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과장의 사과 한 상자
양세영 지음 | 21세기북스
프롤로그 : 절벽 앞에 선 박과장
이제 곧 박과장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시작될 것이다. 지난 10년간의 회사생활이, 아니 37년간의 짧지 않은 인생이 영화필름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자신이 대체 무엇을 잘못해서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인지 몇 번이나 머릿속을 검색해 봤지만, 시원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 검색을 중지시킨 건 징계위원회 위원장의 낮은 목소리였다. "박범수 과장, 왜 이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 알고 있습니까?" "…네, 알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겐 명백한 증거가 있습니다. 이 증거들도 인정하지 않습니까?" "증거가 사실이긴 합니다. 하지만 특별히 윤리경영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억울합니다." "우리도 지난 10년 동안 박과장이 성실하게 일해 왔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러나 증거가 있는 이상 우리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제발…." 그러자 징계위원들은 몇 마디를 주고받더니 이윽고 위원장이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박과장의 최후 변론이라 생각하고 한번 들어보도록 하죠. 말씀해 보세요." 박과장은 눈을 감고 8개월 전 그날로 거슬러 올라갔다.
1부 반갑지 않은 변화
8개월 전
박과장이 서울에서 차로 4시간이나 떨어진 안주지사로 발령받은 후, 아내는 3년 동안 혼자 딸을 키우면서 일을 해왔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우리 잠시 떨어져 지내자"라고 말했다. 박과장은 고개를 들어 아내를 바라보았다. 박과장은 그제야 눈치 챘다. 아내의 별거 얘기는 진짜 그것을 원하는 게 아니라, 힘들다는 강한 제스처라는 사실을. "당신 힘든 거 잘 알아.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러자 아내는 울음을 터뜨렸다. "당신 이제 그만 서울로 올라오면 안 돼? 더 이상 이렇게는 못살겠어. 나 너무 힘들단 말이야!" "물론 나도 서울로 오고 싶어. 그런데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돼?" "당신은 빽도 없어? 당신 선배들 회사에 많잖아. 부탁 좀 해봐." 그리고 아내는 우리 회사의 해외사업부가 커질 예정이므로, 딸 공주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해외지사로 발령 나도록 손 좀 쓰라고 성화였다. 일단 서울 찍고 해외로 진출하자는 얘기다.
박과장이 다니는 한길기업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기업이다. 게다가 연봉도 높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대기업에 다닌다는 사실과 높은 연봉이 성공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박과장 역시 남자인지라 '크게'성공하고 싶었다. 그날 밤 박과장은'다음 인사이동 때 반드시 서울로 발령받고, 1년 후에는 해외지사로 나가리라! 그리고 언젠가 최고 자리에 오르리라!'라는 굳은 결심을 했다.
지긋지긋한 윤리타령
안주지사의 유일한 신입사원 장새진은 한마디로 요즘 젊은이다. "야 신입! 너 안 힘드냐?" "당연히 힘들죠. 팔팔한 스물여덟 살 남자가 이런 촌구석에 처박혀 있는데, 안 힘들고 안 답답하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닙니까?" "박과장님, 잡담은 그만 하시죠. 회의 시간이 다 됐습니다. 장새진 씨는 부장님 모셔오세요." "아… 네." "강대리, 아직 시간 남았잖습니까?" "장새진 씨가 부장님 모셔올 시간 3분, 자리에 앉아서 회의 준비할 시간 2분은 필요하지 않습니까?" 강직한 대리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꾸했다. 강대리는 박과장과 입사동기인데, 박과장은 강직한만 보면 미간이 찌푸려졌다. 사사건건 원리원칙을 내세우는 강직한이 영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윤부장이 장새진과 함께 들어왔다. "미안, 좀 늦었지? 요즘 과민성 대장증후군 때문에 죽겠네. L사 납품 건은 얘기가 다 됐고. 참, 박과장, 교육 제대로 다 받았나?" "네, 받았는데요. 사이트에 제 출석자료 나와 있잖아요." "출석만 하면 뭐하나? 건성으로 한 티가 많이 나던데." "부장님 좀 봐주세요. 할 일이 태산인데 언제 그거 하나하나 점검하고 있겠습니까? 요새 정말 귀찮아 죽겠어요. 업무보다 윤리경영 때문에 피곤할 때가 더 많다니까요. 기업은 이윤 추구를 우선시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교육받다가 업무에까지 차질 빚겠습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강직한이 끼어든다. "그건 구시대적인 발상입니다. 21세기 현대 사회에서는 '기업의 이익'과 '기업윤리'가 상충할 때 기업윤리를 더 우선해야 됩니다." 입사 20년차인 윤부장 역시 윤리경영이 실시되면서 혼란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하긴, 윤리경영이 추상적이긴 하지. 다 아는 얘기를 늘어놓은 것도 같고, 현실과 달리 괴리감이 느껴질 때도 많으니까 말이야." 강직한이 윤부장의 말을 받았다. "윤리경영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긴 힘들지만 '도덕적 가치 기준에 따라 기업의 구성원들이 책임 있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때 마침 전화벨이 울렸고, 전화를 받으러 갔던 장새진이 복음을 전하러 달려왔다. "부장님, 오늘 점심 약속 없으시죠? K사 오사장이 점심 같이 하자는데요?" "오늘은 몸 컨디션이 안 좋아서 난 빠져야겠는데." 윤부장은 다시 배에 신호가 왔는지 화장실로 뛰어갔다.
