씽크 이노베이션
노나카 이쿠지로 외 지음 | 북스넛
씽크 이노베이션
노나카 이쿠지로, 가쓰미 아키라 지음
북스넛 / 2008년 3월 / 400쪽 / 13,000원
1장 마침내 정상에 선 사람들
세계 최다 판매 스포츠카 마쓰다의 로드스타
2005년 일본 올해의 자동차로 마쓰다의 로드스타가 선정되었다. 마쓰다가 올해의 자동차로 선정된 것은 23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계속된 위기로 미국 포드사에 경영을 위임하고 회복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감격도 각별했다.
로드스타 개발은 20년 전인 1986년에 시작되었다. 당시 상품기획본부는 소형 스포츠카가 전략적으로 맞지 않는다며 협조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포츠카라면 꼭 해보고 싶다"는 몇 사람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예산 지원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잔업을 해야 했다. 프로젝트에 대한 사내 잡음도 많았다. "왜 두 명밖에 못 타지?" "어째서 컨버터블을 개발하는 거야?" "왜 후륜구동이지?" 초대 개발자 히라이는 말한다. "해결책은 대담한 반격이었어요. 저는 설득 대신 '후륜구동, 2인승, 덮개 씌운 컨버터블' 중 어느 하나라도 제외한다면 프로젝트를 백지화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어떤 차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 히라이는 '인마일체(人馬一體)' 컨셉을 제시했다. 차가 운전자의 기분을 감지하는 듯이 달리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 차에서 상식화된 기능을 제거하는 용기가 필요했다. "주저하지 말고 버려야 해요. 욕심을 내면 낼수록 무겁고 비싼 차가 되어 버립니다." 최대 과제는 인마일체라는 감성을 어떻게 이해시키고 설계로 표현해 낼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는 품질관리에 이용되는 피쉬 본 차트(fish born chart)라는 도해법을 응용했다. 인마일체의 주축 감성을 '긴장감, 일체감, 주행감, 상쾌감'이라는 단어로 만들고, 차트를 이용하여 전체 이미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완성 도면을 기초로 만든 시범차에 회사의 기준과 맞지 않는 부분이 나타나자 개발은 정체 상태에 빠지곤 했다. 가령 차고를 135㎜로 했으나 마쓰다의 기준은 150㎜로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히라이는 135㎜를 양보하지 않았다. "기존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면 소형 스포츠카는 만들 수 없어요. 그래서 세계 각지를 시험주행하고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여 증거를 확보한 뒤, 회사의 기준은 무시하기로 했어요." 이렇게 탄생한 로드스타는 주문이 1년 이상 밀릴 정도로 대박을 터뜨려 스포츠카의 엄청난 잠재시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기 좋게 증명했다.
히라이는 "좋은 스포츠카"라는 이상을 철저히 추구한 이노베이터였다. 그가 이상을 추구할 수 있었던 것은 '진, 선, 미'에 대한 명확한 가치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내부에 판단 기준을 확실하게 갖고 있었으므로 집착하는 곳에는 철저히 집착하되 나머지는 잘라버리는, 극단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소형 스포츠카의 개발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진선미의 이상 추구는 하나의 비전이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실현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하다. 히라이는 소형 스포츠카에 대한 사내의 부정론을 정면 돌파하고 필요하면 회사의 기준도 무시하였다. 이상 실현을 위해 때로는 마키아벨리적 지략을 탄력적으로 구사한 것이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그 균형을 교묘하게 운용하는 이상주의적 실용주의야말로 곧 진정한 실현력을 지닌 이노베이터의 모습이다.
2장 이상주의적 실용주의가 낳은 빅히트
30년 연구 끝에 성공한 긴키 대학의 완전양식 흑참치
최근 몇 년 동안 일본에서 일어난 많은 이노베이션 중에서 난이도가 가장 높은 것을 고르라면 2002년 6월 긴키대학 수산연구소가 세계 최초로 성공한 참치 완전양식(참치를 인공 부화시켜 사육)일 것이다. 세계 최초의 쾌거를 달성한 사람은 연구소의 구마이 히데미 소장으로 1970년에 참치 완전양식 연구를 시작했다. 일본 수산청의 참치 양식 연구 프로젝트에 긴키 대학 수산연구소가 참가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양을 헤엄쳐 다니는 참치의 특성(높은 산소요구량, 고정된 아가미 덮개, 오염된 물에 약한 체질) 때문에 초기 연구는 실패를 거듭했다.
