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저 집만 바글바글하지?
박찬봉 지음 | 창해
왜 저 집만 바글바글하지?
박찬봉 지음
창해 / 2010년 10월 / 285쪽 / 12,000원1장 창업, 인생과 다르지 않다
먼저 철저하게 자신을 비워라
나의 어린 시절은 비록 가난했지만 온 가족이 농사를 지으며 사람 사는 것 같이 살았다. 하지만 근대화의 바람이 새마을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그 벽지까지 불어와 점차 마을이 변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근대화는 수몰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다. 우리 가족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지고 대전으로 나와야 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생계를 유지하느라, 자식들 키우느라 그야말로 뼈가 으스러지게 일하셨다. 식구 모두가 고생이었다.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농사를 짓던 아버지는 대전으로 이주하고서 웃음을 잃으셨고, 또 얼마간 자리를 잡지 못하고 막노동을 하셔야 했다.
대전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적응하며 나는 동중학교로 진학을 했다. 별 탈 없이 학교에 다녔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으나 집안 형편 때문에 인문계는 꿈도 못 꾸었다. 그래서 장학금을 넉넉하게 대주는 D공업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게 됐다. 하지만 대학에 대한 갈망은 여전히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대학에 갈 수 없는 신세가 되자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살았다. 당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상처는 깊었다. 지금도 공부라면 자다가도 일어난다. 아마도 그때의 아픔이 없었다면, 음식장사를 하면서 따로 공부를 하는 사람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실패가 성공을 이끈 셈이었다. 공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지금까지 뭔가 문제가 생기면 책을 찾아보고 배우러 다니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니 그것도 팔자라면 팔자인 모양이다.
대학에 진학하지도 못하고 이래저래 반항을 한 뒤 조폭 사장님이 운영하는 당구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남과 다른 이력의 사장님이 무섭기도 하고 두려운 존재이기만 했지만 그의 가르침을 받으며 장사에 대한 개념이 바로 잡혀갔다. 사장님은 큐 손질법, 청소, 당구대 관리법, 심지어 손님이 왔을 때 테이블에 공 놓는 법까지 가르쳐주었다. 사장님은 완벽한 자신만의 매뉴얼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배우는 일 하나하나가 다 신기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당구장 일도 사실은 손님을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장님에게 배운 대로 열심히 일했다. 아마 그곳 환경이 유흥가 뒷골목이 아니라 번듯한 곳이었다면 당구장에서 일을 계속 배웠을지도 모르겠다. 온갖 인간 군상들이 모여드는 뒷골목에선 희망이 없었다. 나는 3개월 만에 당구장을 그만두었다.
주변 사람들은 우리 사장님을 보고 깡패라며 흉을 봤지만, 그는 당구장에 와서 한 번도 조폭이랍시고 힘을 주거나 하지 않았다. 그리고 손님에겐 무조건 잘했다. 간혹 문제가 생겨도 무조건 참았고 손님이 옳다며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비록 조폭이었지만, 내겐 장사의 스승이었다. 그는 자기를 낮추고 비워서 장사에 임했다. 만약에 그가 그 지역의 밤의 실력자라 해서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강압적으로 손님을 대했다면, 당구장은 한 달을 채 못 가 망했을 것이다. 당구장 사장님이 번 돈을 어디에다 어떻게 썼는지는 또 다른 문제지만 장사를 하는 그의 태도만큼은 배울 만했다.
장사는 사람을 얻는 것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몇 년간 돈을 우습게보고 산 적이 있었다. 건설사업을 하면서 공사 한 번에 수천, 수억씩 이익이 남으니 천 원짜리 몇 장, 아니 만 원짜리조차 돈으로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펑펑 돈을 써댔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돈을 펑펑 쓰는데도 계속 돈이 들어왔다. 고급 요릿집과 술집을 다니면서 비즈니스 접대를 하고 나면, 그 돈의 몇 백 배의 이익이 되돌아오니 세상이 다 내 것처럼 여겨졌다. 돈 버는 일이 정말 쉬웠다.
