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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베이션 경영

모리 가즈오 지음 | 랜덤하우스중앙
프롤로그 - 고노스케 이래의 경영자가 탄생한 것인가



2003년에 글로벌 브랜드로 정한 Panasonic으로 사명을 고쳐 명실 공히 세계적인 초우량회사로 변신하겠다는 시나리오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 로고 등을 바꾸는 단순한 브랜드전략이 아니다. 경영의 컨셉트가 바뀌면서 사명도 바뀌고 있다.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공업화사회에 맞추어 일으켰던 20세기형 비즈니스모델이 정보화와 글로벌화에 대응하는 21세기형으로 전환하는 중이다. 이 작업이 전부 마무리 되면 사명이 변경되리라고 예상된다. 지금까지 나카무라가 추진해 온 개혁은 낡은 마쓰시타전기를 파괴해서 기업유전자를 바꾸는 것이다. 위기를 넘어서서 구조개혁이라는 힘든 일은 이미 마쳤다. 마쓰시타전기산업이라는 고전적인 회사명과 결별해 Panasonic으로 이행하는 것은 이제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낡은 간판 밑에서 변화가 착실히 진전되고 있다. 현상을 의연히 바라보며 냉철하게 인식하는 나카무라는 날로 개혁에 대한 확신을 다지고 있다.



2001년도에 눈사태처럼 급격하게 침체에 빠지면서 바닥까지 내려간 후 상승하기 시작했지만, 초기회복은 완만했다. 후반에 좋아져서 'V자형' 그래프를 보여 주지만, 이익률은 여전히 낮은 채 머물러 있다. 그러나 라이벌인 소니가 별안간 2003년 1~3월기에 적자를 보이며 예상 외로 업적 악화를 표면에 드러냈다. 이 발표는 주식시장 전체를 흔들어 모든 주가를 끌어내리는 소위 '소니 쇼크'를 일으켰다. 이러한 타사의 경영 악화가 마쓰시타의 회복을 사실 이상으로 돋보이게 하는 결과가 되었다. 나카무라에 대한 평가는 국내외 전부 V자형으로 좋아졌다. 2004년 초, 미국의 경영 잡지 『포브스』가 올해의 주목받는 아시아의 경영자로서 나카무라를 선정했다. 소니를 재역전시킨 그의 업적을 평가하면서, '토끼 소니'를 '거북이 마쓰시타'가 추월했다고 비유했다. 나카무라는 더욱 높은 곳을 보고 있다. 변모한 마쓰시타를 세계적인 초일류 회사로 일궈내겠다는 대망을 안고 있다.



Chapter 1 위대하기 때문에 숙명처럼 따라다닌 창업자의 주술



늦게 핀 경영자

나카무라는 48세 되던 1987년에 우연히 미국에서 근무하게 된다. 그곳에서 글로벌 시장경제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그 속에서 기업이 해야 할 바는 무엇인가, 기업과 인간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현실과 부딪치며 자문자답을 되풀이했다. 사장에 취임했을 때부터 나카무라는,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명쾌한 문제의식과 구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우선 낡은 마쓰시타를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야마시타 도시히코에서 시작해 다니이 아키오, 모리시타 요이치를 거친 다음, 현재의 나카무라에 이르는 마쓰시타의 역대 사장 계보는 '마쓰시타의 30년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뤄졌던 재 활성화를 위한 시행착오는, 어쨌든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 하고 있다. 그러나 왜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수많은 요인이 뒤엉켜 있지만, 개혁의 초점이 좀처럼 맞지 않았던 데 큰 원인이 있다. 마쓰시타가 안고 있었던 문제는 사회의 변화와도 그 뿌리가 깊이 얽혀 있어서 명확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위대한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경영자임과 동시에 경영사상가(經營思想家)의 측면도 아울러 지니고 있었다. 방대한 저작물 외에도 영상이나 음성기록이 풍부하게 남아 있다. 스스로 이념과 장기비전에 입각해서 조직전략을 세워 경영을 실행했고, 이론대로 경영을 빈틈없이 시종일관 했으니 고노스케는 역시 천재였음에 틀림없다. 그는 자신의 책 『실천경영철학』의 서두에 "먼저 경영이념을 확립할 것"이라고 썼다. '회사는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가, 또 어떤 목적과 어떤 방법으로 경영할 것인가'에 대해서 흔들림 없는 기본적인 사고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건전한 경영발전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어느 것이나 그야말로 고전적인 사시(社是), 사훈이다. 읽어보아도 단순히 멋있는 말을 늘어 놓은 것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당시 34세의 중소기업 경영자가 매일 일에 쫓기면서 '사회정의'와 '사회생활 개선' 등을 생각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풍요 속의 저조

