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위대한 회의

오하시 젠타로 지음 | 에이지21
CHAPTER 1 전망과 좌절, 그리고 곤혹



석유탐사와 엔지니어 시대 /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대학졸업 후 몇 년에 걸쳐 브루나이 왕궁에서 석유탐사 엔지니어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았다. 참고로 회사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우수한 인재를 채용하는데, 전년도 각 나라별 매출비율에 따라 채용인원을 채워나가곤 했다. 그 해 일본에서는 나를 포함하여 2명이 뽑혔는데, 새로 뽑힌 전체 200명의 직원은 16명씩 한 그룹으로 나뉘어, 14주에 걸친 집중 훈련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16명 중 40%는 이 과정에서 스스로 그만두거나 쫓겨나게 된다. 따라서 우리 16명은 서로에게 동료이자 경쟁자였다.



한편 훈련 센터에서의 이론 공부와 실습은 매일 밤늦은 시간까지 계속되었고, 주말에는 그 주에 배운 탐사 도구를 이용해 센터의 훈련용 유전에서 실제로 데이터를 수집한 후, 월요일 아침까지 교관에게 제출해야 했다. 아무튼 7주가 지나고 중간 평가가 시행되었는데 나는 8등을 차지했다. 그동안 남다른 각오로 훈련에 임한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사장이 되면 연봉이 3억 엔이라는 말에 자극받아 죽을 각오로 훈련에 임해왔건만, 16명 가운데 고작 8등을 해서는, 200명 중에서 1등을 하겠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지옥과 같은 훈련 센터 생활도 사장이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목표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한 나에게 그곳에서의 하루하루는 의미 없는 지옥일 따름이었다.



내가 의욕이 없다는 사실을 눈치 챈 것일까? 어느 날 냉정하고 엄한 훈련소장의 호출이 있었다. 그는 냉정한 눈으로 "나에게 최후의 결정을 내려달라 이 말인가?"라고 물었다. 천만의 말씀, 내가 스스로 그만두면 모를까, 타의에 의해서 그만두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지적하신 부분을 바로 개선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한 뒤 훈련소장실에서 나왔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내가 발전기 시동 당번을 맡은 날 아침에 사건이 터졌다. 내가 연료 탱크에 물뿌리개로 연료를 넣다가 그만 물뿌리개 꼭지를 탱크 속으로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순간 아차 싶었으나 때는 늦었다. 물뿌리개 꼭지를 꺼낼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은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사실을 교관에게 보고한다면 어떤 말을 듣게 될까? 아마도, "자신이 저지른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라"는 말만 듣게 될 것이 뻔했다. 그러나 사실을 숨기고 보고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발전기가 멈추기라도 한다면, 즉시 퇴소처분을 받게 될 것이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내 인생 최대의 위기

당시 아버지께서는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실 때마다 당신의 주머니에 있는 모든 동전을 저금통에 넣곤 하셨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저금통에서 동전을 꺼내는 방법을 배웠다. 동전을 넣는 구멍 크기에 맞추어 플라스틱 자를 반쯤 집어넣은 후, 병을 세워서 흔들면 신기하게도 동전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 후로 나는 이 도깨비방망이 덕분에 과자와 어묵을 배불리 사 먹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또다시 도깨비방망이에 손을 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플라스틱 자를 저금통의 동전 주입구에 넣고 동전을 꺼내려는 순간, 그만 자가 손에서 미끄러져 저금통 안으로 떨어져버렸다. 그로부터 몇 분 후, 나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플라스틱 자 구출작전을 시도했지만, 좀처럼 자를 꺼낼 수 없었다.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나는 결국 아버지에게 들키고 말았다.



나는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시기까지 혼자 고민하며 지낸, 지옥과 같은 몇 시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만약 그때와 같은 상황에 다시 놓인다면, 다음 세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를 골라 실행에 옮김으로써 내게 닥친 위기를 극복할 것이다. 첫째, 카드 꺼내기를 포기하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자백함으로써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던다. 둘째, 끝까지 시치미를 떼기 위해서 저금통을 깨버린다. 그러고는 "죄송해요. 저금통을 떨어뜨렸는데 그만 깨져버렸어요"라고 거짓말을 한다. 셋째, 그런 일을 이미 겪어봤음직한 친구에게 한 수 배운다.



