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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기업, 36계 전략으로 승부한다

송진구 지음 | 크레듀
위대한 기업, 36계 전략으로 승부한다

송진구 지음

크레듀 / 2007년 2월 / 308쪽 / 12,000원



1장 나의 체질을 먼저 바꿔라 - 환골탈태 경영전략




삼성전자 - 삼성 브랜드로 삼성을 공격하라 : 금선탈각(金蟬脫殼, 매미가 허물을 벗듯 감쪽같이 도망간다는 뜻으로 자신의 한계와 위기를 벗어나는 전략)



항우의 군대는 영음을 겹겹이 포위하고 식량 부족으로 허덕이는 유방을 압박했고,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을 지경에 이르자 유방의 휘하 장수 기신이 "폐하, 신이 거짓으로 항복하는 척하며 초나라 군대를 속일 터이니, 그 틈을 타서 성을 빠져나가십시오"라는 계책을 짜냈다. 이윽고 밤이 되자 기신은 군사를 시켜 큰 소리로 "성안의 식량이 다 떨어져 유방이 항복을 한다"라고 떠들게 했다. 그러자 초나라 군은 만세를 불렀다. 이윽고 성을 포위하고 있던 병사들이 유방이 항복하러 나온다는 동(東)문으로 모여들었다. 항우도 동문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끌려나온 유방의 얼굴을 살피던 항우는 크게 놀랐다. 유방의 복장을 하고 유방의 마차에 앉아 있는 이는 기신이었던 것이다. 유방은 이미 혼란한 틈을 타 서(西)문으로 도망친 뒤였다. 유방은 매미가 허물을 벗는 금선탈각 전략으로 무사히 탈출했던 것이다.

오늘날 삼성전자 신화를 만든 주요 요인 중 첫째는 스피드 경영이고, 둘째는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세계 핸드폰 시장의 출시 룰을 깨기 전까지는 세계 메이저 기업마다 일정한 룰에 의해 신제품 출시가 이루어져왔다. 예를 들어 삼성이 신형 핸드폰을 1월에 출시하면, 노키아나 모토로라가 삼성 핸드폰을 연구하여 6월에 출시하고, 다시 삼성이 12월에 신제품을 출시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삼성이 1월에 신제품을 출시해 노키아나 모토로라가 6월에 출시할 목적으로 연구를 하면, 삼성은 다시 3월에 신제품을 출시했다. 그러면 노키아나 모토로라는 기존의 연구를 전면 수정해 다시 제품을 개발해야만 했다. 즉 삼성은 매미가 허물을 벗고 감쪽같이 도망가듯 경쟁사가 미처 따라오기 전에 앞으로 한 발 앞서갔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삼성이 스피드 전략을 펼치며 경쟁 대상으로 꼽는 기업은 바로 삼성 자신이라는 점이다.



한편 삼성 계열사의 최고경영자들은 한결같이 '이건희 회장은 오너라기보다 리더'라고 말하는데, 이 회장의 용병술은 '1등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1등주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삼성전자는 휴대폰 사업을 시작한 1989년부터 5년간 모토로라에 형편없이 밀리고(모토로라의 한국 시장 점유율은 70%, 삼성 10% 정도) 있었는데, 특히 불량률이 높은 게 문제였다. 결국 이 회장이 "시중에 나간 제품을 모조리 회수해서 제품을 만든 공장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전부 태워 없애라"라고 지시하여, 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구미 공장에서 애니콜 화형식이 치러졌고, 공장 근로자들은 자신이 만든 제품이 거대한 화염 속에서 잿더미로 변해가는 참담한 모습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삼성전자는 그 후로도 문제가 발생하면 무조건 생산라인을 세웠고, 반드시 문제를 해결한 다음 다시 가동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가 확고하게 정착되고 나서야 삼성전자는 품질 면에서 단연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받을 수 있었다. 삼성의 성공 요인을 정리하면, 첫째는 삼성 스스로와 경쟁하는 시스템을 꼽을 수 있다. 삼성은 '삼성보다 더 빠르게'라는 모토로, 먼저 보고, 먼저 치고, 먼저 점령하는 전략을 통해 시장을 장악하고, 경쟁자보다 6개월에서 1년 앞서 제품을 출시한다. 둘째는 '히트 앤드 런' 전략이다. 경쟁자가 따라오면 가격으로 치고 달아나는 것이다. 셋째는 최고의 대우를 보장하는 분위기 확립이다. 단, 최고의 대우는 최고의 기여자에게 돌아간다는 조건이 있다.



