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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순 채용으로 세계 최고 기업을 만들다

마츠우라 모토오 지음 | 지식공간
선착순 채용으로 세계 최고 기업을 만들다

마츠우라 모토오 지음

지식공간 / 2009년 10월 / 222쪽 / 13,000원



1부 사람이 기술을 만든다 - 세계 최초 '100만 분의 1그램 기어 휠'을 만든 혁신 경영자 마츠우라 모토오의 인재 육성기

1장 나를 경영자의 길로 이끌어준 사람들 그리고 시간들




1935년 나는 전쟁을 피해 고향인 나고야를 떠나 시마네 현 마쓰에로 피난을 갔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그곳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3개월 만에 자퇴를 했다.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 왠지 이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주저앉아 있다가는 인생의 패배자가 될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가족을 떠나 혈혈단신으로 나고야로 돌아와서 조각사로 취직했다. 미닫이문의 채광창을 조각하는 작업을 한동안 배우다가 그만두고 유리공장 견습공으로 가게 점원으로 여러 직종을 전전하며 방황을 했다.

얼마 뒤 가족과 함께 소도시 도요하시로 주거를 옮겼다. 이곳에서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제빵사, 미장이, 카페 점원, 음악다방 DJ, 댄스홀 연주 단원 등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생활비와 학비 모두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밤에 다니던 직장은 '파리 무드'라고 불리는 댄스홀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재즈 트롬본 연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이이치 대학 경제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재즈의 매력에 푹 빠져 요코하마에서 활동하는 '도모토 야스히로와 비 플랫'이라는 밴드의 멤버로도 활동했다. 밴드 활동을 하면서 재미있는 일을 많이 경험했다. 지금의 나를 만든 삶의 가치관들도 그 때 만난 도모토씨, 요시다씨, 그리고 아이바이트를 하던 세이분칸 서점의 키와다 상무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분들은 10대의 순수했던 내 마음에 평생 지탱할 수 있는 삶의 씨앗을 뿌려주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트롬본 연주자 도모토 씨는 단순하고 반복된 훈련을 통해 '기본'과 '기술'을 체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색소폰 연주자였던 요시다(한국명 길옥윤) 씨로부터는 인생의 쓸쓸함, 부드러움과 진솔함에 대해 배웠다. 매일 매일의 삶과 연습은 얇은 종이와 같고 그곳이 켜켜이 쌓여서 각자의 인생을 축조해 간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키와다 씨는 나의 대학 등록금을 빌려주면서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보다 열심히 공부하거라"고 격려해주셨다. 이분들의 가르침 덕분에 나는 타인의 선의를 굳게 믿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대학을 졸업한 나는 밴드 생활을 정리하고 평생의 일을 찾기 위해 회사에 취직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자본금 1억 엔 이하, 사원수 300명 이하, 최첨단 소재와 관련된 일을 할 것. 이 세 가지가 내가 찾는 회사의 조건이었다.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는 5년밖에 근무하지 않았지만 남들이 정년까지 할 일을 5년 동안 다했다고 생각한다. 입사 직후부터 나는 주어진 일만 하지 않고 업무의 전반적인 흐름을 조사했다. 그리고 회사 조직과 사무 합리화에 관한 차트와 매뉴얼을 짰다. 사장을 만나 문제점을 설명하고 해결책을 제시한 후 개선 작업에 나섰다. 회사는 합리화를 통해 한 해 수백만 엔의 수익을 올리게 되었고 나는 사장님으로부터 특별 상여금을 받았다. 이후에도 나는 회사 일이라면 나의 일처럼 내 비용과 시간을 별도로 들여가면서 매달렸다. 회사에서 최고의 성과를 올리는 직원으로 분주히 뛰어다니던 5년이 지난 어느 날 하루는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너무 열심히 일한 탓인지 조금 쉬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거래처 대기업의 과장과 잡담을 하던 중 "할 수만 있다면 작게라도 회사를 시작해 보고 싶다. 아직 경험은 없지만 사출성형을 해 보고 싶다"는 말을 던졌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많은 분들이 도와주겠다며 연락이 왔다. "회사를 차리겠다면 밀어드리겠습니다." 450만 엔의 성형기를 반년 거치 30회 할부로 구입하도록 해주겠다는 분부터 차입금 보증을 서겠다는 분, 금형을 할부로 만들어주겠다는 분까지 뜻하지 않는 도움의 손길에 깜짝 놀랐다. "지난 수년간 자네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지켜보았다네." 새삼 사람들의 눈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얄팍한 생각을 품고 교활하게 행동했거나 옳지 않은 일을 저질렀다면 과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까?

