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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추 스토리

로렌 골드스타인 크로우, 사그라 마세이라 데 로젠 지음 | 미래의창
지미추 스토리

로렌 골드스타인 크로우, 사그라 마세이라 데 로젠 지음

미래의창 / 2010년 2월 / 376쪽 / 14,000원



구두 명인의 탄생


1969년 말레이시아 페낭에 사는 한 소년은 일생을 두고 잊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해낸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구두 한 켤레를 혼자서 만들어낸 것이다. 1973년, 10대였던 지미는 런던의 친척집으로 보내진다. 런던에서 친척들을 만난 자리에서 지미는 자신이 구두를 정말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그 친척들은 제화 장인을 양성하는 것으로 유명한 레더 트레이드 스쿨이라는 학교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학교는 오늘날 코드웨이너스 칼리지로 불리고 있다. 1974년 우등으로 학교를 졸업한 지미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페낭으로 돌아간다. 그러다가 몇 년 후 코드웨이너스에 다시 등록한다. 그리고 지미는 1983년 두 번째로 코드웨이너스 코스를 끝냈다. 그리고 런던 동쪽 끝에 위치한 헤크니라는 동네의 킹스랜드 로드의 호스피탈 건물에 아주 초라한 구두 가게를 열었다. 그때 코드웨이너스 졸업생인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스미스도 지미 구두점 바로 옆에 구두점을 차렸다.

구두를 하나의 패션이라고 생각하는 신세대 코드웨이너스 졸업생들에게는 구세대 졸업생들에게 없는 또 다른 특징이 있었다. 그것은 이들이 보그와 같은 패션잡지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친하게 지내며 패션에 관한 소문과 정보를 함께 공유한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보그지에 호스피탈 건물에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구두를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내는 구두 전문가가 있다는 소문이 들어갈 수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잡지에 실릴 구두를 만들어내느라 매일 전쟁을 벌이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보그 에디터에게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은 없었다. 지미추의 존재를 알게 된 보그는 은장식 부츠가 필요한 경우, 마놀로(제화계의 전설) 전시장에 가서 금장식이 된 부츠를 가져와서 지미추에게 금장식을 은장식으로 완전히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지미가 보그의 부탁을 허락한 이유는 그렇게 완전히 재창조된 부츠는 마놀로 부츠가 아닌 지미추 부츠라고 소개하겠다고 잡지사 측이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잡지에 실린 멋진 부츠를 본 독자들은 지미추가 누구길래 이렇게 예쁜 구두를 만들 수 있는지 크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지미추의 좁은 공방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한두 명씩 늘어갔다.

자기가 만든 구두가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스미스나 아누스카 헴펠의 손에서 대히트를 치며 팔려나가는 것을 보며, 지미는 자신도 더 큰 성과를 올리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리하여 1987년 지미는 런던 디자인 쇼에 참여하여 공식적으로 패션계에 데뷔를 시작하는데 그 쇼 이후, 일본, 이탈리아, 독일 등지에서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1988년 지미는 오랫동안 함께 작업을 해왔던 동료인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스미스와 결별을 하게 되었다. 드디어 일반 언론들도 지미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고, 지미는 사방에서 상을 받게 된다. 그러던 중 지미는 그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게 될 전화를 한 통 받게 된다. 전화를 건 다이애나 왕세자빈은 지미에게 궁으로 직접 와 줄 것을 정중하게 요청한다.

왕세자빈과 지미는 금방 친해졌다. 다이애나 비를 위해 구두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지미의 자부심은 크게 올라갔다. 그리하여 지나 슈즈의 쿠르다쉬 형제들이 지미를 찾아와 함께 기성화 브랜드를 출시해보자는 제안을 하자 이를 받아들인다. 1992년 지미추 기성화는 지미추 매장이 아닌 지나 매장에서 첫 선을 보이게 된다. 지나 매장 오프닝 행사에는 다이애나 비를 비롯하여 지미의 거물급 고객들이 대거 참석하였다. 그러나 지나와 지미의 협력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지나와의 실험적 관계가 끝나자 지미는 자신의 사업을 본격적으로 밀어줄 파트너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애타게 파트너를 찾아 지미가 선택한 사람은 놀랍게도 보그지를 통해 알게 된 아름다운 젊은 여성과 그 여성의 아버지였다.

