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볼
마이클 루이스 지음 | 한스미디어
1. 길을 잃은 천재 빌리 빈은 어렸을 적부터 운동이라면 어떤 것이든 이길 자신이 넘치는 아이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교 대표팀 투수로 등판했던 그는 2학년 때 미국 전역에서 가장 수준 높은 고교 리그에서 5할 대 타율을 올렸다. 3학년이 되어서는 키가 190cm를 넘어섰고 체중이 80kg을 넘어섰다. 야구의 파이브 툴(five tool : 스피드, 어깨, 수비, 정확도, 장타력)을 모두 갖춘 빌리는 나이 어린 선수들의 미래를 점치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에게 한마디로 감동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은 가면 같은 것이었다. 모두 그의 천부적인 재능에만 관심을 쏟았고 경기가 부진할 때 나타나는 행동에는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다. 졸업반이 된 빌리는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무언가를 항상 부러뜨렸고 걸핏하면 화를 내곤 했다. 그는 실패를 싫어했지만 실패에 대처하는 방법을 모르는 천재였던 것이다.
1980년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가 시작되자 1라운드 전체 1차 지명권을 갖고 있는 뉴욕 메츠가 상상 이상의 관심을 빌리에게 표했다. 원하기만 하면 그를 데려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빌리는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야구와 풋볼 모두에서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스탠포드 대학에 진학하기를 희망했다. 드래프트 날이 임박하자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은 빌리를 계약 불가능 선수로 분류했다. 프로에서 뛰지 않겠다는 철없는 고교생 하나를 잡기 위해 드래프트 첫 번째 선발권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욕 메츠의 수석 스카우터 로저 용게워드는 그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 해 여름 메츠 팀이 원정경기를 위해 빌리가 사는 샌디에이고에 도착했을 때 용게워드는 빌리를 메츠 팀의 클럽하우스에 데리고 갔다. 이곳에서 빌리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선물로 받고 쟁쟁한 스타 선수들의 환대를 받았다. 그들은 팀이 빌리를 매우 필요로 하고 있으니 당장 빅 리그로 들어오라고 부추겼다. 빌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곳은 신성한 곳이었다. 꿈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빌리는 12만5천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메츠에 입단하게 된다. 빌리는 시즌이 끝날 때를 이용하여 강의에 참석함으로써 학업을 지속할 생각이었지만 스탠포드 대학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더 이상 자기 대학의 선수로 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입학을 거절하는 서신을 보내온 것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어 버렸다.
2. 숨어있는 보석을 찾아라2002년 여름 어느 날,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단장을 5년 째 맡고 있는 빌리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스카우터들과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날은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를 일주일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드래프트가 팀의 장래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클랜드는 싼 노동력을 찾아내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선수들에 대한 대우에 있어서는 자유시장의 논리가 빅 리그만큼 스며들지 않았기 때문에 한 명의 선수를 지명하고 계약까지 마친 구단은 그 선수에 대해 마이너리그 7년과 메이저리그 6년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소유할 수 있다. 즉 그 기간만큼은 선수가 가진 진정한 가치보다 훨씬 낮은 연봉으로 계약이 가능한 것이다. 오클랜드가 올해 배리 지토(2002년 아메리칸리그 최우수 투수)에게 50만 달러만 지급할 수 있었던 것도 1999년 드래프트에서 그를 지명한 덕택이었다. 다른 팀에 있었다면 지토는 1천만 달러를 받았을 것이다. 어쨌든 오늘 회의에서 빌리는 제 2의 지토를 찾아내야 한다.
스카우터들이 수집해 온 북미 지역 아마 야구 선수들의 명단은 680명 정도로 정리된다. 스카우터들은 명단을 놓고 한 명씩 탈락시키면서 스카우트 대상자를 압축한다. 책임자가 명단에 오른 한 신인 선수 이름을 거론하면 그 선수에 대해 비교적 잘 아는 스카우터들의 짤막하고 냉정한 평가가 이어지는 방식이다. 스카우터들은 반드시 피해야 할 선수들을 그들만의 언어로 표현하곤 했다. '돌머리'는 극복 가능한 결함을 의미하고, '연약하다'는 일말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부실구조'는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라는 표현인데 이들 중에는 전과자나 알코올 중독 또는 성격 장애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그들은 부실구조가 아니더라도 고교생 선수이거나 예상가격이 높은 선수의 파일은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다.
