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힘
진희정, 권용주 지음 | 명성
'쏘나타', 이제는 세계를 달린다까다로운 유럽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라유럽은 현대자동차에게 중요한 전략 요충지이다. 왜냐하면 현대자동차가 세계5위 자동차 생산업체로 도약하려면, 유럽시장에서의 판매 증대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년 전만 해도 유럽의 언론들은 현대를 외면했지만, 미국에서의 성공을 등에 업고 품질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최근에는 상황이 조금 달라져 있다. 독일의 <벨트 암 존타크>는 "유럽 자동차회사들이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현대자동차는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참고로 현대의 유럽 판매 전략은 '품질대비 가격 경쟁을 높이는 것'이었는데, 이 전략은 딱 맞아 떨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몇 년간 유럽 디자이너들을 고용해, 재규어와 벤츠 등이 가지고 있는 유럽의 감성을 자동차 디자인에 반영했고, 유럽인들이 열광하는 월드컵, 유럽축구선수권대회 등에 공식스폰서로 수십 억 달러의 돈을 투자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널리 알려 왔는데, 이런 공격적인 마케팅과 더불어 현지생산이 진행되면서,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판매 증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가고 있다고 하겠다. 참고로 현대자동차는 독일을 유럽시장의 마케팅 근거지로 생각하고 있으며, 터키는 생산기지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10억 인구, 중국인들이 선택한 차중국에서 현대는 무엇보다 쏘나타의 신화를 만들어 가고자 하고 있다. 현대가 2003년 중국에 내놓은 차종은 EF쏘나타였는데, 이 차는 2004년 상반기에만 무려 2만 대가 넘게 팔렸다고 한다. 참고로 현대 쏘나타는 베이징이 거점인데, 마침 베이징은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낡은 택시를 신형으로 교체하려 했고, 현대는 폭스바겐 파사트와 경쟁하여, 쏘나타를 베이징 택시로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이 때 현대는 오래된 폭스바겐보다는 새로운 쏘나타가 베이징의 거리 풍경을 바꿔놓을 것이라는 공격적인 전략으로 베이징 시당국을 설득하여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참고로 현대가 중국에 현지공장을 지었던 것은 무엇보다 판매가격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직수입된 쏘나타의 경우 4천만원대의 가격 수준이었으나, 중국의 베이징현대가 현지 생산한 쏘나타의 가격은 2천6백 만원 정도였다. 이런 가격경쟁력은 곧바로 판매증대로 이어졌고, 쏘나타의 성공신화는 중국에서도 이어질 수 있었다.
인도의 국민차 상트로에서 프리미엄급 쏘나타까지인도에서 현대자동차는 현지업체를 제외한 외국업체들 가운데 최고의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는데, 현대자동차가 이렇게 빨리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철저한 현지화전략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HMI(현대모터인디아)는 초기에 시장 조사를 통해, 아토즈에 대한 인도 사람들의 반응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디자인 개선작업을 위해 전국 로드투어에 나섰다. 그리하여 40도가 넘는 뜨거운 여름 날씨와 비포장도로, 배수시설 부족으로 몬순기간에는 순식간에 물이 차오르는 열악한 도로 사정 등을 반영했고, 또한 한여름에는 최고 50도까지 올라가고 습기가 많은 인도의 날씨를 생각해 에어컨 기능을 강화했으며, 방수 기능도 보완하고, 디자인도 바꾸어 현지에 맞는 차 상트로를 성공적으로 출시했다. 또 상트로의 인기에 힘입어, 엑센트를 투입해 2000년 동급 차종 가운데 판매1위를 기록했다. 다음은 쏘나타였는데, 쏘나타는 현대자동차의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고,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XD)와 함께 판매 상위권을 기록하게 됐다.
