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위대한 경영전략
이상준, 정완길 지음 | 책이있는마을
세상을 바꾼 위대한 경영전략
이상준, 정완길 지음
책이있는마을 / 2010년 3월 / 224쪽 / 11,000원
Chapter 01 인재 등용과 능력의 발휘
인재 등용과 인기관리삼국지 전반에 걸쳐 얻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교훈이 있다. 바로 '인재를 얻는 자는 발전하고 인재를 잃는 자는 쇠퇴한다'이다. 촉나라의 흥망성쇠를 보면 이 점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유비는 큰 뜻을 품고 있었지만 곁에 보좌하는 인재가 없어 떠돌이 생활을 했다. 공손찬에게 의지하고 때로는 원소를 따르며 유표에게 기대는 등 마음을 잡지 못하고 떠돌았다. 물론 이때는 천하를 통일하려는 목표마저 확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신야에 머물면서 제갈공명을 세 번 찾아갔던, 이른바 삼고초려 이후 사정은 달라졌다. 공명이라는 큰 고기를 얻은 유비는 그의 말을 경청하며 천하 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방향을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후에 사천성을 중심으로 촉나라를 세울 당시 유비의 옆에는 공명과 법정같은 유능한 참모와 관우, 장비, 조운, 마초 등 맹호 같은 장수가 있었다. 이 같은 인재가 활약하던 시대는 촉나라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관우가 죽고 장비가 암살당하는 등 손발 노릇을 하던 신하가 하나둘 세상을 떠나면서 촉나라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공명이 오장원에서 숨을 거둔 후 촉나라 멸망의 날은 가까워졌다. 왕위를 이어받은 건 유비의 장남 유선이었으나 실제로 정사를 돌보는 일은 공명이 했기에 그가 죽은 뒤에나 유선이 나라를 통치했다. 그런데 유선의 곁에는 인재가 모여들지 않았다. 유선은 나약하고 무능하며 인재 등용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조정에는 환관들이 득세해 현명한 신하를 박해하는 바람에 공명이 특채로 선발한 강유 장군마저 화를 피해 은거했다. 결국 촉은 방어선에 구멍이 생겨 위나라에 의해 패망하고 말았다.
이와 같이 인재 등용을 잘하고 못함에 따라 한 나라의 흥망이 좌우되는 상황은 위나라와 오나라에도 있었다. 조조는 인재를 진심으로 대우해 곁에 순욱, 곽가, 순유, 정욱 등의 지혜 그룹을 두었다. 그가 죽은 뒤에도 사마의, 등애, 종회와 같은 인재가 그의 아들을 보좌해주었다. 동쪽의 오나라를 통치하던 손권의 옆에는 주유와 노숙 같은 지략을 갖춘 신하가 있었으며 후에 여몽과 육손 같은 인재를 들여 강동 지역을 장기간 통치할 수 있었다. 손권과 조조는 인재를 등용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었다. 손권은 결점 대신 장점을 보고, 20~30대의 청년층을 대담하게 지휘관 자리에 등용했다. 주유, 노숙, 여몽, 육손 등이 여기에 속한 인재들이다. 조조는 잔인하지만 대범한 성품으로 인심을 얻어 인재를 포섭했다. 한 예로, 관도대전 때 벌어진 일을 살펴보자.
원소의 군대를 물리친 조조는 원소의 짐 속에서 편지 한 묶음을 발견했다. 그것은 조조의 병사들이 몰래 원소와 내통한 서신이었다. 당시 조조의 참모들은 여기에 가담한 병사를 찾아서 모두 죽이자는 건의를 했다. 이에 조조는 "원소가 강할 때 나도 내 자신을 보존하기 어려웠는데 그들이야 오죽했겠느냐"라며 편지를 모두 불태워버리고 한 명도 추궁하지 않았다. 이때 조조의 행동은 아주 대담했고 내부 단결을 강화하는 데 유효하게 작용했다. 암암리에 내통한 병사들을 무더기로 색출하면 반드시 인재의 대량 손실이 발생할 것은 뻔한 노릇이었다. 이에 조조는 편지를 몽땅 태워버림으로써 가담자를 안심시켜 내부 분위기를 평정하고 인재손실을 막을 수 있었다. 내통에 가담한 병사들은 조조의 처사에 탄복해 충성을 다할 것이 당연했다. 이 소식이 다른 진영에 전해지면 조조의 명성이 높아져 그를 따르려는 하북 지방의 인재가 모여들어 잠재적 이익도 챙길 수 있었다. 이 모든 걸 계산할 만큼 조조는 현명했다.