3일째로 접어들면서 스카우터들은 신인 선수들의 명단을 판단이 확실해진 유망주 부류와 그렇지 않은 선수들로 구분했다. 이때부터 그들의 관심은 누구를 선발할 것인지에 대한 것으로 집중되었다. 빌리가 1순위로 지명한 선수는 오하이오 출신의 중견수 닉 스위셔였다. 그는 스카우터들이 사랑하는 원초적 재능을 가진데다가 빌리가 중시하는 성적 통계도 뛰어났다. 아이러니한 것은 빌리 자신은 스위셔의 경기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자칫 빌리가 스위셔에게 관심이 있다는 소문이 돌면 스위셔의 주가는 수직상승할 것이고, 이로 인해 오클랜드가 가진 드래프트 첫 번째 지명권이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빌리가 두 번째로 뽑은 선수는 세인트메리 대학의 3루수 마크 티헨이었다. 티헨은 타격자세는 좋지만 파워가 부족한 선수였다. 스카우터들이 티헨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하자 빌리가 말했다. "좋은 타자가 파워를 가진 타자로 발전하기는 쉽지만, 힘있는 타자가 좋은 타자로 발전하기는 어렵지요." 빌리를 보좌하는 폴이 컴퓨터에서 뽑아낸 티헨의 성적을 제시했다. "출루율 4할9푼3리, 장타율 6할2푼4리, 총 194번의 타석에서 30개의 4구를 얻었고 삼진은 17개에 불과합니다." 스카우팅 총 책임자 에릭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제 2의 제임슨 지암비(2000년 아메리칸 리그 최우수 선수)를 찾는다면 이 친구가 해답이 될 것 같군." 지암비는 오클랜드가 그를 드래프트한 다음부터 파워를 기르기 시작한 타자였다.
"이제 제레미 브라운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스카우터들은 기가 막혔다. 어디서 굴러먹던 녀석인지 모르던 마크 티헨이란 놈을 견뎌내고 나니 그보다 더한 작자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앨러배마 대학 포수인 제레미는 삼류 중의 삼류 선수였다. 스카우터들이 제레미의 뚱뚱한 몸매에 대해 불평하자 빌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뽑는 사람은 모델이 아닙니다. 제레미의 장점은 4구를 얻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폴이 앨라배마 대학 홈페이지를 보며 말했다. "지난 2년간 390타석에서 98개의 4구를 얻고 38개의 삼진을 당했는데 이는 마이너리그의 어떤 선수보다도 좋은 기록입니다. 21개의 홈런이 있고요." 스카우터들과 빌리와의 논쟁에서 문제의 본질은 어떤 방식으로 유망주를 선발하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빌리는 미래의 메이저리거를 찾아내는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폴의 컴퓨터를 통해서였다. 폴의 노트북은 유망한 선수들을 찾아내는 최고의 도구였다. 이곳에는 의미 있는 통계수치들이 가득했다. 통계수치들은 합리적이고 정확한 판단의 근거자료가 되었으며 현장을 중시하는 스카우터들이 갖고 있는 온갖 편견들, 가령 키 작은 우완 투수나 발만 빠르고 왜소한 타자들에 대해 지니고 있는 편견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제레미에 대한 논쟁이 끝나자 폴이 말했다. "이제 여러분에게 8명의 타자 목록을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몹시 필요로 하는 선수들입니다." 폴이 이름을 부른 8명 모두는 대학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스카우터들이 싫어하거나, 심지어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선수들이었다. 이들 중에 어떤 선수가 어린 시절 빌리 빈의 모습과 가장 흡사한가라는 필자의 질문에 50년을 야구와 함께 한 어떤 스카우터가 이렇게 대답했다. "이봐 작가 양반, 여기에 빌리 빈은 없어." 왜 그러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말했다. "빌리는 우리 모두가 꿈꾸던 선수였으니까." 그의 말은 스카우터들이 꿈꾸던 선수들이 일찌감치 빌리에 의해 체계적으로 제거되고 있음을 암시했다.