대전 뒷골목을 배회하던 가난한 청년이 어느 날 건설회사의 사장이 되어 어깨에 힘을 주고 다녔으니, 세상을 만만하게 생각할 만도 했다. 그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건방을 떨다가 보란 듯이 추락하고 말았다. 건설업에서 뼈아픈 실패를 하고 나는 순식간에 7억 사채를 떠안은 채무자로 전락했다. 매일 사채업자와 조직폭력배들이 찾아왔다. “박 사장님. 아이고, 우리 박 사장님. 우짜노. 니 어깨 힘 빡 주고 사장님 소리 들을 때는 좋았제? 끔찍하게도 아끼는 니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좋게 해결하자, 아이가. 니 마, 알아들었나?”
죽기로 마음먹고 사지에 섰을 때 끝내 생각나는 것은 가족이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차를 팔아 1,200만 원을 마련하고 본가와 처가에서 조금씩 보태주어 대전 유성구 신성동 두레아파트 후문에서 30평짜리 호프집을 시작할 수 있었다. 빚이 7억이니 2,000원짜리 생맥주 팔아 그 돈을 어떻게 갚을 거냐고 묻는 지인들이 많았다. 십 수 년씩 장사하신 분들도 하루 매상 20만 원이 어려운 세상에 초보 장사꾼이 도대체 무슨 수로 그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겠는가. 그것도 아파트 단지 내 상가 2층의 테이블 열네 개짜리 호프집이라면 더 기대할 것도 없었다. 그저 나는 이리저리 사람들에게 부대끼며 상심했던 날들을 스스로 치유하고 반성하며 딱 한번만 열심히 살아보고픈 것이 다였다. 서른네 살의 부부가 이런 조그마한 장사라도 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정말로 마음을 다 비우고 호프집을 열었다.
신기하게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 둘 단골이 생겼다. 퇴근하고 집에 가다 딱 맥주 한 잔만 마시고 돌아가는 연구원, 시내에서 장사를 마치고 돌아와 피곤을 달래고자 찾아온 중년의 사장님……. 비록 몇 명 안 되었지만 내 마음에도 훈훈한 뭔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음이 너무나 평온해졌다. 하루의 피곤을 끙끙거리며 싸매고 와서는 시원한 맥주 한 잔에 다 날려버리고 돌아가는 손님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처음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내 가슴까지 두근거렸다. 즐거웠다.
그때만 해도 장사는 초보여서 이벤트가 뭔지, 마케팅이 뭔지 하나도 모를 때였다. 하루는 낮에 나와 청소를 하고 장사 준비를 하는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문득 부침개 생각이 났다. 주방에 있는 밀가루를 꺼내놓고 시장에 가서 이런저런 재료를 사와 부침개를 부치기 시작했다. 같이 나눌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단골손님 몇 분께 애인이나 친한 친구에게나 보낼 법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봄비가 추적추적 오네요. 빈대떡 부쳐놓았습니다. 오셔서 드시고 가세요.’퇴근시간이 되기도 전부터 그날 밤늦게까지 테이블이 꽉 찼다.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고 급기야는 밀가루가 떨어져 부랴부랴 사오기까지 했다. 물론 내가 초대해서 대접하는 것이니 부침개 값은 받지 않았다.
그날 부침개를 나누고 간 손님들 가운데는 친구 손에 이끌려 우리 가게에 처음 오신 분들이 꽤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날 분위기가 너무나 좋았다며 그분들이 또 다른 일행을 모시고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가게로 찾아오셨다. 그러면 나는 그 마음이 또 고마워서 푸짐한 안주 하나를 서비스로 대접했다. 정말 마술처럼 그렇게 단골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그렇게 1년 반 남짓 호프집을 하고 나자 악성 채무가 사라졌다. 엉터리로 살아온 내게는 과분한 기적이었다.
그 뒤로 복요리전문점 복덩어리를 개업하고, 그것이 성공해 체인점을 확장해나갔다. 이곳저곳에 강연을 다니면서 내가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바로 ‘장사의 목적은 돈이 아니다’라는 사실이었다. 부침개를 부치면서 나는 ‘이걸 얼마에 팔까?’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이것을 먹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얼굴만 생각했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조그마한 가게를 문 닫지 않게 해준 고마운 분들이란 생각에 그냥 저절로 나온 행동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정을 나누고 나니 장사는 절로 되었다. 호프집은 맥주잔에 맥주를 채워주는 곳이 아니다. 가볍게 한잔하며 하루의 피곤을 풀려는 손님의 그 마음을 채워주는 곳이다. 장사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배려하고 나누는 마음을 파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팔아 내가 받는 것은 돈이 아니라, 바로 그 손님의 마음이다.