오르기 힘든 하이힐의 세계

보그를 그만두기 오래 전부터 타마라는 지미추라는 이름으로 럭셔리 구두뿐만 아니라 일반 기성화를 출시한다면 성공할 것 같은 확신이 있었다. 타마라는 가족들에게 말했다. "고급 구두를 신는 멋쟁이 여자들한테 지미추는 이미 유명한 사람이라구요." "그럼 체계적으로 잘 한 번 구상을 해봐." 톰은 딸에게 말했다. 타마라는 지미추를 집요하게 설득하고 나섰지만 지미추는 생각처럼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타마라가 끊임없이 매달리자 지친 지미는 그렇다면 일단은 자신의 구두점으로 와서 구두 일을 직접 배워본 후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리하여 1995년 타마라는 온통 아교 투성이의 지저분한 헤크니의 지미추 구두점에서 그 해를 마감하였다. 오랫동안 망설이던 지미도 드디어 타마라의 사업 제안에 호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타마라는 자신의 집에 지미를 초대하여 부모님께 소개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9개월 후인 1996년 5월 드디어 톰 이어디 가족과 지미추는 함께 구두 사업을 하기로 합의한다. 그리하여 타마라의 가족은 이 구두 회사 최초의 외부 주주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는 순식간에 긴장이 유발되었다. 이 긴장상태는 새로운 컬렉션에 필요한 구두 디자인을 짧은 기간 안에 해줄 것을 지미에게서 요청하면서 벌어진 것이었다. 타마라와 앤(톰의 부인)은 매일 지미의 공방으로 찾아가 구두 디자인을 하라고 지미에게 압력을 넣었다. 이처럼 지미와 이어디 가족들 사이에 고조되는 갈등의 해결사로 나선 사람은 바로 지미의 처조카인 산드라 초이였다. 타마라가 자신이 원하는 구두 스타일을 설명하면 산드라는 그에 따라 스케치를 했다. 1996년말 경에 이르자 지미는 이어디 가족과의 합의를 깨고 기성화 디자인 일 자체를 거부하였다. 그러자 그 해 12월 톰은 산드라에게 공식적으로 지미추 회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어달라고 부탁하였다. 12월 초 결국 산드라는 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지미는 산드라를 집에서 쫓아냈다. 지미의 집에서 쫓겨나 갈 곳이 없었던 산드라는 타마라의 집으로 옮겨온다. 덕분에 산드라는 그동안 참고 견디었던 지미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오랫동안 산드라는 지미와 아예 연락을 끊고 지내게 된다.

산드라와 타마라가 제품 디자인 및 관리에 책임을 다하는 동안 톰은 자신의 전문 분야인 부동산 일을 책임졌다. 톰의 목표는 미국에 지미추를 오픈하는 것이었다. 미국 내 회사 설립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그러나 일을 진행하면서 톰은 지미에게는 전혀 상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미는 이사회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지미는 그 안이 통과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지미추는 맨해튼에 직영매장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1998년 가을,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직영 부티크를 동시에 오픈하기로 결정한다. 지미추 미국 사업체 일은 모두 톰이 알아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에서 자유로웠던 타마라는 런던 사교계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니며 사교계 여왕 노릇을 계속하고 있었다. 과거와 달리 술과 마약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는 언제나 최고로 신나는 파티를 즐겼다. 사실 여러 파티에 분주히 돌아다니면서 런던의 부유층 친구들에게 지미추 구두를 알리는 것이 타마라에게는 또 다른 임무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한 미국 남성이 타마라의 심장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사실 오늘날 지미추가 그렇게 뜬 데에는 화려한 생활을 즐기는 로스앤젤레스 고객들의 공이 컸다. 그 해 여름 지미추 브랜드 구두는 최고로 큰 규모의 패션쇼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리고 1998년 7월 5일 HBO에서 제작하는 드라마 〈섹스앤더시티〉를 통해 지미추 구두가 드라마에 선을 보이게 되었다. 드라마 〈섹스앤더시티〉가 지미추를 비롯한 수많은 패션 브랜드에 미친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특히 신생 브랜드 지미추가 세계적인 브랜드로 급상승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드라마에서 지미추는 구치, 프라다, 마놀로 블라닉과 동급의 브랜드로 언급되는 데, 그 때문에 지미추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본 여성들도 지미추가 최고급 럭셔리 브랜드와 같은 급의 브랜드라고 인식을 하게 되었다. 드라마를 통해 지미추 브랜드가 크게 알려지게 되자 그 효과를 최대한 누리기 위해서 톰과 타마라는 미국 지미추 부티크 오픈을 서둘렀다.