혼다 사장 '현대는 위협적인 브랜드'타케오 후쿠이 혼다 사장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대자동차는 우리에게 분명히 위협이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참고로 2004년 상반기에 실시한 J.D 파워의 품질평가에서, 현대는 자동차 100대당 결함이 102건으로 도요타(101)건에 이어 혼다와 함께 나란히 2위를 차지하고 있고, 2005년 세계 자동차 판매대수에서는 혼다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그리고 현대자동차는 혼다의 고객관리 시스템을 벤치마킹하여, '신 고객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 차를 산 시점부터 5년 동안 보험료 납부, 부품 교체주기, 차량관리요령, 신차 출시정보 등 차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알아서 알려주고 무상점검도 해주는 서비스이다. 이쯤 되면, 후쿠이 사장이 현대를 위협적으로 생각할 만한 근거는 충분히 된다.
현대자동차, 2년 연속 러시아 판매1위현대자동차는 2004년에 이어 2005년에도 러시아에 진출한 외국업체들 가운데 가장 많은 차를 판매했다. 참고로 러시아에는 현재 30여 개의 자동차업체들이 피 말리는 경쟁을 벌이고 있고, 그동안에는 도요타가 난공불락의 1위를 지켜왔기 때문에, 현대가 이렇게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변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러시아의 일간지인 <이즈베스티아>는 현대자동차가 이렇게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높은 기술력을 갖고 있음에도 러사아차와 가격이 비슷하고, 현지에 조립공장을 지어 생산체제를 갖췄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참고로 현대자동차는 러시아 타가즈(TagAZ)사에서 엑센트와 EF쏘나타를 현지조립생산(CKD)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고, 2005년 5월부터는 아브토토르(AVTOTOR)사에서 CKD 방식의 소형 1톤 트럭 생산에도 나서는 등 현지생산 차종을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가 중국과 인도에 이어 잠재력 있는 시장으로 부상하면서,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자동차는 1위를 계속 지켜가기 위해, 딜러망 확충 및 지속적인 관리를 실시하고 있다.
글로벌 빅5 진입, 멀지 않았다컨설팅회사인 보스턴컨설팅과 프라이스 워터하우스는 세계 자동차업체들 가운데 2000년을 기점으로 10개의 메이커만이 살아남을 것이라 예측한 적이 있었는데, 이것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또 이들은 2010년 까지는 5~7개 거대 메이커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연간 400만 대 정도 이상을 판매하여야만 규모의 경제를 이용하여 살아남을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현재 현대자동차는 GM, 도요타, 포드, 다임러 크라이슬러, 르노닛산, 폭스바겐의 뒤를 이어 7위에 올라 있는데, 앞으로의 생존을 위해 세계 곳곳에 생산 및 조립공장, 현지법인 및 연구소 설립 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참고로 한국을 거점으로 하여, 미국은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는 전략 기지로, 중국은 글로벌 성장 엔진 개발 기지로, 인도는 글로벌 소형차 생산기지로, 터키는 유라시아 수출 거점으로 세계화전략을 펼치고 있다.
현대자동차, 브랜드 신화의 출발 '쏘나타'국산 중형차의 개념을 바꾼 차1988년 6월 1일부터 국내 시판에 들어간 쏘나타는 한마디로 기존 한국자동차의 개념을 완전히 바꿔놓기 시작했는데, 그 해 연말까지 총 1만 989대가 판매됨으로써 쏘나타의 우수성은 곧바로 입증됐다. 한편 1988년 11월 16일에는 쏘나타 3,277대가 선적돼 대망의 대미(對美) 수출을 시작했는데, 중형차로서는 국내 최초로 이뤄진 쏘나타의 미국 진출은 소형차(엑셀) 수출에서의 결과와 경험을 바탕으로, 수출의 폭을 넓히고 차종을 다양화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쏘나타' 문화를 만들어라쏘나타 개발로 국내 중형차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현대는 이후에도 성능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쏘나타 시리즈를 잇달아 내놓았는데, 1989년 7월 시판에 들어간 1990년형 쏘나타는 1989년형과 동일한 가격이면서 새로운 사양을 적용, 안전성과 편의성을 크게 개선시켰고, 1990년 7월에는 2,400cc MPI 엔진을 새로 장착한 최고급 사양의 쏘나타2.4i가 시판돼 고성능을 선호하는 고객들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그리고 1991년 2월 20일부터 시판에 들어간 뉴 쏘나타는 기존 쏘나타의 외관 형상을 변경하고 사양을 고급화한 현대적 감각의 승용차였으며, 같은 해 7월에는 국내 최초로 2,000cc DOHC 엔진을 탑재한 쏘나타2.0골드를 개발·시판했다.
