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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은 운명이다

로버트 A. 버겔먼 지음 | 스마트비즈니스
전략은 운명이다

로버트 A. 버겔먼 지음

스마트비즈니스 / 2008년 11월 / 584쪽 / 30,000원



제1부 1세대 - 인텔, 메모리 기업



탄생 및 변신


인텔의 역사는 3세대로 구분할 수 있다. 제1세대는 1968년의 창업시기부터 1985년까지의 '메모리 기업' 시대로, 고든 무어가 이끌었던 시기를 말한다. 제2세대는 1985년부터 1998년까지의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업'으로, 앤디 그로브가 이끌었던 시기이다. 그리고 제3세대는 1998년부터 시작된 '인터넷 기반구축 기업'으로 크레이그 배럿이 이끌고 있다. 인텔이 반도체 메모리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그 분야에 대한 창업자들의 기술적 역량과 창의성과 관계된다. 인텔을 창업한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는 1960년대에 카메라기기 생산회사의 실리콘밸리 자회사인 페어차일드에서 근무했다. 당시 고든 무어는 저명한 물리화학자로, MOS 기술을 활용해 반도체소자를 대량생산할 수 있음을 간파했다. 하지만 페어차일드 본사 경영진은 그 기술의 상용화를 지원하려 하지 않았다. 이 무렵 로버트 노이스는 CEO 선임에서 몇 차례 탈락하면서 거대한 조직경영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는 무어에게 새로운 반도체 메모리 기술을 개발하자고 설득했고, 여기에 연구소의 부소장 앤디 그로브가 합류함으로써 인텔의 역사가들이 말하는 삼두체제가 시작되었다.

인텔의 창업자들은 실리콘을 적용한 반도체의 기술 변화로 다양한 사업 기회를 창출했다. 노이스의 '집적회로' 발명은 1969년 64비트의 저장용량을 지닌 바이폴러 SRAM(에스 램)칩을 탄생시켰고, 그것의 매출 급증은 MOS 기술개발에 투자할 여력을 제공했다. 그리하여 1970년 인텔은 세계 최초로 1킬로바이트 DRAM(디램) 1103을 출시했고, 이를 바탕으로 EPROM(삭제 및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ROM) 및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성장과 더불어 내외부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내부적으로는 공장을 추가적으로 건설하면서 공정기술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생산수율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고, 외부적으로는 경쟁자들이 공정기술을 따라잡는 경쟁 위협에 처하게 된 것이다. 1984년, DRAM의 시장점유율은 3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했다. DRAM 기술의 범용화는 각 제품 간의 사내 경쟁도 야기시켰다. DRAM 및 EPROM 그리고 마이크로프로세서의 3개 그룹 사이에 자원 배분을 둘러싸고 경쟁이 격화된 것이다.

인텔은 명확한 자원 배분 규칙을 채택하고 있었다. 각 제품이 필요로 하는 공정단계의 수를 바탕으로 제품별 제조 활동 총량을 산정하여 비용을 배분했다. 그런데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사업성이 증대되면서 회로 설계(circuit design)를 이해하는 능력이 칩의 집적도를 증대시키는 능력에 버금갈 만큼 중요하게 되었다. 게다가 DRAM 시장점유율이 대폭 하락하자 자원 배분 과정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DRAM 기술에 대한 투자는 계속 R&S자금의 1/3을 차지했다. 그리하여 1985년 초 경쟁사보다 2년 앞서 1메가 DRAM이 출시되었지만 중간 경영자들은 DRAM 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DRAM 사업을 지속하려면 과감한 자본투자가 필요한 반면 이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1984년 말, COO(최고운영책임자) 앤디 그로브는 DRAM 사업에 대해 과감한 퇴출 실행에 착수했다. DRAM 시장을 10여 개의 일본회사 및 미국의 경쟁사에게 넘겨주기로 결정하고, DRAM 기술 개발 사이트를 마이크로프로세서 팀과 통합했다. 하지만 DRAM은 인텔의 기술동인이었기 때문에 쉽게 퇴출하기 힘들었다. DRAM의 생산설비를 폐쇄하기까지는 거의 1년이 소요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7,200명이 감원되었고, 1억 7,300만 달러의 적자가 생겨났다. 적자가 그 정도라면 대부분의 회사는 문을 닫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텔은 잿더미 속에서 다시 일어났다.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업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인텔의 변신이 주목되는 점은 그것이 사전에 구상되지 않은 진화경로였다는 것이다. 즉 인텔의 진화과정은, 전략수립과 더불어 조직의 적응 능력과 관계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염두에 두고 인텔의 변신을 다시 고찰해보기로 하자.