2장 타깃시장을 정확히 파악하라 - 고객맞춤 경영전략



딤채 - 세상에 없는 냉장고를 만들어라 : 조호이산(調虎離山, 호랑이를 유인하여 산을 떠나게 한다는 뜻으로 적을 유리한 곳에서 벗어나게 하여 공격하는 전략)



동주 말년에 위나라의 왕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첫째 아들은 환, 둘째 아들은 진, 셋째 아들은 주우였는데, 특히 막내 주우는 천성이 거칠고 무예에만 관심이 많아서 망나니짓만 골라 했다. 또한 그와 함께 죄 없는 백성을 괴롭히는 짓을 즐기던 이들 중에 석후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위나라 대부 석작의 아들이었다. 아들과 달리 석작은 정직한 사람으로 백성들 모두 그를 매우 공경하였다. 한편 왕이 죽자 왕위를 첫째 아들 환이 계승했는데, 환은 천생이 심약하여 뚜렷한 자기주장이 없는 사람이었다. 석작은 앞으로 환과 주우와의 사이에 큰 변고가 생길 것을 예측하고는 노환을 핑계로 관직을 버린 채 칩거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예상처럼 호시탐탐 왕위 찬탈을 기도하던 주우는 은밀히 연회를 마련하여 환을 초청한 후 살해했다. 그 뒤 주우는 스스로 왕위에 올라 석후를 상대부에 제수했다.

한편 석작은 아들과 주우의 악행에 분노가 솟구쳤지만, 권세를 잡고 있는 그들을 어쩔 수 없어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아들 석후가 찾아와 "백성들이 왕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왕의 위엄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석작은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고 "주(周)의 천자가 가장 믿는 진나라의 환공에게 천자의 승인을 부탁해 왕으로 승인만 받으면 백성이 따를 것이다"라고 말했고, 석후와 주우는 곧바로 진의 환공을 찾아 떠났다.



이에 석작은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편지 한 통을 써서 친교가 매우 깊은 진의 대부 자함에게 보냈다. "위나라는 하늘의 재앙을 받아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귀국이 이들을 잡아 죄를 물음으로써 신하와 자식된 도리를 천하에 널리 밝히신다면, 이는 위나라의 행운이 아니라 천하가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일일 것입니다." 자함은 석작의 편지를 환공에게 보여주었고, 환공은 대신들의 의견을 물은 다음, 천자에게 올릴 추천장을 받으러 온 주우와 석후를 체포하여 감금하였다. 그리고 주우와 그 일당이 떠난 사이 정권을 장악한 석작과 대신들은 논의 끝에 진나라에 사신을 보내 주우와 석후를 그 자리에서 주살하였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시장 자체를 새롭게 창출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 회사들 중의 하나가 바로 김치 냉장고 '딤채(조선시대 사용되던 김치의 옛말)'를 만든 '만도'라고 할 수 있다. 만도는 원래 자동차 부품을 비롯한 산업 생산품을 만들어온 회사인데, 이런 회사가 소비재, 특히 가전제품으로 방향을 바꿀 것을 작심하고 개발에 뛰어든 지 3년 만에 품목을 결정한 것이 바로 냉장고였다. 하지만 냉장고 시장에는 이미 절대강자들이 수두룩했다. 따라서 만도로서는 피 튀기는 기존 냉장고 시장에의 진출을 피하고, 그들이 생각지도 못한 기능의 제품으로 승부수를 걸어야 했다. 즉 호랑이를 산에서 끌어내야 했다. 여기서 만도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기존의 냉장고와 어떻게 차별화시킬 수 있을까? 만도는 기존 냉장고의 불편 사항에 집중해, 마침내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냉장고가 서양의 건조한 음식을 보관하기에 적합하게 설계된 냉장고였기에 국물 음식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에서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불편은 바로 김치였다. 만약 김치 냉장고를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이미 다른 나라는 그들이 선호하는 제품을 보관하는 냉장고(와인 냉장고, 초밥 냉장고 등)를 사용하고 있었고, 게다가 김치 냉장고라는 시장은 이전까지는 전혀 없던 시장이라 경쟁자도 없었다. 또한 김치는 전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음식이기 때문에 잠재적 소비층을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도는 산업용품 생산을 통해 쌓아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김장독의 원리를 현대적 기술에 접목하는 실험을 거듭했다. 그리고 수백 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1만 포기 이상의 김치를 담근 끝에, 기능성 김치 냉장고의 원조인 딤채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1995년 드디어 '딤채'가 개발돼 전격적으로 출시됐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소매 마케팅에 대한 경험이 일천했기에 많은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시행착오 끝에 제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파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만도는 부랴부랴 마케팅 부서를 만들고 전문 인력을 외부에서 긴급 스카우트했다. 마케팅 담당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세상에 없는 제품을 어떻게 시장에 소개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는데, 고심 끝에 '입 소문 마케팅' 전략을 선택했다. 만도는 강남의 주부들과 여성 오피니언 리더들을 대상으로 2,000여 대의 김치 냉장고를 뿌렸다. 3개월간 무료로 사용하고 구매 의사가 있는 사람에게는 50%의 가격으로 매입하든지, 맘에 들지 않으면 반품하면 되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결과 3개월 후 반품이 들어 온 것은 애초에 불량품이었던 13대뿐이었다. 김치 냉장고가 나온 지 11년이 지나고 있지만 지금도 딤채의 아성은 확고하다.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메이저 브랜드도 앞 다퉈 김치 냉장고를 선보이고 있지만 아직도 만도의 아성을 깨지 못하고 있다. 자신들의 힘이 미치지 못했던 곳을 힘없는 약자 만도가 미리 선점하고 있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3장 고정된 발상을 전환하라 - 무한상상 경영전략