이후 1993년 5월 13일 쏘나타II를 출시했는데, 이 차는 차세대 수출전략형 차종이었다. 참고로 쏘나타를 출시하며 현대는 무엇보다 쏘나타문화 만들기에 주력했는데, 이를 위해 현대는 쏘나타를 '세계인의 자동차'로 부각시키는 데 노력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쏘나타II가 국내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가자, 현대는 1996년 쏘나타III를 내놓았고, 이후 쏘나타는 1998년 EF쏘나타로 진화했는데, EF쏘나타는 전보다 넓어진 차체와 향상된 편의성, 그리고 V6 엔진 라인업이 추가되어 한 단계 고급화 된 차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당시 IMF로 인해 현대는 EF쏘나타가 타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결과는 기우에 불과했다. 철저한 브랜드 마케팅과 변하지 않는 제품력으로 19개월간 국산차 판매1위라는 신기록을 수립해냈던 것이다. 2001년 EF쏘나타는 뉴 EF쏘나타로 차종이 일부분 변경됐고, 이 때 쏘나타는 국내는 물론 미국시장에서도 서서히 그 품질과 제품력을 인정받아가고 있었다.
쎄타 엔진 개발, 실험실을 태워도 좋다정몽구 회장이 '현대호'의 선장이 된 이후 현대는 많이 달라졌는데, 현대자동차서비스 출신으로 무엇보다 품질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던 정몽구 회장은 세계적인 자랑거리인 쎄타 엔진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쎄타 엔진은 현대가 독자 개발한 6번째 가솔린엔진인데, 쎄타 엔진 개발을 위해 김형욱 전무를 포함해 1,000여 명의 인력이, 4년 가까이를 휴일도 반납한 채 매달렸다. 참고로 쎄타 엔진은 순순 국산 엔진으로 최대 출력 166ps/5,800rpm, 최대 토크 23Kg·m/4,250rpm으로 도요타의 캠리(최대 출력 159ps/5,600rpm, 최대 토크 22.4Kg·m/4,000rpm)보다 뛰어나고, 연비도 2.4 기준으로 리터당 10.9킬로미터로 혼다 어코드(리터당 10.8킬로미터)보다 좋다. 현대가 쎄타 엔진 개발에 사활을 걸었던 데는 무엇보다 쎄타 엔진이 NF쏘나타에 탑재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현재 쎄타 엔진이 탑재된 NF쏘나타는 현대의 기대에 맞는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참고로 쎄타 엔진은 다임러 크라이슬러, 벤츠, 미쓰비시의 일부 모델 등에도 탑재될 예정이다.
연구소의 하루는 25시간현대의 연구소는 24시간 불이 켜져 있다. 사실 이들 연구원들에게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25시간이라 할 수 있는데, 세계적인 엔진을 우리 힘으로 개발해낸다는 자부심이 이들의 땀방울을 가치 있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정 회장의 품질경영 핵심 중 하나는 연구개발이 품질의 70~80퍼센트를 좌우한다는 신념인데, 연구개발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상권 사장은 정 회장의 연구소 철학을 "회장이 생각하는 품질원리는, 초기 개발단계에서 고치면 비용이 '1'이 되는데, 한참 양산하는 도중에 고치면 비용이 '10'이 들고, 나중에 이미 판매한 차를 애프터서비스나 리콜을 통해 고쳐주면 비용이 '100'이 들게 된다는 것이다. 회장은 그래서 개발단계, 즉 연구소에서 모든 문제를 걸러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품질-생산-설계가 완벽한 코워크(cowork)를 이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라고 전하고 있다.