회사가 문을 연 것은 1965년 8월 15일이다. 6평 남짓한 허름한 목조 건물에 주켄 공업 공장이 들어섰다. 내 나이 서른 살이었다. 나이코 쿠니히코, 오키모토 요시오가 우리 주켄 공업 최초의 정사원들이자 창업멤버들이다. 첫 상품은 플라스틱 화분이었다. 품질과 디자인은 우수했지만 대기업에서 비슷한 제품을 초저가로 내놓으면서 판매 경쟁에서 패배했다. 가격경쟁에서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첫 실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좌절하지 않았다. 최첨단 소재인 플라스틱을 다룬다는 자부심으로 다시 의기투합했다.

그 무렵은 고도 성장기였다. 나고야 서북쪽 공업 지대에는 많은 공장들이 새로 생겨났다. 나는 "인력 부족 해소를 위해 공장들이 외주 정책을 취할 것이다"라고 판단하고 하청 일에 승부를 걸었다. 오카모토와 함께 고물 소형 트럭을 몰고 외주 일을 찾아 무작정 나고야 서북지역을 향했다. 주먹밥과 달랑거리는 물통 하나, 천 엔짜리 한 장과 전화를 걸기 위한 동전 몇 개, 이것이 수중에 든 전부였다.

하루는 소형 트럭을 몰다가 검정색 고급 승용차에 추돌사고를 당했다. 상대방은 수리를 해 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폐차 직전 차를 가지고 수리비를 받기 미안해서 이렇게 말했다. "다친 사람이 없어 천만 다행입니다. 앞으로 조심하면 되지요." 사고가 난 후 한 시간쯤 지난 후에 우리는 큰 플라스틱 공장을 발견했다. 하청을 부탁하기 위해 들어가 보니 그 공장 사장이 조금 전 접촉사고 승용차의 뒤에 타고 있던 신사였다. "자네들과는 보통 인연이 아닌가 보군.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돌려보낼 수 없지. 마침 우리 업체에서도 하청업체를 찾는 중이라네. 얼른 일거리를 받아 가게." 그것이 우리가 따낸 첫 주문이었다.

2장 선착순 채용으로 세계 제일의 기업을 만들다



기업 활동의 능률을 생산성이라 하는데 기업의 생사는 생산성에 달려있다. 생산성이 높을수록 기업 실적 역시 커진다. 불필요한 규칙은 생산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우리 회사는 어떤 규칙도 만들지 않는다. 우리는 창업 이래 출근부를 기록한 적이 없다. 당연히 출근 일수를 따지며 급여를 계산할 필요도 없다. 영업 사원은 출장이 잦다. 다른 회사라면 여비 정산, 보고서 작성처럼 귀찮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는 모든 경비를 신용카드로 결재한다. 아무리 출장이 길더라도 귀국 후 정산 업무는 하지 않는다. 신용카드 명세서만 확인한다. 보고서도 작성하지 않는다. 현지에서 중요한 판단이 필요하면 메일을 보내도록 했다. 귀사 후 올리는 보고도 모두 내선 전화와 구두 보고, 간단한 메일로 대체한다.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시시콜콜한 업무는 가능한 생략하고 진짜 업무에 집중한다. 이것이 생산성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대기업에는 예의바르고 회사 규칙을 잘 따르는 사람들이 좋은 성적으로 채용된다. 반면 우리 회사는 온갖 개성들의 집합소이다. 까까머리로 다니는 직원, 족집게로 눈썹을 다듬는 남자 직원도 있다. 직원 모두 굉음을 토해내는 거대한 오토바이를 몰고 다닌다. "안녕하십니까?" "무슨 일이신가요?" "일 좀 시켜 주십시오." "그래요? 잘 왔어요.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나요?" 이런 식으로 입사가 결정된다. 지금도 채용은 선착순이다. 학력, 국적, 성별 불문이다. 첫 월급은 나이에 따라 결정되며 이후는 본인의 노력에 달려있다. 개중에는 이력서를 갖고 오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력서를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왜 이렇게 하는 것일까? 지금까지의 일보다 앞으로 함께하자는 의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크고 유명한 기업도 급료가 적고 노동 시간이 길거나 남녀, 국적, 학력 차별이 존재하면 삼류이다. 경영 합리화란 인원을 감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육체노동에서 감시노동으로 바꾸는 것, 다시 말해 몸이 아니라 머리를 써서 일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 회사가 주 5일 근무제를 채용한 것은 1972년이다. 중소기업으로는 일본에서 가장 빠르지 않나 싶다. 지금 목표로 하는 것은 하루 7시간 노동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만약 전국의 모든 기업이 7시간 일하고 일이 끝난 후 40분간 산책을 한다면 사원들 모두 건강해지지 않을까? 출근부나 타임카드가 없는 우리 회사는 본인이 스스로 신고하는 것이 원칙이다. 작업 전에 미리 알리건 작업이 끝나고 알리건 상관없다. 메일을 통해 알리면 그만이다. 국내 출장이나 해외 출장도 통보하면 그만이지 허가받을 필요는 없다. 모든 일을 스스로 관리하고 회사와 사원이 서로의 권리를 인정한다면 이것이 '서로 믿는 행동'의 첫걸음이 아닐까.

