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오션의 거상
안치용 지음 | 해바라기
Part1 Raise : 1%의 희망을 성공으로열정이 만들어낸 신화 - 삼성전자 반도체 산업어떤 운동 종목이든 국가대표 감독이면 가장 편한 경기가 있다. 바로 한일전이다. 일본하고 붙는다고 하면 선수들이 알아서 연습한다. 정신무장이 잘돼 있어서 따로 독려할 필요가 없다. 우스갯소리로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민족이 한민족이라고 한다. 세계가 일본을 두려워하는데, 그 일본을 우습게 아는 게 한민족이라서 그렇다는 얘기다. 삼성전자는 1983년 이병철 회장의 '도쿄선언'을 계기로 명실상부한 반도체 회사가 되었는데, 이 도쿄선언이 있기 몇 개월 전 신사업팀이 제출한 반도체사업에 관한 보고서를 읽던 이 회장은 첨단 반도체 가운데 유일하게 일본이 미국을 앞선 분야가 메모리라는 대목에 밑줄을 그었다. "일본이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 일종의 오기였을까. 이 회장은 결국 메모리 반도체사업 진출을 결정했다. 그것도 일본과 미국 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D램 시장으로 진출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이회장의 무모한 결정을 현실로 만든 요인 중에 우수한 인력을 빼놓을 수 없다. 진대제, 황창규 등 당시 많은 재미 과학자들이 이회장의 러브콜을 받고 한국행을 결정했다. 일본을 이길 수 있다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그들은 이후 어이없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연이어 저지른다. 삼성전자는 도쿄선언 10개월만에 미국,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64KD램'을 개발했다. 3~4년이 걸려도 안 될 거라는 주변의 우려를 일축하고 오기로 똘똘 뭉쳐 보기 좋게 성공한 것이다. 성공의 요인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데 있었다. 삼성전자는 기흥사업장을 건설할 때 설계와 공사를 병행한 것이다. 참 성격도 급한 민족이다. 설계도가 완성되기 전에 공사부터 들어가다니. 덕분에 다른 나라에서 1년 반이 걸리던 공기를 6개월로 줄일 수 있었다. 또한 삼성전자는 공장을 건설할 때 6인치 웨이퍼를 선택했다. 당시 대부분의 업체들은 5인치를 쓰고 있었는데 후발주자로서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6인치를 채택한 것이다. 모험은 성공해 5인치에 비해 생산성을 1.4배나 높일 수 있었다.
이밖에도 세계최고가 되기까지 몇 번의 중대한 전환점이 있었는데 삼성은 그때마다 올바른 선택을 했다. 1988년 4MD램을 개발할 때 세계 반도체 업계는 Trench방식과 Stack방식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를 놓고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이때 삼성이 먼저 Stack방식을 채택했고 이 일로 삼성은 세계반도체 업계에서 선두로 올라설 발판을 마련했다. 불황 때의 과감한 투자도 삼성전자의 성공요인으로 분석된다. 일본기업들이 1987년 불황을 맞아 설비투자를 줄일 때 삼성전자는 신규라인을 건설했다. 덕분에 1988년 호황 때 누적적자를 모두 해소했고, 1990~1991년 경기 침체기에도 투자를 계속해 세계 최대 생산능력을 확보했다.
삼성전자는 1983년 D램 반도체 시장에 진출해 1992년 처음으로 세계 1위에 올랐다. 이후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삼성은 속도로 세계를 정복했고 이후 같은 속도로 어떤 도전도 용납하지 않았다. 생각의 속도가 아닌 실행의 속도가 경쟁업체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처음 1등에 오르기는 너무 힘이 들었다. 당시 동사는 사업장에 컴퓨터 수천 대를 두고 생산한 D램을 모두 테스트했다. 10만개 중에 하나, 100만개 중 하나라도 불량이 날까봐 전부 확인하고 내보낸 것이다. 당연히 불량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모두 빠르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일일이 확인하는 느림경영 또한 실행의 속도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삼성전자 D램 반도체의 역사는 블루오션 창출과 수성에 관한 모범을 보여준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블루오션에 도달할 수 있었던 여러 비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비합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 같다. 바로 '열정'이다.
