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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중심에 서라

손욱 지음 | 크레듀
프롤로그 - 혁신하는 조직, 변화하는 조직만이 성공할 수 있다



혁신을 한자 그대로 풀이해 보면, 가죽 '혁(革)'자에 새 '신(新)'자이니 새로운 가죽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이를 좀더 폭넓게 이해해 보면, 조직이나 풍습, 제도나 방법 등을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비료공업에 입사한 나는 삼성전기와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삼성전자를 거쳐 1995년 말 삼성SDI 대표이사로 부임했다. 내가 삼성SDI에 재직한 3년 동안 혁신을 위해 투자된 비용은 자그마치 700억 원에 달한다. 이 비용은 실로 천문학적 금액이어서, 당연히 처음에는 직원들의 반발도 거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삼성SDI는 투자비용의 몇 배나 되는 수익을 올리게 되었다. 혁신에 참여했던 직원들조차 그 성과에 놀랐다. 나는 삼성SDI의 성공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혁신하는 조직, 변화하는 조직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삼성SDI의 혁신은 다른 기업들과 몇 가지 차이를 보인다. 첫째는 모두 다 바꾸자는 '빅뱅' 방식이었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꾼 사례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혁신을 추진하는 데 비용과 시간, 위험부담이 컸으나 혁신이라는 큰 틀 안에서 회사는 이 모든 것을 감수했다. 둘째는 삼성SDI 혁신은 변화관리 중심형이라는 점이다. 모든 혁신에서 성공과 실패는 조직 구성원들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달려있다. 삼성SDI는 변화관리를 위해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마인드 인프라를 전사적으로 강조했고, 이를 바탕으로 전 사원에게 교육을 진행했다. 그 결과 모두가 현실을 인식하고 혁신목표를 공감하고 한마음 한뜻으로 참여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냈다. 셋째는 혁신을 추진하는 주요 동력이 미들 업-다운의 형태였다는 점이다. 즉 과장이나 팀장과 같은 현업의 허리(미들)들이 각자 파트를 맡아서 변화를 추진했다. 넷째는 프로세스 혁신과 정보시스템ERP를 동시에 추진하는 Y차트방식을 적용했다는 점이다. 더구나 그 위에 6시그마까지 동시에 추진하는 이중Y차트 방식을 성공시켰다. 이는 한국인에게 잠재되어 있는 융·복합능력의 승리였다.



혁신이 전국에 메아리 칠 때,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진입할 수 있다고 나는 감히 장담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혁신적인 사고와 체계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혁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혁신에 성공하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는 변화관리를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변화관리는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갭을 없애는 것이다. 내가 30년 동안 배운 변화관리의 경험과 지혜를 후배들이 순식간에 배우면 오죽 좋겠느냐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경영혁신이 성공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혁신을 주도했던 사람이 CEO가 되기 어렵고, 또한 기업의 수장으로 재임하는 기간이 일반적으로 짧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경영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혁신을 이해하는 경영자는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행운아이며 내가 혁신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삼성이라는 기업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제1부 생존과 소멸의 갈림길에서



내가 삼성SDI의 전신인 삼성전관(이후 삼성SDI로 사명변경)의 대표이사로 취임하자 많은 사람들은 출세가도를 달린다고 부러워했다. 그러나 나는 삼성SDI의 대표이사로 발탁되었다는 통보를 받고도 기뻐할 수가 없었다. 당시 삼성SDI는 일본·대만 업체와의 경쟁에서 이래저래 뒤쳐지면서 안팎으로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이러한 대외적인 어려움 이외에 삼성SDI는 내부적으로도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대표이사로 취임하여 고객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대만의 거래처를 방문했을 당시, 외부에서 삼성SDI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임직원들의 위기의식은 그야말로 제로에 가까웠다. 창업이래 흑자행진을 계속하다 보니 "우리 회사가 적자가 날 리 없다.", "경영진은 늘 위기라고 강조했지만 해마다 이윤을 냈다. 이것은 원가절감을 위한 입 발린 소리일 뿐이다."라는 안일한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에게는 그동안 잘 돌아가던 집안이 내가 들어간 시기에 즈음하여 갑자기 내려앉을 상황에 처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추락한다면 나는 잘 나가던 회사를 망치는 셈이었다. 내 처지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였다.