나는 점심시간이 되면 앞장서서 사원들을 이끌고 나간다. 점심은 여러 사람이 어울려 먹는 것이 맛있다. 밥을 먹으면서 자연스레 일, 취미, 기술 등 여러 가지 화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때로는 기술얘기에 열중하느라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적도 있다. "이봐, 소형 기어 휠, 그러니까 마이크로 파트라고 하면 구체적으로 얼마나 작은 걸 말하는 거야? 천분의 1그램, 아니면 만분의 1그램?" "그걸 어떻게 만들지?" "공작 기계는? 또 성형기는 어떤 걸 사용하지?" "품질관리도 만만치 않아." "다들 그만! 그런 건 상관없잖아. 중요한 것은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라고!" 메모지는 간단한 설계도로 바뀌고 분위기는 후끈 달아오른다. 더 이상 시간 따위는 안중에 없다.

신기술 개발에 관한 이야기는 늘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 우리의 개발 과정에는 조금 이상한 원칙이 있다. 원칙1, 계획서는 쓰지 않는다. 계획서를 작성하면 시간에 구애를 받기 때문이다. 원칙2, 개발 책임자는 없다. 전문적인 개발 섹션이나 그룹 조직도 존재하지 않는다. 개발은 틈틈이 한다. 원칙3, 개발 방향이 수시로 바뀐다. 원칙4, 예산은 무계획,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한다. 일반적인 예산 제도가 없으며, 자금이 바닥나면 중단한다. 점심을 먹으면서 나누던 이야기가 그대로 개발 계획과 개발 행동으로 발전한다. 누구나 참가할 수 있으며, 신입사원이나 여사원도 자유롭게 의견을 내놓는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작은 100만 분의 1그램 기어 휠도 이렇게 해서 태어났다.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누구나 참가하고 발언할 수 있는 자유, 이것이 도전에 참여하는 기회이다. "세계 최초, 세계 제일, 세계 최소"라는 것이 동기, 즉 젊은이들을 흥분시키는 모티베이션이다.

3장 가능성을 조립하는 꿈의 회사 주켄



요즘 젊은이들은 체격이나 감성, 지성 등 모든 면에서 질적으로 우수하다. 잠재적인 능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하다. 지구상의 모든 것들이 이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다. 그런 탓에 오히려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때가 우리 어른들이 나설 차례이다. 우리의 역할은 그들이 기회와 동기를 가질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기회를 제공했을까? 내가 주켄의 젊은이들에게 제공한 기회는 컴퓨터와 같은 최신 기계였다.

1970년대 중반 아직 사원이 8명 정도일 무렵 우리는 처음 사무용 컴퓨터를 도입했다. 당시 나는 생산관리에 쓸 목적으로 비싼 컴퓨터를 구입했다. 나는 컴퓨터가 정말 좋은지 확인하기 위해 사원을 두 명 더 늘려 기존의 수작업과 컴퓨터 작업을 병행하도록 했다. 작업 내용과 상품의 기초 데이터를 매일 입력했다. 생산관리용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가장 번거로웠다. 이와 함께 실제 생산관리도 시험 가동했다. 반년 정도 지나자 수작업과 컴퓨터 작업의 효율이 비슷해졌고, 10개월이 지난 후 컴퓨터 작업만으로 충분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당시 컴퓨터를 들여오면서 쌓인 노하우는 이후 모든 업무를 컴퓨터로 전환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가 컴퓨터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은 1994년 봄이었고 이듬해부터 인터넷을 쓰기 시작했다. 시대를 앞선 우리의 행보에 주위에서는 경이로운 시선을 보냈다. 우리는 오랫동안 맥킨토시를 중심으로 컴퓨터를 활용했다. 맥킨토시는 각각의 기계가 서버 기능을 갖고 있어 특별한 기술 없이도 30대 정도의 네트워크를 손쉽게 구축할 수 있다. 기술도 지식도 없는 우리에게 아주 고마운 기종이다. 현재는 상당한 기술력이 있고, 각 그룹의 서버도 삼차원 CAD/CAM에는 윈도우, 그 밖의 서버에는 리눅스를 사용하고 있다. 1992년 당시 정사원은 98명 임시직은 30명이었다. 현재는 정사원 73명 임시직 25명이지만 매출, 이익 모두 그때보다 엄청나게 늘었다. 줄어든 사원의 몫을 컴퓨터가 메우는 셈이다. 나는 중소 제조업에서 컴퓨터를 능숙하게 사용하면 생산성이 5~10배 늘어난다는 것을 실감하는 중이다.

