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도덕이다
도그 렌닉 지음 | 북스넛
이제는 도덕이다
도그 렌닉 지음
북스넛 / 2010년 11월 / 248쪽 / 12,000원게리 이야기
게리는 인터내셔널 매니지먼트 그룹의 부장이다. 한때 그는 솔로몬 브라더스에서 트레이더로 일하면서 저녁에는 법대 강좌를 들었다. 그 무렵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그는 밤샘조문을 하고 장례식과 다른 가족 모임들에 참석해야 했다. 하지만 게리는 학교나 직장에서 뒤처지게 될까봐 두려워 장례식에는 참석하되, 장례식 후의 가족 및 친지들과의 점심 약속에는 잠깐 얼굴만 내비치고 회사로 들어가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점심 장소에 도착했을 때 가족을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큰 것인지 느끼게 되었고, 자신이 정한 일의 우선순위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상관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로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상관은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게리는 가족들 곁을 지켰다. 만약 그러한 순간에 가족들을 위로하는 연민을 갖지 않는다면,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도덕성이 높은 많은 리더들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성공한 리더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비즈니스 상식들을 조합하여 비즈니스 윤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애썼기 때문에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예로 40억 달러 규모의 위생서비스업체인 에코랩의 CEO 더그 베이커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스스로 정해놓은 윤리강령에 따라 생활했기 때문이다.”
리더로 성공하려면 흔히 인지적 지능과 기술적 지능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러한 인지적 지능과 기술적 지능을 기본 자질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리더 자리에 오르려면 그러한 자질들을 반드시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자질들은 필수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경쟁자들도 당신만큼 기본적인 지능과 비즈니스 소양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앞서 나가려면 ‘특별한 자질’, 즉 색다른 종류의 능력을 길러야 하는데, 도덕능력, 감성능력 같은 것들이다. 한편 최근 들어 많은 기업들이 감성능력이 성과향상에 이바지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으며, 도덕능력은 인간의 보편원칙들이 개인의 가치관과 목표, 행동에 어떤 식으로 적용되어야 하는지 결정짓는 심적인 능력이다. 이 책은 개인으로서, 그리고 조직의 일원으로서 성공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네 가지 원칙들 - 성실, 책임, 동정, 용서 - 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감성능력은 우리가 어떠한 행동을 할 때 자신을 통제하고 상대방을 분별력 있게 대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감성능력만으로는 그릇된 행동을 막을 수 없다. 흔히 개인적인 목표나 사업상의 목표가 주요 가치관과 상충할 때 도덕 능력의 부족이 밖으로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도덕적인 결정을 내릴 때 감성능력과 도덕능력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감성능력과 도덕능력이 동일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감성능력은 가치관으로부터 자유롭고, 도덕능력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성적인 능력은 선행과 악행 모두에 적용될 수 있으나, 정의대로라면 도덕적인 능력들은 선한 일만 하도록 되어 있다. 이처럼 감성능력과 도덕능력은 분명히 다르지만, 협력 관계에 있다. 어느 한 쪽이 없으면 둘 다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로 도덕능력이 없으면 감성적 능력들이 효율적으로 성과향상에 기여할 수 없다. 이런 도덕능력은 유능한 리더들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에게 중요한 능력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도덕능력은 우리의 다른 지능들이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하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여행길에서 우리는 도덕능력을 “MPS(Moral Positioning System)”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자동차에 쓰이는 차량항법장치인 GPS와 유사한 개념이다. 즉 차에 달린 GPS처럼, 도덕능력은 당신이 갖고 있는 모든 자원들, 즉 감성능력과 IQ, 기술적 지식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중요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GPS와 달리 도덕능력은 옵션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기량을 십분 발휘하기를 바라는 근로자들과 풍부한 잠재력을 지닌 창의적인 비즈니스 리더가 되고 싶은 개인들에게 필수적인 장비이다.
최고의 리더들이 믿는 것
오늘날 최고의 리더들은 과거에 존경받았던 영웅적인 인물이나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여러 해 동안 위대한 기업들에서 실세 역할을 해온 리더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겸손함이다. 그들은 추종자들의 욕구에 효율적으로 대응함으로써 다른 근로자들이 높은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사기를 진작시킨다. 그리고 그들은 ‘나’가 아니라, ‘우리’를 생각한다. 또 그들은 도덕적 잣대를 따르지 말라는 유혹이 있어도 도덕적 잣대를 따른다. 좋은 리더들이 자신의 스타일이나 개성과 상관없이, 모두 동일한 원칙을 따르고 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이 의도적으로 생활에 필요한 가치관들을 확립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자기 안에 자리하고 있는 도덕관의 울림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뿐이다.