롯데제과-자기 전에 씹는 자일리톨 껌을 개발하라 : 공성계(空城計, 성을 비운다는 뜻으로 나의 약점을 일부러 노출시켜 적에게 혼란을 주는 전략)



제갈량이 양평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을 때의 일이다. 제갈량은 대장군 위연에게 주력군을 이끌고 조조의 대군을 공격하게 하였다. 따라서 성에는 병들고 늙은 1만 명의 병사들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위의 사마의가 20만 대군을 이끌고 위연의 군대를 피해 양평을 향해 진군하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되었다. 제갈량은 급히 파발을 보내 주력군을 회군시켰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회군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제갈량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병사들에게 "성곽의 깃발과 북을 모두 거둬라. 그리고 성문을 활짝 열고, 사마의를 영접하는 것처럼 꾸며라!"라고 명령을 내렸다. 마침내 사마의가 군대를 이끌고 성 앞에 당도했을 때였다. 사마의는 성문이 활짝 열려 있고, 매사에 용의주도하고 신출귀몰한 제갈량이 성루에 올라 조용히 거문고를 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마의는 불현듯 의심이 들어 황급히 명령을 내렸다. "성안에 복병이 있는 게 틀림없다. 저것은 제갈량이 우리를 성안으로 끌어들이려는 계략이 분명하다." 사마의는 제갈량의 속임수라고 판단한 나머지 즉시 군사를 돌려 퇴각하였다.



1997년 롯데는 '자일리톨 F'란 이름의 신제품을 출시했었지만, 식품의 효능을 광고하지 못하도록 한 광고규제법 때문에 자일리톨만의 효능을 제대로 전파하지 못해 실패하고 말았다. 또한 300원짜리 껌 시장에 500원짜리 껌을 확실한 차이점 없이 내놓아 시장에서 가격을 수용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롯데제과는 다시 도전했다. 2년 동안 실패 원인을 분석하고, 그 해법을 찾았다. 그리고 2000년 5월 자일리톨껌을 다시 출시했는데, 다음과 같은 전략을 구사했다. 첫째, 과학적인 효용성을 강조했다. 자작나무에 들어 있는 천연 감미료인 자일리톨은 치아의 플러그 축적을 막아주고, 충치의 원인균인 뮤탄스균도 제거함으로써 충치 발생을 억제시킨다고 알려져 있는데, 롯데는 이 점에 착안해 광고 콘셉트로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충치균을 옮길 수도 있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핀란드에서 나온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신생아에게는 충치균이 없는데, 충치균의 80~90%가 엄마로부터 옮겨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일리톨을 계속 씹은 엄마에게서는 감염률이 9.7%밖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놀라운 실험 결과를 텔레비전 광고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둘째, 역발상 마케팅으로 껌의 고유한 기능을 바꿨다. 즉 그때까지 껌은 단순히 입 냄새를 없애는 기능밖에 없었다. 그러나 롯데제과는 자일리톨껌의 충치 예방 기능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즉 껌에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기능(이를 닦은 후에 씹는 껌, 잠자기 전에 씹는 껌 등)을 더한 것이다. 이는 건강을 중시하는 현대 소비자의 욕구를 절묘하게 간파한 전략이었다. 셋째, 치과의사협회의 공인으로 신뢰를 구축했다. 그동안 치과의사들은 껌을 씹으면 충치가 생긴다고 무수히 경고했다. 하지만 롯데제과는 치과의사협회가 충치환자에게 자일리톨껌을 추천하는 광고를 내보냈는데, 이 광고는 시장에서 대단한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한편 다른 제과업체들은 자일리톨 시장이 예상외로 팽창하자 그때서야 다급히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이미 한 발 늦은 뒤였다. 기업은 수없이 많은 위기상황에 처하는데, 이 위기를 극복하는 힘과 저력은 그동안 실패를 극복하면서 체험한 경험에서 비롯된다.