4년 연속 요코와(어린 참치)를 기르는 데 실패하자 프로젝트는 종료되었다. 그러나 구마이는 고심 끝에 독자적으로 속행할 것을 결심했다. 1974년 요코와 포획법을 상처가 덜 나게 하는 낚시로 바꿈으로써 드디어 사육에 성공했다. 그리고 살아남은 참치가 5세가 된 1979년 활어조 내에서 알을 낳았다. 세계 최초의 쾌거였다. 다음에는 알을 부화시켜 2대 째의 유어를 사육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으나 다시 벽에 부딪혔다. "처음에는 부화 후 전멸했어요. 1983년 이후에는 11년 동안 단 한 개의 알도 낳지 않았어요." 온갖 방법을 사용하였지만 어째서 산란을 하지 않는 것인지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수온이 원인이었다는 것은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었다.
"상대는 살아 있는 생물이고 인간의 일방적 생각은 통하지 않으니 물고기를 보고 배울 것, 그것이 우리의 일관된 자세였습니다." 11년간의 공백을 깨고 1994년 일곱 살짜리 어른 참치가 8천4백만 개의 알을 낳는 데 성공하였다. 인공부화에도 성공하였다. 뭍의 물탱크에서 기른 1,700마리의 치어를 앞바다의 활어조망으로 옮겼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거의 다 죽어 있었다. 죽은 치어의 X선 사진을 찍어 보자 목 근처의 뼈가 부러져 있었다. 활어조의 그물에 부딪혔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물고기를 보고 배우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이후 매년 활어조망의 크기와 모양을 개량하자 생존한 숫자가 크게 늘어났다. 2002년 6월 인공부화로 태어나고 자라서 부모가 된 참치 20마리가 헤엄쳐 다니던 활어조에서 드디어 5천 개의 산란을 하였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참치의 완전양식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구마이는 그 해 학회상 중에서도 최고 영예인 공적상을 수상하였다.
불가능하다는 참치 완전양식을 긴키대학 수산연구소가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실천이 먼저고 이론은 나중이지요. 머리 좋은 사람이라면 하나의 실험으로 열 개의 이론을 쓰지만, 저희들은 열 개의 실험을 해서 하나의 논문밖에 쓰지 않았어요. 대신 성과면에서는 세계 최초를 연속으로 달성했지요." 실천을 중시하는 마인드는 여러 차례 논리의 벽을 돌파했다. 예를 들어 구마이는 성장이 빠른 참돔을 붉은돔과 교배한 교잡종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참돔과 붉은돔은 생식시기가 달라 교잡이 논리적으로 성립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참돔과 붉은돔 중에 1년 내내 정자를 내는 별난 녀석을 찾아내어 교잡종을 만들어내었다.
"어류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면 참돔과 붉은돔의 교잡은 불가능하다는 고정관념이 생겨나겠죠. 그러나 인간의 지식이란 별것 아닙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하나하나 실천에 의해 쌓아올릴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사고의 겸손함입니다. 물고기로부터 배우는 것이 가능했던 것도 겸허함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죠." 오만함은 사고를 닫아버리지만 겸손함은 사고를 개방한다. 참치의 완전양식에서도 이 겸손함이 긴 연구 기간을 지탱했다고 구마이는 말한다.
3장 대박으로 연결된 무대 생성 능력
라면의 붐을 대대적으로 일으킨 신요코하마 라면박물관
신요코하마 라면박물관(라하쿠)은 전국 각지의 유명 라면브랜드를 한 자리에 모아서 라면 붐에 불을 지핀 것으로 유명하다. 1994년 세계 최초의 식도락 단지로 개장한 이래 15년이 된 지금까지 라면가게 앞에 명물을 찾아 줄지어 선 행렬이 끊이지 않고, 방문객 수도 연간 150만 명으로 개장 당시와 다름없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 성공의 비밀은 어디에 있는가?