일본은 기적적인 경제성장의 결과로 대량소비 사회를 맞이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물건을 함부로 취급하고 쉽게 버려, 비판 받는 시대로 바뀌면서 일본국민의 90퍼센트가 중류의식을 갖게 되었다. 바로 엊그제까지 빈곤국이었던 일본이 풍요로운 사회에 진입하면서, 마쓰시타는 대량생산, 대량판매 시대의 챔피언기업으로서 확고부동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끊임없는 생산으로 물자를 무진장 공급해 더 좋은 낙원을 건설하는 것이 본래의 취지였던 마쓰시타전기는 뜻밖에도 풍요로움이 실현되자마자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는 모순에 빠졌다. 풍요를 이룬 후에는 무엇을 제공해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경영이 필요한지 새로운 승리방정식을 창출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즉, 종래의 성공요인이 이제는 족쇄로 바뀐 것이다.



개혁의 한계

2대 사장인 야마시타는 "지금은 아직 괜찮지만, 이대로 두면 마쓰시타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품게 되었다. 그 문제가 나카무라 시대에 더욱 절박해지면서 과감히 대처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는 망설이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퇴로를 틀어막고, 우선 낡은 마쓰시타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단을 내렸다. 한 번 '재설정(reset)' 버튼을 눌러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컴퓨터로 비유한다면, 외관은 그대로 두더라도 심장부인 중앙처리장치(CPU)와 컴퓨터를 움직이는 운영체제(Operating System, OS)를 완전히 바꿔야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마쓰시타는 지금 CPU와 OS를 새로운 버전으로 방금 교환을 끝낸 셈이다. 마쓰시타전기산업이란 회사명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지만 극단적으로 말하면, 옛날과 지금은 그야말로 별개의 회사이다.



순위여부가 오히려 소극적인 자세로

'도요타 생산방식'이 생산관리 분야에서 세계적인 평가를 받는 독창적인 시스템이라고 한다면, '마쓰시타의 사업부제'는 경영관리분야에서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독특하고 우수한 조직으로 마쓰시타의 핵심이자 강점의 연원이라고 여겨지고 있었다. 사업부제와 대비되는 조직은 직능별 조직으로 영업부, 제조부, 인사부, 경리부, 기획부 등으로 각각 직능별로 전문화했다. 반면에 사업부제는 제품별로, 또는 시장이 같은 제품군으로 조직을 나누어 각각 영업, 제조, 인사, 경리 등의 직능별 조직을 한 세트로 갖추어 독립채산을 원칙으로 운영한다. 기업이 작을 경우는, 직능별 조직 쪽이 효율적이다. 차츰 매출액 규모가 확대되고 품목수가 늘어나 사업 분야가 다양해지면, 분권적인 사업부제 쪽이 유리해진다. 사장 한 사람이 사업 전체를 장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제품이나 사업 분야별로 독립채산제를 채용하는 편이 수익관리 면에서도 용이하다. 이런 이점 때문에 지금은 다각화한 대기업을 경영하는데 사업부제는 하나의 기본적인 조직원리가 되어 있다. 이것을 일찍이 이끌어 내어 완성한 곳이 마쓰시타이다.