우리 사이에 무슨 윤리요
오사장의 K사는 안주지사의 오래된 협력업체 가운데 하나다. 주로 부품을 납품하는데, 제품력도 좋고 회사의 신용도도 높아 한길기업과 오랫동안 인연을 맺고 있다. 특히 오사장의 친화력은 대단해서 누구나 몇 번 만나기만 하면 금세 친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 친화력 때문에 문제가 생긴 적도 있다. 오랜 기간 항상 똑같은 부품을 납품받기 때문에 확인을 하지 않고 물건을 받았다가 하자가 발생해서 완성품에 문제가 생긴 일이 한번 있었다. 그 일 이후 강직한 대리는 K사와의 계약을 재검토하자고 건의했지만, 사무실 직원들의 맹렬한 반대로 무산됐다. 가족이나 다름없는 K사를 어떻게 자르냐는 것이었다. 그때 박과장은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결국 오사장이 초대한 점심식사에는 박과장과 장새진만 참석했다. 오늘 예고된 점심 메뉴는 설렁탕이었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고기상이 차려져 있었다. 만약 이 자리에 강직한 대리가 있었다면, 그는 윤리경영을 운운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것이다. "오사장님 회사도 윤리경영하세요?" "저희같이 작은 회사에서 무슨 윤리경영을요. 근데 젊은 직원들이 어디서 듣고 왔는지 우리 회사도 투명경영을 해야 한다느니, 갑과 을의 관계가 개선돼야 한다느니, 노동법이 어떻다느니 하는 바람에 피곤해 죽겠습니다. 아니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그딴 거 따지고 살았습니까? 윤리니 도덕이니 따지기 전에 일단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닙니까? 참, 새 지사장님은 이번 주에 오시는 건가요?" "새 지사장님요?" "두 분 모르셨어요? 이번 주나 다음 주쯤 새 지사장님이 온다고 하던데요." 박과장은 다시 한 번 자신의 형편없는 정보력에 절망했다.
뜻밖의 손님
외근을 마치고 돌아온 박과장의 책상 위에 메모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본사에서 임원이 내려오심. 역으로 5시까지 마중 바람.' 장새진을 부르려는 순간, 박과장 머리에 '동아줄'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이런 오지에 본사 임원이 올 리가 없다. 그렇다면 새로운 지사장이 온다는 얘기고, 새로운 지사장은 박과장의 성공을 이끌어 줄 동아줄을 의미하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박과장의 마음이 급해졌다. 시계는 벌써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박과장은 회사차 키를 집어 들었다. 차가 신호에 걸리자 박과장은 매무새를 가다듬기 시작한다. 급한 대로 룸미러를 보며 머리를 매만지고 있는데, 뒤에서 경적 소리가 들렸다. 박과장은 서둘러 차를 움직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자전거 한 대가 횡단보도로 뛰어들었다. 박과장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다행히 자전거를 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전거에 탄 사람이 횡단보도에 쓰러져 있었다.
