕 돌리며 조조 군과 맞섰다. 장소가 비좁은 탓에 감히 장비 앞으로 대적할 자가 나오지 못했다. 조조 군은 장비의 공격에 허둥거리다 혼란에 빠졌고, 부장 하후란은 장비와 겨루다 말에서 낙상해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조조 군의 후미에 있던 이전 역시 하후돈이 함정에 빠진 것을 알고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그 길에는 또 다른 복병이 숨어 있었다. 관우의 군대였다. 관우는 지원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동시에 식량 등의 물자와 짐에 불을 놓아 전장을 더욱 혼란에 빠뜨렸다. 이 또한 제갈공명의 지시였다. 전투는 순식간에 끝났다. 이 싸움으로 조조는 3만에 이르는 병사를 잃었다.

한 세기에 걸쳐 이어진 '삼국지'의 주요 전투를 살펴보면, 현대사회에서 구사되는 기업 전략, 전술과 흡사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특히 이 박망파전투는 란체스터 법칙이 그대로 재현된 경우인데, 란체스터 법칙은 프레더릭 란체스터가 제1차 세계대전 때 발견한 근대전쟁의 법칙을 말한다. 이는 전투에서 병력과 손실비율을 분석하여 도출한 법칙이다. 처음에는 군사전략으로 이용되다가 이후 경영 전략으로 주목을 끌면서 많은 기업들이 도입하게 되었다.

란체스터 법칙에는 법칙1과 법칙2가 있다. 먼저 란체스터 법칙1은 '공격능력은 병력과 무기 성능으로 정해진다'는 내용이다. 법칙2는 병력이 많을수록 생존자가 더 많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수적 우위를 점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설명하는 이론이 란체스터 법칙이다. 삼국시대의 전투에서는 무기 성능은 엇비슷했다. 그래서 승패를 가른 요소는 '병사 수'였다. 그런데 불과 수천 명에 지나지 않는 유비 군이 조조의 10만 대군에 맞서 싸우게 되면 여러분은 누구의 승리를 점칠 것인가. 란체스터 법칙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총력전에서는 조조 군이 절대 질 수 없는 규모였다.

그러나 란체스터 법칙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병력의 수에는 과연 잠자고 있는 병사, 화장실에 있는 병사, 밥 먹고 있는 병사까지 포함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란체스터 법칙에서 말하는 병사의 수는 현재 싸우고 있는 병사의 수이다. 군대의 제일 뒤에서 이제나 저제나 싸울까 기다리고 있는 병사는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들은 병력 수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달리 말해 싸우는 장소에 따라 10만 대군도 1천 명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말이다.

제갈공명이 유비 군의 장수들에게 알려준 전략은 10만 병력을 가진 조조 군을 좁고 험한 길로 유인하라는 것이었다. 즉 싸움에 가담할 수 있는 병력을 극소화시킨 후에 싸우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제갈공명은 박망파의 지형에 주목하여 그곳을 전장으로 삼았다. 박망파는 길이 험하고 깊이 들어갈수록 폭이 좁아진다. 그래서 한 번에 많은 병사들이 지나다닐 수 없는 곳이다. 조자룡의 목적은 하후돈을 박망파의 좁고 깊숙한 중심부로 유인하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하후돈은 전력을 다해 조자룡을 뒤쫓았다. 후속부대는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고 선두의 하후돈 부대는 아군의 대열에서 이탈하고 말았다. 그 결과 유비 군은 '수가 적은 하후돈 부대'와 맞붙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다. 만일 조조 군의 지원군이 하후돈을 도우러 온다면 유비 군은 수적 우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관우와 장비가 매복하여 조조 군을 분산 공격했다.

결국 란체스터 법칙에서 알 수 있는 철칙은 '도전자는 국지전을 전개하라'는 것인데, 대표적인 응용 사례가 '지역 전략'이다. 전국 방방곡곡에 땅값 비싸고 목 좋은 곳만을 골라서 입점하고 인원을 대규모 투입하는 것은 아무리 업계 1위 기업이라 하더라도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지역을 좁혀 경영자원을 집중 투입하면 최강자와도 맞붙을 수 있는 여지는 생기는 법이다. 그렇게 특정 지역에서 1위를 차지하면 다른 지역으로 전장을 옮겨 차례차례 상권을 넓히고 최종적으로 점유율 1위를 넘보는 것이 란체스터 법칙을 적용한 전형적인 기업 경쟁 전략이다.