과거의 성장 원동력

그러나 사업부제는 숙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사업부장은 어디까지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는 것일까. 회사의 통제는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가. 말하자면 원심력과 구심력의 조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마음대로 하라고 맡겨두면 회사가 뿔뿔이 흩어져 버릴 것이고, 그렇다고 너무 속박하면 사업부제의 장점이 사라지고 만다. 냉장고든 컬러텔레비전이든 제품별로 성장을 추구할 수 있었던 시대에는 이 조직이 아주 적합했다. 각기 자기완결형 경영을 목표로 했어도 폐해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분발해서 대량생산, 대량판매를 추진할수록 시장을 확대하면서 점유율을 크게 늘려갈 수 있었다. 즉, 이 사업부제는 제품 중심의 공업화사회에 최적의 조직으로 진화해 마쓰시타에 꿈과 같은 성공을 안겨 준 것이다. 그러나 정보나 통신 또는 소프트서비스 등, 지금 말로 표현하면 디지털네트워크가 키워드가 된 시대에는 이 조직이 오히려 마이너스적인 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또 해가 지날수록 제도피로 현상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격경영의 원동력이 되어야 할 사업부제가 반대로 수비태세를 조장하는 요인으로 변질해 버리고 만 것이다.



백전백승의 주술

독립채산 사업부제는 그 일탈을 숫자로 체크하는 경리시스템과 일체가 되어, 마쓰시타 경영의 근간이 되었다. 그러나 창업가정신이 약해질수록 견실 위주의 경영관리 구조가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커졌고, 모험을 피하고 리스크를 취하지 않는 소규모사업만 전개했다. 이렇게 되니 신규사업이 설사 성공한다고 해도 옛날처럼 큰 열매를 맺을 수 없었고, 다시 이익이 적어지니 점점 견실만을 강조하는 보수경영으로 돌아서는, 말하자면 악순환에 빠지고 말았다. 원래 초우량 기업의 받침대였던 마쓰시타경리가 어느새 눈앞의 작은 이익만 쫓는 단기 지향의 경영을 부추기고 있었다. 사실 사내에서도 경리부문을 가리켜 거만한 공무원 같다고 수군대고 나카무라 개혁의 강력한 사내 저항세력으로 지목하고 있었지만, 이런 불행한 결과는 적어도 20여 년 전부터 싹이 터 온 것이다.



한두 마디 말까지 따로따로

고노스케는 이념을 중시하는 이상형경영자로 전략적으로 먼 앞날을 내다보며 대담한 성장정책을 취했지만, 자금융통에 대해서는 과민할 정도로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성공하는 창업자에게 모순은 반드시 따라 다닌다. 성공한 후에도 돈에 대한 생각은 많은 영세기업의 경영자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냉혹한 체험을 거쳐 터득한 금전철학이 마쓰시타경리에 맥맥이 흐르고 있었다. 물론 고노스케는 구두쇠도 수전노도 아니다. 만약 돈을 무조건 아끼기만 했다면 지금의 마쓰시타그룹은 불가능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위대했기 때문에, 그가 이야기한 한두 마디 말까지 제각각 돌아다니며 힘을 발휘했다. '적자는 죄악이다', '축적된 자기자금으로 경영을 해야 한다' 하는 말이 금과옥조가 되어, 예외를 일체 받아들이지 않는 진리처럼 왜곡되고 말았다.



경영이념 이외는 전부 파괴한다 - 카리스마식 경영으로부터 탈피

무엇이든 막상 바꾸려고 하면, "창업자가 결정한 것인데 감히?"하는 반론이 곧 나오게 된다. 이는 개혁자가 오히려 개혁을 저해하는 방패로 둔갑하는 모순된 현상이다. 실제 마쓰시타경영 시스템의 대들보였던 사업부제나 경리제도가 신성불가침의 고정관념이나 터부로 변질돼 사내 구석구석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 터부에 도전한 사람이 나카무라다. "경영이념 이외에는 성역이 없다. 무엇이든 깨뜨려도 좋다"는 지시는 제3자에게는 가볍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만큼 확실하게 말하는 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나카무라는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았다. 조직 형태나 경영관리구조는 그때그때의 환경과 경영전략에 따라서 바꿔야 한다는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 나카무라가 한 일은 소위 콜럼버스의 달걀이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해보니 아무것도 아니어서, 왜 지금까지 허송세월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야마시타 개혁으로부터 약 30년이 지나서야 마쓰시타전기는 지금 재생의 때를 맞이한 것이다.