유명한 인류학자인 도널드 브라운은 리서치를 통해 모든 문화의 도덕규범에 책임의식, 서로에 대한 의무와 권리, 동정심이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했고, 다른 연구결과들은 그의 그러한 발견을 뒷받침해 주었다. 아무튼 우리들 각각이 모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고 위대한 리더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도덕성이라는 ‘하드웨어’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신생아실에 가보라. 신생아실에서는 아기가 혼자 우는 일이 없다. 한 아기가 울면 다른 아기들도 따라 운다. 갓 태어난 아기들의 행동을 연구한 심리학자들은 그러한 행동을 ‘신생아의 반응성 울음’이라고 부른다. 즉 신생아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반응으로 울음을 터뜨린다는 것이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신생아의 반응성 울음을 인간이 동정심을 타고났다고 주장할 수 있는 첫 번째 증거로 보고 있는데, 동정은 아기들이 세상에는 자신과는 다른 독립적인 존재가 있음을 깨닫고 그 다른 존재들이 그들만의 욕구를 갖고 있음을 인정하는 중요한 발걸음이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감정적ㆍ육체적 욕구를 갖고 있다는 사실과 다른 이들이 자신과 다른 독립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 우리가 도덕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어린이들(그리고 어른들)처럼,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고통스럽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한 마디로 도덕적인 하드웨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도덕적인 ‘소프트웨어’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도덕적인 하드웨어가 도덕적인 선택을 할 때 의존할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말이다. 참고로 인간의 다른 모든 능력처럼 도덕적 능력은 우리의 생물학적 특성(본성)과 경험(교육)이 결합된 산물이다. 언어를 예로 들어보자. 적어도 우리는 하나의 언어를 능통하게 구사한다. 그러나 갓 태어났을 때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당신은 말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도덕적 능력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도덕적 잣대를 습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하드웨어’를 갖고 있지 않다면, 아무도 우리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셰익스피어 같은 재능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 것처럼, 완벽한 도덕적 잣대를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온전히 도덕적인 존재가 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일련의 적절한 경험들도 필요하다.
모두에게 필요한 잣대
우리가 개인적인 목표를 이루어내는 데는 ‘일치’가 필요하다. 세 가지 틀의 상호관계 차원에서 ‘일치하는 삶’을 생각해 보자. 첫 번째 틀은 도덕적 잣대 - 즉 기본적인 도덕원칙, 개인의 가치관과 신념 - 이다. 두 번째 틀은 목표인데, 당신의 목표는 고매한 목표(당신의 삶의 목표)에서 평범한 목표(새로운 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세 번째 틀은 당신의 행동인데, 거기에는 내적인 사고와 감정, 그리고 외적인 활동이 포함된다. 일치하는 삶이란 당신의 행동이 목표와 일치하고, 당신의 목표가 도덕적 잣대와 일치하는 삶을 의미한다. 만약 일치하는 삶을 살면 당신은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인생의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고, 인생에서 당신이 맡고 있는 모든 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다.
일치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 때로는 힘든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초인간적인 일도 아니다. 그것은 목표달성에 필요한 일들을 하기 위해 우리가 하루하루 내딛는 발걸음이다. 일치하는 삶도 의도적이면서 합목적적으로 무엇인가를 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우선 당신만의 ‘일치모델’을 구축하도록 해야 한다. 즉 각 틀 - 도덕적 잣대(당신이 소중히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신념은 무엇인가?), 목표(개인적으로 그리고 직업적으로 당신이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행동(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별로 깊이 생각해보고, 각 틀에 포함되어야 하는 요소들을 파악한 뒤, 각 틀 안의 요소들이 지속적으로 일치를 이루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바이러스를 죽이세요
여기에서는 일치하는 삶을 방해하는 장해물들과 틀들을 결부시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수학자는 복잡한 공식의 뜻을 이해한다. 수학자는 두 가지 특성 - 수학적 지능(기본 자질)과 수학적 능력(후천적 능력) - 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수학을 잘하는 데 수학적 지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기본적인 수학적 자질을 갖고 있지 않다면, 아무리 연습을 해도 훌륭한 수학자가 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도덕능력이라는 기본 자질이 없으면, 아무리 연습을 해도 우리는 도덕적인 리더가 될 수 없다.
도덕능력은 도덕적인 사고와 행동의 토대가 되는 자질이다. 도덕능력 때문에 우리는 도덕관과 신념을 발전시킬 수 있고, 그것들을 일관된 도덕적 잣대로 통합시킬 수 있다. 그리고 무엇이 옳은지 아는 도덕능력이 몸의 일부이기 때문에, 우리는 도덕능력을 이용하여 우리의 목표와 행동이 도덕적 잣대와 일치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데, 연기 탐지기처럼 도덕능력은 목표나 행동이 도덕적 잣대에 어긋날 때 ‘경고음’을 낸다. 일반적으로 불일치는 도덕적 혹은 감성적 능력이 부족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도덕바이러스(보편원칙들과 상충되는 헛된 부정적인 신념)’나 ‘파괴적인 감성’이 과거에 효율적으로 사용했었던 도덕적ㆍ감성적 능력을 이용하는 우리의 능력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일어난다.