생활의 발견, 아이디어의 승리 - 한경희 스팀청소기한경희 사장의 창업은 "힘 안들이고 청소를 더욱 깨끗하게 할 수 없을까?"하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에 기초해서 대걸레질하듯 청소할 수 있는 기구가 나오면 주부들에게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스팀이 나오면 더 깨끗하게 청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균을 죽이는 소독기능도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한 사장은 1999년 한영전기를 창업하여 전문가들과 기술개발에 들어갔다. 그러나 개발은 생각만큼 진척을 보이지 않았다. 스팀청소기를 정해진 온도로 일정 시간 유지하는 것과 대량생산을 위해 금형을 개발해야 하는 등 난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계속되는 실패로 자금이 바닥나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대로 무너지는 자신이 한심해서 다시 일에 매달렸다.
2001년 여름 개발을 마치고 초도제품 3천대를 만들었다. 그때의 감격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그 감격이 엄청난 좌절로 이어지고 만다. 제품에 사소한 결함이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괜찮지만 자꾸 쓰다보면 연결부위가 벌어졌다. 고민에 빠졌다. 출시해도 당장 큰 문제는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 고객의 신용을 잃게 된다. 고민 끝에 한 사장은 3년 동안 5억 원을 들여 개발한 제품의 전량폐기를 결정했다. 그 뒤에도 문제는 계속 발생했다. 면 걸레를 쓰다보니 바닥에서 잘 밀리지 않았고 재사용이 어려웠다. 몇 달에 걸친 노력 끝에 초극세사 세 겹이 들어간 새로운 걸레가 탄생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문제는 있었다. 이유인즉 고무줄을 이용해 걸레를 붙였다 뗐다 하도록 했는데 이것이 말썽이었다. 이 문제를 벨크로(찍찍이)를 쓰는 것으로 해법을 마련하자 이번에는 스팀의 습기와 열로 벨크로가 본체에서 자꾸만 떨어졌다. 모든 노력이 걸레 하나를 붙이지 못해 물거품으로 돌아갈 위기에 직면했다. 그때 남편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벨크로를 플라스틱에 직접 파면 되지 않느냐."고 했고 한 사장은 '이 생각을 왜 못했을까'하며 자신을 자책했다. 드디어 한 사장이 주부들을 해방시켜주겠다고 꿈꾸었던, 그 꿈의 스팀청소기가 탄생했다. 총 개발기간 4년, 비용은 10억 원이 들었다.
제품개발 후 주문이 폭주했지만 유사제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 사장이 주부이자 개발자인 자신을 브랜드화 하기로 결심한 것은 제품을 차별화 할 수단을 찾기 위한 고민에서 나왔다. 이름을 직접 쓰는 제품실명제는 주부들의 신뢰를 얻었고 무엇보다 소비자에게 쉽게 기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 한경희 스팀청소기가 도약한 계기는 홈쇼핑이었다. 인기비결은 무엇보다 제품의 경쟁력이었다. 강한 살균효과에 음이온 기능까지 갖추어 단순한 청소도구의 수준을 넘어섰다. 또한 홈쇼핑이 막강한 유통채널인 만큼 유통마진을 최소화해 구매욕을 자극했다. 홈쇼핑 판매가는 7만9천~8만5천 원이며 전기료는 한 달에 600원이다. 결과는 한사장 본인도 놀랄 만큼 대단했다. 1시간에 1만대 가까이 팔렸고 GS홈쇼핑 사상 처음으로 ARS가 다운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후 한경희 스팀청소기는 홈쇼핑 인기상품으로 안착했고 2005년 1천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사장이 개척한 블루오션은 공급 측면에서 홈쇼핑이란 거대 유통채널을 활용해 비용절감을 꾀했다. 물론 마진 감소도 일어나지만 자체 판매망 없이 막대한 매출을 일으켜 마진 감소분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또한 수요측면에서 한 사장이 추구한 블루오션전략의 장점은 소비자가 구매할 때 얻게 되는 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여 가치혁신을 이룬 것이다. 벨크로의 일화에서 보듯이 그가 제품 개발에 들인 오랜 싸움은 소비자의 효용을 높이기 위한 치열한 과정이었다.