턱 밑을 파고들어 거인을 무너뜨리다 - 마이클 포터의 가치사슬



삼국시대 위나라의 기초를 닦은 조조도 처음에는 군소 세력에 불과했다. 당시 절대 강자는 하북에 기반을 둔 원소였다. 조조는 원소에 대항할 만한 상대가 아니었고 그 차이는 누가 봐도 뚜렷했다. 그렇다면 병력에서 뒤지던 조조가 어떻게 최강자인 원소를 이길 수 있었을까? 참고로 조조는 일찍부터 관직에 올라 중앙무대에서 활약했다. 유비보다 출발도 좋았고, 출세도 빨랐다. 또 후한의 헌제가 도읍을 낙양에서 조조의 근거지인 허(許)로 옮기자 조조는 대의명분까지 얻게 되어 세력을 더 키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인구도 많고 땅도 비옥한 하북 사천의 강자 원소에게는 고양이 앞의 쥐 신세였고, 둘 사이에는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관도에서 대치하게 되었고 원소는 10만 대군을 출정시켰다. 원소의 부하 저수가 싸움에 앞서 원소에게 진언했다. "아군은 병사 수로는 앞서지만 용맹함에서는 조조 군에 미치지 못합니다. 조조 군은 식량이 부족하고 물자를 운송하는 보급로가 긴 것이 약점입니다. 지구전으로 끌고 가면 적군은 굶주린 끝에 전의를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원소는 "우리 군의 사기는 충만해 있다. 일부러 장기전으로 끌고 갈 필요는 없다"며 저수의 진언을 물리쳤다.

이윽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초반에는 수적으로 앞선 원소가 우세했다. 그러나 조조도 물러서지 않았다. 서로 결정적인 공격을 가하지 못한 채 전장은 교착상태에 빠졌고, 원소의 의도와는 다르게 전투가 장기화되어 갔다. 그러나 초조한 것은 조조였다. 식량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원소 군의 식량은 순우경 장군이 맡고 있었는데, 그는 5명의 부장수와 1만여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방대한 양의 식량 보급 대열을 보호하고 있었다. 이때 전환점이 찾아왔다.

대치가 이어진 지 한 달가량 지났을 무렵이었다. 조조가 허(許)를 지키던 군사장군 순욱에게 식량 운송을 요청하는 특사를 파견했는데, 그 특사가 원소 군의 장수인 허유에게 붙잡혔다. 허유는 급히 원소에게 아뢰었다. "이 서한을 보십시오. 조조 군의 식량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지금이 공격을 퍼부을 적기입니다. 또 이 기회에 발 빠른 군사를 조직해 조조의 본거지를 쳐야 합니다." 그러나 원소 진영 내에서 세력 다툼이 불거졌고, 허유가 지나치게 탐욕스럽다는 점과 허유의 아들과 조카가 악정을 펼쳐 공물을 횡령했다는 사실이 원소의 귀에 들어가 허유의 진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크게 실망하고 신변의 위험마저 느낀 허유는 어릴 때부터 알고 있던 조조에게 몸을 맡기기로 했다.

늦은 밤 허유가 조조 군의 진영에 도착하자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맨발로 그를 맞았다. 허유는 조조에게 원소 군의 방대한 병참 물자가 오소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후군인 순우경을 치도록 조언했다. 다음 날 새벽 조조는 하후돈에게 명령을 내려 오소로 출정케 했다. 기마병과 보병을 합쳐 5천 명에 지나지 않는 단출한 부대였다. 조조 부대가 원소 진영 근처를 지날 때 "너희는 어디 소속이냐?"고 원소 군이 물어왔으나 "우리는 식량을 방어하기 위해 오소로 향하는 길이다"라고 말하며 원소 군의 깃발을 앞세운 조조 군은 원소 군의 경계망을 어렵지 않게 빠져나갔다.

깊은 밤 조조 군은 오소에 도착하자마자 북소리를 크게 울렸다. 방심한 틈에 기습을 받은 수비대는 무참하게 패하고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고, 조조 군은 오소에 비축해 두었던 방대한 양의 식량과 보급 물자를 하나도 남김없이 태워버렸다. 이 소식은 금세 원소의 귀에 들어갔다. 원소는 곧 부장군인 장합과 고람에게 명해 조홍(조조의 사촌동생)이 지키고 있는 조조 군의 본영을 급습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두 장수는 순우경이 패했다는 얘기를 듣고 조조에게 투항했고. 원소 군은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그 어떤 강자라도 약점은 있기 마련이다. 특히 강자는 거대 조직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결속력은 느슨해지고 틈이 벌어진다. 이때가 도전자에게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업에서는 어떻게 약점을 찾아야 할까?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경쟁우위 전략'에서 '가치사슬(value chain)' 개념을 제창했는데, 이 개념이야말로 적의 약점을 찾아내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다. 참고로 기업은 특별한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데, 이때 가치를 창조하기 위한 비즈니스의 전체적인 흐름을 '가치사슬'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가치사슬 전체로는 역량이 떨어져도, 특정 부분에서는 강자보다 자사의 역량이 뛰어난 부분이 있을 것이고, 상대보다 역량이 뛰어난 부분을 찾아낸다면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경쟁사보다 역량이 뛰어난 부분을 찾는 것" 마이클 포터는 이를 '경쟁우위의 원천을 분석한다'고 표현했다. 즉 경쟁사와 자사의 전체적인 규모를 비교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원소가 빠진 함정이다), 가치사슬 각 분야의 개별 활동에 초점을 맞춰서 비교 분석한 다음 경쟁의 원천을 모색하는 전략이다.