삼성SDI의 당시 상황으로는 신경영을 실현시키기가 까마득했다.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튿날 나는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그들의 얘기를 듣는 동안 나는 커다란 문제점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현재의 위기상황을 진단하는 그들 각자의 시각이 열이면 열 모두 다르다는 점이었다. 한 마디로 현재 상황에 대해 위기라는 총론은 같은데, 각론에 있어서는 모두 제각각으로 뚜렷한 인식차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었다.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나는, '어쩌면 우리 회사의 근본적인 문제는 외부에서보다 내부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떠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인식하고 원인을 규명하는 일이 중요한데, 임직원들의 생각이 저마다 달라 제대로 한 방향으로 모이지 못하니 무슨 일을 이룰 수 있겠는가. 얽히고 설킨 우리 회사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전 사원이 한마음 한뜻이 되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삼성SDI와 같은 상황의 회사를 '보석의 산'이라고 부른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자기들은 일본 공장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개선할 사항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돈을 버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반면 한국 공장을 보면 기쁘다고 한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이를 조금만 해결해도 이윤을 창출할 수 있고 기업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얘기에 따르면 삼성SDI는 많은 문제들이 눈에 잘 보이니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막상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무거운 마음도 덜어지고 힘이 솟기 시작했다. 공장을 둘러보고 돌아오면서, 나는 우리 회사가 대대적인 경영혁신을 단행하지 않으면 미래를 보장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지금까지의 그릇된 관행과 나태한 타성을 벗어버리고 원점에서부터, 문제의 본질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나는 여러 현실 분석을 통해 우리 회사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만의 CPT라는 회사는 지금도 24%의 이익을 실현하고 있다. 우리가 대만보다 저렴하게 만들고, 일본보다 고기술 제품을 생산 할 수 있다면 가능성이 있었다. 평판사업부 또한 후다바라는 기업의 이익률이 20%에 이르는 등, 일본 동종 업체의 수익률은 평균 10%를 넘고 있었다. 그렇다면 업종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9년 연속 적자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평판사업을 정리하자고 결단을 요구하는 경영진에게 "그동안 삼성SDI의 평판 디스플레이 사업은 회사가 총력을 기울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손을 떼는 것은 너무 아깝습니다. 올바른 전략을 가지고 제대로 해보겠습니다. 1년 내에 흑자 전환하지 못하면 스스로 정리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스스로 배수진을 쳤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단 3년! 3년 내에 성과를 내야 한다.' 그간 사장의 재임기간을 미루어볼 때 내게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3년 정도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안에 회사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성과를 이루어내야 했다. 삼성SDI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상 내게 신경영을 실현하여 회사를 초일류기업으로 만들어야 할 사명과 책임이 있었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먼저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들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저변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 필요가 있었다. 세계적 기업들이 그러했듯이 우리 또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였다. 바로 혁신하는 것이었다. '지금과 같은 식으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변해야만 한다. 머리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변해야만 생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계 일류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것이 신경영이 아닌가.'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나는 과감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2부 혁신에 승부수를 던지다



삼성SDI를 혁신하겠다는 나의 의지는 그 누가 뭐라 해도 꺾이지 않을 만큼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의지만으로 혁신이 이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안일하고 타성에 젖어 있는 전 조직원을 일깨워서 경영혁신의 대열에 동참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러나 어떤 조치를 취할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생각한 것이 바로 프로세스 혁신 PI이었다. 삼성SDI의 프로세스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업무처리방식과 정보 및 물류시스템을 고객 지향으로 바꾸어 경쟁 우위의 변화대응력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했다. 무엇보다 세계 최고의 기업들이 실행하는 가장 합리적인 프로세스를 연구해 이를 실행하면 자연히 프로세스의 질은 높아질 것이기 때문에, 질 위주 경영도 자연스럽게 가능해질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이건희 회장이 끊임없이 주장한 신경영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내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생각보다 PI에 대한 임원들의 인식은 낮은 수준이었다. 임원들이 이러할진대, 현장에 있는 직원들의 인식이 어느 정도일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래서는 PI를 시도하더라도 형식적인 것밖에는 되지 않을 거야.' 임원진에서부터 PI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임원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내 마음은 더욱 절박해졌다. 삼성의 질 경영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PI가 가장 유력한 방도였기 때문이다. 1996년 1월 신라호텔에서 전 세계 삼성SDI 임원들이 모두 참가한 가운데 1박2일간의 워크숍이 열렸다. 우리가 어떤 마음과 비전으로 혁신을 준비하고 추진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수많은 토론을 통해 점차적으로 우리의 현재 모습에 대한 솔직하고 깊이 있는 분석과 공감이 이루어졌다. 그 날을 계기로 우리의 비전인 '우리 미래의 모습'에 모두의 의지가 모아지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PI만이 살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시작이 반이다. 시작에 투자한 시간과 정열은 절반의 성공 가치가 있었다.



