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방식
제프리 크루이상크 지음 | 더난출판
1. 일관성을 유지하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컴퓨터는 도구일 뿐이다. 당신은 주어진 업무를 손쉽게 처리하려고 컴퓨터를 사용한다. 지금까지 애플의 접근방식은 개인용 컴퓨터를 쉽고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이타심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분명히 컴퓨터를 더 많이 팔려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이를 위해 애플은 첫째 사용자가 요구하리라 생각되는 작업 대부분을 예측하여 그러한 요구에 인간처럼 대응할 준비가 된 OS(운영시스템)를 개발하고, 둘째 모든 응용 프로그램 패키지들이 준수해야 하는 일련의 규격을 확립하고, 셋째 외부 개발자들이 그러한 규격을 지키도록 통제하고, 넷째 고객에게 인도하기 적합한 컴퓨터를 설계하고 개발하였다. 이것은 바로 사용자의 편익 증진을 의미한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 매킨토시 사용자는 새 S/W 패키지를 뜯어보기도 전에 그것을 사용 및 설치하는 방법을 항상 알고 있다. 아이콘을 더블클릭하고 뒷짐 지고 앉아 있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프로그램에 제공되는 매뉴얼을 일일이 읽어보는 수고를 덜 수 있다. 맥의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을 마스터하면 회계 프로그램, 세금 신고 프로그램, 심지어 데이터베이스 관리 프로그램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윈텔(윈도 S/W +인텔 칩) 사용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이 뭐가 특별한가. 내 PC도 프로그램 간 작동법이 대체로 동일하다." 이에 두 가지 반박을 할 수 있다. 첫째 '대체로'와 '항상'은 같은 말이 아니다. 사용자들이 윈도 환경에 좌절을 느끼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윈도 환경이 점점 일관성을 추구하는 이유는 애플이 그러한 좋은 예를 오래전부터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매킨토시 하드웨어는 일관성 있게 구성요소들이 항상 같은 위치에 있다. 따라서 당신이 특정 맥을 사용하는 방법을 안다면 모든 종류의 맥의 사용법을 알 수 있다. 애플 방식의 다른 장점은 연속성이다. 맥 OS X 운영체제가 출시되기 전까지 애플은 특정 세대 매킨토시에서 다음 세대 매킨토시까지 놀라운 연관성을 보여주었다. OS 업그레이드가 특정 기능을 삽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음매 없이 짜 넣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OS X로 OS가 바뀌면서 요즘에는 과거만큼 연속성이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큰 목적은 여전히 훼손되지 않았다. 즉 맥을 사용하는 것이 여전히 쉽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애플이 직접 맥을 통제하고, 맥에서 사용되는 핵심 명령어를 규제하며, 외부인의 작업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직접 관리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애플은 제품에 비싼 가격을 매겨 높은 매출총이익률을 기록하는 전략을 사용해 왔다. 사용자의 요구를 염두에 두고 설계된 독특한 케이스에 담긴 독특한 OS로 제품을 차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매킨토시 환경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독특함을 잃어가고 있으며, 윈도 OS 업그레이드 버전을 갖춘 레이몬드의 거인(마이크로소프트)이 사용자 친화적이고 직관적인 컴퓨터 환경을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매출총이익률을 중시하는 애플의 오래된 전략은 공식적으로 효력을 상실한 것인가? 가전제품 시장 진출(아이팟)과 이익률이 낮은 보급형 컴퓨터(맥미니) 출시가 미래의 물결인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애플의 미래는 무엇인가?
2. 미래를 찾아내라
혁신은 돈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그러나 돈이 없으면 혁신은 불가능하다. 특히 하이테크 산업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경쟁업체에게 인재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그들을 지속적으로 만족시킬 만한 자금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애플은 R&D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3년 R&D 투자액 5억 달러 가운데 48%는 하드웨어 개발에 쓰였고, 29%는 맥 OS 개발에, 나머지는 응용 프로그램 개발에 투자되었다. 이처럼 애플은 R&D 투자의 절반을 하드웨어 혁신에 써야 한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소프트웨어 기업은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비용이다. 동시에 애플은 OS S/W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이것은 델 같은 하드웨어 기업은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비용이다. 이것은 좋은 소식이기도 하고 나쁜 소식이기도 하다. 애플은 MS나 델이 추구할 수 없는 방식으로 혁신을 도모해야 하는 올가미에 걸려 있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러한 R&D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투자를 하기 때문에 애플은 계속 미래를 찾아낼 수 있다.