이처럼 일의 추이를 예상한 후, 방법을 '선택'하고 결과에 대한 '각오'를 할 수 있다면, 선택한 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그래서 나는 물뿌리개 꼭지 사건을 세르지오에게 고백했다. 연료탱크에 꼭지를 떨어뜨린 경위를 들은 세르지오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본 다음, 이렇게 말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 안에는 꼭지가 하나 더 들어 있어요."



새로운 비즈니스 / 성공의 실마리? / 인터넷 비즈니스의 세계

물뿌리개 꼭지 사건은 처음부터 없었던 일로 생각하고, 나는 나름대로 장밋빛 미래에 대해 생각했는데, 마침내 '만약 여기서 사장이 되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종자돈을 마련해서 내 사업을 해야지'라는 결심을 하고, 입사 2년차에 1,000만 엔 정도의 돈을 마련한 뒤, 새로운 사업을 하기 위해 사표를 제출했다. 그리고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는 밑천이 적게 드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해외 기업에 일본의 특허정보를 영문으로 요약한 보고서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했고, 나는 스파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하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냈지만, 문제는 매달 100만 엔 정도에 달하는 적자였다. 녹녹하지 않은 현실에 괴로워하면서 신주쿠 거리를 배회하던 나는, 바로 눈앞에 있던 프린스 호텔의 바(bar)로 들어가서 평소와 달리 와일드 터키를 병째 주문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결심했다. '좋아! 특별한 연줄은 없지만 실리콘밸리로 영업하러 가겠어.'



나는 실리콘밸리의 지역번호 '408'로 시작하는 전화번호 가운데, 과거 5년 동안의 매출 신장률이 평균 20% 이상인 회사, 또 사장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 수 있는 회사 100곳의 정보를 회사정보를 거래하는 업자로부터 5만 엔을 주고 입수했다. 그리고 현지의 낮 시간대에 맞춰 100명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러자 몇 명의 사장으로부터 "특허정보에는 흥미가 없지만, 당신이 우리 제품을 일본에서 팔아볼 생각은 없습니까?"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 문득 머릿속에 기발한 생각(일본에서 제품을 팔기 위한 세미나를 개최해서 한 명당 350달러의 수강료를 받는다면, 그것으로 실리콘밸리 출장비를 충당할 수 있지 않을까?)이 스쳤다. 나는 당장 현지 호텔에 전화를 걸어 호텔과 세미나실, 프로젝터, 커피 10잔, 도넛 10개를 예약했다.



그런데 내가 미국에 가기 전날까지 세미나 참가 신청자는 예상을 크게 밑도는 2명이 전부였다. 그러나 나는 모질게 각오하고 단 두 명의 참가자만을 위한 세미나를 예정대로 실시하기로 마음먹었다. 세미나 당일 말끔한 양복차림의 백인 한 명과 폴로셔츠를 입은 동양계 사람이 참가했다. 4시간에 걸친 세미나가 끝나자, 동양계 참가자(창업한 지 7년 만에 연매출 700억 엔에 이르는 규모의 회사로 성장시킨 마라보라토리사의 아브라함)는 "일단 우리 컴퓨터를 3대만 가지고 일본에 가서 모두 팔면, 다시 3대를 사요. 이건 정말 황금 알을 낳는 거위라니까요"라고 권했다.