Part2 Reduce : 소비자의 수준에 맞춰라품질의 자존심으로 승부 - 포크갤러리어릴 적 기억에 돼지고기는 정육점에서 파는 것으로 "한 근 주세요"하면 정육점 아저씨가 탁 썰어 신문지에 싸주곤 했다. 가끔 "오늘 돼지고기는 특별히 맛있네"라는 말을 나누곤 했다. 그때 오늘 산 고기가 특별히 맛있을 이유가 있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얘기다. 어떤 품종의 돼지가 어디서 어떤 사료를 먹으면서 성장하다가 몇 살 때 도축돼 도축 며칠만에 단골 정육점에 팔린 것인지, 또 암퇘지인지 수퇘지인지에 따라 얼마든지 맛이 달라질 수 있다. 요즘 슈퍼마켓에 가보면 '특정'된 돼지고기가 있다. 바로 목우촌, 한냉, 생생포크 같은 브랜드 돼지고기이다. 이 회사들은 아주 핵심적인 사항을 특정하고 있는데 바로 품종과 사료를 표준화 한 것이다.
상원축산은 1970년 상원농장으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종돈 육종사업을 하고 있는 축산기업이다. 돼지를 2만여 마리 키우면서 종돈을 만들고 개량하면서 비육돈도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상원축산은 '상원매산'이라는 품종 하나만을 키우는데 이것은 매산이란 원종을 상원에서 개량해서 만든 신품종이다. 매산(Maishan)원종은 중국 상하이 부근 타이후 호수 지역에서 유래했는데, 지방이 많고 고기가 맛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매산 품종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것은 새끼를 많이 낳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 2.5~3개월이면 교배할 수 있으며 배아 생존율이 높아 초산에서 15~16마리를 낳는다. 생산성이 일반 백색종 돼지보다 50%가량 높은 셈이다. 이 매산 품종을 영국의 NPD라는 회사가 라지화이트 품종과 교배해 합성종인 업튼매산(Upton Maishan)을 만들었고, 이 업튼매산을 1995년 상원축산이 도입하여 7년에 걸친 강도 높은 개량작업을 통해 탄생시킨 품종이 바로 상원매산이다.
돼지품종에 있어 중요한 목표 두 가지는 육질과 생산성이다. 상원매산은 생산성은 최고 수준이므로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육질만 갖춘다면 훌륭한 품종이란 평가를 받게 된다. 상원축산은 매산 품종의 육질에 주목했다. 맛 자체가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고 영양학적으로도 다른 품종보다 우수했다. 바로 지방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대로는 너무 과도했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맞는 적정 등지방 두께에 도달하기 위해 품종개량 사업을 벌인 것이다. 매산 원종의 등 지방 두께는 40~50밀리미터였는데, 이것이 업튼매산에서는 18~20밀리미터로 줄었고, 상원매산에서는 15밀리미터 안팎으로 더 줄였다. 그러면서도 몸무게는 원종보다 2배(120킬로그램)로 늘렸다. 상원축산은 육질개선을 목표로 고려대 생명과학대학과 함께 육질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를 찾아내 활용하는 기법까지 활용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맛과 생산성을 겸비한 경쟁력 있는 돼지 품종이 확실하게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자긍심을 느낄 만한 고유 품종을 개발했지만, 소비자에게 알릴 방법이 없었다. 대형 육가공브랜드는 자체 브랜드에 주력했지 위협적인 새끼 호랑이를 유통시키려 하지 않았다. 유통시킨다면 상원매산이란 표시 없이 "오늘 산 고기 맛있네"의 대상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서 상원축산 한 사장은 직접 '레이더 샵'을 열기로 결심한다. 2005년 8월 분당에서 정육점이 아닌 제과점 개념으로 깔끔한 느낌의 가게 '포크 갤러리'를 열었다. 상원매산 브랜드를 앞세워 소비자들에게 직접 다가가기로 한 것이다. 포크갤러리는 상원매산을 널리 알리기 위한 하나의 실험이다. 어쩌면 품종 개량보다 더 힘들고 오랜 노력과 시간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난관을 극복해야 지금의 반쪽 블루오션이 아닌 온전한 블루오션이 열릴 것이다.
철저하게 기획된 문화상품 - 동방신기, 보아2006년 새해 벽두 청와대 홈페이지는 홍역을 치렀다. 탄핵이나 개헌 같은 정치 현안이 아니라 5인조 남성그룹 동방신기의 해체문제로 게시판이 뜨겁게 달구어진 것이다. 해체 소동의 전말은 무엇이었을까? 동방신기 팬클럽의 일부 회원들은 동방신기 소속사가 '블루오션'이라는 중국인 멤버를 영입해 동방신기를 두 그룹으로 나눌 계획이라고 주장하고 기존 멤버가 나눠지는 것은 해체라는 논리를 폈다. 그렇다면 '블루오션'이라는 중국인 멤버가 실재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 측은 '동방신기는 블루오션 이론에 근거한 그룹'이라고 말했고 전달과정에서 블루오션이 중국인 멤버 이름으로 와전되어 빚어진 소동이었다.