기업 진화를 촉진하는 동적 요인들

인텔의 제1세대의 진화 단계는 <동적 요인 체계>로 설명할 수 있다. 인텔의 동적 요인은 3가지 기술적 역량, 즉 (1) 회로 설계 (2) 공정기술 개발 (3) 생산기술과 관계된다. DRAM의 회로설계는 칩에 여러 층의 마스크를 씌우는 물리적인 공정단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공정기술 개발 활동은 생산기술의 자유도를 제한한다. 즉 과학자들이 설정한 한도 내에서 공정장비를 조정해야 하는 것이다. 인텔은 모든 공정기술 연구를 생산라인 안에서 수행하도록 하여 빠르게 공정기술을 개선하고 경쟁자들을 앞서나갔다. 그리고 DRAM의 기술역량을 바탕으로 계획에 없던 2가지 혁신 제품을 창출했다. 바로 EPROM과 마이크로프로세서였다. EPROM은 MOS 공정기술의 이상 현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명되었다. 그리고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일본의 계산기 제조업체가 의뢰한 칩셋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탄생되었다. 이로써 몇 세대에 걸쳐 축적된 인텔의 회로 설계 기술은 마이크로프로세서 디자인 아키텍처(architecture) 역량을 향상시키는 새로운 보완자산이 되었다.

제1세대의 진화과정에서 인텔의 본원적 전략은 '차별화 및 원가우위'였다. 본원적 전략(generic strategy)이란, 기업의 경쟁 방식을 정하는 전략으로, 기업의 독특한 역량을 반영한다. 집적도를 지속적으로 향상시킨 회로설계 기술은 인텔의 독특한 역량이었다. 이러한 본원적 전략을 특정 제품 및 시장 차원에서 표현하는 것이 구체적 전략(substantive strategy)이다. 즉 인텔이 메모리 시장에서 DRAM사업을 채택한 것을 의미한다. 원칙적으로 본원적 전략 및 구체적 전략은 함께 진화해야 한다. 창립 초기에는 두 전략이 일치했다. 제1세대에서 인텔은 줄곧 첨단 메모리 제품을 개발하여 이를 프리미엄 가격으로 판매했다. 하지만 인텔의 구체적 전략이 마이크로프로세서 제품을 채택하게 되면서 양 전략의 불일치가 나타났다. 전문제품의 기술향상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을 강조하는 사람들과 범용 제품의 제조를 통해 경쟁하길 원하는 사람들 사이의 논쟁이 야기된 것이다. 이러한 불일치는 DRAM뿐만 아니라 EPROM 및 플래시 제품이 범용 제품으로 전락할 때마다 계속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갈등은 부서 간 경쟁력을 배양하기 위한 최고경영진의 의도적인 전략이기도 했다. 인텔은 전통적으로 영점기준예산(zero-based budget) 제도를 적용했다. 모든 예산항목에 대해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매년 제로(0)를 출발점으로 효과나 정책의 우선순위를 엄격히 검토해 예산을 편성했다. 이러한 자원배분 방식은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사업실적 및 사업별 R&D자금 배분액 사이에 괴리를 초래하기도 했지만 1세대에서 '인텔 메모리 기업'의 신화를 연명시켰던 방식이었다.

<시사점> - 전략인식은 기업의 진화 과정에서 조직적응 능력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관해 교훈을 준다. 즉, 기업의 리더는 회사의 독특한 역량의 관점에서 사업들 사이의 연계를 이해해야 하고, 전략적 사업 퇴출을 학습 과정의 일환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텔의 최고경영진은 EPROM이 개발되었을 때 당장 적용할 시장이 없었지만 이 신기술을 지원했다. 그리고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이 확립되기 전에 마이크로프로세서에 관한 권리를 일본 회사로부터 되샀다. 또한 '공개적 토론 및 건설적인 대립', 그리고 '지식의 힘이 직위에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화를 형성했다. 중간경영자들이 DRAM 사업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도 이러한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인텔은 기술역량에 대한 관성이 컸다. 인텔 내부에서 DRAM에 대한 제조용량 배분이 점차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최고경영진은 DRAM 사업에 R&D자금의 1/3을 투자했다. 마찬가지로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을 지원하면서도 개인용 컴퓨터에 대한 막대한 파급효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인텔은 마이크로프로세서 적용분야에 대한 예상 항목 50개 내에도 개인용 컴퓨터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전략 수립의 내부생태학

인텔이 메모리 기업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업으로 전환한 과정은 <유도된 전략 과정 및 자생적 전략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유도된 전략 과정이란, 최고 경영진이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설정한 기업의 유전적 전략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자생적 전략 과정은 대개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시장상황에 대응해서 우발적으로 나오는 돌연변이형 전략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인텔의 제2세대의 변신은 이 두 가지 전략과정이 적용된 결과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다음의 설명을 통해 이해해보자.