전략적 혁신은 돈과 인재뿐 아니라 전략도 필요로 한다. 애플은 항상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고객의 요구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데 항상 능숙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애플은 고객의 요구에 부응한다면서 80여 개의 복잡한 제품군을 선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고객들이 제품을 사러 왔다가 당황하여 등을 돌린 것이다. CEO가 되어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제품 혁신을 위한 간단한 지침을 제시했다. "일반 소비자용 제품과 전문가용 제품을 판매한다. 그리고 두 가지 영역 각각을 위한 데스크톱 제품과 휴대용 제품이 필요하다." 그의 수학식은 간단했다. 2*2=4, 결국 네 가지 종류의 제품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간단한 계획에 따라 각 플랫폼을 맡은 전담팀들이 네 가지 영역에서 혁신을 도모했다. 그 결과 파워맥 G3(전문가용/데스크톱), 파워북 G3(전문가용/휴대용), 아이맥(일반용/데스크톱), 아이북(일반용/휴대용) 등 인기 제품들이 잇달아 출시되었고 애플은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복귀한 지 일 년 후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언제쯤이면 애플을 회생시켰다고 느낄 것입니까?"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우리의 목표는 회사를 회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편히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은 애플이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세계에서 활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미래를 찾아내야 함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다른 기업들보다 애플이 훨씬 더 자주 미래를 찾아냈다고 말할 수 있다.
3. 놀라움에 숨 막히게 하라
애플 II(1977년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겨 시장에 출시된 최초의 컴퓨터)는 디자인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생각을 처음 반영하고 있다. 그는 컴퓨터의 외관이 고객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확신하고, 사람들이 애플 II를 토스터처럼 친근한 물건으로 상대하길 원했다. 그의 디자인 비전이 본격적으로 펼쳐진 것은 1984년 매킨토시가 계기가 되었다. 맥은 스크린과 본체가 하나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그만큼 케이블이 줄어들고 외관이 통일성을 지니게 되었다. 맥은 낯익은 가전제품처럼 보였고 인간적인 분위기를 풍겼는데 바로 그것이 스티브가 추구했던 것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예술이나 디자인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소니, 브라운, 메르세데스 등 고가 하드웨어로 명성을 얻은 기업들이 어떤 식으로 마술을 부리는지 조사하였다. 그리고 혼자 힘으로는 애플이 소니, 브라운, 포르쉐처럼 탁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1983년 프로그디자인(frogdesign, Inc)과 디자인 공급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후 동사의 디자이너들은 독특한 활자체, 활자 크기, 색상을 선택했고 그것을 애플 전체에 침투시켰다. 제품에서부터 각종 인쇄물과 매뉴얼에 이르는 애플의 모든 것에 디자인이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1985년 9월 스티브가 애플을 떠난 이후 새로 상품개발팀장을 맡은 장루이 가세는 대중에 맞게 디자인된 스티브의 가전제품 개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제품 가격을 올려 이익률을 높이기 위해 맥에 갖가지 기능을 추가하도록 엔지니어들을 독려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애플의 정체성 상실을 가져왔고 1980년대 후반 애플 쇠락의 원인을 제공했다. 높은 미적 안목을 지닌 강력한 리더가 없는 가운데 애플은 계속 허우적거리면서 무능한 기계에 맞는 무능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러나 1997년 스티브가 복귀하면서 그의 주도 아래 애플은 발포 플라스틱으로 만든 TV 모니터와 자전거 헬멧을 합쳐놓은 것 같은 흰색 물체를 제시함으로써 주목을 받았다. 바로 그것이 아이맥이다. 푸른빛을 필두로 다섯 가지 색상의 반투명 아이맥이 출시되면서 애플은 수요를 맞추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히트를 쳤다.
애플의 생존에서 우수한 디자인과 영리한 마케팅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아이맥이 출시되기 이전부터 빌 게이츠는 애플의 빠른 OS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오류 많은 OS 간의 격차를 서서히 좁혀왔다. 그래서 애플은 핵심 부문 이외의 부문에서 혁신을 도모했는데 그것은 때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을 하는 실수, 기능을 생각하지 않고 모양만을 생산하는 실수를 간혹 범한 것이다. 그렇지만 애플은 계속 한계에 도전하면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2000년 G4 큐브가 출시되었을 때 뉴욕 현대미술관은 영구 소장용으로 큐브 한 대를 구입했다.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잡스는 미술관의 결정을 환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디자인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사용자들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싶은 바람 때문입니다."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현재 활동하는 기술 기업들 가운데 모든 디자인 업무를 내부에서 처리하는 기업은 애플밖에 없다고 한다. 스티브는 제품 디자이너, 산업 디자이너, 기계 전문가, 전자 전문가, 소프트웨어 전문가 등 모든 전문가들을 한자리에 몰아넣는 것이 전체주의적 시각에서 제품을 개발하는 길이라 믿고 있다. 한 비평가는 스티브가 즐겁고 친근한 소형 가전의 미학에 관심을 기울일 때는 애플이 번창했으나, 절제되며 차갑고 미니멀 한 미적 감각을 발휘하면서 애플이 벽에 부딪혔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절제되며 미니멀 한 애플의 아이팟은 젊은 세대에게 인생을 즐기는 쿨한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
4. 가보를 지켜라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들의 OS 소프트웨어를 널리 라이선스함으로써 세계 PC시장을 거의 장악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애플은 그들의 OS를 다른 하드웨어 업체에 라이선스하기를 거부했다. 그것은 다음 이론에 따른 것이었다. 첫째 그것은 사용자의 경험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제하는 것을 포기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둘째 라이선스한 맥 OS를 이용하는 저가 컴퓨터 생산업자들이 시장에 진출하면, 가격하락 압력으로 인해 이익률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빌 게이츠가 애플에게 OS를 라이선스할 것을 촉구한 이래 10년이 지난 1995년에 가서야 애플은 파워컴퓨팅과 맥 OS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이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다. 맥 OS를 산업 표준으로 확립시킬 기회는 이미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CEO 아멜리오는 애플이 복제품 한 대당 50달러의 라이선스를 받는 대신 이익률이 높은 애플 컴퓨터와 OS를 동일 고객에게 팔았다면 그보다 10배나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는 복제품에 매출을 빼앗기고 있을 뿐 아니라 라이선스 사용료를 너무 적게 받아서 그에 따른 손실도 보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10년 전에 빌 게이츠가 애플에 제시했던 방법, 즉 OS 개선 및 유지비용을 사용자 확대로 보충하는 방법은 애플에 소용없게 되었다. 장기적으로 애플은 무엇을 하든 혼자 힘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다.