동방신기는 철저하게 블루오션을 염두에 두고 육성된 아카펠라 댄스그룹이다. 그룹 멤버의 이름은 모두 다 한자이고 영어 이름도 갖고 있다. 한자권, 영어권에서 모두 통할 수 있는 작명이다. 또한 멤버들 모두 용모가 출중하고 노래, 춤에 능하다. 과거의 그룹들과 달리 노래나 춤, 한가지 실력만 갖춘 사람이 아니라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사람들만으로 최고의 드림팀을 꾸렸다. 유명 제조업체 못지 않은 품질관리가 이루어진 셈이다. 이러한 음악성을 바탕으로 그룹 특징을 '아카펠라 + 댄스'로 정했다. 아카펠라는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 음악이므로 댄스그룹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가지의 이종교배는 모든 멤버들이 이것들을 모두 소화할 능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동방신기는 이 같은 섬세한 준비를 거쳐 출범했고 이후 'HUG', 'The Way U are', 'Tri-angle' 등 히트곡을 잇달아 선보이며 국내 최고 그룹으로 우뚝 선다.
동방신기에 앞서 SM엔터테인먼트가 블루오션 전략을 적용해 성공한 최초 사례가 보아다. 처음 보아를 발굴했을 때 보아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그때부터 춤과 노래 수업을 받으면서 일본어를 배웠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아예 방학이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 아나운서 집에서 숙식하며 말과 문화를 익혔다. 수출은 수출이되 철저하게 현지화 한 것이다. 2000년 중학교 2학년 때는 한국에서 데뷔했고 이듬해 일본에 진출했다. 보아는 데뷔전까지 방과후에는 회사에 와서 노래, 댄스, 일본어 등 미리 짜인 시간표에 따라 엄격한 과외를 받았다. 오랜 과외는 보아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동방신기의 시아준수도 6년을 기다려서 동방신기의 멤버가 될 수 있었다. 보아는 지금까지 일본에서 9백 만장 가량의 음반을 팔았다. 음반판매량으로 볼 때 보아는 일본에 진출한 한국가수가 아니라 한국 국적의 일본가수로 성공한 것이다.
동방신기 역시 보아처럼 국내에서 블루오션을 찾고 있지 않다. 보아가 일본에서 성공했다면 동방신기는 중국을 노리고 있다. 우리나라 음반시장의 규모는 2천억 정도에 불과하지만 일본은 5조원, 중국은 6조원에 달한다. SM엔터테인먼트의 블루오션전략은 현격한 시장 규모의 차이에서 출발한다. 청와대 게시판의 동방신기 해체파동에서 거론된 것처럼 SM엔터테인먼트는 중국인 멤버를 충원하는 과정을 통해 동방신기 붐을 일으킨다는 작전을 구상중이다. 이 계획은 상당 부분 진척됐으며 중국 방송국이 중국인 멤버 선발과정을 중국 전역을 돌며 중계하게 된다. 여자 동방신기인 천상지희를 통해서도 비슷한 계획이 추진된다. 처음부터 중국인을 캐스팅한 뒤 중국시장을 노리는 방안도 진행중이다. 이러한 다양한 경로를 통해 SM엔터테인먼트는 더 큰 시장으로 뻗어나갈 꿈을 키우고 있으며, 일부는 결실을 맺고 있다.
수평적 확장을 통한 수직상승 - 콤마치킨콤마치킨은 치킨점을 선보이기 전에는 물류회사였다. 물류대상은 닭이었다. 하림 같은 기업에서 생닭을 받아다가 동네 치킨점에 공급하는 중간도매상이었다. 그런데 콤마치킨은 다른 물류회사에서 제공하지 않는 서비스를 부가하면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부부가 동네에서 호프집을 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아침마다 물류회사에서 생닭을 배달 받은 뒤 남편이나 아내 중 한 사람이 조리 전 단계의 작업을 감당해야 한다. 많이 하면 손에 익숙해지겠지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콤마치킨은 이 작업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