손님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면 내 마음을 주어야 한다. 그냥 마음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마음을 주어야 손님이 그것을 느끼고 자신의 마음을 연다. 이는 어릴 적 누구나 경험했을 짝사랑과 같다. 그저 보고만 있어도 좋은 사람, 그저 뭔가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사람. 손님을 향해 그런 마음을 품어야 장사에 성공할 수 있다.
개업, 시간과 돈이 아닌 마음의 문제다
호프집이 궤도에 오르자 나는 과감히 업종 변경을 준비했다. 주변 사람들이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아니, 왜 잘나가는 가게를 접어? 박 사장 머리가 이상해진 것 아니야?” 업종을 변경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아이들 교육 문제였다. 호프집을 하다 보면 당연히 밤낮이 바뀐다. 두 내외가 다 나와 일을 하니 어린 두 딸의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그대로 마냥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둘째, 매너리즘에 빠지기가 싫었다. 이건 나의 가치관과 성향 문제인데, 호프집에서 안주하기보다 더 큰물로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과감히 호프집을 접고 새 출발을 결행했다.
음식점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닥치는 가장 큰 어려움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본이다. 개업을 준비하다보면 자본의 규모가 늘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커지게 마련이다. 두 번째 어려움은 장소를 선택하는 일이다. 나 역시 개업을 준비하면서 위의 두 가지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특히 지금의 신성동 복덩어리 본점 자리에 복집을 연다는 소문이 돌자, 지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나서서 나를 말렸다. “박 사장, 이 동네에서 복집이 줄줄이 망해 나갔어.” “우리 동네는 복집 안돼. 누가 그런 주택가 골목에서 복요리를 찾아?” “그 골목 상권 다 죽었잖아? 매상 올리기 어려울걸?”
고백하자면 내가 조금 오기가 있는 편이어서, 모두 안 된다고 하니까 더 도전하고 싶어졌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그 결점들을 장점으로 바꾸겠어!” 그로부터 1년이 지나, 그 골목에서 고깃집을 하시는 한 사장님께서 술 한잔 사겠다고 부르시더니 이런 말씀을 던지셨다. “박 사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사장님 덕분에 이 골목이 살았어요.” 이 인사는 거짓말이 아니다. 정말로 상권이 죽어가는 골목을 복덩어리 본점이 살린 것이다.
개업을 완벽하게 할 수는 없다. 어떤 결정이든 늘 약점과 결점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하나가 만족스러우면 다른 것이 부족하고, 그걸 채우면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난다. 이런 것에 일일이 대응하다 보면 개업을 하기도 전에 스트레스로 앓아눕고 만다. 장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 먹은 마음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자본과 장소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런 조건을 지나치게 따지는 것은 처음부터 나의 노력이 아닌 다른 것에 기대 편히 가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장사를 편하게 해선 안 된다. 가격이 맞고 정말로 나쁘지 않은 장소라면 비슷비슷한 곳 중에서 어쩐지 내 마음에 드는 곳으로 뒤돌아보지 말고 밀어붙여라. 그냥 무작정 돌진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전략을 가지고 밀어붙이면 된다. 상권이 약해서? 죽은 상권을 내가 다시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도전하면 된다. 손님 층이 이 업종과 맞지 않아서? 일부러라도 찾게 하겠다는 각오로 하면 된다. 이곳에선 이 업종이 다 망했다고 해서? 왜 망했는지를 알면, 안 망할 방법을 찾으면 된다.
장사는 마음가짐이다. 장사는 돈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을 얻는 일이라고 했다. 사람을 얻는데 무슨 핑계가 있을 수 있겠는가. 너무 희망만 이야기한다고 핀잔하지 말긴 바란다. 지금 이 마당에 누가 절실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장사를 하려면 임전무퇴의 오기가 있어야 한다. 남들이 다 안 되는 일을 보란 듯이 해내는 사람이 역사를 움직인다. 장사가 역사를 바꾸는 일보다야 쉽지 않겠는가. 할 수 있다. 그러니 개업 준비를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하되, 문제가 생기면 우왕좌왕하기보다는, 굳게 마음먹고 정면으로 돌파해야 한다.