컴퓨터의 운영시스템을 감염시키는 컴퓨터 바이러스처럼, 도덕바이러스는 도덕적 잣대에 침투하여 종종 도덕적 잣대를 손상시킨다. 컴퓨터의 애드웨어를 생각해보자. 당신은 애드웨어 프로그램을 찾아내어 삭제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불필요한 프로그램은 파일들을 감추는 능력, 프로그램을 삭제하려는 시도에 저항하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애드웨어처럼 도덕 바이러스도 당신의 도덕 운영시스템에 몰래 잠입하는데, 그것들 역시 몸을 숨기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목표에 영향을 미칠 부정적인 신념이 당신 안에 잠복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당신의 ‘공식적인’ 목표는 도덕적 잣대와 일치를 이루나, 무의식적으로 당신은 도덕적 잣대에 어긋나는 ‘비공식적인’ 목표를 택하게 된다. 그 결과 당신은 도덕적 잣대와 일치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되고, 왜 그런 일을 했을까 매우 당황스러워 한다.
도덕 바이러스를 관리하는 좋은 방법은 당신의 생각 속에 그러한 바이러스들이 자리 잡고 있는지 면밀히 조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신은 정기적으로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일상 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내적인 신념들을 파악해야 한다. 아울러 부정적인 감정이든 긍정적인 감정이든, 격한 감정을 느낄 때마다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도덕 바이러스의 침입 가능성을 조사해야 하고, 생각 속에서 도덕 바이러스를 탐지했을 때 당신은 도덕적 잣대와 일치하는 사고나 신념으로 그것을 대체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순간에 도덕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것은 효과적이지만, 그것이 영구적인 치료책은 아니다. 왜냐하면 도덕 바이러스는 때때로 무기한 몸속에 잠복해 있는 일부 생물학적 바이러스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마치 대상포진 바이러스처럼 말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도덕 바이러스가 재발하게 된다. 정기적으로 우리의 생각을 조사하는 것이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보다 바람직한 신념을 적극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일깨우는 작업이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파괴적인 감정(탐욕, 미움, 질투 등)은 목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게 되는 주범인데, 감성에 정기적으로 이상이 생기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장기적인 안정 치료가 필요한 그런 종류의 이상이 아니라, 흔히 볼 수 있는 스트레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없게 되는 상태이다. 즉 우리의 도덕적 잣대도 그대로이고 우리의 목표도 뚜렷하지만, 순간적으로 격분하여 원하는 것과 다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리더로서 성공하는 데 파괴적인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참고로 파괴적인 감정을 그대로 두면 그것이 종종 궤도를 벗어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당신의 경험에서 부정적인 감정의 흔적을 모두 지우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감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는 통제력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다행히 우리는 격한 부정적인 감정을 진정시키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데, 심호흡이나 스트레칭, 명상은 보다 긍정적인 감정 상태에 이를 수 있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방법이다. 또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취미활동이나 공동체 봉사, 자연이나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심지어는 설거지 같은 활동들도 긍정적인 감정 상태를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당신이 선호하는 방법을 이용해 정기적으로 연습을 해야 한다. 아무튼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능통해질 정도로 일련의 도덕적이고 감성적인 기술들을 연마해야 하는데, 앞으로 몇 장에 걸쳐 그러한 기술들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있는 그대로 말하기
보편원칙들을 무시하는 리더들은 자신을 따르는 이들의 이익은 물론, 긍정적으로는 자신의 이익마저 손상시킨다. 그러나 무엇보다 바람직하지 않은 리더는 말로는 성실을 강조하면서 성실하게 행동하지는 않는 리더이다. 케빈 레이놀즈의 예를 들어보자. 4억 달러 규모의 소비재업체 CEO였던 그는 주주들과 근로자들, 그리고 이사회를 대상으로 연설을 하며 성실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했다. 그러나 케빈의 직속부하들은 그를 조금도 신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케빈이 배신을 하거나 속임수를 사용한 수많은 사례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용기 있는 근로자들은 이사회에서 그를 해고하지 않으면 사표를 내겠다고 노골적으로 위협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더 이상 그를 참고 봐줄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회사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어느 해 12월, 케빈이 보너스 금액을 조작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보충 설명하면 그는 자신의 연말 보너스를 극대화하기 위해 팀원들에게 지급되는 보너스를 부당하게 낮게 책정했다.
한동안 케빈은 그런 사실을 감추고 헷갈리는 데이터를 제시함으로써 어떤 식으로 보너스를 지급했는지 감출 수 있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가 보너스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고, 마침내 이사회는 사임을 요구했다. 그런데 그가 떠나는 것을 아무도 애석해하지 않았고, 업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