3. 깨달음메츠에 입단한 후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한 빌리는 경기장에서 잘 뛰고 잘 던지고 잘 잡았으며 게다가 침착했다. 다만 방망이에 공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쨌든 헛스윙이 반복됨에 따라 그의 자존심도 무너져 내렸고, 조금이라도 재능이 발휘되는 듯 하면 누군가 시기라도 하듯 기회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곤 했다. 1986년 결국 메츠 구단은 빌리를 포기하고 그를 미네소타 트윈스로 트레이드 하고 말았다. 이후 3년 반 동안 빌리는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 사이를 오가다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거쳐,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로 옮겼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성공하겠다는 의욕보다 망신만은 피하겠다는 소극적인 성격으로 변해갔다. 그 결과 삼진아웃은 줄어들었지만 그에게 주어졌던 천부적인 파워가 사장되고 말았다. 이렇게 프로야구 선수로 보낸 8년 동안 그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1990년 스프링캠프와 함께 빌리는 현실 앞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그는 이제 성인이었다. 고교 시절 만난 여자와 결혼도 했고, 아내의 뱃속에는 7개월 된 아이도 있었다. 그는 한때 모든 스카우터들이 동경하는 야구선수였지만, 야구는 그를 인생의 패배자로 만들고 말았다. 하지만 야구 없는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었기에 빌리는 구단 측에 스카우터 일을 하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이로써 빌리는 스스로를 속이고 다른 사람을 속여 온 부질없는 천재의 이미지를 벗어버렸다.
오클랜드 단장인 앨더슨은 아이비리그 출신 변호사로 경기 중의 전략은 물론 선수평가에 이르는 모든 것들이 야구인들의 경험과 직감보다는 과학적 통계를 따라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야구 선수의 어떤 면에 돈을 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가?'라는 질문에 앨더슨은 "출루율이 높은 타자에게 돈을 써야 한다."라고 답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야구에서 아웃을 세 번 당하기 전까지는 어떤 플레이도 가능하다. 따라서 공격하는 팀의 입장에서 아웃의 확률을 낮출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합리화될 수 있다. 그렇다면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통계는 타자가 아웃을 당하지 않을 확률, 즉 출루율이다."
1993년 앨더슨은 스카우터로서 뛰어난 업무능력을 보여주는 빌리 빈을 자신의 보좌관으로 임명한 뒤, 올바르게 평가되지 않고 있는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찾아오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그리고 자신의 야구철학을 담은 책자를 빌리에게 보여주었다. 빌리는 책을 읽는 동안 벅찬 감동을 느꼈다. 이미 야구의 전통적 지식에 대해 날카로운 회의주의를 품고 있던 그는 책을 접하는 순간부터 야구경기를 풀어가기 위한 급진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접근방식을 찾게 되었고, 그것은 단장에게 권한을 집중시키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앨더슨은 빌리에게 야구에 관한 자신의 생각에 일대 혁신을 가져다준 빌 제임스의 책 몇 권도 선물했다. 빌리는 빌 제임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앨더슨이 다루는 내용 대부분이 빌 제임스의 이론에서 빌려온 것임을 알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4. 무지의 필드빌 제임스의 <야구 개요서> 시리즈는 전통적인 야구 개념에 대해 공격의 포문을 연 것이었다. 1979년 판에서 제임스는 이렇게 말한다. "타자의 최종목표는 점수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매년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공격부문 순위표를 만들면서 팀 성적의 첫째 목록에 가장 많은 점수를 기록한 팀이 아닌 최고의 타율을 기록한 팀을 올려놓는다. 하지만 공격의 최고 목표는 가장 많은 점수를 만드는 것에 집중되어야 한다." 그는 이어서 점수는 어떤 식으로 획득되는가를 밝히기 위해 일정한 수의 4구, 안타, 도루 등이 주어질 때 각 팀이 이를 통해 얻는 점수가 얼마인지를 예측할 수 있는 모형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제임스에 의해 '팀이 창출한 점수'라고 명명된 방정식 모양은 다음과 같다.