사업부제로 된 마쓰시타 조직은 디지털네트워크시대에는 처음부터 부적합했다. 규모의 거대화, 사업 활동의 국제화 등을 쫓아갈 수 없는 운영조직이기 때문이다. 보통 경영자라도 경영할 수 있는 조직으로 새로운 경영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다. 초우량 회사를 지향하는 경영조직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아울러 글로벌화, 정보화돼 가는 디지털네트워크 시대에 맞추어 전체 최적이 무리 없이 짜여져야 한다. 그 해답이 마쓰시타가 새로이 도입한 '글로벌연결경영' 구조이다. 지금 라이벌은 국내동업자만이 아니다. 구미의 메이커는 물론, 아시아기업의 대두도 눈부시다. 그러나 해외사업까지 포함해 글로벌로 전체최적을 도모하라고 아무리 지시한다 해도 체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쇠귀에 경 읽기다. 이것을 고치기 위해서 '글로벌연결경영'이란 구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정이 합리적인 혁신을 막고 있다

마쓰시타가 세계적인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정과 합리가 조화를 잘 이룬 경영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을 계승하기는 비교적 쉽다. 아침 회의 등과 같은 형식을 답습하면 어느 정도는 지켜진다. 그러나 합리는 어렵다. 물려 받은 조직이나 제도를 무조건 유지하려고 하면, 혁신을 저해한다. 위대한 성공자나 선배가 존재한 기업의 경우는 아무래도 그 업적을 지켜야 겠다는 생각이 앞서 사고정지에 빠지기 쉽다. 마쓰시타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야마시타, 다니이, 모리시타로 이어지는 역대 사장은 정을 강조하는 마이너스역학에 발목이 잡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올가미에 걸린 꼴이었다. 나카무라는 마쓰시타가 대규모 적자기업으로 전락한 후 도저히 방치할 수 없는 타이밍에 사장직을 물려받아 경영책임자가 되었다. 많은 사람이 마음속으로 정체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나카무라가 반복해서 내보낸 '파괴와 창조'라는 메시지가 마쓰시타라는 거대 집단에 화학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어느 시대에 뜻밖의 인물이 홀연히 나타나 주어진 역할을 해내는 경우가 자주 있다. 결과론이지만 새 시대가 바로 그런 인물을 구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마쓰시타를 볼 때 나카무라가 그랬다. 그러면 왜 나카무라인가.



Chapter 2 원망을 무릅쓴 리더십



껍질만 남은 사상은 말할 힘이 없다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나카무라의 성격은 젊을 때부터 두드러졌다. 무슨 일이나 합리성을 강조하고 있어 언뜻 풋내기 티를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쓰시타의 경영철학을 이해하는 방법도, 고노스케와 먼 거리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순수하지 않았을까. 강이나 호수의 자연수보다 한 번 끓인 증류수 쪽이 더 순수한 것과 같다. 문서화된 것이나 간접적으로 들은 언행록은 머리의 사고회로를 거쳐 나름대로 음미하며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만큼 추상화시켜 논리적으로 정리한 후, 머리에 집어넣기 때문에 순도가 높아진다. 좀 더 원리적인 형태로 흡수되는 것이다. 고노스케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좋든 싫든 그의 행동거지까지 포함된 인격과 연결시켜 사상을 이해한다. 존경하는 사람의 말을 가까이서 듣는 것은 그 인물을 아는 데 분명히 유리하지만, 반대로 함정도 된다. 매일 그의 말을 직접 들으면 그것으로 다 안 것처럼 착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카무라는 마쓰시타의 경영이념 계승방법을 둘러싸고 잘못된 사고방식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경멸하고 있다. 그들은 창업자의 말을 그대로 본받으며, 그가 남긴 것은 무엇이든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나카무라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노스케가 한 '일신(日新)'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다. "일신은 창업자가 즐겨 썼던 말입니다. 지금 말한다면, 이노베이션에 해당하지요. 이 말에는 경영은 날마다 개혁이 필요하다는 뜻이 들어 있지 않을까요. 고노스케 회장님은 경영자는 항상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조령모개가 아니라 조령주개(朝令晝改)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념과 철학 이외는 모든 것을 바꿔 가지 않으면 안 되고, 변하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사상철학에 근거해서 철저히 행동했습니다." '창업자의 경영이념 이외에는 성역을 두지 않고 파괴와 창조를 철저히 추진해 나간다'는 나카무라의 경영개혁 메시지는 이런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나카무라는 원래 영업출신으로 현장을 좋아하지만, 경영은 이론적으로 해 나가는 연역적인 방법을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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