웅진코웨이 - 렌탈 서비스로 고객을 시장으로 끌어내라 : 욕금고종(欲擒故縱, 적을 잡고자 한다면 먼 저 적을 풀어주라는 뜻으로 궁지에 몰린 적을 마음으로 완벽하게 굴복시키는 전략)



촉한시절 건영의 태수 옹개와 맹획이 반란을 일으켰고, 제갈량은 옹개와 맹획을 토벌하러 나섰다. 이에 옹개는 거세게 저항했지만 결국 패했고, 부하들은 옹개의 목을 베어 제갈량에게 항복했다. 맹획은 옹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으나 그 역시 대패해 도망치다가 매복해 있던 제갈량의 군대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제갈량의 포로가 된 맹획에게 물었다. "싸움에서 패했으니 승복하겠느냐?" "너희가 술책을 부려 나를 잡았는데 어찌 마음으로 항복할 수 있겠느냐?" 맹획이 인정하지 않자 제갈량은 맹획과 포로들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모두 풀어주었다. "나를 풀어주면 다시 진격해 올 것이다. 그때 다시 나를 이기면 기꺼이 승복하겠다."



호언장담하며 풀려난 맹획은 다시 흩어졌던 졸개들을 모아 도랑을 깊게 파고 성을 튼튼히 쌓으면서 수비에 들어갔다. 제갈량은 맹획을 요새에서 끌어낼 생각으로 보급로를 차단하고 군량미를 빼앗았다. 그러자 맹획은 휘하 장수를 보내 제갈량을 공격했지만 또 다시 패배하고 말았다. 맹획은 부하들이 제갈량에게 진 은혜를 갚기 위해 일부러 패한 것이라 생각하고 벌을 내렸고, 이에 앙심을 품은 장수가 맹획을 결박해 제갈량에게 화해를 청했다. 제갈량이 잡혀온 맹획에게 다시 물었다. "또 잡혀 왔으니 항복하겠느냐?" "이것은 너의 실력이 아니다. 반역자가 나를 팔아먹은 것뿐이다." 제갈량은 맹획이 인정하지 않자 그를 다시 풀어주었다. "내가 나를 놓아주면 나는 다시 병사를 이끌고 너와 승부를 가릴 것이다. 그때도 이기지 못하면 너의 승리를 인정하겠다."



제갈량과 맹획은 이렇게 싸우고 잡히기를 일곱 번이나 반복했다. 그리고 맹획이 일곱 번째 잡혀 그를 놓아줄 때는 제갈량이 직접 맹획을 만나지 않고 휘하 장수를 보내 "승상께서 당신을 더 이상 보기가 미안하게 생각되어 나를 보내셨다. 술과 안주를 먹고 돌아가 준비가 되면 다시 쳐들어와도 좋다고 말씀하셨다"라고 제갈량의 말을 전하자, 맹획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승상께서 나를 일곱 번 잡고 일곱 번을 놓아주셨다. 지금도 그 은혜에 감사하지 않으면 나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고 살지 못할 것이다." 결국 맹획은 제갈량의 너그러운 마음에 감복하여 진심으로 항복하고 말았다.



웅진코웨이는 1989년 정수기 사업에 참여한 이후, 단 한 번도 업계 1위의 자리를 내놓은 적이 없는 신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데, 웅진의 이런 신화에는 웅진이 처음 시도하고 확립한 독특한 전략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전까지 정수기 판매는 철저한 방문 판매, 즉 판매원들이 가정과 업소를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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