박과장은 크게 놀라 차에서 내렸다. 넘어진 사람은 50대 중반의 남자였다. "괜찮으세요? 일어나실 수 있겠어요?" 다행히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시계를 보니 벌써 5분이나 지체되고 있었다. "아저씨, 많이 다치신 거 같지는 않네요. 제가 좀 바빠서 그런데 이걸로 치료비 하세요." 박과장은 10만 원짜리 수표를 건넸다. "이봐요, 젊은이. 순서가 잘못된 거 같습니다. 일단 사과부터 하는 게 옳지 않나요?" "그렇다면 죄송하게 됐습니다. 근데 지금 제가 너무너무 바쁘거든요. 병원 가서 치료받으시고 문제 있으시면 연락 주십시오." 박과장은 명함을 건네고는 급히 차에 올라탔다. 중년의 남자는 명함을 보며 알 듯 모를 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
서둘러 왔지만 기차역에 도착하니 5시 5분이었다. '너무 늦은 건가?'그때였다. 화장실에서 말쑥한 차림의 남자가 나왔다. 박과장은 한눈에 그를 알아봤다. 그는 본사 김전무였다. "안녕하십니까 전무님. 안주지사 박범수 과장입니다." "반갑습니다. 나 본사 김권호요." 김전무는 이곳에서 사업하고 있는 친구도 만날 겸 휴가차 왔다고 했다. 김전무를 태우고 호텔로 가는 차 안에서 박과장은 자신도 모르게 김전무를 흘끔흘끔 쳐다봤다. "자넨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주로 계약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음, 중요한 일을 하는구만. 박범수 과장이라고 했나? 내 이름 기억해 두지."
다음날, 박과장은 5분 지각을 했다. "죄송합니다. 좀 늦었군요. 대신 제가 점심 살게요." "나도 껴줄 겁니까?" 처음 듣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고개를 돌린 박과장은 깜짝 놀랐다.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어제 박과장 차에 치일 뻔한 자전거를 탄 아저씨였다. "박과장 인사드리세요. 새로 오신 지사장이십니다." 박과장은 너무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박과장, 나한테 뭐 할 말 없나?" 지사장은 업무 보고를 위해 들어온 박과장에게 말했다. "어젠 정말 죄송했습니다. 급한 일이 있는 바람에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급한 일이라….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떤 일인지 물어봐도 될까? 말 못할 일인가?" "아, 아닙니다. 사실은 본사 김전무님 마중 가는 길이었습니다." "쉽게 말 못한 걸 보니까 옳은 행동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군. 자넨 어제 두 가지를 잘못했네. 하나는 근무 시간에 회사차를 이용해서 업무 외적인 일을 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는 걸세. 알아두게, 앞으로 난 기본을 중시하면서 일을 할 테니까 말일세."
새로운 지사장님은 바른생활 공자님
기본을 중시하겠다는 지사장의 말은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지사장은 윤리경영의 기본인 윤리강령, 정확히 말하면 안주지사만의 '윤리강령 실천지침'을 직원들 스스로 만들어보라고 지시했다. 한편 새 지사장이 왔다는 소문이 퍼지자, 첫 날부터 협력업체에서 커다란 화환과 화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박과장은 윤리경영을 강조했던 지사장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그러나 박과장의 예상은 빗나갔다. 들어오는 화환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모두 지사장실로 가져가는 게 아닌가. 하지만 지사장이 본색(?)을 드러낸 건 다음날이었다. 출근하던 박과장은 차에 화환과 화분을 싣고 있는 지사장의 모습을 발견했다. "박과장 마침 잘 왔네. 좀 도와주겠나?" 박과장은 영문도 모르고 지사장의 차에 탔다. 이곳 지리를 잘 모르는 지사장 대신 박과장이 운전석에 앉았다. "박과장, J사가 어딘지 아나? 그곳으로 가지." J사에 도착하자 지사장은 J사가 보낸 화환을 리모델링(?)한 화환을 돌려주었다. 똑같은 화환이었지만 축하인사가 적힌 리본이 달려 있었다. '정도경 지사장님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J사'라고 적힌 리본이 사라지고 대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안주지사 정도경'이라고 적힌 리본이 달려 있었다. 박과장은 오전 시간을 화환과 화분을 보낸 협력업체를 돌아다니는 데 허비해야 했다. 