"방문객은 그곳에 라면가게가 몰려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지하로 내려가지만, 이 공간을 보고 예상치 못한 놀라움을 느낄 것입니다. 제가 라하쿠의 구상을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1950년대의 온기가 남아 있는 공간을 재현하는 것이었어요. 라면은 나중에 더해진 것입니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여 라하쿠 개관을 이루어 낸 이와오카 요지 관장의 말이다.
계단을 내려가면 지하 1층인데 '나리토바시'라는 역의 개찰구로 되어있다. 눈앞에 열린 공간이 전개되는 지하 2층은 마을 광장이다. 시각은 저녁 무렵, 천장에 그려져 있는 하늘은 황혼에 붉게 물들어 있다. 주택가는 2층 건물로 된 집, 목욕탕, 여관 등이 양쪽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널려진 세탁물, 닭장, 빛바랜 전신주의 광고지 등 치밀하게 재현되어 있다.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는 온갖 종류의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옥상에는 영화 간판이 있는데 모두 1950년대 히트한 영화들이다. 찻집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라디오 뉴스 등 온갖 다양한 소리가 귀에 날아든다. 이토록 훌륭하게 재현된 마을 여기저기에 유명 라면 브랜드점 8개가 들어서 있다.
이와오카는 라하쿠를 만들면서 시대성을 재현하기 위해 철저한 사실감을 추구했다. 가상의 마을 주민대장을 작성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한 채 한 채 주택과 가게를 완성해 나갔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저녁 무렵 황혼을 쳐다보았을 때의 하늘 높이였다. 천장을 높게 하려면 지하를 깊게 파야 한다. 하늘을 3미터 높이는 데 억 단위의 비용이 들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체가 죽어버린다"라는 생각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토록 철저히 한 것은 대학시절 체험과도 관계가 있었다. "럭비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백 명 중 15명만 정규 선수로 뽑혔어요. 정규 선수와 비정규 선수의 능력은 종이 한 장 차이였으나 그 차이로 승부가 갈렸죠.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었던 것은 라면가게 유치였다. '누구나 편안한 느낌을 가질 온기 넘치는 공간'에 유치할 가게는 역사를 지니고 있고 향토색이 풍부하고 특별한 라면 만들기에 공헌한 훌륭한 가게 중의 가게가 아니면 의미가 없었다. 이와오카는 전국을 누비면서 500개가 넘는 가게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후보를 골랐다. 그러나 지역의 명품 가게일수록 주인이 문전박대를 했다. 그럴지라도 월 1회는 꼭 들렀고 틈틈이 편지를 쓰면서 설득에 나섰다. "가게 주인들은 장인 기질이 있고 자기 나름대로의 세계를 가졌죠. 끈기 있게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삿포로 된장라면의 최고 인기 가게인 '스미레'의 경우에는 이와오카가 3년간 50회 이상 방문을 하고 아예 가게를 미리 만들어 둔 끝에 가게 주인의 승낙을 얻은 경우이다. 도쿄라면의 초석이 된 '하루키야'는 12년에 걸친 설득이 열매를 맺어 입점이 실현된 경우이다. 이와오카의 말이다. "기준을 낮추면 고생할 필요가 없죠. 만일 타협한다면 신요코하마의 부흥을 추구하면서 온기 넘치는 공간 만들기를 비롯하여 신념을 관철시킨 프로젝트들이 거기서 끝나버릴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죠."
4장 시장을 석권한 지식의 링크
세계 최초의 물로 굽는 오븐 샤프의 헤르시오
샤프의 워터오븐 <헤르시오>가 2004년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수분으로 굽는다는 데 의구심을 가졌으나 점차 "수분으로 구우니까 기름도 빠지고, 염분도 줄며, 비타민 C도 보존할 수 있겠구나"라고 납득하게 되었고, 중장년층의 큰 호응을 얻으면서 발매 1년 만에 판매 10만대를 돌파하는 획기적인 상품이 되었다.
헤르시오의 핵심기술은 이노우에 다카시 개발실장이 유명한 해산물을 특별한 기술을 이용하여 건어물로 만드는 건조시스템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확인하러 간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하룻밤 말려 불에 구운 복어를 먹은 이노우에는 조리법의 높은 완성도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것이 과열수증기와의 만남이었다. 이노우에의 말을 들어보자. "수요창조형 상품을 만들려면 사고방식이 전혀 다른 기술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 기술이 회사 내부에 없다면 외부로 발견하러 나갈 수밖에 없죠."