나는 컴퓨터를 파는 일에 관심이 없었지만, 이상하게 거절하지 못하고 그의 말대로 컴퓨터 3대를 구입해 일본으로 돌아왔다.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판매가격을 구입가격의 두 배인 40만 엔으로 책정했고, 세미나 때처럼 각 회사의 팩스번호 목록을 입수하여 1,000군데 정도의 회사에 팩스를 보냈다. 그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3대가 모두 팔려버렸다. 나는 약간 흥분한 상태에서 다음 주문을 하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사정을 이야기하고 컴퓨터 4대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당시는 구입가격의 두 배나 비싼 가격으로 판매를 해도 "왜 이렇게 싼 겁니까?"라는 말을 들을 정도여서 컴퓨터를 구입할 사람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월 1,000만 엔 정도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우연한 계기로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지만, 이 황금시장에 새로운 경쟁자들이 뛰어들면서, 가격적으로는 나와 다른 두 곳 정도가 서로 엎치락뒤치락 경쟁했다. 결국 나는 일본에 있는 회사를 과감하게 정리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다행스럽게도 동해안의 뉴저지에서 반도체 상사를 운영하던 다카이 사장의 도움으로 그의 회사에서 일하기로 결정했는데, 그 회사에서는 반도체를 거래하고, 컴퓨터 부품을 일본에 판매하는 일을 했다.



그럴 즈음 JETRO(일본무역진흥회의) 뉴욕 지국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마에가와라는 사람이 나에게 웹 브라우저를 소개해 주었다. 나는 즉시 근처의 인터넷 통신업자와 접속계약을 하고 인터넷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당시 제2회 '인터넷 월드'가 산노제에서 열릴 예정이었는데, 나는 그 전시회에 꼭 갈 생각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인 예산이 없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여기서 다시 내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래 인터넷 월드의 취재기사를 써서 일본의 잡지사에 팔아 그 원고료로 출장비를 충당하면 되겠군.' 지금 생각해도 멋진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같은 이벤트에 관한 기사를 여러 잡지사에 팔 수 없기 때문에 큰돈은 되지 않았다.



CHAPTER 2 현 상황에서 요구하는 능력이 자신의 능력 밖일 때



앤디 라스킨과의 만남

반도체 시장이 갑자기 얼어붙자, 다카이 사장의 회사는 영업이익을 내지 못하는 나를 더 이상 지원해 주지 못했다. 대신에 사장은 "자네에게 저 서버를 줄 테니 이번 기회에 독립을 해봐"라고 말했다. 나는 고객명단과 서버를 가지고 회사를 떠났고, 실리콘밸리로 본거지를 옮겼다. 내가 실리콘밸리로 옮긴 후에 알게 된 사람이 앤디 라스킨인데, 우리는 동갑내기이고 또 사고방식도 비슷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다.



아무튼 앤디와 나는 매일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사업구상에 몰두했고, 결국 우리는 '마일넷'이라는 작은 소프트를 만들었는데, 이 소프트는 데스크탑 화면에 가로 4cm, 세로 2cm 정도의 윈도우를 표시했고, 그 안에는 소규모의 광고 공간, 광고를 많이 볼수록 올라가는 카운트, '친구에게 추천하기' 버튼, 내가 추천한 친구가 얼마나 많은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나무처럼 생긴 아이콘 등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아무튼 개설 5일째, 우리 사이트가 야후 뉴스에 소개된 후부터 5분마다 회원 수가 늘어갔다. 마찬가지로 포털사이트 엔진인 익사이트(Excite) 내에도 폭발적으로 소문이 확산되어 익사이트의 고위경영진에까지 우리 프로그램이 알려졌다.



꿈에도 그리던 매각계획 / 프로즌마티니와 옥수수 칩

사이트를 개설한 지 3주째, 마침내 익사이트의 부사장으로부터 '이야기가 하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나와 앤디, 그리고 몇 주 전에 입사한 샨티는 즉시 익사이트로 향했다. 회의를 시작하기 전, 익사이트의 부사장 브레드는 이 회의 주제로 '매수, 적대적 합병, 하청' 중에서 하나를 골라달라고 했다. 나는 "매수에 대한 회의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2시간 정도 그들과 협의를 했다. 회의가 끝나자 브레드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럼 얼마면 되겠습니까?" "저희는 우리 회사가 750만 달러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믿습니다." 그로부터 1주일 후, 그들로부터 매수의사와 조건을 전하는 텀 시트(세부조건)라는 것이 도착했다.