유비는 특별히 인재를 포용하는 덕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공명은 인재를 등용하는 데 일정한 기준을 세우고, 이를 활용해 많은 성과를 올렸다. 공명이 강조한 인재 등용의 기준은 의지, 임기응변, 묘책, 용기, 품성, 청렴, 신용 등이었다. 그러나 공명도 실수는 있었다. 무엇보다도 큰 실수는 후계자를 양성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공명은 모든 일에 직접 나서서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적게 먹고 일은 많이 하며 항상 바빴고, 심지어 피로가 쌓여 피를 토하면서도 촉나라를 번성시키는 데 신명을 다 바쳤다. 이는 '다른 사람이 과연 나만큼 힘을 다해 일을 처리할까'하는 우려에서 나온 처사라 할 수 있다. 이것이 그의 인재 등용 특히 후계자 양성에 있어서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그의 후계자 서열에 오른 사람은 장완, 비의, 강유 등이 있으나 이들은 하나같이 큰일을 한 것이 없고 나중에는 환관에 의해 장악되는 치욕을 당했다. 오늘날 기업을 관리하는 데에도, 인재를 초빙해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은 기업의 흥망을 결정짓는 중요한 일이다.
Chapter 02 사업 계획의 수립과 선견지명
사업 계획과 액션플랜유비는 삼고초려로 공명을 얻은 뒤 천하를 품은 것처럼 기뻐했다. 이때 공명은 천하 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는 계획을 유비에게 제시했다. "동탁이 반역한 이래 천하의 호걸들이 모두 일어났습니다. 조조의 세력이 원소보다 약함에도 그를 누를 수 있었던 것은 천시(天時)에 도모했기 때문입니다. 당장은 조조가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천자를 앞세운 채 제후들을 호령하니 그와 겨루어서는 안 됩니다. 손권은 강동을 차지한 지 삼대나 지나 백성이 그를 따르고 있으며 그쪽은 지역이 험준하니 역시 대적하기 어렵습니다. 형주는 북으로 한수와 면수에 접하고 지리적 이점이 남해까지 통해 동으로는 오회와 연결되고 서쪽으로는 파와 촉으로 통하니 여기가 바로 주인이 아니면 지킬 수 없는 곳이지요. 익주는 험한 요새가 있고 옥토가 천 리에 달하는 풍요로운 천부의 땅으로 고조가 이에 근거해 왕업을 이룬 곳입니다. 오늘날 유장이 있으나 나약하고 무능해 백성과 나라가 부유함에도 아낄 줄을 모릅니다. 이에 뜻있는 인사들은 명석한 임금을 원하고 있는 터이지요. 먼저, 형주와 익주를 차지하고 험한 지형을 이용해 서쪽으로는 융족과 평화를 도모한 다음 남쪽으로는 이와 월을 귀순시킵니다. 한편 밖으로는 손권과 손을 잡고 안으로는 정치를 잘하며 변화가 생길 즈음, 장군 한 명에게 형주의 병사를 내어주고 완과 낙으로 향하게 한 뒤 장군께서는 익주의 군사를 거느리고 진천으로 나아가시면 만백성이 쌀과 술로 환영할 것입니다. 부디 대업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공명은 동자를 시켜 지도 한 폭을 대청에 걸어놓고는 다시 유비에게 말을 했다. "이것은 서천 54개 주의 지도입니다. 장군께서 대업을 이루시려면 북으로 조조가 천시(天時)를 접하게 하고 남으로는 손권이 지리(地理)를 차지하게 하며 장군은 인화(人和)를 점해 먼저 형주를 차지하고 이를 근거지로 삼아 서천을 취해 기반을 다진 다음, 병사를 일으켜 정족지세를 이룬다면 가히 중원을 도모하실 수 있습니다."
공명의 계획은 거의 정확했다. 초기에는 형주와 익주를 차지해 근거지로 삼아 단기 목표를 달성했다. 그다음 법정 등의 도움을 받아 정치를 잘하여 내부를 안정시켰으며, 손권과 연합해 조조에게 대적했고, 마초의 병마를 거두어 서쪽의 융족에 위업을 떨쳤으며, 맹획을 일곱 번 사로잡아 이와 월을 모두 굴복시켰고, 조조의 군사를 불로 공격해 승리하는 등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어 나갔다.