직영매장 오픈 파티를 성공리에 개최한 매릴린(지미추 미국 매장 론칭 행사의 PR 담당)과 타마라는 파티에서 얻은 관심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다음 3월에 있을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1999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있기 일주일 전, 산드라와 타마라는 60켤레의 구두를 가지고 로스앤젤레스로 날아갔다. 이들이 가져간 지미추 구두들은 스타일은 각양각색이었으나 색깔은 단 하나 하얀색뿐이었다. 레르미타쥬 호텔에 자리 잡은 산드라와 타마라는 3월 21일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겨냥하여 총 공격을 시작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레드 카펫에서 주목받는 것은 늘 드레스 디자이너 이름들뿐이었다. 매릴린과 타마라는 구두도 그와 똑같은 관심을 받게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매릴린은 레르미타쥬 호텔 방으로 많은 여배우들과 스타일리스트들을 데려왔다.

타마라와 산드라는 여배우들에게 구두를 고르게 한 후, 시상식 바로 전날 밤까지 배우들이 시상식에서 입을 드레스 색깔에 맞추어 염색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것은 중소기업으로서는 파격적인 시도이고 투자였다. 1998년 말, 타마라는 호주의 여배우 케이트 블란쳇을 어느 파티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타마라는 케이트에게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지미추 구두를 신어달라는 부탁을 하는데, PR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다이아몬드가 들어간 신발을 만들어 신기기로 한다. 그리하여 40캐럿의 다이아몬드 발찌가 지미추 구두에 부착될 예정이라는 소식이 사방에 퍼져 나가는데, 뉴욕타임스에서부터 중국의 신화 통신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언론들에 이 다이아몬드 구두가 일제히 등장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언론들은 이 구두 한 켤레 가격이 11만 달러라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타마라와 매릴린은 여배우, 지나 데이비스와 처음으로 수상 후보에 오른 레이첼 그리피스에게도 지미추 구두를 신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그런데 시상식 전에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하였다. 가지고 온 구두가 모두 주인을 찾아가 안심하고 있었는데(킴 베이싱어, 제니퍼 로페즈, 미니 드라이버 등의 여배우들이 지미추 구두를 신기로 했다), 시상식 바로 전날 밤, 케이트 측에서 매릴린에게 전화를 해서는 다이아몬드 발찌가 부착된 지미추 구두가 너무 작아서 케이트가 신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언론에서 보도되었던 그 다이아몬드 구두는 시상식장에 결국 가지 못하는 운명이 되고 만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미추와 크레그 드레이크(발찌를 만든 보석전문가) 모두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즉, 보그 커버를 비롯한 수천 페이지의 신문 잡지에 무료 광고를 얻었다는 사실이었다.

타마라는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우리는 하루 24시간 내내 잠도 못자고 일했다. 새벽 4시에도 여배우 쪽에서 전화가 왔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드레스를 바꿔 입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구두도 바꿔 신어야 한다고 새 구두를 요청했다. 어떤 배우는 큰 소리 치며 요구를 하고, 또 어떤 배우는 울면서 호소했다." 그렇게 전쟁을 치른 후에 확인해보니 그 해에는 힐러리 스웽크, 우마 서먼, 캐서린 키너, 셀마 헤이액, 사만다 모튼, 케이트 블란쳇, 줄리안 무어 등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무려 50명이 넘는 여배우들에게 지미추 구두를 신길 수 있었다. 효과는 극대화하고 투자비용은 최소화하기 위하여 밀레니엄 기념 아카데미 시상식을 겨냥하여 특별 디자인된 지미추 구두 디자인은 그 다음 가을 컬렉션에서 반영되었다. 그리하여 몇 달 후 여배우들이 시상식에서 신은 구두와 동일한 구두들이 일반 소비자들에게 판매되었는데, 구두 가격은 600~900달러 선이었다. 그 다음 해, 부시 대통령 취임식에서 대통령의 쌍둥이 딸들도 지미추 구두를 신었다. 그러나 정치인의 딸은, 아무리 대통령의 딸이라고 해도 브랜드 파급효과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역시 파급효과를 유발하는 사람들은 여배우들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산드라와 타마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동원하여 아카데미 시상식장에 등장하는 여배우들에게 지미추 구두를 신기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지미추, '지미'와 결별하다