1993년 애플은 맥 OS의 최대의 문제점(메모리 부족, 에뮬레이션을 통한 PC칩 실행)을 해결할 코플랜드 OS를 윈도 95가 시장에 나오기 전에 소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5억 달러를 투자하였음에도 이렇다 할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대안을 모색하던 CEO 아멜리오는 애플을 떠나 넥스트 컴퓨터를 경영하던 스티브 잡스에게 중대 제안을 했다. 그리고 1996년 12월 애플은 3억 5천만 달러에 넥스트를 인수하고 스티브는 애플에 복귀했다. 복귀한 스티브는 우선 맥 OS를 복제품 제조업체들에 라이선스하는 것을 중단시켰다. 그리고 코플랜드 프로젝트를 백지화하고 새로운 맥 OS(랩소디) 개발에 착수했다. 1999년 1월부터 애플은 매년 대폭 수정한 업그레이드 버전을 출시하고 그로부터 6개월 뒤에 부족한 부분을 수정한 업그레이드 버전을 출시한다는 일정을 따르면서 오랫동안 맥 OS를 괴롭히던 문제를 바로잡아 나갔다.
2000년 9월 애플은 OS X를 출시했다. 이것은 기존 OS들과 달리 유닉스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OS이다. OS X는 스피드와 유연성 외에 안정성이 뛰어났기 때문에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애플은 2000년부터 2005년 사이에 다섯 차례 OS X 업그레이드 버전을 출시했다. 그리고 기존 OS에 익숙한 사람들과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 새로운 OS를 사용하도록 설득하였다. 아이맥을 포함하여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몇 가지 맥 신제품들로 인해 설득하는 것은 한결 쉬워졌다. 스티브 잡스는 OS X가 지구상에서 가장 발전된 OS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뇌 이식과 다름없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20년 동안 애플을 재확립할 혁명입니다."
5. 지지자들과 돈독히 하라
1982년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응용프로그램 개발 사업에 진입하려 애쓴다는 것을 알았다. 스티브는 빌 게이츠를 만난 곧 출시될 매킨토시에 사용할 일부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워드, 멀티플랜(엑셀의 전신), 파일(Access의 전신)을 포함하여 맥에 사용할 몇 가지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1984년 맥이 출시될 준비가 되었을 때 빌 게이츠는 애플과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맺고 싶어 했다. 빌 게이츠는 이례적인 요구를 했다. 응용프로그램을 공급하는 대가로 맥 OS, 특히 GUI(graphic user interface)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마이크로소프트의 PC 제품들에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한 것이다. 당시 점점 커지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영향력에 맞설 수 있는 외부 개발자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던 애플은 결국 손을 들었다. 빌 게이츠에게 그들의 가보를 이용하는 것을 허락한 것이다. 그것은 치명적인 결정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그 귀중한 수집물을 이용하여 윈도 1.0을 출시한 것이다. 그것은 훗날 맥 OS와 동등한 입장에 설 프로그램의 첫걸음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값비싼 응용프로그램이 설치된 맥이 출시된 이후에 애플은 계속해서 다른 독립적인 개발자들을 물색했다. 그것은 점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마이크로소프트를 견제하는 의도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영향력은 점점 더 확대되었고 애플은 뻔뻔스러울 정도로 공격적인 빌 게이츠에게 더 많이 의존하게 되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맥 프로그램들은 윈도 프로그램이 출시되고 일 년이 지난 뒤에 출시되었다. 워드의 서류들은 윈텔에서는 거의 즉각 열렸지만 맥에서는 30초 정도 걸렸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애플이 스스로 자초한 것이었다. 스컬리 시대에 애플은 독립적인 개발자들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외부 파트너로서가 아니라 수입원으로 대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인이 음식을 가져온 손님을 비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한마디로 공생관계에 해가 되는 일이었다.
1997년 여름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개발자 관계관리 부문에서도 자신이 적임자임을 보여주었다. 그는 세련되고 새로운 아이맥과 "다르게 생각하라"라는 눈에 띄는 광고 캠페인이 흔들리는 개발자의 기운을 북돋우고 새로운 개발자를 유치하는 데 효과가 있으리라 추측했다. 또한 그는 주요 기업고객들 안에는 전도사(evangelist)들이 있어서 애플을 지속적으로 주시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실제로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