'쏘나타', 강한 브랜드가 되어야 살아남는다쏘나타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켜온 비결은 무엇일까. 현대 이종우 이사는 "세계적 수준의 품질과 20년간 지켜온 브랜드파워가 조화를 이룬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쏘나타는 '오너 드라이버가 몰 수 있는 고급차'로 방향을 잡아, 대형차를 끌고 다니기는 부담스럽지만 품격있는 중형차를 소유하고 싶은 고객층을 흡수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쏘나타는 고급화의 길에 들어서고 있는데, 세계 자동차산업의 본고장인 미국공장 건설은 쏘나타의 전략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브랜드 신화의 시작은 지금부터정몽구 회장이 현대의 방향키를 잡으며 거둔 성적은, 쏘나타 브랜드 가치 2,826억 원, 현대 브랜드 인지도 인터브랜드 선정 84위이다. 그러나 현대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2004년 미국에서 또 하나의 성과를 이루었는데, 미국의 유명한 품질조사기관인 J.D파워가 현대 쏘나타의 품질만족도를 1위로 평가하여, 미국 소비자들로부터 객관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사실 J.D파워의 결과는 예견된 것이었는데, 현대는 쏘나타의 품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린 후, 정몽구 회장의 아이디어로 미국 내에서 '10년-10만 마일 보증'이라는 획기적인 카드를 제시했는데, 이는 품질에 대한 현대의 자신감이기도 했다.
참고로 정 회장의 품질에 관한 특별한 관심은 비주류 자동차사업을 전개하면서 몸소 체득한 것이었다. 그는 현대의 경영을 맡기 전 현대모비스의 전신인 현대정공과 현대자동차서비스를 통해 정비와 서비스부문을 섭렵했는데, 이 때 항상 문제되는 것이 품질이었고, 이 때문에 숱한 곤란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현대의 질적인 성장전략은 브랜드 가치를 도요타 수준으로 높이는 데 모아져 있고, 현대는 그 첫 단추로 자동차의 내구성 품질에 대한 고객만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여, 신차초기품질지수 면에서는 이미 미국 J.D파워 등 공인기관에서 도요타와 대등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과제인 신차가 출시되고 3년 뒤 평가받는 내구성 품질에서도, 선진업체 수준의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회가 없으면 우리가 만든다일본업체의 도움, 더 이상 필요 없다현대와 미쓰비시의 관계는 그랜저부터인데, 미쓰비시는 현대의 울산공장에서 그랜저 보디 일체를 생산하여, 일본 현지에서 전자장치와 내장재, 엔진 등을 장착해 '데본에어V'라는 이름으로 판매했는데, 이 합작의 대가로 현대는 로열티를 내지 않고 자신의 브랜드로 동일한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과 V6 엔진 기술의 도입, 그리고 소형과 중형차에 탑재할 DOHC 엔진 기술의 도입의 권리 등을 요구했다. 사실 미쓰비시와의 제휴는 미쓰비시의 필요성에 따라 이뤄지게 된 측면이 강하다. 즉 미쓰비시는 데본에어의 후속차종 개발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는데, 후속차종 개발에는 막대한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합작관계에 있던 현대에게 생산을 요청했던 것이다. 마침 현대 또한 자신의 고급차를 갖고 싶었기 때문에, 두 회사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데본에어의 신모델 개발이 진행되었고, 그랜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상호 보완 관계를 유지하던 양사의 관계는 이제 더 이상 지속되지 않고 있는데, 서로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보충설명하면 기술적으로 완벽한 자립도를 일궈낸 현대가 미쓰비시에 오히려 엔진 기술을 공급해야 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했기 때문이다.
한편의 드라마 같은 미국시장 정복기1970년대 이후 현대는 국내에서는 승승장구했으나, 자동차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1990년대 말까지도 덤핑을 일삼는 값싼 차라는 이미지를 씻지 못하고 있었는데, 현대의 미국시장 재기에는 쏘나타가 앞장섰다. 현대는 1999년 미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당시 동급 베스트셀러였던 도요타 캠리와 품질비교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했는데, 준비과정에서부터 '공연히 망신을 사서 하는 게 아니냐'는 반대가 많았지만, 결과는 현대 관계자들에게 미국시장 공략의 희망을 다시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즉 총 591명의 참가자 중 73퍼센트인 436명이 쏘나타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