우리는 처음 생산할 때부터 생산의 라인화를 거부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업무를 라인화하면 일이 쪼개질 수밖에 없다. 업무가 분업화되면 담당자는 자신이 어떤 제품을 만드는지 알지 못하게 된다. 성취감을 느낄 수 없고, 기술 전체를 익히지 못하기 때문에 독립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개개인이 책임을 지고 완성품을 만드는 시스템을 선택했다. 최근에는 이런 시스템을 셀 시스템이라고 하여 새삼 주목하고 있지만 일본에는 예전부터 '도제 제도'라고 하여 이 전통을 유지해 왔다. 지금과 옛날의 차이는 현장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의 능력이다. 교육 수준이 높고 감성이 섬세한 요즘 젊은이들은 같은 도제 시스템이라 해도 배우는 속도가 월등히 빠르다.

기계의 조립 공정을 살펴보자. 설계자가 조립 전문 기술자와 힘을 합쳐 조립을 시작한다. 조립이 끝나면 자사 공장에서 실제로 사용해 본다. 사용하기 좋은지 나쁜지, 고장 따위는 없는지 현장에서 불만이 접수된다. 개선책과 불만을 접수하여 설계를 변경하고, 오류를 바로잡고 망가진 곳을 고친다. 이 과정을 2년 정도 되풀이 한 뒤 기계가 완성된다. 우리가 말하는 완성이란 10년 정도 유지 보수가 필요 없는 상태이다. 기계는 일정 기간 테스트를 거치지 않으면 감추어진 결함이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는 1~2년간의 철저하고 가혹한 테스트를 거친 후 신기종을 출시한다. 남들이 들으면 놀랄 일이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서 우리는 사출성형기계의 애프터서비스를 하지 않는다. 5~6년 동안은 유지보수가 전혀 필요 없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가동되고 있는 당사의 기계는 1800대에 이른다.

새로운 기술에 도전할 때는 매 순간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우리 회사는 2002년 세계에서 가장 작은 100만 분의 1그램 기어 휠을 찍어내는 금속 거푸집을 완성했다. 사람의 눈으로 감별하기 어려운 먼지 크기의 톱니바퀴를 만들려면 많은 까다로운 작업을 해야 한다. "플라스틱 재료를 사출하는 게이트의 지름은 얼마로 해야 하는가?" "제품을 형틀에서 밀어내는 핀의 직경은 얼마가 적당한가?," "제품이 형틀에서 빠져 나왔는지 어떻게 확인해야 하는가?" 등 한 번도 경험 못한 문제들이 속출한다.

당시 금형 제작을 담당했던 팀장인 가와이는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추운 겨울 컴컴한 새벽길을 뚫고 인적 없는 공장 한 구석에서 매일 기계와 고분 분투했다. 그의 노력 덕분에 우리 회사는 마침내 기어 휠을 성형하는 기계와 양산 시스템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가와이는 공고를 졸업하고 15년 동안 금형 외길을 걸어왔고 마침내 이제 그와 그의 팀원들은 세계 최고의 기술자가 되었다. 짧게 깎은 머리, 숯덩이 같은 눈썹, 개조한 오토바이, 낮게 튜닝한 자동차, 피어싱....15년 전 그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지금 국제 견본시에서 자신들이 만든 제품을 외국인들에게 영어로 설명한다. 목이 멘다. 그들은 역시 내가 믿었던 그대로의 청년들이었다.

2부 '절대 파산하지 않는 회사'를 건설하라 - 지난 45년간 위기의 파고를 넘어 주켄공업을 이끌어온 마츠우라 사장의 경영 조언

4장 우리는 어떻게 변화에 대응했는가?: 주켄, 도전과 응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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