입지 선정에 따른 영업의 성패와 풍수
삼국지를 읽으면 위, 촉, 오 세나라가 서로 형주를 차지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왜 하필 형주 땅일까? 형주는 지형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위, 촉, 오 세 나라의 국경에 접하며, 세 나라 모두에 군사 요충지로서의 전략적 의미가 있는 지역이다. 손권은, 양자강 이남을 통일해 확장하려면 반드시 이 지역을 차지해야 한다. 조조는, 형주를 손에 넣어야만 양자강을 넘어 남북 통일의 대업을 이룩할 수 있다. 유비에게는, 서천으로 발전하는 기지로서 없어서는 안 되는 땅이다. 그런데 공명이 계책으로 남군과 형양을 빼앗은 뒤 손권과 유비의 연합 관계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하자 오나라 노숙이 형주를 넘겨 줄 것을 요구했다. 적벽대전에서 오나라가 위나라를 물리치고 황숙을 구했으니 모든 형주 9개 군이 오나라에 귀속되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형주 9개 군은 원래 동오의 땅이 아니고 유경승(유포)의 땅이오. 경승이 세상을 뜬 다음에는 그 아들에게 넘어갔고 유황숙은 경승의 아우이니 숙부가 조카를 도와 형주를 지키는 것이 마땅하지 않소?" 공명이 이렇게 반박하며, 유표의 장자 유기까지 증인으로 내세우니 노숙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또 한번은 노숙이 "유기 공자가 없으면 오나라에 돌려줘야 하오"라고 하니 공명은 그리 하겠노라고 쾌히 승낙한다. 그런데 승낙만 하고는 땅은 돌려주지 않으니 속이 탄 노숙이 재차 형주를 요구하는데 그때마다 공명은 "빌린 것이 아니오?"라고 얼버무리며 결코 돌려주지 않았다. 후대에 중국에서는 "유비가 형주를 빌리듯 한 번 빌리면 영원히 돌려주지 않는다"는 고사성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그럼, 공명은 형주가 자기네 땅이 아닌 빌린 땅이라면서 왜 오랫동안 내놓지 않는 걸까? 오나라와의 연맹 관계를 단절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요충지인 형주를 내놓을 수도, 오나라와의 사이를 악화시킬 수도 없어 그저 빌려 가진 땅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촉의 연맹 관계가 지속되는 기간에 유비는 서천과 한중 등지를 얻어 작은 규모로 시작했던 진영은 마침내 조조나 손권에 비길 정도의 강대한 역량을 축적할 수 있었다. 삼국지에서 여러 나라가 형주를 차지하려고 군대를 투입하거나 지연 작전을 펴는 등의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이유는, 요지를 점령해 뻗어나가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오늘날의 기업 경영에서도 요지를 차지하는 것이 기업 발전의 기본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공장의 입지를 선정할 때는, 교통이 편리해 운송비와 시간을 줄이고 신속한 배달이 가능한지를 고려한다. 또 제조업의 경우 원료 생산지가 인근에 있는지, 큰 판매 시장이 부근에 있는지 등을 따져 입지를 선정한다. 작은 상점을 꾸리는 데에도 가게터를 잘 잡아야 함은 물론이다.
Chapter 03 리더의 자질과 직감력
성공 시대와 겸손의 미덕삼국지에 등장하는 장수 가운데 제일 용맹하고 싸움 잘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관운장이다. 관운장의 용맹함을 표현하는 말도 많다. "운장이 술잔을 놓고 용맹함을 자랑할 때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을 처단했다." "말 한 필로 천 리를 달리고 5관을 지나며 장수 여섯의 목을 자르다." 이렇듯 연전연승을 자랑하는 관운장이 어째서 맥성에서 엄청난 비극을 맞이했을까? 관운장의 실패는 한마디로 교만해진 그의 성격탓이었다. 승승장구하다 보니 적군을 깔보게 되어 결국 화를 입은 것이다. 그의 교만해져가는 일련의 행동을 살펴보기로 하자. 익주를 평정하고 귀순한 마초에게 평서 장군의 직위가 내려졌다. 이를 못마땅해 한 관우는 그에게 사람을 보내 "마초의 무예가 높은 줄 아니 나와 높고 낮음을 겨루어보자"며 결투를 신청했다. 이 소문을 접한 제갈량이 관우에게 편지를 보냈다. '용맹함은 우열을 비교할 수 있지만 관공의 초탈함을 마초가 어찌 따르겠는가! 지금 관공은 형주를 지키고 있으니 그 사업을 중히 여기라'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받아 본 관운장은 수염을 쓸며 웃고는 "공명이 내 마음을 아는구나" 하며 결투를 포기했다.
이 밖에도 손권이 관우에게 사절을 보내 자신의 아들과 그의 딸을 혼인시킬 것을 권하자 모욕을 주고선 거절했다. 이토록 오만방자해진 관우는 부하 병사와의 인화 단결을 어렵게 했고 오나라와의 동맹관계도 중시하지 않았다. 그 결과 오나라와의 맥성 전투에서 관우는 크게 패하게 되었다. 이때 얼마 안 되는 패잔병을 거느리고 포위망을 뚫어 도망칠 때에도 그의 오만함은 여전했다. 부하 장군 왕보가 "샛길에는 매복이 있으니 큰길로 가시지요"라고 귀뜸했으나 그는 여전히 자신의 용맹함만을 믿고 "매복이 있다 한들 내가 그 놈들을 무서워할 것 같은가?"라며 샛길로 행군할 것을 고집했다. 결국 매복 군을 만나게 되어 하룻밤은 잘 싸워 넘겼으나 끝내 사로잡혀 죽고 말았다.