팀 창출 점수 = (안타 + 4사구) x 총잔루수 / (타석 + 4사구)
이 방정식은 그동안 야구 관계자들이 공격분야에 대해 잘못된 시각을 지녔음을 증명한다. 그들은 공식에서 중요한 요소인 4구와 장타율의 가치는 별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제임스가 거의 고려조차 하지 않던 타율과 도루만을 지나치게 강조해왔던 것이다.
5. 제레미 브라운 스페셜 2002년 드래프트 예정일 아침 빌리는 사무실에서 남부지역을 담당하는 스카우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스카우터는 지난 며칠간 제레미 브라운에게 구단의 의견을 제시하는 임무를 수행해 왔다. "그 친구 우리말 잘 알아듣던가?" 빌리가 물었다. "그 아이는 우리가 1라운드 35번째로 자신을 지명할 거라고 했더니 믿지 못하더군요." 제레미는 전통적인 스카우터의 눈에는 형편없는 체격조건의 삼류 선수였다. 제레미가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을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스카우터는 제레미에게 두 가지 계약 조건을 제시했다. 하나는 1라운드 35번째 지명자가 통상 받는 액수에서 백만 달러나 모자라는 35만 달러만 받고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살을 빼라는 것이었다. 드래프트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1라운드 35번째 지명권이 다가왔다. 제레미는 부모와 여자 친구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를 대비하여 자기가 한 말을 절대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까지 했다고 한다. 웃음거리가 될지 모른다는 의구심은 자신의 이름이 불린 이후에야 사라질 수 있었다. "오클랜드는 앨라배마 대학 포수인 제레미 브라운을 지명합니다." 그 순간 제레미의 집 전화기는 가족, 친지, 에이전트로부터 걸려온 전화로 불통이 되었다.
다른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생각하는 바가 서로 비슷했다. 그들은 만일 20명의 희망자 명단이 있다면 드래프트에서 3명만 건져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클랜드의 예외적인 선수수급 방식은 희망자 명단 20명 가운데 13명의 선수 확보라는 믿을 수 없는 성과를 거두었다. 물론 그 중 몇몇은 너무 작고 마르거나 뚱뚱하고 느리다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선수들이었다. 그 중에는 강속구를 던지지 못하는 투수도 있고, 파워가 없는 타자도 있었다. 심지어 드래프트에 오른 것조차 기적으로 여겨지는 애송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평가가 무엇이든 빌리는 상관없었다. 그는 야구만 하는 선수들을 드래프트 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증권가에 새로운 큰손이 등장하여 채식주의자 전문 식당의 주식과 전기 자동차 회사 주식들만 사들이는 것과 비슷했다. 엉뚱하기는 했지만 그의 방식은 참신했고 그것은 오클랜드가 2류급 선수들을 위해 쏘아 올린 희망의 축포였다.
빌리 빈은 프로야구라는 이름의 제국에서 전통의 관습과 의식들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병기고와 같은 존재였다. 그에게 가장 특징적인 것은 철저하게 자신과 닮지 않은 선수들을 찾아내려는 욕구에 있었다. 즉 빌리는 자신의 안티테제를 찾아 먼 여행을 떠났던 것이고, 기어이 그것을 찾아낸 것이다. 그러한 여행의 첫 번째 결과물은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 훌륭해야 한다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선수들이었다. 그들은 야구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젊은이들이었고, 대학을 나온 선수들이었다.
6. 불공정한 게임을 승리로 이끈 과학 적은 돈으로 많은 경기를 이기고 있던 오클랜드는 2002년 시즌이 시작되면서 그들의 행운에 종말이 올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었다. 선수단 연봉은 전년에 비해 줄어들었고 그들이 소유한 세 명의 스타 선수(제이슨 이스링하우젠, 자니 데이먼, 제임슨 지암비)가 자유계약 선수로 풀려 다른 구단으로 떠나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폴은 시즌 시작에 앞서 오클랜드가 2001년 거둔 102승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