2장 장사, 놓쳐서는 안 될 아홉 가지
이 요리만큼은 내가 최고! 스스로 최고가 되라
복집을 열고서 처음엔 정말 어려웠다.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도 시행착오가 너무나 많았다. 심지어 “아니, 복집에서 복매운탕도 제대로 못 끊여요?” 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 말을 듣고 그날 저녁, 대전 시내 유명하다는 복집의 매운탕을 모두 포장해 와서 맛을 비교해보기도 했다. 확실히 뭔가 부족했다. 밤새 탕을 수십 번 끊였다. 그렇게 해서 다음 날 다시 복매운탕을 내놓았다. 돌아온 이야기는 더 절망적이었다. “사장님, 복요리 어디서 배우셨어요? 다시 배우셔야겠네요.”
음식 맛만 문제였다면 그래도 조금 나았을 것이다. 서빙도 미숙해서 손님에게 야단맞기 일쑤였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려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 모든 어려움을 차근차근 극복하고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재산이다.
그 과정의 세세한 이야기는 조금 뒤로 돌리고, 여기서는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복덩어리를 준비하면서 나는 어렴풋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복요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건 차별화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김치찌개는 누구나 먹는다. 사람들이 자주 찾기에 김치찌개를 파는 집도 넘쳐난다. 그러나 회사원들의 불평은 어느 도시, 어느 지역에서나 한결같다. “오늘 점심은 뭐 먹나? 도대체 이 동네는 김치찌개 제대로 끓이는 집이 한 곳도 없어.” 여기서 우리는 힌트를 얻어야 한다. 바로 익숙한 것을 최고로 만드는 차별화 전략이다. “그 집 김치찌개 하나는 내가 보장해. 최고야.” 이런 소리를 듣는다면 차별화에 성공한 것이다.
말이야 쉽지, 무슨 비법으로 그런 김치찌개를 만들 수 있을까? 바로 여기에 숨겨진 함정이 있다. 그리고 그 함정이 바로 기회다. 타고난 미식가이거나 요리 전문가가 아닌 이상 맛을 절대적으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대중들, 즉 우리의 손님들은 맛 이전에 이미지를 맛본다. 음식점의 이미지란 청결이나 실내장식도 포함하지만 무엇보다 주인장의 자신감이다. “이 집 주인이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난 끝내줘.” 내가 복덩어리를 이끌면서 선택한 차별화 전략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복가스, 복만두, 복냉면 같은 차별화 메뉴를 만들어 어린이도 좋아하는 복요리집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일본 시모노세키의 복요리 장인과의 교류였다. 그에게 복요리를 전수받고 복어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동안, “복어는 박찬봉이 잘 알지!” 하는 신뢰를 손님에게 심어주었다.
절약이 다가 아니다. 쓸데없이 아끼지 마라
장사가 안되는 집들을 돌아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어딘가 어둡다는 것이다. 식당을 운영하시는 분이라면 지금 한번 돌아보자. 홀의 전등이 다 새것처럼 반짝거리는지, 주방의 전등엔 때가 끼어 있지 않은지, 화장실에 고장 난 전등이 하나라도 있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간판의 상태를 살펴보길 바란다. 글자 받침 하나라도 이상한 곳이 없는지, 간판 전구는 다 멀쩡한지 살펴보자. 안 그래도 심란한데 웬 전구 타령이냐고 푸념하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전구 하나가 식당의 매출에 큰 영향을 준다. 식당이 어두우면 첫인상이 나빠진다. 식당은 늘 환하면서 따듯한 느낌이 있어야 한다.
손님과 식당의 만남은 남녀가 처음 만났을 때와 같다. 손님은 식당에 들어서면서 잔뜩 기대한다. 소개팅에서 착한 사람이 나오길 기대하는 사람이 있고, 지적인 사람이 나오길 기대하는 사람도 있다. 손님도 그렇다. 맛있는 음식이 나왔으면 하는 손님이 있고, 친절했으면 하는 손님이 있고, 깔끔하고 청결했으면 하는 손님이 있다. 성격이나 취향에 따라 기대치가 조금씩 다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아야 한다. 소개팅에 나오는 사람이나 처음 들어가는 음식점이나 가장 중요한 것은 ‘첫인상’이란 사실이다. 첫인상이 나쁘면 만회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 첫인상이 바로 조명이다. 음식점은 밝아야 한다. 그것도 깔끔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밝게 손님을 맞아야 한다. 그러니 전등 하나 고장 났다고 대수로 넘길 일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