<인텔의 유도된 전략과정>- 인텔의 초기 최고경영진은 4가지 요인을 근간으로 하여 기업전략을 설정했다. 4가지 요인은 '독특한 역량, 제품 및 시장 영역, 핵심가치, 기업의 목적'이었다. 인텔의 최고경영진은 보다 작고 집적도가 높은 IC를 만드는 전유기술을 '독특한 역량'으로 삼았다. 그리고 반도체 메모리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제품 및 시장 영역'으로 판단했다. 또한 기술 중시와 규율 있는 사고 및 행동을 '핵심가치'로 삼았다. 공개적인 지적 토론의 장을 조장하고, 각 부서에 기술 지향적 경영자 및 사업 지향적 경영자를 임명하여 공동책임 경영시스템을 제도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익추구를 '기업의 목적'으로 삼았다. 이는 인텔의 재무부서가 두드러진 역할을 해온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가령 CEO에게 보고하는 사람은 반드시 재무담당자를 대동해야 했다. 인텔의 재무담당자는 본부장을 보좌하는 부책임자와 같은 존재다.

<인텔의 자생적 전략과정> -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은 자생적 전략이 내부생태계에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에 관해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일본회사 비지콤이 의뢰한 계산기에 사용될 일련의 칩 설계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1969년 집적회로 설계자로 인텔에 합류한 테드 호프는 설계팀과 함께 4004 중앙처리장치(CPU, 훗날 마이크로프로세서로 불림)와 계산 명령어가 수록된 ROM 그리고 입력 및 출력 버퍼링용의 칩을 개발했다. 그런데 테드 호프는 4004 중앙처리장치를 금전등록기에서 가로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칩 설계에 대한 권리를 재협상해야 한다는 의견을 회사에 제시했다. 그 문제를 둘러싼 토론이 계속되었고, 결국 인텔은 비지콤에게 설계비용을 낮춰주는 대가로 계산기 외의 분야에서 칩 설계를 사용할 권리를 되찾았다. 당시 최고경영진은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잠재력을 알지 못했지만 테드 호프의 예견대로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인텔의 성공을 이끄는 중요한 기술 동인이 되었다.

<시사점>- 인텔의 진화과정을 전략적 맥락에서 보면, 유도된 전략 과정 및 자생적 전략 과정이 결합되어 조직적응 역량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텔의 창업자들은 탁월한 기술력과 엄격한 규율 하에서 메모리 사업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곧 기술의 범용화로 경쟁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기술 동인에 대한 전략적 관성에 의해 DRAM 사업의 실패를 겪었다. 그러나 곧 회로 설계 및 공정기술 역량을 타성적으로 전개하는 등 전략 조정을 단행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인텔의 DRAM 사업의 경쟁력을 회복시켜 주지 못했다. 결국 시장영역을 완전히 바꾸는 전략 재설정을 도모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테드 호프의 자생적 노력에 의해 탄생한 마이크로프로세서로의 전환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전환이 급속도로 이루어졌다면 인텔은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텔은 DRAM-SRAM-EPROM-플래시-마이크로프로세서의 점진적인 전략 수정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여기에는 자원배분을 둘러싼 사내 갈등과 최고경영진의 신중한 판단이 영향을 미쳤다.

제2부 2세대 - 인텔, 마이크로컴퓨터 기업



전략 벡터의 창출 - 유도된 전략적 행동


1987년 고든 무어는 앤디 그로브에게 CEO직을 승계했다. 그로부터 1998년 초반까지 인텔의 매출은 19억 달러에서 251억 달러로 증가하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앤디 그로브 지휘 하의 제2세대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유도된 전략과정의 중핵으로 기능했다.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 초기에 최고경영진은 그 잠재력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앤디 그로브는 DRAM 기술 개발 그룹을 386마이크로프로세서 부문으로 전환 배치했다. 그러면서도 DRAM 기술 개발 그룹이 실험하고 있는 1.0마이크론 기술에 대한 연구를 지원했다. 386마이크로프로세서의 규격을 축소해 보다 많은 기능을 구현하게끔 지원한 것이다. 이렇듯 인텔이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집중할 무렵, IBM이 최초의 PC에 인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탑재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 IBM의 매출 증가는 PC공급업체로서의 인텔의 위상을 강화시켰다. 한편 이때부터 마이크로소프트사와의 인연도 시작되었는데, IBM이 인텔과 더불어 마이크로소프트에 설계를 의뢰하면서 두 회사는 PC설계의 가장 중요한 공급업체로서 관계를 지속해오게 되었다. 두 회사는 때때로 사업권 침해에 대한 이해상충을 겪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를 지속해오고 있는데, 앤디 그로브는 이러한 두 회사의 관계를 '엉덩이가 붙은 샴쌍둥이'로 묘사했다.