우리나라 기업 중에도 소기업으로 시작해 중간 규모까지는 잘 번창하나 그쯤에서 오만불손해져 파산하는 경우를 간혹 볼 수 있다. 자금력이나 경영 수완을 과신해 무리한 사업 확장을 하다 부도를 내고는 결국 파산하는 것이다. 사업이 잘될 때에 오만해지지 않게 제어하려면 평소 수양을 통해 겸손이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
예측 능력과 직감력위, 촉, 오 삼국 가운데 오나라와 촉나라의 관계를 보면 두 나라 사이에는, 적벽대전과 같은 큰 전쟁은 없었지만 암투가 계속되었다. 형주를 차지하려고 모든 지혜와 책략을 동원해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주유는 공명을 죽이려 하고 유비를 위기에 몰아넣으려는 시도를 했다. 오나라의 손권이 유비를 살해하려다 실패한 경우를 보자. 손권은 자신의 여동생을 유비에게 시집보낸다는 구실로 그를 오나라로 불러들여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혼사 제의를 받아들인 유비는 조자룡과 500명의 병사를 대동하고 길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챈 공명은 따로 조자룡을 불러내어 그에게 비단 주머니 세 개를 건네고는 위기의 순간이 오면 차례로 하나씩 풀어보라고 주문했다.
오나라에 도착한 조자룡은 공명이 준 주머니 하나를 펼쳐보고, 거기에 적힌 계책에 따라 행동을 취했다. 먼저 병사 500명에게 붉은 띠와 알록달록한 깃발을 쥐어주고 혼례에 필요한 물품을 사게 해 유비가 오나라에 장가온 것을 널리 소문냈다. 또 유비는 위장 결혼 사실을 잘 모르는 교국로를 찾아가 뵙고 그에게 오나라에서 지위가 있고 영향력이 큰 오국태를 설득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만약 유비가 오나라에서 죽으면 신부는 친정집에서 평생 청상과부로 수절할 수밖에 없으니 결혼 후 안전하게 촉나라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위장 결혼 계획이 실패하자 손권 측에서는 회유 정책을 쓰기 시작했다. 달콤한 신혼 생활에 빠져 싸움할 의사를 없애게 하려는 것이었다. 곧 유비는 안락한 생활에 빠져들어 형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조자룡은 공명이 준 두 번째 주머니를 열어 계책을 따랐다. 조조가 적벽대전의 앙갚음을 한다는 거짓을 유비에게 고한 것이다. 이에 유비는 새로 맞은 손부인을 데리고 몰래 오나라를 빠져나왔다. 유비가 도망친 사실을 안 오나라에서는 정봉, 주태 등이 병마로 추격해 완전히 포위했다. 이때 손부인이 오나라의 장군들을 설복시키고 유비를 위험에서 구출했다. 한편 매복하고 있던 관운장은 오나라 군사를 크게 격파했다. 이것은 모두 공명이 준 세 번째 주머니에서 나온 책략에 따른 것이었다.
이처럼 오나라의 위장 결혼 작전에 맞서 공명의 선견지명이 든 주머니 세 개의 책략인 금냥묘계로 대처하는 흥미진진한 얘기는, 선견지명이 있는 지휘관의 예측 능력이 사태를 아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시킬 수 있음을 알게 해준다.
Chapter 04 인간 경영의 지혜와 활기
인재를 고무시키는 요령과 기세소요진에서 장료가 위세를 떨치자 조조는 이를 등에 업고 40만 대군을 일으켜 손권의 병사가 주둔하고 있는 유수구로 쳐들어왔다. 손권은 즉각 문무백관을 불러놓고 상의를 했다. 장소가 먼저 입을 열었다. "조조 병사가 먼 길을 걸어왔으니 우리 측에서 먼저 그들의 기세를 꺾어야 하옵니다." 이 말을 받아 손권이 큰 소리로 다그쳤다. "누가 먼저 적을 쳐서 그들의 기세를 꺾을 용기가 있느냐?" "삼천 병마를 거느리고 제가 나서겠습니다." 능통이 삼천의 병사를 이끌어 장료와의 싸움을 평정하고 병영으로 돌아오자 감녕이 대단한 결의를 보이며 나섰다. '오늘밤에는 제가 조조 병영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겠습니다. 기마병 백 명만 주십시오. 사람 하나, 말 한 필이라도 잃고 오면 저를 문책해 주십시오. 이에 감동한 손권은 감녕에게 잘 훈련된 기마병 백 명을 보내주었다. 이 황당무계한 작전에 차출된 백 명의 기마병은 어안이 벙벙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를 본 감녕은 큰 칼을 빼들고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쳤다. "내가 장수로서 목숨을 아끼지 않거늘 너희들은 진정 목숨이 아깝단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