신기한 건 처음엔 모두 당황하며 기분 나빠하던 협력업체 사람들이 지사장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후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지사장의 행동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지사장의 독특한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협력업체 관계자들은 새 지사장 환영회를 준비했다며 지사 식구들을 초대했다. K사의 오사장은 지사장에게 알리면 불편해할 테니 몰래 모시고 오라는 부탁을 했다. 박과장은 오사장의 부탁대로 했다. 그런데 약속 장소인 갈비집에 도착한 지사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환영해 주시니까 몸 둘 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왕 환영회 해주시는 거, 제가 원하는 장소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걸 먹게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지사장의 부탁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결국 삼삼오오 차를 나눠 타고 지사장이 가자는 장소로 향했다. 지사장이 그들을 안내한 곳은 다름 아닌 지사장의 집이었다. 지사장은 장새진에게 뭔가를 부탁하는 것 같더니, 장새진이 지사장의 지갑을 들고 나갔다. 잠시 후 장새진이 삼겹살과 상추, 그리고 소주 몇 병을 사들고 들어왔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이 삼겹살이거든요. 자자 사양 마시고 맘껏 드십시오." 지사장은 손수 고기를 구워주며 손님들을 접대했다. 처음엔 당황해하던 사람들도 분위기에 동화돼 먹고 마시는 사이 지사장의 사택은 시골 잔칫집이 되어버렸다.
뒤바뀐 접대는 새벽 1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이제 지사장 집에 남은 사람은 지사장과 박과장 둘뿐이었다. 박과장은 테이블에 남겨진 음식부터 치우기 시작했다. 박과장이 치우면 지사장이 정리를 했다. 박과장은 지사장이 마지막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오면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잠깐 존다는 게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변화가 얼마나 갈까
"잘 잤나?" 지사장은 온화한 얼굴로 박과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일어났어야 하는 건데…, 근데 지금 뭐하고 계십니까?" "자 이걸 좀 마시게. 머리가 맑아질 걸세." 차를 마시자 갈증이 해소되는 것 같았다. "어떤가?" "술이 깨는 것 같군요. 무슨 찬가요?" "감나무잎차일세. 숙취해소에 도움이 된다고들 하지." 지사장의 말에 공감하며 차를 마시던 박과장은 시간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지사장님, 기본을 지키려면 일어나야겠는데요. 이러다 출근시간 늦겠습니다. 참, 어제 쓰신 경비 영수증 갖고 계시죠? 저 주십시오. 회사 경비로 처리하겠습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쓴 돈을 왜 회사 돈으로 쓰나?" "결국 회사업무의 연장이지 않습니까? 그게 저희 관행인걸요." "자네, 냄비 속의 개구리 효과라고 들어봤나? 냄비에 개구리를 넣고 찬물을 조금씩 넣은 뒤 서서히 끓이면 산 채로 익어버린다고 하네. 조금씩 따뜻해지니까 아직은 견딜 만하다고 생각하고 냄비 속에서 버티다가 결국 죽고 만다는 얘기지. 잘못된 관행인 줄 알면서 고치지 않는 건 미련한 개구리나 다름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걸세." 냄비 속 개구리 효과는 회의 때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다음해 협력업체 선정을 토의하는 자리였다. "이번에 우리 회사의 계약지침이 바뀌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이전에 수의계약으로 거래해 오던 상당수 물품들이 경쟁 입찰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동안 거래해 온 업체일지라도 재평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계약담당인 박과장 생각은 어때요?" 윤부장 질문에 박과장이 대답했다. "새로 바뀐 계약지침에 따르면 문제가 될 업체 몇 군데가 있습니다." 강직한이 기다렸다는 듯 자료를 내밀었다. "전 그 첫 번째 대상이 K사라고 생각합니다." 냄비 속 개구리 효과를 강조하던 지사장은 결국 K사를 입찰 대상자로 분류했다. 아무튼 새 지사장이 부임한 이후 사무실 분위기는 달라져가고 있었다. 회사 공금을 쓰는 일도 조심스러워졌고, 협력업체와 식사하는 일도, 친한 업체의 편의를 봐주는 일도 크게 줄어들었다.
주말에 집에 오자 아내는 "당신 나랑 한 약속 잊었어. 서울로 발령 나도록 손쓴다고 했잖아. 당신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