하지만 그 후 어느 날을 경계로 익사이트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끊어졌다. 속으로 '애태우기 작전인가?'라고 생각했지만, 그로부터 열흘 정도 지나 '엣홈, 익사이트를 매수'라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도대체 이런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 1999년 4월에 레드록 벤처, 케이난 파트너스, 아이마인즈 등 3개사로부터 150만 달러의 투자를 받게 되었는데, 투자조건은 첫째, 150만 달러의 투자를 하는 대신 주식의 35%를 투자자에게 발행한다. 둘째, CEO는 앤디로 한다. 왜냐하면 젠타로의 영어실력으로는 CEO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내용이었다. 결국 나는 CEO 자리에서 물러나 기술담당 CTO(최고기술경영자)가 되었다.



'가즈바'의 설립 / 이 회사를 어떻게 하고 싶은가

투자를 유치한 다음 가장 먼저 한 일 가운데 하나가 회사명을 바꾸는 것이었다. 회사명 후보 중에서 30개 정도를 추려냈고, 그중 '가즈바'로 정했다. 그리고 우리는 '마일넷'을 모태로 한 새로운 서비스를 개사했는데, 새로운 서비스는 회원이 필요한 회사에, 다른 마케팅 수단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새로운 회원을 모집해 주는 서비스였다. 새로운 서비스를 개시했지만, 가장 중요한 고객인 회원이 좀처럼 모이지 않았다. 몇몇 단골 고객 덕분에 겨우 회사가 유지되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위기상황이야말로 나와 앤디가 나서야 한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마다 어떤 방법으로 타개해 나갈 것인지 밤늦게까지 의견을 나누곤 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회의를 통해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도무지 합당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4시간 만에 지옥 같은 상황이 종료되었지만, 이번에는 3개월이나 지속되었다.



이렇게 막막할 때 투자자 중 한 사람인 랜디 헤이킨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의사를 타진했다. "매니지먼트 지도자 하워드 골드먼 씨를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떨까요?" 그의 말에 따르면, 매니지먼트 지도를 하는 하워드는 여러 회사를 돌아다니면서 도움이 될 만한 기술을 지도했는데, 그의 가르침을 받은 회사들은 쉽게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했다. 솔직히 나는 하워드의 컨설팅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앤디가 한번 만나보자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람에 그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아무튼 하워드가 돌아간 다음, 앤디는 내가 그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 챘는지 주저하면서 말했다. "난 하워드 씨와 일을 해보고 싶은데 어때?"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앤디가 하워드와 함께 일하고 싶어 했고, 또 무엇보다도 나의 기분 외에는 그를 거절할 만한 명분이 없었다. 결국 그 다음 주부터 하워드에 의한 매니지먼트 지도가 시작되었다.



CHAPTER 3 Let's Begin!



회의의 목적을 확인한다

첫 번째 회의에 참석한 사람은 나, 앤디, 샨티, 그리고 판매와 마케팅을 담당한 제니퍼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 4명은 여태까지 진지하게 회의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워드는 회의규칙과 진행방법을 한참 동안 설명한 후 의제를 읽었다. 그러고는 의제에 관해서 질문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주어진 의제를 꼼꼼히 읽어봤지만 무슨 말인지 통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아니, 없습니다"라고 적당히 얼버무렸다. 하워드는 우리들의 얼굴을 쭉 훑어보고 나서 말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회의가 진행되는 9시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최악의 상황입니다. 처음 질문은 '이 회의가 끝났을 때 어떤 성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는가?'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부터 앞에 놓인 종이에 메모한 다음 차례차례로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종이에 메모한 다음 발표할 것!

우리가 종이에 대답을 한참 만에 적은 것을 보고 나서 하워드는 한 명씩 발표를 시켰다. 세 번째 발표자인 샨티가 발표하려는 순간 하워드는 "메모를 한 다음에 발표하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라고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