기존의 열풍식 오븐은 식품 속의 수분을 열로 빼앗으면서 서서히 가열하지만, 과열수증기는 식품에 수분을 공급하면서 단시간에 온도를 상승시킬 수 있다. 바깥쪽은 바삭바삭하고 안쪽은 촉촉하게 요리되는 것이다. 이노우에는 개발팀을 이끌고 가전제품에의 응용이 가능한지 검증하는 모델 만들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상품화를 담당하는 조리시스템 사업부가 이 기획을 받아들일까 하는 것이 난제였다. 과열수증기 기술은 수십 년에 걸쳐 사내에 축적된 지식노하우와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사내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의 나날이 이어졌다. 매월 사업부와의 회의에서 자료뿐 아니라 실제로 요리를 하여 눈과 혀로 실감하게끔 만들었다. 방대한 식재료를 사들여서 다양한 요리를 실험하고 데이터를 측정해 나갔다. 반년 동안 회의를 반복한 끝에 사업부측에서 드디어 제안을 받아들여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노우에의 말이다. "사업부로서는 큰 결단입니다. 배경에는 회사가 처한 위기감과 절박감이 있었죠. 세계시장에서 전자레인지 1위 자리를 지키고는 있지만 핵심부품이 외제라서 이를 대체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전자레인지를 개발했던 샤프가 40년 만에 "물로 굽는 21세기 꿈의 건강조리기"를 내놓고 세상의 평가를 기다렸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이노우에의 생각이 전파된 듯 각종 부서를 끌어들인 전사적 개발이 열기를 더해갔다. 기술부와 상품기획부는 가정용을 얼마나 작게 만들 수 있는가라는 과제에 계속 도전했다. 조리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데는 엔지니어들이 약 130개나 되는 메뉴를 하나하나마다 수십 번씩 테스트하였다. 디자인 부문은 기존 조리기에는 없는 좌우대칭 외관을 생각해내고, 상식을 깨는 붉은 색을 준비했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관심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광고 담당도 저명한 조리사 학교에서 매스컴 발표를 하고 대학교수에게 출연을 부탁하는 등 지혜를 짜 냈다. 영업부는 전국의 양판점에서 요리 이벤트를 실시했고, 순회 홍보단을 편성하는 등 유례없는 대처방안을 기획했다.이노우에는 회상한다. "샤프에서 각 부문 모두 그토록 열성을 갖고 참여한 상품은 과거에 없었습니다. 관련된 사람들이 공감한 상품을 시장에 내놓았을 때 사용자도 역시 공감합니다. 공감의 연쇄죠. 이거이 헤르시오 개발에서 제가 얻은 최대의 발견이었어요." 마침내 '거실에 아쿠오스(액정TV)라면 부엌에는 헤르시오'를 캐치프레이즈로 하여 헤르시오가 샤프의 최고 상품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많은 사용자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5장 업계를 평정한 감정의 지식
시장을 석권한 경영지원 프로그램, 내추럴시스템즈의 지식서버시스템
많은 기업이 도입한 컴퓨터 시스템에 대해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외친 인물이 있다. 이름은 니시 다카히로, 1996년 일본 최대 정보서비스 기업 NTT데이터에서 기존 개념을 뒤엎는 독자적인 IT 시스템을 개발했다. '지식서버'라고 명명한 이 시스템은 곧바로 주목을 받았으며, 그는 벤처회사 내추럴 시스템즈를 설립했다. 지식서버란 사용자 자신이 업무스타일에 맞추어 시스템을 구축하고 성장시켜가는 시스템이다. 기존 시스템은 처음부터 컴퓨터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고 업무를 그것에 맞추어야 했다. 지식서버는 컴퓨터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시스템 개발의 마인드를 180도 전환한 것이다.
지식서버는 사내에 두 가지 지식이 존재한다는 데서 발상되었다. 경험이나 직관으로 얻어지며 언어나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암묵적 지식과 언어나 문장으로 표현되는 형식적 지식이다. "형식적 지식에는 업무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지식은 결과에 이르는 과정에 포함됩니다. '암묵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