삼성전자의 경우 프로세스 혁신 계획을 5개년 계획으로 세워서 3년 간은 프로세스 혁신PI를 하고 4년째에 시스템을 바꾸었는데, 삼성SDI는 그렇게 했다가는 생존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서 1년 안에 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곧 KPMG의 컨설팅 책임자인 슈미트 씨와의 면담을 가졌다. "다른 컨설팅 회사들은 모두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당신들은 어떻게 1년 안에 가능하다고 했습니까?" 내 질문에 슈미트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가 1년 안에 해낸다면 삼성SDI도 회생할뿐더러 우리 회사도 최고의 위치에 오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단, 우리가 1년 안에 일을 끝내려면 Y형 혁신을 실시해야 합니다." "Y형 혁신이요?" Y형 혁신은 PI와 ERP를 동시에 실시하는 것을 뜻했다. 즉 기존의 방식인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그 후에 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세스와 정보시스템 작업을 동시에 실시하는 것이었다.



슈미트 씨를 만난 후 1996년 3월, 나는 임원들과 그 문제를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다. 아침 일찍 시작된 회의는 한밤중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진통을 겪으면서 우리는 마침내 Y형 혁신을 실시하는 쪽으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세계 최초로 '빅뱅' 방식을 시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빅뱅 방식은 말 그대로 부분적인 도입이 아니라 일시에 전체 시스템을 완전히 교체한다는, 그야말로 세계 최초로 일대 혁신을 시도하겠다는 얘기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이유로 당시 우리에게 닥칠 혼란이 어느 정도인지는 나조차도 감히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헌집을 고치는 것보다는 새집을 짓는 것이 나으며,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회사가 수습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1년밖에 시간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세계적인 ERP시스템인 SAP R/3 준비작업을 시작했다. 그 후 1년이 되어 모든 시스템을 SAP R/3로 바꾸려고 하자 일부 임직원들이 반대를 하고 나섰다. 처음 설치하는 것인데, 그것도 기존 시스템을 다 걷어내고 새로 하게 되면 만약 제대로 안 되었을 경우 회사가 엉망진창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기존 시스템을 돌리면서 한쪽 편에서 SAP R/3을 도입하여 그 시스템이 잘되면 그때 가서 바꾸자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양쪽 시스템이 동시에 가동될 경우 익숙한 것이 잘 돌아가고 있는데 직원들이 새로운 것에 관심을 기질 리가 만무했다. 어차피 혁신이란 죽었다 깨어나도 하는 것이다. 혁신을 하려면 그렇게 한 번에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대로 강행하기로 했다. 나는 1997년 4월 1일부터 무조건 스위치를 바꾸겠다고 천명했다. 그렇게 선언을 하고 나니 직원들이 이때부터 서너 배 더 열심히 일을 했다. 그렇게 하여 몇 달 동안 할 일을 일사불란하게 처리했다. 아마 그렇게 배수진을 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SAP R/3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1·10·100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기획과정에서 결함을 발견하면 1달러가 소요되고, 실행 과정에서 발견되면 10달러가 소요되며, 고객이 결함을 발견하면 100달러가 소요된다는 법칙이다. 이 법칙은 처음에 잘못하고서 나중에 고치느라 법석을 떨지 말고, 사전에 협의하여 처음부터 올바르게 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또 '시작이 반이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다. 모두 시작이 매우 중요하며, 중요한 만큼 항상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불량을 개선하고 생산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생존으로 직결되는 기업의 입장에서 처음부터 올바른 부품을 올바른 방법을 통해 생산하는 일은 백 번 천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한 일이다.



물론 원칙대로 일하려면 처음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 원칙대로 일하지 않으면 짧은 시간에 제품을 만들 수 있긴 하겠지만, 결국 AS비용으로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당신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우리나라는 매사에 눈앞의 이익만을 보고 대충대충 일처리를 하는데 반해, 선진국의 경우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처음에는 천천히 나중에는 신속히 처리하는 방식을 취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물론 처음부터 천천히 올바르게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삼성SDI 재직기간 동안 내 머릿속은 원가절감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자주 자료를 검토하며 불필요한 비용이 낭비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임원회의에서 부산공장의 폐수처리시설을 두 배로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NEC의 폐수처리시설 전문가를 초청하여 부산공장 문제를 의논했다. "오늘 저의 결론은 바로 그겁니다. 폐수처리시설을 만드는 데 고심하지 말고 차라리 폐수를 줄이십시오. 그러면 폐수처리시설을 두 배로 늘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원점에서부터 다시 생각하여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고 거기서부터 문제의 근본요인을 제거하도록 조언해 주었다. 이처럼 우리는 원점에서부터 문제를 다시 생각해 근본원인을 제거함으로써 폐수처리시설을 증설하지 않고도 폐수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었다. 만약 우리가 문제를 원점에서부터 생각하지 않았다면, 많은 돈을 들여 폐수처리시설을 지어야 했을 것이다. 원점 사고는 획기적인 개선과 대안 제시에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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