그렇다면 가치사슬을 통한 구체적인 전략은 어떻게 실행될까? 이제 '캐논'이 미국에서 어떻게 성공을 거두었는지 살펴보자. 1970년대 중반 캐논은 미국에 복사기 수출을 적극적으로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전까지 캐논은 지역 딜러를 통해 미국에 복사기를 판매했다. 그러나 딜러들의 판매활동은 부진했고, 매출은 생각처럼 오르지 않았다. 참고로 당시 미국 복사기 시장에서는 제록스, IBM, 코닥 등의 세 회사가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최강자 기업은 제록스였다.

캐논의 워싱턴 영업소가 개설된 1979년 초에는 캐논이 절대로 제록스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없으며 이제 곧 보따리를 쌀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캐논은 관도전투의 조조처럼 끈기 있게 진을 치고 철수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캐논이 노리던 강자의 약점은 '애프터서비스'였다. 당시의 복사기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드럼이 오염되어 더 이상 쓸 수 없었고, 다시 가동하려면 클리닝을 해야 했다. 이는 캐논뿐 아니라 타사 제품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드럼에 종이가 말려들어가 고장이 잦던 시절이었다. 그때마다 서비스 직원이 달려가야 했다.

최강자인 제록스조차 만족스런 애프터서비스를 한다고 볼 수 없었다. 고객은 늘 늦게 도착하는 서비스 직원에게 투덜거렸고 서비스 내용에 불만을 터뜨렸다. 그래서 캐논은 애프터서비스 직원을 늘리고 고객의 서비스 요청에 세심하게 대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렸다. 그 예상은 적중했고, 1980년 이후 워싱턴 영업소의 복사기 판매는 급증했다. 마침 그 시기에 호재도 생겨났다. 복사기 분야에서 소형화 바람이 분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 최강자 기업인 제록스 제품군에 소형 복사기가 없었다. 캐논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매출은 순조롭게 증가하여 마침내 1981년 캐논의 일반용지 복사기가 연간 판매대수에서 미국 1위 자리를 거머쥐었다.

당시 캐논이 최강자의 약점인 애프터서비스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사실은 미국 현지에 공장을 가동한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1981년 캐논은 일반용지 복사기용 감광 드럼을 미국 내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한정된 복사매수를 초과해서 사용하면 드럼 수명이 다하게 되고, 사용자는 애프터서비스 직원에게 드럼 교환을 요청해야 한다. 그러나 드럼 재고가 부족할 때가 문제였다. 어느 세월에 일본에서 가져올 것인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드럼을 현지에서 생산한 것이다.

캐논의 혁신은 판매 이후의 서비스 활동에 국한되지 않았다. 캐논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1982년 가을에 신제품 PC 시리즈를 출시했다. 기존의 복사기는 드럼을 교체할 때마다 서비스 직원을 불러야 했으나, 캐논의 PC 시리즈는 복사기의 상식을 뒤엎었다. 카트리지 수명이 다하면 사용자가 카트리지를 구매하여 직접 교체할 수 있도록 했다. 드럼을 카트리지 방식으로 바꿈으로써 애프터서비스 직원이 없어도 사용자가 드럼을 교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듬해인 1983년 PC 시리즈는 날개 돋친 듯 팔렸고 생산은 월간 3만 대에 달했다. 그 후 제록스는 중소형 복사기를 시장에 투입하여 캐논에 대항했지만, 캐논의 입지는 흔들림 없이 점유율 1위를 유지하며 저속 복사기 분야에서 제록스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한마디로 제록스의 약점인 서비스 부분을 공략한 캐논의 완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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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동쪽에 있는 오나라 손권을 속선속결로 없애고자 했다. 손권 진영은 항복할 것인가 항전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노숙의 노력으로 유비와 동맹을 맺고 맞서 싸우기로 결정했다. 오나라 군대의 대장인 주유는 노숙이 초청한 공명과 함께 기세등등한 조조 군과 대치했다. 조조는 오나라 군 내부에 은밀히 회유의 손길을 뻗는 동시에 훈련을 하며 장강 남쪽 어귀로 진군할 틈을 엿보고 있었다. 그때 남쪽에서 한 척의 배가 도착했다. 오나라 장수인 황개가 보낸 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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