인텔은 PC 부품의 공급업체로서 시장을 장악하게 되었지만 1990년대 내내 경쟁의 위협에 직면해야 했다. 인텔은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에 걸쳐 핵심 기술들의 사용권을 널리 라이선싱했는데, 그로 인해 인텔 제품과 호환이 가능하거나 한층 업그레이드된 제품들이 출시된 것이다. 게다가 고성능 그래픽 및 강력한 계산 기능이 추가된 개방형 시스템까지 등장하여 인텔을 위협했다.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는 복잡명령집합컴퓨터(CISC) 설계 철학을 바탕으로 했는데, 경쟁사들의 새로운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축소명령집합컴퓨터(RISC) 설계를 바탕으로 했다. RISC는 제한적인 범주에서는 CISC보다 나은 성능을 제공하고 설계가 간편하고 제조비용도 쌌다. 하지만 인텔의 최고경영진은 RISC를 '갖지 말아야 할 기술'로 단언했다. CISC에 대한 자긍심으로 시장의 흐름을 외면한 것이다. 그런데 레스 콘이라는 젊은 기술자의 자생적 노력에 의해 인텔은 다시 경쟁 위기에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1982년 인텔에 합류한 레스 콘은 몇 차례 최고경영진에게 RISC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하지만 RISC는 기존 사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시장성을 확신시키지 못했다. 콘은 현상에 도전하기보다는 현상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1986년 콘은 RISC를 독립적인 프로세서로 설계했지만, 486의 액세서리로 아주 유용하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몇몇 대형 고객들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여 그들이 고위경영진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보내도록 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RISC개발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64비트 i860칩으로 슈퍼컴퓨터의 설계개념이 탄생했다. 이 칩은 100만개의 트랜지스터를 탑재한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였다. 콘의 자생적 노력은 인텔을 경쟁의 위기에서 구해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다시 경쟁제품이 출시되면서 콘을 비롯한 RISC 기술팀 직원 대부분이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인텔은 RISC 프로그램에 참여한 대부분의 직원을 붙잡았다. 인텔이 인력재배치를 통해 핵심 역량을 유지하는 능력은 전략적 맥락의 중요한 측면이다.

<시사점>- 제2세대에 인텔의 전략 수립 과정은 조직의 상층부, 특히 CEO 앤디 그로브에게 집중되었다. 그는 인텔의 모든 직원을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의 한 방향으로 전념하게 했다. 그것은 신규 사업 진출을 어렵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지만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막대한 성장력을 감안하면 앤디 그로브는 장기호황기에 가장 적합한 리더였다. 그로브는 매사를 철저하게 준비했으며, 뛰어난 분석력을 바탕으로 문제의 핵심을 파헤쳤다. 또한 상층부의 전략이 모든 조직에서 수행될 수 있도록 모든 고위경영자로 하여금 집중적인 경영자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도록 했다. 앤디 그로브는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전략보다는 실행이 낫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는 새로운 전략에 열정을 지니지 못한 고위경영자들을 한직으로 전환 배치했다. 그로브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오래 두고 보지 못했다. 그로 인해 때때로 제1종 오류, 즉 유능한 사람을 거부하는 실수를 범했지만 제2종 오류, 즉 무능한 사람을 수용하는 오류는 거의 저지르지 않았다. 분석가들은 때때로 인텔이 비지콤 계약의 결과로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발명하고, IBM 최초의 PC에서 설계 채택을 받은 것이 행운이라고 지적한다. 2가지 사건은 우발적인 행운이었지만 무작위적이지는 않았다. 비지콤은 인텔이 회로 설계 및 소형화 부문에서 세계 최고로 알려졌기 때문에 인텔을 찾았다. 그리고 IBM이 인텔과 손을 잡게 된 데에는 인텔이 가장 완벽한 제품을 제공하고 이것을 고객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인텔은 내부생태계를 형성한 명료성 및 데이터에 근거한 의사결정, 그리고 즉각적인 실행의 문화가 있었기에 행운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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