2001년 1월 새해가 밝자 타마라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런던의 최고 연예신문들 중 하나인 이브닝 스탠다드와 대대적인 인터뷰를 한 것이었다. 타마라는 어떻게 하여 유명 여배우들에게 지미추 구두를 신기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어떤 회사도 우리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루어낸 것과 같은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안젤리나 졸리, 새디 프로스트 등 수많은 여배우들이 우리 구두를 신었다. 그동안 나는 열심히 뛰었다. 앞으로도 더 큰 야심을 가지고 열심히 뛸 것이다." 사업 세계에서는 타마라가 그처럼 자신감을 보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타마라가 가정에서는 매튜(남편) 때문에 얼마나 큰 고통을 받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한편 톰은 지미와 갈등 없이 지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드디어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미가 자신의 지분을 팔고 나가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어서 이들 사이의 갈등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외부 투자가를 끌어들여 회사를 인수하도록 만들거나 적어도 지미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만이라도 인수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톰은 생각했다. 그리하여 톰은 뉴욕 매릴린치에 지미추 인수자를 알아봐달라고 요청한다. 타마라도 그 계획에 찬성했다. 그런데 톰이 이러한 계획을 추진하는 사이 지미도 이어디 가족의 지분을 인수할 사람을 찾아 이어디 가족을 지미추에서 쫓아내버릴 궁리를 한다. 서로를 몰아내기 위한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지미추의 새 주인 찾기

로버트는 우연히 런던의 명품 백화점으로 소문난 하비 니콜스 백화점 진열장에서 자신의 미래를 발견하게 된다. 그가 백화점에서 발견한 것은 바로 섹시하게 생긴 스틸레토 구두 한 켤레로 구두 절반이 거의 보석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 구두에는 '지미추'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다. 로버트는 그 구두가 어디서 온 것인지 조사를 하기 시작한다. '그 오너들이 회사를 매각할 생각이 있을까?' 그 질문에 로버트는 큰 관심을 가졌다. 2001년 4월 로버트는 타마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자신이 소냐 리키엘, 세루티, 라크루와, 페레 등에서 일했으며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미추 사업이 한 단계 더 높이 비상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타마라는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혹시 매릴린치에서 보낸 사람인가요?" 사실 당시, 톰 이어디는 투자은행인 매릴린치가 미국에서 지미추 인수업체를 찾아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타마라와 전화 통화를 마치자마자 로버트는 타마라의 집으로 달려갔다. 바로 타마라와 톰을 만난 로버트는 지미추 상황에 대해서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지미추가 전문 경영인 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도 지미추 인수를 꺼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로버트는 지미추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회사 내부 혼란이 크면 클수록 로버트와 같은 전문 경영인이 치고 들어 갈 자리가 컸기 때문이다. 로버트는 친구인 에티구위에게 전화를 건다. 당시에 지미추 인수를 위하여 로버트가 추진해야 할 거래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지미와 이어디 가족으로부터 지분을 인수하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피닉스(금융자문 그룹)와 함께 공동 투자회사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그는 피닉스가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일을 도와주는 수준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는 새로운 투자회사를 설립하여 지미추와 같은 영국 브랜드들에 투자하되, 자신도 파트너로 그 투자회사 경영에 참여하기를 원했다. 피닉스측이 생각보다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로버트는 친구 에티구위에게 중간에서 피닉스와의 협상을 도와줄 누군가를 찾아달라고 부탁을 한다.

로버트의 계획대로 로버트는 피닉스와 기업 인수 합병 전문 투자펀드 이퀴녹스를 설립하게 되고, 2001년 9월 11일 피닉스는 이퀴녹스의 지미추 인수 계획을 승인한다. 그런데 회의실을 나서는 순간, 뉴욕 무역센터 빌딩의 테러 소식이 들려왔다. 그 다음 날 피닉스측에서 연락이 왔다. 물론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지미추 인수계획에 가장 열성을 가지고 참여했었던 데이비드 번스는 로버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지미추 인수자금은 은행에 있는데, 적어도 앞으로 한 달 동안은 그 돈을 움직일 수 없을 것 같다." 그로부터 2주 정도가 지난 후 데이비드 번스는 9 11 사태 이후 지미추 매출이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하였다. 그런데 매출을 확인한 관계자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미국의 모든 지미추 매장의 매출이 그 전년도 동기간에 비하여 30~40%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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